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호

‘성남시장’ 이재명과 경기동부-한총련의 기막힌 연결고리

[봉달호 편의점 칼럼] 이재명 캠프에는 왜 한총련 출신이 많을까?

  • 봉달호 편의점주

    입력2021-10-04 10: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정의찬과 1997년 ‘이종권 치사 사건’

    • 한총련 1기 의장 김재용, 5기 의장 강위원

    • NL에서 여러 지하조직이 구역 나눠 경쟁

    • 경기동부 모태, 민혁당 하부 조직 중 하나

    • “성남선 운동권 인맥 없이 협동조합도 운영 못 해”

    • 이석기 수감 중이어도 그의 조직은 여전

    • 무너지지 않는 주사파 지하조직 생존 원리

    • 李 잠룡되자 경기도를 생계 터전으로 정계 진출

    • 한총련까지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나라

    2월 17일 경기도청에서 ‘신동아’와 인터뷰 중인 이재명 경기지사. [조영철 기자]

    2월 17일 경기도청에서 ‘신동아’와 인터뷰 중인 이재명 경기지사. [조영철 기자]

    정의찬이라는 이름이 신문에 등장한 것을 보고 결국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지난 8월 26일 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무총장(상임이사) 정의찬 씨가 일신상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 정도면 그리 고위직이 아닌데 일개 정무직 공무원의 사임이 새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1997년 발생한 ‘이종권 치사 사건’의 주모자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공직에 ‘임명’한 사람이 대체 누구냐 하는 것이 화제였다.

    이종권 치사 사건에 대해서는 필자가 ‘신동아’ 2020년 11월호에 소개한 바 있다.(관련 기사 : 돈·권력 후각 남달랐던 총학생회 ‘꼬마 권력자’들) 1997년 5월 전남대 문학 동아리에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제보가 총학생회에 접수됐다. 동아리에 신입 회원이 들어왔는데 행적도 불분명하고 뭔가 좀 특이하다는 것이다. 결국 총학생회실에 끌고 가 경찰의 프락치 아니냐고 때려 패며 고문하다 그 사람이 죽었다. 이것이 사건의 개요다.

    그런데 이 사건의 문제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폭행 관련자가 18명이나 됐고, 수법이 잔인했으며, 호흡 정지 상태에서 즉시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피해자가 죽자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은폐했다는 사실이 더욱 문제다. 증거를 없애고 알리바이를 짜 맞추기 위해 대책회의까지 열었다. 파시스트 정권의 수법과 다를 게 무엇인가.

    파시스트 정권과 다를 게 무엇인가

    정의찬 씨는 이 사건으로 1998년 2월 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고, 2002년 12월 특별사면·복권됐다. 사건 당시 그는 남총련(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 의장이었고 폭행과 증거인멸에도 직접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어진다. 사람은 누구든 실수할 수 있다. 그것이 타인의 목숨을 앗은 일이니 결코 단순한 실수라고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백번 양보해 20대 초반 혈기 왕성한 시절 저지른 치명적 실수라 하자.



    하지만 그 뒤로 정씨나 가해자들이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진정 어린 사과나 반성을 했다는 말을 들은 적 없다. 세상을 향해서는 “평생 죗값을 치르라”고 정의의 화신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관대하다. 설마 아직도 ‘죽을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억울하게 여기는 건 아닐까? (심지어 사건 관련자 가운데 한 명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도, 강간 행각을 일삼다 체포됐다.)

    나는 ‘개인’ 정의찬을 비난하고픈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도 가정에서는 좋은 아빠이자 아들일 테고, 직장에서는 다정한 동료일 것이다. 출소 후 그가 어떤 삶의 궤적을 거쳐왔는지도 자세히 모른다. 그도 속으로는 괴로웠을 것이며, 젊은 날 실수 하나가 평생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에 매번 좌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의 실수로, 아니 ‘죽어도 좋다’는 고의성으로,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가정을 이뤄 아빠가 됐을 사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아들이었을 사람이 끔찍한 폭행으로 죽었다. 최소한 반성하는 마음이라도 있다면, 가해자는 평생 공직 같은 건 꿈도 꾸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인간적 순리 아닐까.

