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韓, 핵 없으면 중국 ‘천하’ 밑으로 들어간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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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2-11-19 09: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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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脫냉전→新냉전… “중·러 제국 부활 꿈꿔”

    • 푸틴 核 사용 가능성 배제 불가

    • 대만에서 中 막지 못하면 아시아 끝

    • 北 비핵화, 核 없이는 불가능

    • 대통령이 먼저 옵션 버리면 안 돼

    • 美 신용 얻으며 전술核→자체核 나아가야

    11월 8일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한국이 핵무기를 가져야 중·러의 위협에 맞설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도균 객원기자]

    11월 8일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한국이 핵무기를 가져야 중·러의 위협에 맞설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도균 객원기자]

    “중국과 러시아가 ‘제국’을 꿈꾸고 있다. 한국이 어마어마한 위기에 봉착했다.”

    이근(59)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외교·국제정치 분야에서 손꼽히는 석학이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외교통상부 고문,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서울대 국제협력본부장,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소장,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근 교수는 지식인 가운데 ‘은자(隱者)’에 가깝다. 언론 노출을 즐기지 않는 성향 때문이다. 웬만하면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관장(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으로서 취임 초기 진행한 몇 회를 제외하면 그의 인터뷰 기사를 찾기 어렵다. 때때로 기고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정도다.

    10월 2일 이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그를 세간의 중심으로 끄집어냈다. 전술핵 도입에 더해 자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게 골자였다. 이 교수는 9월 8일 북한이 공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 이른바 ‘핵무력정책법’을 거론하면서 “북한 핵의 불가역성을 인정하고 우리의 핵전력 보유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며 “핵보유국을 상대로 핵보다 나은, 핵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체제 안전 보장은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간 핵을 통한 자강은 보수 진영의 어젠다였다. 근래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도발과 7차 핵실험 우려가 핵무장 논란을 심화했다. 핵무장론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강경함 순으로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핵확산금지조약) 탈퇴 및 자체 핵무장, 미국 전술핵 재배치, 나토(NATO)식 핵 공유 및 핵우산 강화다.



    10월 12일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의 페이스북 글을 시작으로 김기현 의원, 유승민 전 의원, 홍준표 대구시장, 조경태 의원 등 여권 정치인이 잇달아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 등 주장을 쏟아냈다. 야권의 시각은 정반대다. 11월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책임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근 교수는 문재인 정부 시절 기관장을 지내 ‘진보 인사’로 분류됐다. 과거 칼럼에서 힘보단 대화와 경제교류를 더 우선하는 대북정책을 강조하는 등 ‘햇볕론자’이기도 했다. 이에 10월 2일 그의 페이스북 글은 마치 ‘전향 선언’처럼 여겨졌다. 이 교수에게 핵 관련 현안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내키진 않지만 중요한 주제라 고민해 보겠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몇 차례 추가 요청 끝에 인터뷰가 성사됐다.

    11월 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이근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한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터라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 작심한 듯 약 90분간 물 한잔 마시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의 주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으니 우리도 가져야 한다’는 ‘함무라비식’ 논리가 아니다. 그의 눈은 북한을 넘어 중국·러시아를 향해 있다. 이 교수는 “탈(脫)냉전시대가 끝나고 신(新)냉전시대가 도래했다. 중·러는 제국을 꿈꾸며 영토 확장을 꾀할 것이다. 한국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그들과 대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만에서 중국을 억지하지 못하면 아시아는 끝”이라며 대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핵정책 방향에 대해선 “국제사회의 신용을 얻는 게 우선이다. 전술핵 재배치로 시작해 자체 핵무기를 갖춰야 한다. NPT를 공개적으로 깨는 것은 부담이 크다. NCND(Neither Nonfirm Nor Deny·핵무기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로 가다가 필요시 최단시간 핵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中, 韓 속국 삼으려 할 것

    그간 진보 인사로 분류됐다. 자체 핵무장 발언은 의외라는 반응이 있는데.

    “난 진영으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유화적(宥和的) 칼럼을 많이 썼다. 탈냉전시대 초기였다. 북·중·러가 자유주의 시장경제 질서에 편입될 수 있다고 봤다. 당시는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이루지도 못한 때고. 시대가 변했다. 사실 10월 핵무장 발언을 처음 한 게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캠프 사람들에게 줄곧 해온 말이다.”

    시대가 변했다?

