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미국도 ‘플랫폼 노동자’ 근로자성 논란… 우버·리프트·도어대시 2억달러 로비·홍보戰

우버·리프트·도어대시, 캘리포니아주 ‘주민투표’ 통해 ‘직고용 의무화’ 막으려 해

  •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입력2020-11-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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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공유경제 업계, ‘플랫폼 노동자’ 직고용 의무화한 ‘AB5 법안’에 반발

    • “‘플랫폼 노동자’, 직원 아닌 ‘독립사업자’로 규정하자” 주민 발의

    • 우버 “고용 비용 상승으로 일자리 94만개 사라져”

    • 3개사 로비·홍보에 2억 달러(2260억 원) 지출

    • “유연한 근무시간 선호” vs “최저임금·유급병가 보장해야”

    • 韓 ‘배민’, 직고용 대신 ‘처우 개선’ 절충안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앞에 설치된 ‘우버’ 탑승 장소 안내판. [유근형 동아일보 기자]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앞에 설치된 ‘우버’ 탑승 장소 안내판. [유근형 동아일보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탄생한 기업 우버(Uber)가 캘리포니아 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더 이상 캘리포니아에서 사업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11월 3일(현지시간) 우버로 상징되는 미국 내 ‘긱 이코노미(gig economy·디지털 공간을 매개로 단기간 근로가 이뤄지는 경제 형태)’ ‘온디맨드 비지니스(ondemand business·기업이 수요자 요구에 즉각 반응해 서비스·상품을 제공하는 사업 형태)’ 산업의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이날 캘리포니아주 내 공유경제 업체에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단기간 일하는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결정할 ‘주민발의 22호(Proposition 22)’ 투표가 있기 때문이다. 공유경제 업체의 요람 실리콘밸리가 다름 아닌 캘리포니아주에 있다. 투표 결과가 미국 공유경제 업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우버, 리프트, 도어대시(DoorDash·미국판 ‘배달의민족’) 등 공유경제 기업은 주민 발의 22호를 통과시키려 한다. 우버나 리프트의 운전기사, 도어대시 배달원처럼 특정 기업의 앱(app)이나 플랫폼(platform)을 통해 수익을 얻는 이들을 해당업체 직원이 아닌 ‘독립사업자(independent contractor)’로 규정하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한국에서도 배달 대행 플랫폼 업체의 상품을 배달하는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음식 배달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업체 ‘우아한청년들’은 라이더를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되 처우를 개선하는 ‘절충안’을 내놨다. 우아한청년들은 배달 기사를 대표하는 노동조합과 교섭해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임금을 높이는 방안을 찾았다. 10월 22일 우아한청년들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과 협약을 맺었다. 국내 개별 플랫폼 업체·노동자 간 협약으로는 첫 사례다. 회사가 라이더에게 받던 배달 1건당 200~300원 중개수수료를 면제하고, 건강검진 비용·피복비 지원, 장기간 계약을 맺은 기사의 경우 휴식지원비를 제공하는 것이 뼈대다.

    우버 “운전기사 직고용하면 요금 최대 100% 올라”

    미국 사정은 어떨까. 우버 측은 주민 발의 22호가 부결되면 이용 요금이 최저 25%에서 최대 10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버 요금은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이용 지역과 시간, 수요·공급에 따라 유동적이다. 다만 우버 측은 운전기사를 직접 고용할 경우, 고용보험 등 기업 부담이 늘어 이용료가 전반적으로 폭증할 수 있다고 나섰다.



    11월 3일 미국에선 여러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맞붙은 대통령선거를 비롯해 연방 상원·하원 선거도 치러진다. 각 주마다 주 의회 상원·하원 선거가 있다. 동시에 각 주별로 주민 발의 법안에 대한 표결도 이뤄진다. 주민 발의(ballot measure)는 의회가 아닌 주민이 직접 법안을 만들고 주민투표를 거쳐 법률로 제정하는 입법 방식이다. 간접 민주주의 방식의 의회제도에 직접 민주주의를 가미한 제도다. 

    다만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표결에 부치려면 주민 다수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주법(州法)을 제정·개정하기 위한 주민 발의에 62만3212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주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발의자가 주민 99만7139명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인력과 자금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발의가 기업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악용된다는 비판도 있다. 

    우버 등 미국 공유경제 업체들이 주민 발의 22호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9월 10일 캘리포니아주 의회 상원에서 ‘AB5 법안(Assembly Bill 5)’이 통과돼 올해 1월 발효됐다. 플랫폼 노동자도 노동자로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이다. 