    그런데도 줄곧 정치에 기대 살았다. 더불어광주연구원 사무처장, 경기도지사 비서관, 광주 광산구청 민원실장, 그리고 이번에는 경기도 산하 기관 사무총장으로 있다 ‘적발(?)’됐다. 자세한 인생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일반적인 상식과 양심의 잣대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행적이다. 이런 사람을 월드컵경기장을 관리하는 공공기관 책임자로 임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과연 그에게서 경기장을 관리하는 어떤 능력이나 소양을 보았던 걸까.

    책 한 권을 써도 부족한 이야기

     1994년 5월 28일 제2기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출범식이 광주 조선대 운동장에서 열렸다. [동아DB]

    1994년 5월 28일 제2기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출범식이 광주 조선대 운동장에서 열렸다. [동아DB]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캠프에는 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출신이 많으냐는 질문을 요새 부쩍 많이 듣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민주당 주류는 전대협 선배들이 꿰차고 있으니 한총련 출신들은 ‘틈새’를 찾아 들어갔다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절반의 대답도 되지 못한다. 정확한 작동 원리를 소개하자면 꽤 긴 설명을 해야 한다. 전대협과 한총련의 차이, 1980년대와 1990년대 학생운동의 차이, 전대협-한총련을 배후 조종한 지하 조직의 실체, 그들이 어떻게 분화됐고,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책 한 권을 써도 부족한 이야기다.

    일단 먼저 총학생회장은 조직의 ‘넘버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재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많다. 굳이 표현하자면 총학생회장은 조직의 중간층 정도에서 열성분자를 골라 추천했다. 이론적으로는 좀 부족해도 지시를 잘 따르거나, 대중성이 있거나, 어쨌든 공안 기관에 잡혀가도 될 만한 인물로 골랐다. 속된 말로 ‘버리는 패’로 삼을 사람.

    사회주의권 모든 조직이 그런다. 예를 들어 중국을 보자. 사람들은 흔히 중국 각 지역 성장(省長)이 제일 높은 줄 알지만 ‘당(黨)서기’가 성장보다 높다.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최고 지도자들 약력을 보면, 성장 경력도 더러 있지만, 대체로 여러 지역 당서기를 두루 거친다. 성장은 행정직이고 서기는 당직(黨職)인데, 당이 국가를 장악한 체제에서는 당의 지도가 다른 무엇보다 앞선다.

    군대 또한 그렇다. 사회주의권 군대에서는 전투부대 지휘관보다 앞서는 사람이 부대 ‘정치위원’이다. 중앙당 산하 군사위원회가 전군(全軍)을 통솔하는 실권을 갖는다.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당의 군대인 셈이다. 기업이나 기관도 모두 그런 식이어서 사장보다 높은 사람이 기업-기관 당 조직 책임자다.

    1980~90년대 학생운동도 정확히 그런 원리로 움직였다. 학생회는 그냥 껍데기일 뿐이고, 실권은 조직에 있다. 이념, 노선, 당면 투쟁 지침, 조직원의 일상까지 통제하는 핵심 그룹은 지하에 숨어 있고, 학생회 간부나 총학생회장, 전대협-한총련 간부와 의장은 장기판의 말처럼 움직인 것이다.

