2020년 11월호

“내 몸은 잔뜩 화가 나길 원한다” 서른 살 기자의 바디프로필 프로젝트⑫

[사바나] 누가 신랑인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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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여성동아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0-10-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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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원님, 이젠 쌀도 끊고 고구마 드세요”

    • 새로운 친구가 된 찐 고구마와 찐 단호박

    • 족발 포식에 결혼식장 뷔페에서 세 접시 뚝딱

    • 17일 동안 체지방 3.4㎏ 감량 목표!

    *이현준 기자의 바디프로필 프로젝트는 8월 5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10월 27일 촬영한 이현준 기자의 몸. [지호영 기자]

    10월 27일 촬영한 이현준 기자의 몸. [지호영 기자]

    “회원님, 남은 3주 동안만 고생 좀 합시다.” 

    바디프로필 촬영까지 남은 시간이 약 3주 앞으로 다가오자 담당 트레이너가 더욱 엄격해졌다. 운동 강도가 높아졌음은 물론, 식단에도 변화를 명(命)했다. 가장 가혹하게 느껴진 명령은 쌀 대신 고구마를 먹으라는 것. 같은 탄수화물이지만 고구마는 GI지수(음식을 섭취한 후 혈당이 상승하는 속도를 나타내는 수치. 지수가 높을수록 혈당이 빠르게 상승해 인슐린 과잉 분비를 일으키고 체지방 축적이 일어나 비만이 촉진됨. 쌀밥은 100g당 92, 고구마는 100g당 55로 알려져 있음)가 낮아 다이어트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닭 가슴살 만두도 끊어야 했다. 열량은 낮지만 첨가물이 많아 좋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간식으론 단호박을 추가했다. 단호박은 식이섬유소가 풍부하고 열량이 낮아(찐 것 기준 100g당 약 50㎉)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이다. 고구마와 단호박 모두 좋은 건 알겠다만 그나마 하루의 낙이었던 쌀밥과 닭 가슴살 만두를 끊어야 한다니. 가혹하긴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고려하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혼밥’과 ‘집밥’은 이렇게

    고구마와 단호박을 찐 후 일정 무게로 나눠 포장했다. 조리의 번거로움도 줄여주고 보관과 휴대가 간편하다.

    고구마와 단호박을 찐 후 일정 무게로 나눠 포장했다. 조리의 번거로움도 줄여주고 보관과 휴대가 간편하다.

    회사에서 ‘혼밥’을 하거나 집에서 식사를 할 땐 트레이너가 짜준 식단(고구마, 닭 가슴살, 채소, 김치)을 엄수하기로 했다. 특히 고구마는 반드시 ‘찐 고구마’를 원칙으로 했다. 사실 에어프라이어로 조리해 먹으면 더욱 맛있다. 그럼에도 찐 고구마를 고집한 이유는 고구마는 조리법에 따라 열량과 GI지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양이어도 구운 고구마가 찐 고구마보다 열량도 높고 GI지수도 높다. 호주 시드니대의 실험에 따르면, 고구마를 삶았을 때 GI지수는 46이었지만 구웠을 때에는 94까지 높아졌다. 고구마 속 전분의 한 종류인 저항성 전분이 요리 과정에서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맛을 비교해 봐도 구운 고구마가 찐 고구마보다 더욱 달게 느껴진다. 



    다만 하루에 두 번 이상 먹어야 하는데, 먹을 때마다 고구마를 찌자니 너무 번거로웠다. 그래서 고구마와 단호박을 한 번에 대량으로 찐 후, 저울로 무게를 재 비닐에 담아 각각 포장했다. 한 팩 당 고구마는 200g(약 280㎉), 단호박은 150g(약 75㎉)이 넘지 않도록 했고 모두 냉동실에 넣어 보관했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전자레인지에 3분간 데우면 방금 한 것과 비슷한 수준의 맛이 유지됐다. 이렇게 하니 마치 HMR(가정간편식)과 같은 느낌이랄까. 조리의 번거로움도 줄고 휴대하기도 간편했다. 다이어트 식단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라면 이 방법을 적극 추천한다.