    “중·러를 중심으로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 벌어지고 있다. 기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려고 하는 세력과 이를 바꾸려고 하는, ‘현상 변경 세력’ 둘로.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를 가속화했다. 중·러가 현상 변경 세력인데, 사실 이들은 아주 오래된 ‘제국’이다. 제국은 기본적으로 ‘지정학적’ 성질을 띤다. 지리적 요인, 즉 땅이 중요하다. 과거 제국은 비옥한 땅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 얻은 노동력을 바탕으로 주변의 위협을 없애 제국의 완성을 이뤘다. 이른바 ‘천하’다. 과거 약 2000년간 지속된 질서다. 그러다 산업화가 이뤄지며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시장’이 생겼다. 시장은 지정학적이지 않다. 가치사슬로 연결된, 철저한 분업 체제다. 예컨대 내가 다른 사람이 신으려고 하는 구두를 만들어 판 돈으로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서 만든 빵을 사 먹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제국이 ‘제로섬’이라면 시장은 ‘윈-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제국은 모두 해체되고 국민국가로 나뉘어 세계시장으로 뭉치게 됐다. 시장엔 법, 제도, 가치 등 인프라가 필요한데, 미국이 이를 제공한 것이다. 국제기구가 만들어지고 다자주의에 입각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확립됐다. 시장을 바탕으로 생성된 질서이기에 협력이 너무나 당연한 체제다. 그런데 문제는 중·러도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질서에서 성공을 거둔 게 문제가 되나.

    “이들은 전체주의 국가다. 중국은 공산당 중심 중앙집권 체제다. 필연적으로 ‘전제군주’와 흡사한 통치자가 등장하게 된다. 오랜 전통으로 말미암은 제국 DNA도 있다. 앞서 말한 지정학적 세계관을 가져 자국 천하를 꿈꾼다. 과거에 대한 ‘향수(鄕愁)’도 있다. 중국의 천하란 결국 ‘청(靑) 복원’이다. 대만, 동남아시아, 한반도까지 현대판 속국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삼키려 하는 셈이다. 한국엔 엄청난 위기다. 지정학적 시대에 한국은 빈곤하고 약했다. 세계시장이 열린 덕분에 한국은 무역을 통해 돈을 벌게 됐고 민족 역사상 최고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즉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한국에 가장 유리한 세계질서다. 중국 영향력 아래 들어가면 지정학적 질서로 흡수돼 버리는 것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는 것이 한국 국익에 첫 번째다. 그래야 번영과 평화를 지속할 수 있다. 시장이 없으면 한국은 끝이다. 인적자원과 좁은 영토밖에 없는 나라인데, 뭘 어떻게 하겠나. 다음은 안정된 시장 질서 안에서 한국의 영토와 국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외교·안보 정책은 무조건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

    美, 대만 버리면 다음은 韓

    10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북핵위기대응특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 및 1차 회의에서 모두 발언 하고 있다. 근래 여권 내에선 북핵 위협에 대해 자체 핵보유·전술핵 재배치·핵 공유 등 다양한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뉴스1]

    10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북핵위기대응특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 및 1차 회의에서 모두 발언 하고 있다. 근래 여권 내에선 북핵 위협에 대해 자체 핵보유·전술핵 재배치·핵 공유 등 다양한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뉴스1]

    기우(杞憂) 아닐까.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 후 전체주의로 회귀했다. 사회주의를 천명하고, 대만을 삼키겠다고 말하며, 핵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중화민족 부흥을 표방하는데, 이는 서방 세력을 모두 축출하고 유라시아 대륙을 중국 천하로 만들겠다는 의미와 같다. 러시아도 똑같다. 우크라이나 점령을 효시로 러시아 제국 재림을 꾀할 것이다.”

    10월 26일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참관하는 가운데 정례 핵 훈련을 실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고전하는 가운데 핵무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푸틴이 핵을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그럴 수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점령해 자국 영토로 선포했다. 국민투표까지 마쳤다. 서방 세력이 이를 침범하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전쟁은 점점 시민을 향해 가고 있다. 병력 간 다툼으로는 승부가 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가스 등 인프라에 미사일을 쏴댄다. 이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결국 최후엔 ‘핵’이다. 저위력 핵무기, 즉 전술핵부터 쓸 것이다.”