    학생운동 양대 노선을 흔히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라고 한다. 줄임말에서 알 수 있듯 전자는 반미투쟁, 후자는 계급투쟁을 앞세웠다. 운동권 숫자로 보면 NL이 70~80%, PD가 20~30%였는데, NL이 학생회를 거의 장악하고 있으니 대중적 기반으로 따지면 90% 이상이라 말할 수 있다. NL은 그렇게 지나치게 압도적이고, 조직이 공개-비공개로 이분화한 데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NL이 단일 대오라고 생각하지만 ‘지하’의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숫자가 너무 많으니 전국 규모로 지하조직을 만들 수 없고, 그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했으며, 북한과 연계를 맺는 루트도 서로 달라, 견제하고 경쟁하는 성격의 지하조직이 여럿 있었다.

    예를 들어 ‘주사파의 대부’ 김영환 씨가 만든 지하조직 수뇌부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은 서울, 경기, 전북, 영남 지역을 관할(?)로 한다. 김씨 회고에 따르면 다른 지역 조직원이 자기 조직원을 포섭하려는 시도가 자꾸 생겼고, 또 자기 조직에서 다른 지역에 진출하는 데도 애로가 있어 북한에 문의했더니 그렇게 구역 설정을 해줬다고 한다. 강원, 충청, 전남 등지에는 북한의 다른 루트를 타는 조직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런 지역은 민혁당과 별개 사건으로 공안 기관에 적발된다.

    한편 2000년대 이후 ‘민혁당 지역’에서 적발된 공안 사건은 김씨가 민혁당을 해체한 것에 반발해 이를 재건하려는 시도의 일부이며, 2013년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이 그런 대표적 유형이다.

    경기동부 도움 받으면 성남선 순풍 탄다

    2013년 9월 4일 이석기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이 체포동의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의원실을 나서고 있다. [동아DB]

    2013년 9월 4일 이석기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이 체포동의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의원실을 나서고 있다. [동아DB]

    말이 나왔으니, 이석기 씨가 이끄는 이른바 ‘경기동부’라는 세력은 민혁당 하부 조직 가운데 하나를 모태로 한다. 민혁당에서 이씨가 담당했던 구역이 경기도 남동부였기 때문에 이름이 그렇게 붙었고, 성남-수원-용인 등지를 근거지로 한다. (민혁당 내부 명칭은 ‘경기남부위원회’.) 그중 핵심은 성남이었다. 거기서 ‘성남시장 출신’ 이재명 경기지사와 경기동부, 그리고 한총련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성남이 경기동부의 핵심이 된 이유는 이석기가 성남에서 자란 탓도 있고, 성남이 1980~90년대 급속한 성장을 이룬 위성도시로 젊은 층과 근로자가 많아 운동권 조직이 활동하기에 좋은 토양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란 음모 사건 등을 통해 이씨가 과격하고 우둔한 사람이리라 추측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직을 만들고 관리하는 데는 나름대로 경험과 능력이 있는 인물이다.

    민혁당은 지역 책임자가 누구냐에 따라 조직 기풍이 약간씩 달랐다. 예컨대 김영환이 직접 담당한 전북 지역은 대체로 학구적이고 유연한 기질, 경기동부는 이석기의 스타일대로 투박하고 저돌적 기질이었다. 성남은 의리와 단결을 강조하는 경향도 남달라서, 필자가 활동한 호남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좋게 말하면 가족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피라미드 판매 조직 같다고 할까. 조직원 확장에 적극적이었고, 의지가 흔들리는 조직원은 위력을 동원해서라도 잡아두려 했으며, 재정 마련을 위해 막노동판에서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등 일심(一心)의 기풍이 있었다. 논리보다 감성을 앞세웠다.

    성남은 조직원들끼리 돕고 이끌어주는 분위기도 상당했는데, 이런 풍토에서 자란 사람들이 40~50대 나이가 되고 지역사회 유지가 됐다고 생각해보라. 지금 성남의 내면을 흐르는 ‘경기동부’ 인맥이 그렇다. 흔히 “성남에서는 운동권 인맥 없이는 웬만한 협동조합 하나 운영하는 일도 수월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기동부 인맥이다. 그리고 그것은 반대로 ‘경기동부 도움을 받으면 성남에서는 무슨 일이든 순풍을 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석기는 감옥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조직과 영향력은 여전하다. 바로 그것이 한 사람이 잘려나가더라도 다른 사람이 발을 뻗어 자라나는, 단 한 명이라도 살아남는 이상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주사파 지하조직의 생존 원리이기도 하다.

