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호

약자를 향한 끊임없는 강력범죄와 인신공양

“약자 괴롭힌 인간은 비열한 악마…사회가 힘 모아야”

  •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mrpark@hnu.kr

    입력2021-10-1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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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강력범죄 공통점은 여성·아동이 피해자

    • 단순히 처벌 수위 높이자는 주장은 무책임

    • 범죄는 개인·사회·국가의 복합 영향

    • 타인 향한 범죄는 엄벌, 친밀한 사이 범죄는 묵과

    • 약자 폭력 인정하는 순간 방관자…위험의 시작

    • 작은 폭력에도 민첩하게 작동하는 法 만들어야

    그간 한국 사회는 친밀한 관계의 폭력에 너무나 관대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간 한국 사회는 친밀한 관계의 폭력에 너무나 관대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1 여중생이 친구의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피해자와 친구는 극단적인 선택을 택했다.
    #2 20대 여성이 남자 친구와 다투다 맞아 죽었다.
    #3 20대 남성이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20개월 된 아이는 구타 끝에 숨지게 했다.
    #4 40대 남성이 이혼소송 과정에 있던 아내를 일본도로 찔러 죽였다.


    최근 한두 달 사이에 쏟아져 나온 우리 사회의 강력범죄다. 성폭행, 폭행치사,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 죄명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약자라는 것, 그리고 약자는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대검찰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0 범죄분석’에 따르면, 2019년 전체 범죄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77.8%였다. 피해자 가운데 남성 비율은 42%(여성 26%·미상 32%)다. 통상 범죄 가해자와 피해자는 모두 남성이다. 최근 일련의 사태에서 볼 수 있듯, 범죄 대상이 여성이 될 때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강력범죄로 인해 약자가 잇달아 목숨을 잃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이 현실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많은 사람은 범죄학자인 필자에게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개별 사건의 원인을 물어온다.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는 게 두렵다고들 하고,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의 동의를 구한다. 나는 이렇게 모든 사건을 처벌로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 우리 사회가 참으로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사회에서 제거한다고 세상 모든 범죄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는 꾸준히 범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왔다. 그러나 여성과 아동에 대한 범죄는 사회적 분노와 별개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처벌은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범죄자들이 처벌 수위가 낮아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범죄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생태계가 무너진 곳에서 더욱 극악무도하게 나타난다. 강력범죄 가해자와 피해자를 면밀히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취약한 곳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최근 보도되는 범죄를 보면 가정 안에서 아이가 죽었고, 데이트 관계에서 여자 친구가 죽었고, 한때 가족이던 아내가 칼에 찔려 죽었다. 그간 한국 사회가 타인 사이 범죄를 매우 냉정하게 단죄한 데 비해 친밀한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묵과한 결과가 잔인한 범죄로 나타난 것이다.

    “사랑 싸움에는 끼어들면 안 돼”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야” “아이는 혼나면서 크는 거지” 같은 말로 친밀한 관계와 가족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소히 여긴 결과가 최근의 강력범죄라고 할 수 있다. 범죄는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자연 생태계가 단 하나의 이유로 파괴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범죄 현상의 발생 원인을 분석하려면 원인은 아주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부분부터 가족·사회의 문제, 거시적으로는 국가정책의 문제까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범과의 면담

    개인적 요인은 보통 가해자의 낮은 자아통제력, 정신장애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경험상 많은 범죄자는 상대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또 분노를 강하게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면담을 진행한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범은 보호관찰 도중 전자발찌를 훼손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에게 “무슨 목적으로 전자발찌를 훼손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보호관찰관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화가 나서 그랬다”고 했다.

    당당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나도 화가 났다. 통상 범죄자와 면담할 때 당위적인 내용에 기반을 둔 조언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원칙이지만 그날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그를 향해 “나는 뭐 화나는 일이 없을 것 같아요? 나도 직장 생활 하면서 더럽고 치사하고 화나는 일이 많지만 참아요. 그게 범죄자로 살아가는 당신과 그냥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나의 차이예요. 그게 우리 둘의 차이라는 거 알겠어요? 다 화나는 일이 있지만 참는다고요!”라고 쏘아붙였다.

