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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韓日 프로야구 우승 팀의 비범한 우승공식 [베이스볼 비키니]

안타보다 출루 우선, 수비 위주 운영 공통점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2021 韓日 프로야구 우승 팀의 비범한 우승공식 [베이스볼 비키니]

  • ● 야구는 선수가 아니라 감독이 하는 것
    ● 볼넷 잘 골라내며 수비 위주 전술 펼쳐
    ● 코로나로 늘어난 무승부, 불패 야구 주효
    ● 좋은 성적 위한 ‘영원한 불평’도 필요
2021년 11월 1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KT 위즈가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에서 승리하고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차지한 뒤 선수들이 이강철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동아DB]

2021년 11월 1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KT 위즈가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에서 승리하고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차지한 뒤 선수들이 이강철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동아DB]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저 마다의 다른’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의 이유 때문에 불행하다.”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1828~1910)가 1878년 발표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이 유명한 첫 구절로 시작합니다. 톨스토이는 한국어 번역판 기준으로 1500쪽이 넘는 이 소설을 쓰면서 (대화문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이 문장만 현재 시제로 썼습니다. 짐작건대 이 명제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믿었기 때문일 겁니다.

야구팀도 비슷합니다. 야구를 잘하는 팀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야구를 잘하지만 못하는 팀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야구를 못합니다. 적어도 2021년 한국 프로야구 챔피언 KT 위즈(이하 KT)와 일본 프로야구 챔피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이하 야쿠르트)는 비슷한 이유로 야구를 잘했습니다.

느린 공이 주무기였던 언더핸드 투수 출신 감독

첫 번째 이유는 ‘히어로즈’ 출신 언더핸드 투수라는 공통점입니다.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10년 연속(1989~1998년) 10승 이상을 거둔 KT 이강철(55) 감독은 2013~2016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이어로즈) 수석 코치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일본 프로야구 통산 최다 세이브 1위(286세이브) 기록을 남기고 은퇴한 다카쓰 신고(高津臣吾·53) 야쿠르트 감독 역시 2008년 넥센 전신인 우리 히어로즈에서 외국인 투수로 활약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언더핸드 투구법으로도 시속 150km가 넘는 공을 던지는 투수가 드물지 않지만 현역 시절 두 감독은 빠른 공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대신 “타격은 타이밍 그리고 투구는 그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라는 야구 격언을 몸소 실천하면서 큰 경기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투구를 선보였습니다. 성적도 좋았습니다. 이 감독은 1996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출신이고, 다카쓰 감독은 일본시리즈에서 통산 2승 8세이브 평균자책점 0.00을 남겼습니다.



두 감독이 팀을 이끄는 스타일 역시 선수 시절의 투구 스타일과 닮았습니다. 이 감독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말이 있다면 “나(감독)를 위해 야구하지 말고 너희를 위해 야구하라”입니다. 이 감독 부임 초창기 헌신적인 지도에도 불구하고 팀 성적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선수들이 찾아와 “감독님을 위해 꼭 이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저렇게 답하면서 선수들을 독려했고 결국 만년 꼴찌 팀을 통합 우승 팀으로 만들었습니다.

선수 신뢰가 우승 비결?

다카쓰 감독이 남긴 최고 유행어는 “절대 괜찮다(絶對大丈夫)”입니다. 최근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던 팀을 ‘니혼이치(日本一·일본 최고)’로 이끈 다카쓰 감독은 우승 이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선수들에게 절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면서 “이는 현역 시절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1935~2020) 감독님께 배운 거다. 노무라 감독님은 내가 세이브를 거두면 언제든 ‘고마워, 생큐’라고 인사를 건네셨다. 그 말만으로도 더 열심히 던질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요컨대 다카쓰 감독 역시 이 감독처럼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 그리고 감독은 그저 그 선수가 잘하도록 돕는 것’이라는 원칙을 지켰던 겁니다.

