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호

집에서 게임만 해도 직장인보다 돈 더 번다

게임 속에서 번 암호화폐가 진짜 돈 되는 NFT 세상

  • 박원익 더밀크코리아 부대표

    wonick@themilk.com

    입력2021-12-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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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남아 강타한 NFT 게임 ‘엑시 인피니티’

    • 개발사 ‘스카이 마비스’ 기업가치만 30억 달러

    • 게임 내 아이템, 캐릭터를 NFT로 사고팔 수 있어

    • NFT 현금화 쉬워, 일 대신 게임이 생업된 사람들

    • 필리핀서 교사 월급 5배 수익 올린 사람도

    • 게임사 거래 수수료만 연간 1조2000억 원

    • 각국 게임사 게임 내 NFT 도입 및 개발에 나서

    • 국내에는 규제 때문에 NFT 게임 유통 어려워

    NFT(대체불가능토큰)을 게임 내 경제체계에 도입한 ‘엑시 인피니티’ 속의 등장 캐릭터인 다양한 ‘엑시’들. 이 캐릭터는 NFT를 통해 사고팔 수도 있다.

    NFT(대체불가능토큰)을 게임 내 경제체계에 도입한 ‘엑시 인피니티’ 속의 등장 캐릭터인 다양한 ‘엑시’들. 이 캐릭터는 NFT를 통해 사고팔 수도 있다.

    “게임을 해서 돈 번다고 하면 다들 잘 안 믿죠. 사실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좋아 보이니까요.”

    필리핀에 거주하는 존 이매뉴얼(30·남) 씨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직장을 잃었는데, 비디오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엑시 인피니티(Axie Infinity)’라는 NFT(대체불가능토큰) 게임으로 월급만큼 돈을 벌 뿐 아니라 게임 캐릭터(엑시)를 빌려주는 사업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인터뷰는 지난 5월 한 필리핀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플레이투언(Play-To-Earn·P2E,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에 소개됐다. 필리핀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게임으로 돈을 벌 정도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특정 지역에만 잠시 나타난 유행일까. 그렇지 않다. 다큐멘터리가 공개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이런 경향성은 더 강력해졌으며 더 넓은 지역으로 퍼지고 있다.

    엑시 인피니티, 매출 급증…관련 코인은 300배로

    11월 1일 기준 엑시 인피니티의 일간 활성 사용자(DAU)는 236만 명을 돌파했다. 올해 4월 말(3만8000명)과 비교하면 불과 6개월여 만에 62배 급증했다. 매출 역시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의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으로 이 게임이 벌어들인 누적 매출은 7억 달러(한화 약 8300억 원)에 달한다. 연간 매출은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게임 생태계에서 중요하게 활용되는 암호화폐 ‘AXS’의 가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1월 5일 기준 AXS 1개 가격은 17만8500원으로 올해 초(581원)와 비교하면 300배 넘게 오른 상태다.

    게임 개발사인 ‘스카이 마비스(Sky Mavis)’는 지난 10월 글로벌 벤처캐피털(VC)로부터 총 18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30억 달러(약 3조6000억 원)를 인정받았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에어비앤비 등에 투자한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를 비롯해 삼성전자 산하 벤처투자 조직 ‘삼성넥스트’, 마크 큐반 댈러스 매버릭스(NBA 팀) 구단주 등 대형 투자자가 대거 투자에 참여, 큰 주목을 받았다.



    스카이 마비스가 베트남 기업이고, 설립된 지 2년밖에 안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대규모 투자는 더더욱 이례적인 일이다. 스카이 마비스의 현재 기업가치는 베트남 증시 시가총액 순위 20위이자 베트남 1위 민영 항공사인 ‘비엣젯(VietJet)’에 육박한다. 베트남 현지 언론은 스카이 마비스 설립자인 트룽 응우옌(Trung Nguyen) CEO를 ‘첫 번째 베트남 테크 억만장자’라고 지칭했다. 응우옌 CEO는 1992년생으로 만 29세다.

    엑시 인피니티의 DAU가 NFT, P2E 게임의 폭발적인 성장성을 보여준다면 최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일련의 움직임은 이 트렌드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엑시 인피니티를 비롯한 주요 P2E 게임의 성공이 거대한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양상이다.