    이렇게 먹으면 노력이 헛수고인데…

    12주차 식단.

    12주차 식단.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기는 쉽다. 이번 한 주가 유독 그랬다. “누구나 얻어맞기 전에는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는 복싱 선수 마이크 타이슨의 말처럼 ‘조금만 먹어야지’라는 결심은 음식 앞에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10월 21일 점심엔 족발가게에서 회식이 있었다. ‘몇 점만 집어먹으리라’ 굳게 다짐하고 갔지만 막상 족발을 영접하니 허사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릇엔 먹고 남은 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족발은 왜 이리도 맛있는 걸까. 24일엔 회사 선배의 결혼식이 있었다. 식사를 하러 피로연 자리로 향했는데, 갖가지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었다. 

    처음엔 살이 덜 찌는 샐러드와 회만 조금 먹으려 했지만 먹다보니 잘 되지 않았다. ‘한 개씩만 가져가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접시에 옮겨 담았지만 뷔페의 특성상 가짓수가 많다보니 어느새 접시엔 음식이 빽빽하게 찼다. 함께 간 동기들은 “샐러드는 위장인 거 같군. 그냥 식사를 하는데?”라며 웃었다. 조금 멋쩍었지만 이날따라 장어구이가 어찌나 맛있던지. 달달하고 입에서 살살 녹는 식감이 절제를 무너뜨렸다.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축하해야 해’라며 자기합리화를 한 후 세 그릇을 흡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랑은 따로 있는데 무슨 논리로 ‘셀프 축하’를 한 건지 모르겠다.


    12주차 운동.

    12주차 운동.

    잔뜩 먹어 놓고 뒤늦게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괜히 먹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남은 시간도 얼마 없는데….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반성했다. 족발을 먹은 날은 저녁을 굶었고, 주말엔 하루에 두 번씩, 총 다섯 시간 운동하며 스스로 식탐의 죄에 대한 형(刑)을 집행했다.

    살짝 화가 나려는 몸, 체지방률 8%가 목표

    10월 23일 이현준 기자가 운동하고 있다. 극소노(極小怒) 정도는 느껴진다.

    10월 23일 이현준 기자가 운동하고 있다. 극소노(極小怒) 정도는 느껴진다.

    운동을 하루도 쉬지 않았기 때문일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인바디(체성분 분석기) 결과는 소폭 향상됐다. 26일 오전 측정 결과 체지방 9.4㎏, 체지방률 11.5%. 체지방률이 낮아질수록 몸에서도 변화가 느껴졌다. 조금씩 근육이 도드라지고 있다. 대노(代怒)까진 아니지만 극소노(極小怒) 정도는 느껴진다. 


    10월 19일 체성분 분석기(인바디)로 측정한 결과(왼쪽)와 26일 측정한 결과(오른쪽). 소폭 향상됐다.

    10월 19일 체성분 분석기(인바디)로 측정한 결과(왼쪽)와 26일 측정한 결과(오른쪽). 소폭 향상됐다.

    담당 트레이너는 기자에게 “회원님은 대회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프로선수도 아닌 일반인이잖아요. 체지방률 8% 정도면 나름 괜찮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조언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체지방률 7%~8%면 일반인 기준 “운동 좀 열심히 했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첫 목표였던 5%보단 느슨해졌지만 이상보단 현실을 선택하기로 했다. 26일 측정값을 고려하면, 3.4㎏의 체지방을 감량할 경우(골격근량이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체중은 78.4㎏이 되며 이때의 체지방률은 약 7.6%다. 26일 기준 촬영까지 17일 남았으니 하루에 체지방을 200g 감량하면 된다.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닌 수치여서 이를 목표로 삼았다. 17일 후엔 몸이 극대노(極大怒)를 표출하길 바라본다. 스스로도 어떤 모습이 나올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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