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자꾸 크는 ‘王장관’ 한동훈… 정치 팬덤도 생겼다

  • 김성곤 이데일리 정치부 기자

    skzero@edaily.co.kr

    입력2022-05-1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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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정부 시절 유시민 떠오르는 행보

    • 수사 능력 탁월 vs 먼지떨이식 수사

    • 민주당, ‘소통령’ ‘2인자’ 적극 공박

    • 때릴수록 성장? ‘보수 전사’ 이미지 확보

    • 2024년 총선 출마로 정치인 경력 쌓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5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5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대망론’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조선제일검(劍)으로 불리던 검찰 최고의 특수통 검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윤석열 대통령의 성공 사례처럼 유력 정치인으로서 변신할 가능성이 거론되기 때문이다.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그야말로 실세 중의 실세다. 특히 윤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재확인한 것은 물론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소통령’ 공세에도 시달릴 만큼 정치적 거물로 성장했다. 민주당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을 지렛대로 낙마 총공세에 나섰지만 윤 대통령의 임명 의지는 확고하다. 한 후보자는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2인자이자 소통령으로 평가받는다.

    법무 행정 수장에 오르게 된다면 이후 행보도 관심사다. 한 후보자가 성공적으로 장관직을 수행한 뒤 2024년 22대 총선을 계기로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친윤(親尹) 대선후보’로 차기 대권 경쟁에 뛰어들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온다. 마치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도전 사례와 유사하다.

    다만 친윤 핵심 실세라는 꼬리표는 ‘정치인 한동훈’에게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순항하면 든든한 정치적 기반이 되겠지만, 크고 작은 위기에 시달릴 경우에는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동훈 대망론’의 실체를 집중 조명했다.

    4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장관 하마평에 전혀 이름이 오르지 않았던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최측근 인사의 등장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침묵으로 일관한 한 후보자는 윤 대통령의 2차 내각 인선 발표에 동행했다. 서울중앙지검장 또는 차기 검찰총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한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장관에 파격 발탁됐다. 윤 대통령은 “법무 행정의 현대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사법 시스템 정립에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직접 설명했다.



    아무도 예상 못 한 파격인사… ‘소통령’ 등장

    4월 1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날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인수위사진기자단]

    4월 1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날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인수위사진기자단]

    한 후보자 발탁 소식에 정치권은 뒤집어졌다. 특히 민주당은 “검찰 쿠데타”라며 성토했다. 역대 대통령이 취임 초에는 최측근 실세를 전진 배치하지 않는 인사 관행과는 180도 달랐기 때문이다. “인사 참사 정도가 아니라 대국민 인사 테러”(박홍근 원내대표), “4·19혁명 이후 박정희 군사쿠데타가 있었고, 촛불혁명 이후에는 윤석열의 검찰쿠데타가 반복됐다”(김용민 의원) “정치보복을 실현할 대리자를 내세운 것”(강병원 의원) 등 격앙된 반응이 쏟아졌다.

    한 후보자는 ‘소통령’ ‘세자책봉’ 등 거대 야당의 비아냥거림 섞인 융단폭격에 오히려 정면 대응을 택했다. 이를 통해 본인의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한 셈이다. 한 후보자는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드라이브와 관련, “모든 상식적인 법조인, 언론인, 학계, 시민단체들이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며 “법안이 통과되면 국민이 크게 고통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법안 처리 시도가 반드시 저지돼야 한다”고 초강수를 날렸다.

    이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4월 25일 방송된 손석희 전 JTBC 앵커와의 대담에서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식의 표현을 쓰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하다”며 “편하게 국민을 들먹이면 안 된다. 대한민국의 정의를 특정한 사람들이 독점할 수는 없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한 후보자의 정치적 위상이 현직 대통령도 비판에 나설 정도로 커진 셈이다.

