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호

배아가 건강하면 척박한 자궁서도 거뜬히 임신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 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2-09-1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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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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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비혼과 40대에 결혼하는 만혼(晩婚)이 급격히 늘고 있다. 딩크족으로 살다 뒤늦게 임신을 시도하는 부부도 적지 않다. 이들을 보며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생식기 질환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생식기 질환이 있어도 시험관아기시술(IVF)로 임신(출산)에 성공할 수 있지만, 심할 경우 임신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질 수 있고, 임신하더라도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출산을 마쳤거나 포기했어도 생식기 질환으로 인해 여성으로서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서양에서는 초경이 시작되면 엄마와 딸이 산부인과에 함께 방문해 부인과 검진을 시작하는 게 예사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환자를 만나보면 생리적 현상에서부터 각종 부인과 질환, 심지어 해부학적 지식이 상당했다.

    반면, 한국 여성은 산부인과 문턱을 학창 시절 교무실 문턱보다 더 높게 생각하는 탓인지 부인과 정기검진을 받는 여성이 드문 편이다. 심지어 평소 성교통, 생리통, 골반통, 복부팽만 등이 심해도 “임신할 계획이 없다”며 산부인과 전문의 만나는 걸 차일피일 미루는 여성이 상당수다. 그러다 임신이 안 된다며 뒤늦게 난임 전문 의료기관을 찾으면 총체적 임신 방해 요인으로 인해 IVF를 할 때 곤란을 겪는다.

    자궁 질환의 모든 것

    여성의 생식기 질환은 대체로 난소와 자궁에서 발병한다. 이번엔 자궁 내 질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다. 자궁은 아기가 열 달(정확히 37주) 동안 자라는 보금자리다. 인간이 세상에 존재(배아의 착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평생 동안 가장 편한 거처가 자궁이라던 어느 생물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자궁은 아기씨(수정란)가 뿌리를 내리는(착상) 내막, 태아가 커질수록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근육층, 그 바깥을 비닐 같은 막으로 덮는 장막층으로 이뤄져 있다.

    자궁 안에 생기는 용종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궁내시경(이하 자궁경)이라는 간단한 시술로 내막에 생기는 용종이나 염증은 물론이고 소파수술 후 자궁 내 생긴 유착이나 남아 있는 태반조직 제거 등을 해결할 수 있다. 자궁 내 가벼운 병변은 자궁경으로 제거할 수 있다.



    자궁 내 대표적 병변은 자궁근종이다. 자궁근종은 자궁 근육에 생기는 양성종양으로 건강보험 진료 데이터 통계상 매년 확진 건수가 가장 많은 부인과 질환이다. 가임기 여성의 20~30%에서 발견되는데, 최근엔 20대 질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뚜렷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분비 외에 유전적 요인, 패스트푸드 섭취, 불규칙한 생활습관,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궁근종은 월경과다, 통증, 난임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근종이 커지면 자궁 모양이 변형될 수 있고, 정자 이동을 방해할 수 있다. 자연임신과 인공수정 시술로 임신이 힘들 경우 IVF를 권한다. 근종 크기가 3~4㎝ 이하라면 우선 두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근종이 착상 부위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면 치료(혹은 제거 시술)보다는 임신 시도를 먼저 하길 권할 수 있다. 반면 근종이 착상 위치에 있으면 아무래도 임신에 애로 사항이 많다.

    문제는 상당수 여성이 자궁에 근종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다는 것이다. 난자가 자라면서 난소에서 분비하는 에스트로겐에 의해 근종의 크기가 커질 수 있어 그냥 내버려 두면 매달 배란이 되는 한 악화할 수밖에 없다. 자궁근종이 있을 때 생리과다, 생리통, 골반 부위 압박감, 배변과 배뇨장애, 빈뇨 및 복부(아랫배)팽만 등이 나타나지만 상당수 여성이 무관심하다가 뒤늦게 알게 된다. 어떤 여성은 살이 쪄서 아랫배가 불러온 줄 알다가 산부인과 검진에서 단단한 무처럼 크게 자란 자궁근종을 확인하기도 한다.