    몸은 2021년, 정신은 봉건시대

    1997년 6월 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열린 한총련 기자회견 모습. [동아DB]

    1997년 6월 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열린 한총련 기자회견 모습. [동아DB]

    그렇다면 경기동부는 어떻게 한총련을 장악했는가. 김영환 씨가 민혁당을 해체하고, 김씨가 직접 담당한 전북 지역은 아예 통째 전향을 선언했으며, 수도권과 심지어 전남 일부까지 전향하거나 종북(從北) 노선을 포기하는 와중에도 경기동부는 끝내 전향을 거부했다. 별도로 조직 운영을 계속했다. 그리고 사자가 떠난 초원에 하이에나가 왕이 된 모양으로 전국구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참고로 영남 지역도 전향을 거부했으며 나중에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적발됐다.)

    원래 경기동부는 한총련을 직접 조종할 권한이 없었다. 민혁당 중앙위를 통해 별도 라인이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지니 경기동부가 이젠 학생조직 중앙까지 장악을 시도한 것이다. 한총련이 해체한 후 한대련(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이 생기고, 그것이 다시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으로 변태하는 과정에는 그런 흑역사가 숨어 있다. 학생운동이 워낙 대중 기반을 잃어 더는 학생회를 외피로 한 조직 운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이유도 있지만, 경기동부의 40~50대들이 어떻게든 대학생을 자신들의 후비대(後備隊)이자 별동대로 만들려고 그런 배후 조종을 계속하는 것이다.

    대진연 활동 방식이 꽤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하며 구시대적인 것은 이런 조직 라인을 타는 탓도 있다고 본다. 몸은 2021년을 살고 있지만 정신은 봉건시대 쯤 머물러 있는 사람들 아닐까. 경기동부는 민주노총까지 장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민주노총이 최근 들어 더욱 상식과 멀어지는 이유도 그런 영향이 적잖을 것이다.

    결국 한총련이나 경기동부 인맥은 행동대장 역할밖엔 못한다. 지금 이재명 캠프와 측근으로 한총련 1기 의장 김재용, 5기 의장 강위원, 그리고 이번에 이름을 알린 정의찬 등이 포함돼 있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여럿이 거기에 있지만, 면면을 보면 그리 이론적 성향의 인물들이 아니다. 특히 김재용 씨가 이재명 캠프에서 정책공약 수석을 맡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꽤 의아했다.

    차제에 강조하고픈 사실이 있다. 흔히 민주당 586(50대, 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을 이념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많은데 나는 그들에게 무슨 이념이 있을까 싶다. 그들은 그냥 이익집단일 따름이다. 한때 잠깐 학생운동을 했지만 당시에도 이념과는 거리가 먼 총학생회장이나 전대협 의장 출신들이다. 사회에 나가봤자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곧장 정치권으로 직행한 인물들이다. 당시에는 그렇게 운동에 전념하지 않고 기성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선배들을 ‘썩은 자들’ 취급했다. 배신자라 욕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은 민주화운동의 선봉인 것처럼 자랑하고 있으니 빙그레 웃음이 나올 따름이지만, 어쨌든 그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생존 방식 가운데 하나라고 이해해 두자.

    이념의 창시자들과 지하 핵심 그룹은 생각이 바뀐 지 오랜데 원래 처음부터 자기 머리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었으니 과거에 주워들은 어설픈 이론의 외형만 복제하고 또 복제하는 식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재삼 강조하지만 이들은 이념 집단이 아니다. 그저 운동권 흉내 내는 ‘생계형 정치인’일 뿐이고 거대한 ‘이권 수호의 카르텔’이 대한민국을 휩쓰는 중이다. 오늘도 운동권, 정치권 경력 몇 줄 적은 이력서 한 장 들고 이 자리 저 자리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천지에 깔렸다.