    미국 대형 게임업체인 일렉트로닉아츠(EA)의 앤드루 윌슨 CEO는 최근 “NFT와 P2E가 게임산업의 미래가 될 것”이라며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란 사실을 암시했고, NFT 게임업계의 ‘마인크래프트’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업체 ‘더샌드박스’는 11월 2일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주도한 11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를 완료했다.

    한국에서도 불붙은 NFT 게임

    위메이드는 지난 8월 NFT를 도입한 게임 ‘미르4 글로벌’을 출시했다. [위메이드 제공]

    위메이드는 지난 8월 NFT를 도입한 게임 ‘미르4 글로벌’을 출시했다. [위메이드 제공]

    한국 게임업계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블레이드 포 카카오’로 유명한 액션스퀘어가 위메이드, 인피니툼파트너스 등으로부터 300억 원을 유치하며 NFT 기반 P2E 게임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카카오게임즈의 경우 3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자회사 프렌즈게임즈가 스포츠, 게임,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에 특화된 NFT 거래소를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위메이드는 지난 8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P2E 게임 ‘미르4 글로벌’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으며 모바일 게임 기업 컴투스는 11월 5일 미국 블록체인 플랫폼 기업 ‘미씨컬 게임즈(Mythical Games)’에 투자하는 등 지속해서 NFT 게임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사람들은 왜 NFT, P2E에 열광할까?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NFT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NFT는 디지털 저작물에 대한 소유권을 증명해 주는 ‘등기부등본’, 원본을 입증해 주는 ‘진품증명서’ 역할을 한다. 디지털 이미지, 영상 등은 무한 복제가 가능해 무엇이 원본인지, 누구 소유인지 증명하기 어려웠으나 이를 블록체인 기술로 해결했다.

    NFT에는 각각 별도의 고유한 인식 값이 부여되는데, 이 토큰(특정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동작하는 응용 서비스에 사용하는 암호화폐)을 소유하거나 거래할 경우 거래 데이터가 블록체인에 분산 저장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누구나 소유권 변화를 확인할 수 있으며 쉽게 위조할 수도 없게 된다. NFT 자체가 암호화폐(토큰)이므로 NFT 거래소에서 현금으로 바꿀 수 있고,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아 희소성을 띠게 된다. 희소성, 환금성이 중요한 예술 작품, 엔터테인먼트 굿즈가 주로 NFT로 만들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게임 캐릭터나 아이템을 NFT로 만들어 희소성, 환금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과거 인기 게임 리니지에서도 희귀 아이템 ‘진명황의 집행검’ 등이 현금으로 거래된 사례가 있지만, NFT와 비교하면 한계가 많다. 예컨대 실수로 떨어뜨린 아이템을 다른 사람이 낚아채더라도 원래 주인의 소유권을 증명하기 어렵고, 게임을 벗어나거나 게임 서비스가 종료될 경우 아이템이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반면 NFT 게임 캐릭터, 아이템 등은 블록체인에 기록이 남아 있어 소유권 및 진본 확인이 가능하다. 게임과 관계없이 개별 자산으로 취급해 거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NFT 게임 ‘크립토키티’의 NFT 캐릭터(고양이)는 별도의 NFT 거래소인 ‘오픈시(OpenSea)’에서 살 수 있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도 NFT 캐릭터, 아이템을 사서 보유하거나 가격 상승 시 팔아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게임 내 경제체계만 잘 만들면 폭발적 성장 가능

    NFT만 추가한다고 사용자가 몰려들까? 물론 그렇지 않다. NFT 등을 활용한 P2E 게임 중에서도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들은 ‘토큰 이코노미’를 잘 설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토큰 이코노미는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로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 혹은 구조를 일컫는다. ‘보상을 어떻게 제공해 사용자를 해당 서비스 및 생태계에 참여하도록 만들 것이냐’ ‘블록 생성 및 검증을 위한 합의 시스템은 어떻게 할 것이냐’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토큰 이코노미를 잘 설계하면 생태계가 스스로 작동할 뿐 아니라 멈추지 않고 바퀴처럼 계속 굴러가게 된다.