    가장 골치 아픈 질환은 자궁선근종이다. 자궁내막이 근육층 속으로 파고 들어가 내막 조직과 근육 조직이 뒤엉켜 덩어리를 만드는 것인데, 마치 밀가루 반죽에 베이킹소다를 넣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된다. 자궁이 50g인데, 선근종이 심하면 130~140g까지 커지기도 한다. 선근종의 부위가 커질수록 월경통, 월경과다, 난임 등을 초래하게 된다.

    선근종이 크지 않은 경우는 임신을 빨리 유도해야 하지만, 진행돼 크기가 커졌다면 호르몬 억제제를 투여해 자궁을 최대한 작게 만들고 IVF를 하게 된다. 만약 선근종을 제거한다고 해도 선근종의 경계 부위가 모호하므로 용적 줄이기(Volume reduction)를 하면서 자궁내막의 보존을 유지해야 가임력을 잃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자궁내막 자체가 비대해지는 자궁내막증식증이 있다. 자궁내막은 호르몬에 의지하는 조직이다. 배란까지 에스트로겐에 의해 두꺼워졌다가 배란 이후 프로게스테론에 의해 수정란을 받아들이기 좋게 안정된다. 임신이 안 되면 몸 밖으로 배출(생리혈)돼야 하는 조직인데, 내막이 과도하게 증식하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계속 부풀어 오르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호르몬제(프로게스테론)를 처방하거나 가벼운 내막 소파술로 내막을 탈락시키는 것도 치료의 한 방법이다. 이때 유의할 점은 떼어낸 내막 세포에서 비정형 세포가 나오면 자궁내막암으로 진행될 수 있기에 내막의 증식을 억제하는 호르몬 치료를 해야 한다.

    나이 불문 자궁 건강관리에 힘써야

    가장 안타까운 것은 생식기 질환이 있는 경우 임신이 먼저인지, 치료가 먼저인지를 놓고 여성들이 결정 장애에 빠진다는 것이다. 30년 이상 난임 치료를 해온 난임 전문가로서 귀띔한다면, 난소 상태 등을 고려해 치료와 임신 시도 중 한 가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 치료보다 임신 시도를 우선순위에 놓고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유인즉 생식기 질환이 임신에 방해 요인이기는 하지만, 임신에 성공하는 데 자궁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농사를 짓는데 밭(자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씨(난자, 정자)가 중요하다. 배아가 건강하면 척박한 환경(자궁 내 병변)에서도 거뜬히 착상에 성공하고 건강한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조하지만 자궁은 여성에게 제2의 심장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장기이므로 설사 출산을 포기했다손 치더라도 자궁 건강을 위해 노력하고 질병 예방에 힘써야 한다. 간혹 출산을 포기했거나 마친 여성 중 자궁 질환이 심각해 적출을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자궁에 심한 병변(자궁선근종, 근종 등)이 있다고 해도 적출술은 최후의 방법이다. 섣부르게 자궁을 적출했다가는 요실금, 질 탈출증, 장기유착, 조기폐경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 자궁의 부재로 인해 쉽게 피로해질 뿐 아니라 무거운 것을 조금만 들어도 힘에 부칠 정도로 몸이 약해질 수 있다.

    최근에는 자궁 질환에 대한 치료법이 다양하다. 임신을 계획하고 있거나 임신을 포기하지 않은 여성이라면 비개복수술(복강경술 등)을 고려해 봐야 한다. 산부인과 전문의라고 해도 전공마다 의학적 소신이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기에 우선적으로 난임 전문의와 상담해 수술과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난임 전문의는 가임력 보존을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결론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다만, 인체는 제각기 다르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므로 동일한 질환이거나 비슷한 상태라고 해도 의사마다 최종 판단이 다를 수 있다. 항상 강조하지만 의사의 의학적 소신과 의학적 판단은 환자 진료와 실전 경험을 통해 축적된 결론이다. 하지만 임신의 세계만큼은 의료인의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고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해도 최종적으로는 신의 영역(임신 성공)이다. 난임 전문의가 의학적 소신을 갖고 판단할 때 항상 겸허해야 하는 이유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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