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사바나] “돈쭐 내주러 가자” MZ세대 유쾌한 홍보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1-03-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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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 제품‧선행 인사 홍보하는 온라인 문화

    • 돈으로 혼내주는 ‘돈쭐’, 유용한 정보 알리는 ‘영업글’

    • “돈쭐을 내주러가자”며 업체 위치 공유

    • “숨 쉴 틈 없이 돈 벌게 해주자”는 유쾌한 전략

    • “공정과 정의 내세우는 MZ세대의 사회 변화 방식”

    • 성차별·인권 무시 콘텐츠는 ‘가불구취’로 걸러내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젊은 층이 모여 소통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최근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지난해 10월 9일 울산의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려고 출동한 소방관 수십 명이 실내에서 쉬는 모습이었다. 누리꾼의 이목을 모은 건 소방관들 뒤로 전시돼 있는 외제 자동차. 사진 배경은 벤츠의 국내 공식 딜러사인 ‘스타자동차’ 전시장이었다. 해당 업체가 ‘길바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소방관 1300여 명을 보고 자사 전시장을 내준 것. 심지어 이날 영업을 포기하고 소방관들에게 1000만 원가량의 식사와 간식까지 대접한 것이 알려졌다. 사진에 담긴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돈쭐을 내주러가자”며 해당 업체 위치를 공유했다.

    착한 제품 홍보하고 팔아주는 문화

    강릉 맛집 정보를 모아 정리한 ‘강릉 돈쭐 날 곳’ 게시물. MZ세대는 ‘이 가게 물건을 많이 팔아주자’라는 의미로 ‘돈쭐 내주자’라는 표현을 쓴다. [인스타그램 캡처]

    강릉 맛집 정보를 모아 정리한 ‘강릉 돈쭐 날 곳’ 게시물. MZ세대는 ‘이 가게 물건을 많이 팔아주자’라는 의미로 ‘돈쭐 내주자’라는 표현을 쓴다. [인스타그램 캡처]

    돈쭐은 ‘돈’과 ‘혼쭐’을 결합한 신조어로, ‘돈으로 혼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감만 보면 나쁜 뜻 같지만, 실제로는 ‘그 가게 물건을 많이 팔아주자’로 해석할 수 있다. 돈쭐을 주도하는 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돕거나, 사회에 기여하는 행동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점포나 기업의 제품을 적극 구매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훈훈한 미담이 공유되면 그 주인공을 ‘돈쭐을 내줘야 할’ 대상으로 삼는다.

    예컨대 ‘○○가게 사장이 몇 년 째 미혼모를 돕는 일에 남몰래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 숨 쉴 틈 없이 돈을 벌게 해주자’ 같은 식이다. ‘△△기업이 제품 페트병 위를 감싸던 라벨 플라스틱을 없앤 덕분에 재활용이 쉬워졌다. 자본주의의 매운맛을 보여주자’ 같은 애정 어린 농담을 덧붙이기도 한다. 실제로 결식아동에게 무료로 파스타를 제공하는 30대 파스타 가게 사장, ‘마스크 대란’으로 온갖 업체가 앞다퉈 마스크 가격을 인상할 때 시중가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마스크를 판매한 한 중소기업 등이 ‘돈쭐’의 대상이 됐다.

    MZ세대는 자기들이 알고 있는 미담을 커뮤니티나 SNS에 올려 ‘착한 소비’를 이끄는 걸 좋아한다. SNS에 게시물을 올릴 때 ‘#돈쭐’ ‘#돈쭐을내주어야합니다’ ‘#돈쭐나야할맛집’ 등의 해시태그(#·검색을 편하게 도와주는 기호)를 붙이고, 자기가 돈쭐 내준 가게를 인증하는 사진도 올리는 식이다.