    이후 한 후보자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한 후보자가 윤석열 정부의 초대 내각 상징으로 떠오르면서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였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무명의 관료였던 인사가 새 정부를 상징하는 스타로 떠오른 셈이다. 특히 한 후보자의 안경·구두·가방·스카프 등 패션 소품까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면서 정치 셀럽(celeb)으로 급부상했다.

    손꼽히는 엘리트 검사

    한 후보자의 별명은 조선제일검(劍)이다. 1973년 강원 춘천 태생으로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의 유일한 40대 장관이다. 서울대 법과대학 4학년이던 1995년 만 22세의 나이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밟아왔다. 2001년 서울지검 검사로 공직에 입문한 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근무, 법무부 검찰과,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 서울중앙지검 초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장, 검찰총장 직속 부패범죄특별수사단 2팀장 등 법무부와 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세평은 엇갈린다. 수사 능력은 누구나 인정할 만큼 탁월하다는 평이 많다. 다만 결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혹한 수사 방식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아울러 언론 활용도와 브리핑 능력 또한 검찰 내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윤 대통령과의 인연은 2003년 대검 중수부로 발령이 나면서 시작됐다. 이 시절 윤 대통령과 한 후보자는 환상의 콤비로 △SK 분식회계 사건 △대선 비자금 사건 △현대자동차 비리 사건 △외환은행 매각 사건 등 국민적 이목이 쏠린 굵직한 수사를 함께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재벌 회장 구속까지 주도하면서 ‘재계 저승사자’라는 별명도 얻었다.

    2016년 국정농단 수사를 지휘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합류해 당시 수사팀장이던 윤 대통령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두 사람의 인연은 더 끈끈해졌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적폐 수사를 주도할 당시 각각 반부패·특수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검사,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활약하면서 윤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는 2019년 ‘조국 사태’ 수사를 지휘하면서 정권의 괘씸죄에 걸려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후 추미애·박범계 법무장관 시절을 거치며 수차례 좌천성 인사로 위기에 빠졌지만 4월 6일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명예를 회복했다. 결과적으로 한 후보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은 지 일주일 만에 법무장관 후보가 됐다.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한 후보자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는 막강하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올해 2월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한 후보자 중용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한 후보자는 A검사장으로 지칭됐는데, 윤 대통령은 당시 “왜 A 검사장을 무서워하나. A검사장에 대해 이 정권이 한 것을 보라”고 했다. 이어 “이 정권의 피해를 보고 거의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면서 “중앙지검장이 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일제 독립운동가가 정부 주요 직책을 가면 일본이 싫어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랑 똑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직진 앞으로’ 인파이터형

    한 후보자는 보통의 장관 내정자와는 다른 행보를 이어갔다.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보통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과 달리 민주당과의 전면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직진 앞으로’를 외치는 인파이터형 정치인과 같은 모습이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시도에 “명분 없는 야반도주극”(4월 15일)이라고 직설적 비판을 내놓자 민주당이 청문회 보이콧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국 사태와 악연이 깊은 민주당은 자료 제출 미비로 청문회를 연기하거나 한 후보자를 낙마 1순위에 올리며 고강도 검증을 예고했다.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됐던 인사청문회 역시 5월 9일 오전 10시에 시작해 이튿날 새벽 3시 반에 마무리될 정도로 민주당과 한 후보자 사이에서 난타전과 혈투가 이어졌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한 후보자의 내로남불을 비판하면서 성토했지만 한 후보자 역시 “조국 사건을 수사하지 말았어야 했나”라며 정면 돌파에 나서기도 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민주당의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 오히려 한 후보자의 완승으로 마무리되면서 민주당에 맞선 ‘보수 전사’라는 이미지를 덤으로 얻었다. 마치 윤 대통령이 조국 사태와 추미애 전 법무장관과의 갈등을 거치며 유력 대선후보로 떠오른 것과 유사한 모습이다.

    아울러 한 후보자의 정치적 영향력은 검수완박 여야 대치 과정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4월 22일 여야는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검수완박 중재안에 전격 합의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합의문에 서명한 이후 양당 의원총회에서 추인까지 받았다.