그런데 사실 감독 리더십으로 우승 이유를 설명하는 건 철저히 ‘결과론’에 가깝습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면 각 매체는 △2017년 동행 리더십(KIA 김기태) △2018년 존중 리더십(SK 힐만) △2019년 뚝심 리더십(두산 김태형) △2020년 형님 리더십(NC 이동욱) △2021년 경청 리더십(KT 이강철)이라고 각 감독 리더십에 이름을 붙여주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해가 바뀌면 이 리더십이 전부 힘을 잃으면서 해마다 한국시리즈 주인공이 바뀌고 있습니다. 20년 만에 일본시리즈 정상에 복귀한 ‘만년 꼴찌 대명사’ 야쿠르트는 과연 2022년에도 “절대 괜찮다”는 외침을 앞세워 니혼이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KT가 한국시리즈 정상을 차지할 수 있던 제일 큰 이유는 1위 결정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는 겁니다. ‘계단식’으로 포스트시즌을 진행한 31년 동안 정규리그 1위 팀이 한국시리즈 정상에 서지 못한 건 5번(16.1%)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기간에 1위 팀이 4전 전승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건 7번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시리즈는 1위 팀 4전 전승이 플레이오프 팀 ‘업셋 우승’보다 쉬운 무대입니다.

KT는 2021년 정규리그 경기에서 득점 5위(719점), 실점 2위(582점)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는 데 공격력보다 수비력이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겁니다. KT가 이렇게 실점이 적은 이유는 ‘볼넷’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KT 투수진은 전체 상대 타자 5443명 가운데 487명(9.0%)에게 볼넷을 내줬습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볼넷 허용이 가장 적었던 팀이 KT입니다.

볼넷을 주지 말고, 볼넷을 얻어라

2021년 11월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한국시리즈 3차전 KT위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중 두산 이영하(24)가 7회초 연속 볼넷을 허용한 후 교체되고 있다. [동아DB]

2021년 11월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한국시리즈 3차전 KT위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중 두산 이영하(24)가 7회초 연속 볼넷을 허용한 후 교체되고 있다. [동아DB]

야쿠르트도 수비 측면에서는 KT와 비슷한 성적을 보입니다. 야쿠르트 투수를 상대한 타자 5287명 가운데 6.4%(338명)만 볼넷을 얻어 1루에 나갔습니다. 야쿠르트가 속한 센트럴리그 6개 가운데서는 물론이고 퍼시픽리그 팀 6개까지 포함한 일본 프로야구 12개 구단 가운데 볼넷 허용이 가장 적었던 팀이 바로 야쿠르트였습니다. 두 팀 모두 투수가 쓸데없이 공을 더 던져야 하는 일을 최소화하는 모양새가 닮았던 겁니다.

타자들은 반대였습니다. KT 타자들은 총 5619타석에서 볼넷 645개(11.5%)를 얻어냈습니다. 누적 개수는 단독 1위, 타석당 비율은 한화 이글스와 함께 공동 1위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야쿠르트 타자들 역시 전체 5399타석에서 볼넷 535개(9.9%)를 얻었습니다. 누적 개수와 비율 모두 센트럴리그 단독 1위 기록입니다. (퍼시픽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자동 아웃’에 가까운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는 센트럴리그보다 볼넷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볼넷을 많이 얻어낸 덕분에 KT는 팀 타율(0.265)은 4위였지만 팀 출루율(0.356)에서는 1위에 올랐습니다. 야쿠르트도 팀 타율(0.254)은 센트럴리그 3위였지만 팀 출루율(0.333)은 1위였습니다. 출루율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아웃을 당하지 않은 비율’입니다. 결국 두 팀 타자들은 안타를 못 칠 때도 끝까지 상대 투수를 물고 늘어진 모습이 서로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투수진 볼넷 허용 비율이 제일 낮거나 타자들 출루율이 제일 높다고 꼭 우승하는 건 아닙니다. 당장 2020년 한국 프로야구에서 볼넷 허용 비율이 제일 낮은 팀은 정규리그 7위 롯데 자이언츠였습니다. 2021년 KT가 볼넷을 적게 내주고 많이 얻어서 재미를 본 건 리그 전체가 볼넷이 쏟아진 한 해였기 때문입니다. 2021년에는 전체 타석 가운데 10.5%가 볼넷으로 끝났는데 이는 한국 프로야구 40년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입니다. 말하자면 ‘리그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강팀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못 이기더라도 지지는 않겠다는 마음가짐