    이근 교수는 “시간을 끌수록 우크라이나에 불리하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겨울이 되면 에너지 문제로 유럽은 더 힘들어지고, 미국도 국내에서 전쟁을 끝내라는 목소리가 커질 거다. 결국 휴전을 하게 될 텐데…. 그러면 유럽은 새로운 한반도가 된다. 나토와 러시아의 대치 국면이 시작되는 셈이다. 이는 세계시장에서 가치사슬과 공급사슬이 끊어짐을 의미한다. 유럽이 무너지면 다음 도미노는 대만이다. 중국이 곧바로 대만에 무력을 행사하진 않으리라고 본다. 경제적 봉쇄에서 군사적 봉쇄로 나아갈 것이다. 중국이 겁을 주면 패닉이 발생한다. 미국은 대만을 구하기 위해 자국의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딜레마에 빠진다. 시간을 끄는 사이 TSMC 같은 기업이 대만을 떠난다. 그러면 미국에 대만의 가치는 크게 떨어진다. 미국이 자국민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대만을 도와줄 이유가 약해지는 것이다. 중국이 들어오고, 게임은 끝난다. 그다음엔 한반도다. 중국과 북한이 똑같은 방식으로 잠식해 오면 한국도 대만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고로 대만을 눈여겨봐야 한다. 대만에서 중국에 대한 억지력이 작동하지 않으면 아시아는 끝이다. 내가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건 미국의 확장억제 의지가 약해지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저지하기 위한 핵무장인가.

    “북한‘만’을 겨냥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이 핵을 가지고 있어야 중국과도 맞설 수 있으니까. 물론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핵은 필요하다. 핵이 없으면 북한과 협상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 이는 진보 진영도 납득해야 한다. 핵은 보수 진영만의 어젠다가 더는 아니다.”

    진보 진영은 핵에 부정적이다.

    “핵이 있어야 북한도 대화에 임한다. 대화를 해야 비핵화든 군축이든 하지 않겠나. 전술핵도 부족하다. 전술핵 사용 여부는 최종적으로 결국 미국 결정에 달려 있기에 북한이 미국과 협상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면서 북한과의 협상에도 임하려면 대안은 자체 핵무장뿐이다. NPT 문제 해결이 관건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지키기 위한 核

    11월 13일(현지 시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이날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북한의 고도화된 핵 능력에 맞게, 한미 간 확장억제를 실효적이고 획기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확장억제 강화 방안에 관해 양측이 앞으로 계속해서 긴밀히 협의해 나가자”고 말했다. [동아DB]

    11월 13일(현지 시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이날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북한의 고도화된 핵 능력에 맞게, 한미 간 확장억제를 실효적이고 획기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확장억제 강화 방안에 관해 양측이 앞으로 계속해서 긴밀히 협의해 나가자”고 말했다. [동아DB]

    8월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이 고도화됨에 따라 확장억제 형태가 조금 변화될 수는 있지만 NPT 체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다. 11월 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이후 기자회견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전술핵 재배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윤석열 정부는 핵무장에 미온적인데.

    “윤 대통령과 이 장관의 발언 모두 아쉽다. ‘한국은 핵을 갖지 않을 것이다’ ‘NPT는 무조건 준수한다’는 말은 탈냉전 시기에,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잘 돌아갈 때나 해야 할 얘기다. 현 국제질서에 대해 아직 ‘나이브(naive)’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원칙적으론 NPT를 준수하고 전술핵 도입에 반대하지만 필요한 상황에선 모든 옵션을 다 고려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게 맞지 않나. 세상 어느 나라 대통령이 옵션을 알아서, 먼저 다 버려버리나. 지금과 같은 엄중한 안보 위기에. 사실 이미 국정원, 안보실 차원에서 핵무장을 고려하는 상태여야 한다고 본다.”

    NPT 위반 아닌가.

    “유럽에선 영국과 프랑스, 남아시아에선 인도와 파키스탄, 중동에선 이스라엘이 핵을 가졌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가 러시아·중국 등 비민주주의 국가의 핵 위협에 대해 핵으로 맞설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중국·러시아를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데, 민주주의 국가들이 핵 하나 없이 미국의 확장억제에만 의존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은 내버려 두면서 동맹국이 핵을 갖는 것은 막는 게 아이러니하지 않나. 한국도 미국에 당당히 ‘한국의 핵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한 핵’임을 납득시켜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미국과 협상을 통해 핵개발 준비를 비밀리에 마치고 NCND로 가면서 필요시 최단시간에 핵무장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모델로 삼을 만하다.”

    미국이 한국을 신뢰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문제는 한국이 정권에 따라 노선이 ‘왔다 갔다’ 한다는 점이다. 중·러를 상대하라고 핵무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줬는데, 친북·친중 정권이 들어선다면? 핵은 고스란히 미국을 향하게 된다. 미국에 한국은 크레더빌리티(Credibility·신뢰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나라다. 현 정권만 해도 갈팡질팡하지 않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찾아와도 만나지 않고, 시진핑 연임엔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축전을 보내고…. 종합적 비전이 없다. 미국이 일본은 버리지 않아도 한국은 버릴 수 있다고 본다. ‘애치슨 라인’을 일본에서 끊는 셈이다.”