    국민의힘은 합의안을 뒤집고 재논의를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는 한 후보자의 적극적 의견 개진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한 후보자와 통화한 이후 국민의힘이 검수완박 재논의를 촉구했던 만큼 사실상 검수완박 반대라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한 후보자를 통해 전달된 모양새다.

    총선 출마로 정치인 변신하나

    한 후보자는 단순한 법무장관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실세형 2인자로 군림할 수 있는 사실상의 왕(王)장관이다. 특히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 직이 폐지되면서 왕(王)수석 역할도 함께 한다. 왕장관에 왕수석까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셈이다.

    역대 정부에서 초대 내각 장관들의 임기가 대략 1년 6개월 전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후 행보도 관심사다. 그는 장관직 수행 과정에서 민주당과의 정면 대결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상징 자본도 축적할 가능성이 높다. △진보의 내로남불에 맞선 보수의 전사 △윤 대통령의 깊은 신뢰에 따른 후계자 이미지로 지지층 흡수 △뛰어난 정치적 개인기와 언론 활용 능력 등이 쌓이면서 현 정부 임기 중반 이후에는 유력 정치인으로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여의도 정가에서는 한 후보자가 2024년 4월 22대 총선 출마 이후 정치인 경력을 쌓은 뒤 2027년 제21대 대선에 친윤(親尹)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그럴듯한 전망까지 내놓을 정도다. 그렇게 되면 한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 임기 중·후반기 친윤(親尹) 부대라는 친위 세력의 상징이 되는 셈이다. 역대 대통령 역시 후계 구도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정동영·김근태 대세론’에 맞서 유시민 전 장관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 대세론’에 맞서 정운찬 전 국무총리나 김태호 전 국무총리 후보자 카드를 내세운 바 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한 후보자의 정치적 야심을 경계했다. 조 의원은 4월 2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민주당과의 충돌을 마다하지 않은 한 후보자의 언행과 관련, “장관 후보자가 현안에 끼어들어서 풀스윙할 이유는 없지 않으냐”며 “혹시 5년 후에 어나더(another) 윤석열? 왜 이러지”라고 의아했다. 특히 검수완박 여야 합의 무산과 관련해 “심지어 이번에 국힘에서 합의를 뒤집은 것도 한동훈의 발언이 촉발한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며 “이제는 왕장관이 아니고 소통령”이라고 저격했다.

    이준석 대표도 민주당의 공세를 비판하면서 한 후보자의 정치적 성장을 예측했다. 이 대표는 5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은 명심해야 한다”며 “자꾸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늦추고 지연시키고 방해할수록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는 ‘별의 순간’이 될 것”이라고 썼다. 이 대표가 언급한 ‘별의 순간’의 저작권자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다. 윤 대통령이 과거 검찰총장 퇴임 이후 유력 대선후보로 급부상하면서 대권 도전을 은유하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됐다.

    5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준비한 자료를 보고 있다. [뉴스1]

    5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준비한 자료를 보고 있다. [뉴스1]

    현재로서는 장담 어렵지만…

    한 후보자는 과연 별의 순간을 잡을 것인가. 전문가들은 엇갈린 전망을 내놓았다. 한 후보자의 정치적 잠재력을 고려할 때 대망론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5년 뒤를 예단하기 어렵지만 한 후보자의 차기 대망론의 불씨는 충분히 살아 있다”고 밝혔다. 또 “한 후보자의 경우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대중적 인지도가 수직상승한 것은 물론 핵심 지지층의 결집으로 볼만한 정치적 팬덤까지 만들어졌다”며 “윤석열 정부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안철수 전 인수위원장보다 오히려 주목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정치는 굉장히 다이내믹하기 때문에 5년 후를 예측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러 면에서 한동훈 대망론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피력하기는 아직 이르다”면서 “국민의힘 내에는 오세훈 시장이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와 같은 카드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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