    이념은 장식품, 본질은 이익집단

    한총련은 그런 선배들의 밥상에 뒤늦게 숟가락을 얹은 후배들이다. 한총련 출신들의 정계 진출, 특히 민주당 진출이 상대적으로 늦은 이유는 뭘까? 1990년대 학생운동권이 1980년대보다 이념적으로 훨씬 편향되고 경직됐기 때문에 ‘민주당으로 가는 것은 보수정당으로 가는 것’이란 인식이 강했다. 무엇보다 자기들 스스로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한총련 출신들의 이력이 종북-폭력-점거-살인 등으로 워낙 화려(?)하기 때문에 과거 민주당으로서도 받길 꺼렸다.

    그러다 세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첫째, NL ― 정확히 표현하자면 경기동부를 비롯한 민혁당 잔당이 노선을 전환해 대중정당 진출을 공식화했다. 2000년대 초중반 일이다. 둘째, 민주당이 중도 정당에서 급격히 운동권 정당처럼 되면서 한총련 출신들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넓어졌다. 셋째, 이재명 성남시장이 경기지사가 되고 유력 대권 후보로 부상하면서 경기동부 근거지인 성남 인맥을 통해 경기도를 생계의 터전으로 삼아 정계에 진출할 현실적 발판을 만들게 됐다. 계속 호남에 있던 강위원, 정의찬 등이 갑작스레 북상해 경기도 지역 공공기관에 진출하게 된 이유다.

    “앞으로는 민주당에서 전대협-한총련 출신 간에 알력이나 충돌 같은 것이 생기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나는 그렇게 예상하지 않는다. 정권을 전리품 삼아, 서로 나눠주고 당겨주면서, 오순도순 살아갈 것이라 예상한다. 지하철역 편의점을 관리하는 코레일유통 비상임이사 자리 하나까지 문재인 대통령 팬클럽 출신 인터넷 카페지기를 임명하며 자기들끼리 알뜰살뜰 잘 나눠 갖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이익집단이니 이해관계만 크게 엇갈리지 않는다면 무슨 충돌이 있겠나.

    북한에 납치됐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영화감독 신상옥 선생이 곁에서 지켜본 북한 지도부의 실상을 ‘마적단’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북한이라는 마을을 점령하고 노획한 장물을 끌어모아 밤마다 술 마시고 파티 벌이면서 낄낄거리는 마적단 같았다는 증언이다. 보탤 것 없이 적확한 표현이라 소름 돋았다.

    北은 ‘수령福’에 넘쳤고 우리는…

    지금 북한을 두고 ‘이념’을 말하는 사람은 바보다. 북한에 대체 이념이 어디 있나. 북한은 주체도, 사회주의도, 노동계급도, 어떤 이념도 폐기한 지 오래다. 오로지 1인 독재자와 그에 충성하는 사교(邪敎) 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일 뿐이며, 이념은 그들이 좀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내세우는 허울에 불과하다. 지금 어느 나라, 어느 정당의 풍경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이념은 과거를 자랑하기 위해 내세우는 장식품일 따름이며, 본질은 오롯이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과거 ‘한총련 진군가’에 이런 노랫말이 있었다. “반도 산천 뒤흔드는 승리의 노랫소리.” 한총련의 정치권 ‘진군’이 본격화됐다. 반도 산천에 ‘승리’한 그들을 세금으로 먹여 살려야 할 거룩한 운명이 바야흐로 국민에게 주어졌다. 전대협에 이어 2대를 배불리 살찌우는 과제다. 3대까지 이어질 것이다. 북한은 ‘수령복’에 넘쳤고 우리는….

    #이재명 #한총련 #경기동부 #이석기 #성남시 #신동아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