    核 시대 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위에서부터). 이근 교수는 푸틴, 시진핑, 김정은은 “정말로 핵을 쏠 수 있는 이들”이라고 역설했다. [AP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위에서부터). 이근 교수는 푸틴, 시진핑, 김정은은 “정말로 핵을 쏠 수 있는 이들”이라고 역설했다. [AP 뉴시스]

    한국에서 핵무장론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가장 현실적 방안과 이상적 방안은 각각 무엇이라고 보나.

    “가장 현실적 대안은 전술핵 재배치다. 가장 이상적인 건 역시 자체 핵무기 보유다. 한국이 발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핵이어야 한다. 미국이 떠나고 중·러가 들어오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세계는 이미 ‘핵의 시대’로 돌입했다. 푸틴, 시진핑, 김정은은 막말로 ‘또라X’다. 핵의 시대는 또라X가 이기는 세상이다.”

    또라X가 이기는 세상이라면….

    “진짜 핵을 발사할 듯한 나라가 이긴다는 뜻이다. 푸틴, 시진핑, 김정은은 정말 핵을 쏠 수 있는 자들이다. 합리적 잣대로 판단해선 안 된다.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핵에 대한 시각에 다소 위선적 부분이 있다고 본다. 핵으로 살상하든 고성능 무기로 살상하든 결과는 같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죽은 사람보다 도쿄 대공습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일주일 동안 융단폭격을 단행하는 것과 전술핵 한 번 쏘는 것이 다를 바가 없다. 푸틴이 핵을 발사한다면 이는 완벽한 ‘게임체인저’가 된다. 실전에서 핵을 사용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셈이고, 북한과 중국도 따라 할 것이다. 유럽, 미국의 이른바 전문가들은 ‘중국이 대만을 어떻게 삼키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복할 리 없다’ ‘북한이 진짜 핵을 쏘지는 못할 것이다’ 등 예측을 쏟아낸다. ‘너무 정상적’ 시각이다. 그러다 정말 핵이 발사되면 당황해 ‘쟤네 지켜주다가 우리까지 죽을 수는 없다’며 발을 빼고 말 것이다. 그들의 국내정치가 그리 몰고 가리라 본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단행하리라고 보나.

    “곧 하리라고 예상한다.”

    한국이 자체 핵 보유를 위해선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할까.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확장억제 약속을 받아내는 게 첫 번째다. 핵잠수함, 스텔스기, 전략폭격기 등 억제력에 필요한 모든 자산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은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한국은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공급사슬·가치사슬에서,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분야 등 한국이 두각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지 않나. 또 대만 문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국제 문제에서 확실한 원칙을 보여줘야 한다. 다자 협의체에도 적극 가입하고, 어렵다면 만들어서라도 활동해야 한다. 신뢰를 쌓은 후엔 전술핵을 도입하고, 자체 핵을 갖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核 없이 中 막아낼 수만 있다면…

    일각에서는 한국이 비핵화 상태로 얻는 실익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11월 12일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는 ‘중앙선데이’ 칼럼에서 “쥐를 잡으려다 독을 깨지 말아야 한다. 핵개발·전술핵 재배치·핵 공유 모두 득보다 실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 선택은 기존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대북 확장억제를 미국의 통합억제 개념과 연계·보강해야 한다. 특히 사이비·전자전 능력을 키워 북한의 핵 위협을 무력화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핵을 보유해서 얻는 실익이 손해보다 크다고 보나.

    “NPT 탈퇴에 따른 모든 경제제재를 감수하면서까지 핵을 갖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다.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기 때문에 경제제재가 들어오면 고사(枯死)한다. 한국의 핵이 한미동맹, 자유 진영 방어,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도움이 됨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면 향후 한국은 타국과의 협상에서 실익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이 핵무장하지 않고도 안보 위협에 대처할 방법은 없을까.

    “대만이 핵무장하지 않아도 중국에 대해 완벽한 억지력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길이 있다. 다시 한번 대만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한국 안보에 가장 중요한 나라는 대만이다. 가히 처음이자 끝이라 봐도 무방하다. 러시아보다 훨씬 강력한 중국이 중화민족 통일을 명분으로 대만을 삼키려고 하는데, 이를 확실히 억지할 수 있다면 북한은 핵이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도 감당하지 못한 억지력을 감당해 낼 리 없다고 여길 테니까. 억지는 한번 실패하면 또 실패할 수 있다. 이미 대만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미국, 일본, 호주, 유럽 등 국제사회가 반드시 대만에서 중국을 막아야 한다.”

    신동아 12월호 표지.

    신동아 12월호 표지.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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