    엑시 인피니티가 대표적 사례다. 엑시 인피니티 생태계에는 총 세 가지 토큰이 존재하는데, 게임 캐릭터이자 NFT인 엑시(Axie), 게임에서 이기면 보상으로 받는 SLP, 주요 사안 결정 및 캐릭터 강화에 활용하는 AXS다. 엑시를 교배하면 더 희귀한(가치 있는) 엑시를 만들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일정량의 SLP와 AXS를 소모하도록 설계돼 있다.

    사용자는 게임으로 번 SLP를 암호화폐 거래소에 팔아 돈을 벌거나 이를 엑시 강화에 재투자해 가치를 키울 수 있다. AXS 역시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매매할 수 있으며 게임을 하지 않는 사용자도 예치(staking, 스테이킹)해 일종의 이자 수익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비싼 엑시는 12만 달러(약 1억4000만 원)에 팔린 적도 있다. 지속적인 보상과 재투자가 이뤄지는 구조다.

    스카이 마비스는 엑시 캐릭터를 거래하거나 교배할 때 수수료를 받고, 이를 통해 매출을 올린다. 게임 내 수수료율은 4.25%다. 나머지는 사용자들에게 보상으로 돌아간다. 이런 구조 때문에 잘 만들어진 NFT, P2E 게임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아시아 최대 블록체인 투자사로 평가받는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도 “잘 설계된 ‘프로토콜(컴퓨터 간 수월한 데이터 교환을 위해 사전에 정해 놓은 규칙을 의미)’은 주식회사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벤처 투자회사들의 움직임을 보면 이런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금융 데이터 업체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글로벌 암호화폐 스타트업은 2021년에만 200억 달러(약 23조5200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는 작년 전체 투자 유치 규모 65억 달러(약 7조6000억 원)에서 세 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동남아의 특수성도 한몫…한국 걸림돌은?

    금융 데이터 업체 ‘피치북(Pitchbook)’이 집계한 연간 암호화폐 시장 투자금 현황. 올해 암호화폐 시장에 풀린 투자금(200억 달러)은 지난해(65억 달러)에 비해 세 배 이상 규모가 커졌다. [피치북 제공]

    금융 데이터 업체 ‘피치북(Pitchbook)’이 집계한 연간 암호화폐 시장 투자금 현황. 올해 암호화폐 시장에 풀린 투자금(200억 달러)은 지난해(65억 달러)에 비해 세 배 이상 규모가 커졌다. [피치북 제공]

    이런 변화가 동남아시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이유는 뭘까.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수준이 가장 큰 배경으로 지목된다. P2E 게임으로 얻는 보상의 효과가 크기 때문에 더 큰 폭발력을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엑시 인피니티 게임 플레이로 획득한 SLP 토큰을 판매해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는 사례가 급증했고, 필리핀에서는 심지어 엑시 인피니티로 돈을 벌어 집을 사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하루 최다 125개 획득 가능한 SLP의 가격은 현재 100원 수준인데, 최고가는 450원이었다. SLP로만 하루 최대 5만6250원, 한 달에 약 170만 원까지 벌 수 있었던 셈이다. 2021년 기준 필리핀 간호사 평균 월급은 약 23만 원, 교사 평균 월급은 30만 원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블록체인 기반 게임 내 재화의 현금거래를 사행성으로 간주해 NFT 게임의 등급 분류를 아예 내리지 않고 있으며 NFT 게임이 게임위의 등급분류 취소로 구글 플레이에서 삭제되기도 했다.

    블록체인 업계는 “‘바다이야기’ 사태 때 만들어진 규제 체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규제 때문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대응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테크앤로 부문장은 “최근 NFT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해지고 있지만, 법 제도는 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시장 초기 상황에서 섣부른 규제는 국내시장을 망치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암호화폐 시장 조사업체 댑레이더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전 세계 NFT 게임 거래 규모는 6억4000만 달러(약 7600억 원) 수준이다. NFT 시장 전체로 보면 올해 3분기 동안 106억7000만 달러(약 12조6600억 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704% 성장했다.


    #게임 #NFT #액시인피니티 #암호화폐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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