다카쓰 신고(53)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감독이 2008년 우리 히어로즈에 선수로 입단하던 당시 모습. [동아DB]

다카쓰 신고(53)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감독이 2008년 우리 히어로즈에 선수로 입단하던 당시 모습. [동아DB]

당연히 야쿠르트 역시 리그 상황에 맞는 전략을 꾸렸습니다. 야쿠르트는 사실 73승(18무 52패)으로 한신(77승 10무 56패)보다 적게 이기고도 무승부를 많이 기록한 ‘덕분에’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야구기구(NPB)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대책으로 시즌 개막 때부터 9회까지 동점이면 곧바로 무승부를 선언하기로 하면서 ‘무승부 대풍년’을 맞았습니다. 이기는 데만 최선을 다한 한신과 달리 야쿠르트는 비기는 데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센트럴리그 역대 최다 기록인 149홀드가 이를 증명합니다. 중간 계투를 바꾸고 또 바꾼 겁니다.

야구를 잘하려면 물론 타격이나 득점이 터질 때 제대로 터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카쓰 감독에게 이를 알려준 건 물론 스승 노무라 감독이었습니다. 그것도 평생 잊지 못할 방식으로 말입니다.

다카쓰 감독은 1993년 5월 2일 도쿄돔 경기에서 6회 1아웃부터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졌습니다. 야쿠르트가 4-1로 앞서 있던 8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전날 1군 데뷔전을 치른 요미우리 타자 마쓰이 히데키(松井秀喜·47)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나중에 일본 프로야구에서 332홈런, 메이저리그에서 175홈런을 날린 그 마쓰이 말입니다.

평생 잊지 못할 공부

이때 노무라 감독은 포수 후루타 아쓰야(古田敦也·56)를 불러 “몸 쪽 속구로 승부를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언더핸드 투수가 왼손 타자에 약하다는 건 야구 상식에 속하는 문제. ‘데이터 야구’ 창시자로 통하는 노무라 감독이 이런 기본 상식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몸 쪽 속구 사인을 낸 건 다카쓰 감독이 “내 몸 쪽 속구는 왼손 타자에게도 통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볼 카운트 2볼 1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다카쓰 감독이 승부구로 던진 몸 쪽 속구는 마쓰이가 휘두른 방망이에 맞고 외야 담장 쪽으로 총알처럼 날아가 결국 2점 홈런이 됐습니다.

2실점에도 야쿠르트가 결국 4-3 승리를 거두면서 다카쓰 감독은 프로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이날이 그의 야구 인생에 더욱 의미가 있는 건 ‘왼쪽 타자를 상대로 함부로 속구를 던지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노무라 감독은 “자기보다 여섯 살 어린 고졸 신인 타자에게 가장 자신이 있다는 공을 던져 홈런을 맞았다. 다카쓰는 그때 ‘한계란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노무라 감독은 대신 다카쓰 감독에게 “온 힘을 다해 시속 100㎞짜리 싱커를 던져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에 따라 싱커를 마스터한 다카쓰 감독은 그해 6승 4패 20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야쿠르트 뒷문을 든든하게 지켰고, 그해 일본시리즈 때도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며 ‘헹가래 투수’가 됐습니다.

노무라 감독은 2009년 “불평이여 영원하라. 이상과 현실 사이에 있는 게 불평이다. 내가 불평하기를 그만두면 나는 임종(臨終)”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항상 현실에 불평불만을 품는 자만이 결국 세상을 바꿉니다. 그러니까 나름나름의 불행을 고만고만한 행복으로 바꾸는 게 결국 성공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KT #야쿠르트 #우승공식 #신뢰 #볼넷 #신동아



신동아 2022년 1월호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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