    흥분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그도 많이 놀란 듯했다. 그는 잠시 당황하더니 “선생님도 화가 납니까…?”라며 말을 흐렸다. 이후 난 그를 담당하는 보호관찰관에게 “저 범죄자는 화가 날 때 화를 푸는 방법을 배워야 하니 상담 선생님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주문하라”는 의견을 전했다. 자아통제력이 낮고,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것이 모든 범죄의 구실이 돼서는 안 되지만, 이러한 개인 성향은 범죄와 매우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친밀한 관계 폭력을 경시해 온 사회

    이번엔 가족·사회 문화와 범죄의 관계를 바라보자. 범죄학의 사회학습이론에 따르면, 범죄는 범죄에 대한 관점, 태도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그 사회에서 무엇을 범죄로 여기는지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한국에서 아동과 여성에 대한 범죄는 사회 학습과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아이는 어른에게 대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말을 안 듣는 아이를 혼내는 성인을 쉽사리 제지하지 못한다. 부모의 자녀학대에 제3자가 개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가녀리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우대하는 사회에서는 남녀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고 비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아이가 보호자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 여성이 남성의 화를 돋웠을 것이라는 사회적 추측은 가해자의 행동에 힘을 싣는다. 그렇게 사회 구성원이 권력 지위를 학습하고 폭력을 용인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내가 맞는 이유는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를 단호하게 처벌하기 어렵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피해자가 본인의 피해를 호소하기조차 힘들다.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은 사랑 싸움으로 축소되고, 스토킹은 소심한 관심으로 미화된다.
    “나는 그런 남성 중심의 관점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게 약자에게 폭력적인 사람의 행동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방관자가 된다. 이것이 위험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잘못이 없나. 남성과 남성 사이 싸움은 중대하게 다루면서 남성과 여성 사이 문제, 성인과 아동 사이 문제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은 게 그간의 관행 아니었나. 우리나라는 1997년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을 제정했지만 그것으로 처벌받은 이는 거의 없다. 스토킹이 많은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일부는 죽음으로까지 이끌었지만 스토킹 범죄 처벌 조항은 22년 동안 국회에서 계류하다 올해에야 비로소 법제화됐다. 불안한 부동산시장에서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이 ‘뚝딱’ 만들어지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물론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필요하다. 그러나 처벌이 제 기능을 하게 하려면 다음 세 가지 요건을 바로 세워야 한다. 첫째,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붙잡힐 것이라는 확신성. 둘째, 저지른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내려질 것이라는 엄격성. 셋째, 범죄자가 신속하게 잡혀 처벌 단계에 진입할 것이라는 신속성이다. 이 세 가지 요인 가운데 범죄 예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처벌의 확신성 쪽이다.

    약자 괴롭힌 인간은 비열한 악마…“사회가 힘 모아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월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스토킹처벌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스토킹처벌법은 3월 24일 국회를 통과했다. 1999년 15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뒤 22년 만이다. [뉴시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월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스토킹처벌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스토킹처벌법은 3월 24일 국회를 통과했다. 1999년 15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뒤 22년 만이다. [뉴시스]

    유감스럽게도 그간 한국 사회에서 가정 내 아동학대, 아내에 대한 폭력, 연인 간 폭력은 쉽사리 처벌되지 않는 행위였다. 법은 섬세하게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하는 조항조차 작동하지 않는 무용지물이었다. 국가는 작은 폭력에도 민첩하게 작동하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이 유용하게 작동하도록 감시해야 한다. 성인지감수성이 낮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하고, ‘꼰대’ 경찰이 사건을 담당해도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범죄는 오늘도 발생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범죄는 절대 가해자 혼자만의 문제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해자의 문제, 사회의 문제, 그리고 국가의 문제가 모두 작동해 범죄를 만든다.

    나는 내가 만난 성범죄자들처럼 범죄자가 당당한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약자를 괴롭힌 인간이 비열한 악마임을 알아야 하고, 그 악마를 잡기 위해 온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동시에 범죄자가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가차 없이 응당한 대가를 받도록 국가가 기능해야 한다. 피해자가 도망 다니지 않도록 법과 제도, 그리고 우리 사회가 보호해 줘야 한다. 그렇게 망가진 ‘안전 생태계’를 복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9월 초 경주 월성 성벽 신라시대 유적지에서 키 135cm 전후의 왜소한 성인 여성 인골이 발견됐다. 이 여성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의 희생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 여성이 느꼈을 두려움을 생각해 봤다. 의식이라는 미명하에 누군가의 희생에 눈감았던 당시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하고 쓰라렸다. 어제는 당연했을지 모를 그 의식이 오늘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이런 변화는 한두 명의 목소리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동, 여성을 비롯한 약자에 대한 폭력이 마음 편히 이뤄지는 사회, 범죄자의 변명을 이해하는 사회가 되면 안 된다. 가해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은 사회에서는 뉴스 속 피해자가 또다시 우리 사회의 인신공양 희생물이 된다. 난 이 미개한 인신공양이 이제 멈추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엔 범죄자를 당당하지 못하게 만드는 개인, 어떠한 폭력도 용납될 수 없다고 말하는 사회,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법, 이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

    #범죄분석 #가정폭력 #인신공양 #박미랑교수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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