    돈쭐 대상이 된 업체나 기업이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게 감시하는 것도 MZ세대 몫이다. 대학생 한소라(24) 씨는 “돈쭐은 내가 가진 자본이나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회 곳곳에 선한 영향을 미친 이들에게 보상해주는 한 방법”이라며 “돈쭐을 내줄 때는 해당 업체가 정말 진정성을 갖고 선한 행동을 한 건지, 시류에 편승해 마케팅 차원에서 흉내만 낸 것인지 등까지 꼼꼼히 살핀다”고 말했다.

    좋은 세상 만들려는 ‘착한 유난’

    MZ세대는 ‘착한 소비’를 통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는 데 관심이 많다. [GettyImage]

    MZ세대는 ‘착한 소비’를 통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는 데 관심이 많다. [GettyImage]

    전문가들은 ‘선한 오지랖’을 지향하는 MZ세대의 특성이 돈쭐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선한 오지랖은 ‘선하다’와 ‘오지랖’을 결합한 신조어로, ‘착한 유난’을 의미한다. 연구기관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펴낸 책 ‘밀레니얼-Z세대 트렌드 2021’을 통해 제시한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 5개 중 하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공정과 정의 같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가치를 통해 좀 더 나은 사회, 미래 세대에게 이익이 되는 소비문화를 만들고자 한다”며 “선한 의도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그 일에 많은 이가 동참하게끔 여론을 모으는 일에도 앞장서는데, 이 과정을 통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는 데 만족감을 얻는다”고 분석했다.

    MZ세대의 선한 오지랖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중 하나가 ‘영업글’이다. 영업글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나 자기가 아는 유용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행동을 이르는 신조어다. 그런 글로 인해 작성자가 소개한 대상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을 ‘영업당했다’고 표현한다.

    대학생 김수아(25) 씨는 영업글을 자주 작성하는 편이다. 최근엔 패스트푸드 브랜드 ‘맘스터치’ 햄버거가 광고에 등장하는 것보다 훨씬 푸짐하고 먹음직스럽다는 내용을 담은 포스팅을 올렸다. “세상 사람들 맘스터치 착한 허위광고 논란 좀 봐주세요. 햄버거 크기가 너무 커서 한 입에 안 들어가는데 광고에서는 들어가는 척 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소비자에게 유익한 기업이나 브랜드를 소개할 때 반어법을 사용하면 보는 사람이 좀 더 유쾌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도 소비자 팬덤 확보할 방안 마련해야”

    MZ세대는 구독하는 온라인 채널에 자기 가치관에 어긋나는 콘텐츠가 올라오면 구독 취소라는 방식을 통해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GettyImage]

    MZ세대는 구독하는 온라인 채널에 자기 가치관에 어긋나는 콘텐츠가 올라오면 구독 취소라는 방식을 통해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GettyImage]

    MZ세대의 ‘적극적 소비’ 행태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로 ‘가불구취’도 꼽을 수 있다. 가불구취는 ‘가치관과 불일치하면 구독 취소’의 줄임말이다. 온라인 채널에 자기 가치관에 어긋나는 콘텐츠가 올라오면 구독 취소라는 방식을 통해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때 가치관은 재미와 감동, 정보의 유용성은 물론 사회적 가치까지 포함한다.

    예컨대 성차별 문화를 조장하거나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콘텐츠, 불공정한 방식으로 광고를 하는 콘텐츠 등이 이용자의 질타와 외면 대상이 된다. MZ세대는 구독을 취소할 뿐 아니라 SNS를 통해 “○○○ 채널 영상 이제 안 본다” “오늘부터 구독 취소”라는 글을 남기며 가불구취 운동을 널리 알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가불구취를 콘텐츠 업계 키워드 중 하나로 선정했다.

    선한 오지랖을 지향하는 MZ세대가 만들어낸 돈쭐·영업글·가불구취 문화는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만 동시에 단순히 ‘돈줄’ 취급은 당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소비자로서 자기 권리를 누리고,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한다”며 “이제 기업들은 기존 고객 관리 시스템에서 벗어나 팬덤 같은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소비자를 확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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