    이 법에 따라 캘리포니아주에서 우버나 도어대시 등 공유경제 업체는 플랫폼 노동자를 자사 정규직원으로 대우해야 한다. 우버와 리프트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핵심은 프리랜서 운전기사였다. 도어대시도 고객이 주문한 음식을 식당에서 받아 배달하는 프리랜서 배달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 공유업체는 프리랜서를 자사 직원으로 직고용해야 한다. 최저임금 기준을 준수하고 유급휴가를 제공해야 하는 등 고용주로서 의무가 생긴 것이다. 직원의 건강보험료를 지원하고 퇴사 후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실업보험금도 적립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법원 “우버·리프트, ‘AB5’법 준수하라” 판결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최고경영자. [AP=뉴시스]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최고경영자. [AP=뉴시스]

    해당 법에 따라 업체 소속 직원이 아닌 독립사업자로 대우하려면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첫째, 일하는 사람이 해당 회사의 지휘·통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둘째, 회사의 주요 사업과 연관성이 적은 일을 해야 한다. 우버에서는 운송 서비스가 아닌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일하는 사람이 해당 회사 업무와 별개의 직업을 갖고 있어야 한다. 

    관련 업체들은 반발했다. 이들이 내세운 논리는 ‘플랫폼 노동자는 근로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하는 독립사업자’라는 것이었다. 결국 법정 다툼이 벌어졌다. 판세는 기업들에게 불리한 것으로 보인다. 8월 10일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은 우버와 리프트가 운전기사를 자사 직원으로 인정하지 않아 관련법을 어겼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업체들이 운전기사를 직고용해 AB5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업체들은 항소했지만 같은 달 20일 항소법원(한국 고등법원에 해당)도 같은 취지로 판결했다. 

    궁지에 몰린 우버·리프트·도어대시는 주민 발의에 나섰다. 플랫폼 노동자를 독립사업자로 분류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3개사가 주민 발의를 위한 홍보와 로비에 쓴 돈은 약 2억 달러(2260억 원)에 달한다. 

    업체들은 ‘일자리’ 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과거처럼 우버 운전기사·도어대시 배달원을 독립사업자로 규정해야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우버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미국에서 우버 운전으로 돈을 번 사람이 120만 명이라고 추산한다.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최고경영자(CEO)는 우버 기사를 자사 직원으로 직고용하면 일자리가 26만 개로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94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다. 

    주민 발의 22호 찬성 측은 특정 업체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일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주장한다. 우버와 리프트는 자사 앱을 이용하는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인용했다. 10명 중 8명이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우버 측 주장을 두고 잇속을 챙기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플랫폼 노동자를 사실상 자사 직원처럼 부리면서도 정당한 처우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월 16일 캘리포니아 지역 언론 새크라멘토비(The Sacramento Bee)는 우버가 내세운 설문조사가 공신력 있는 조사기관이 수행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선거공보 책자에는 주민 발의 22호에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의 목소리가 함께 실렸다. 

    “나는 장애가 있는 전역 군인입니다. 새로운 직장을 갖고자 학교로 돌아가 공부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주민 발의 22호를 강력히 지지합니다. 학교에서 공부와 병원 치료를 병행하려면 일할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합니다. 주민 발의 22호는 그것을 가능케 해줍니다.”(매튜 에머슨, 음식 배달 운전) 

    “나는 5년 동안 리프트 운전을 했습니다. 우버와 리프트는 법에 따라 우리를 직원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초과근무 수당도 주지 않습니다. 유급병가도 제공하지 않고요. 그들은 사업비용을 우리에게 떠넘깁니다. 잘못된 일입니다. 주민 발의 22호에 반대해주세요.”(제롬 게이지, 리프트 운전)

    우버, 법안 통과 위해 운전기사 동원 의혹도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찬반 양측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우버 운전기사 2명과 노동단체 2곳은 우버 측이 운전기사들을 법안 통과 캠페인에 불법 동원했다고 고발했다. 업체들은 막대한 자금을 쏟아 각종 매체에 법안 찬성 분위기를 조성하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고, 일자리도 줄어든다는 호소다. 법안의 운명을 점치기는 어렵다. 다만 법안이 통과되느냐 부결되느냐, 그 결과에 따라 미국 공유경제 업계의 앞날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잇츠미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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