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꺼지지 않는 불씨 유승민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돈키호테형 소신파와 독불장군 사이 어딘가의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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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2-12-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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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적합도 1위

    • “劉, 좋아하나 정무감각 심각히 떨어져”

    • 평균연령 42.9세가 좋아하는 보수 잠룡

    • 노무현 가장 좋아하는 유승민 지지층?

    • 2021년 4월 9일, 劉와의 2시간 인터뷰

    • 직설 토로 “내가 언론에 늘 불만이…”

    • 우호적인 장성철조차 “주위 챙기지 않는다”

    • “尹과 각 세우기, 소신 말곤 이해 안 돼”

    • 親尹 인사 “결국 전당대회에 못 나올 것”



    2021년 4월 9일 서울 여의도 ‘희망22’ 사무실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한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조영철 기자]

    2021년 4월 9일 서울 여의도 ‘희망22’ 사무실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한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조영철 기자]

    유승민(64) 전 국민의힘 의원이 돌아왔다.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본인의 의지라기보다는 상황과 조건이 그렇게 이끌었다. 여의도에서는 흔히 꺼진 불도 다시 보자고 한다. 유승민의 사례가 딱 그렇다. 대선과 경기지사 경선에서 연달아 낙마한 뒤 정계 은퇴를 고민하던 그로서는 반전드라마다. 이렇게 만든 쪽은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다.

    그가 쓰는 언어도 잘 벼린 칼날처럼 첨예해졌다. 11월 10일에는 “국민 안전에 대한 국가의 무한 책임을 수차 강조하던 윤 대통령은 지금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했고, 이튿날에는 대통령실이 동남아 순방 일정에 MBC 기자들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제한한 것을 두고 “자유라는 헌법 가치를 대통령 스스로 훼손하는 결정”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에 대한 비판 발언은 중도층의 호응을 샀고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그 덕분에 최근 나오는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여론조사는 일제히 ‘유승민 초강세’를 가리키고 있다. 비교적 공신력을 갖춘 몇 가지 조사를 추려보자.

    SBS가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 11월 7~8일 성인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에 누가 가장 적합한지’ 물은 결과, 유 전 의원이 29.0%로 2~5위인 안철수 의원(12.7%),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9.1%),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3.2%), 김기현 의원(2.6%)의 지지율 합계를 넘어섰다. 같은 시기 치러진 다른 여론조사의 결과도 유사하다. 11월 7~8일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남녀 1001명에게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로 누가 가장 낫다고 보는지’ 물었더니 유 전 의원이 24.2%로 안 의원(11.1%), 나 부위원장(9.3%), 황교안 전 대표(2.5%), 주호영 원내대표(2.2%), 김기현 의원(1.2%)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홍준표 도운 유승민?

    범위를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좁히면 상황은 달라진다. SBS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만 놓고 볼 때 나 부위원장이 26.3%로 1위였고, 안 의원(20.8%)이 뒤를 이었다. 유 전 의원은 7.3%에 그쳐 9.3%를 얻은 정진석 비대위원장에게도 밀렸다. MBC 조사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층의 22.3%가 나 부위원장을 택했고, 안 의원이 15.8%, 유 전 의원은 8.8%를 얻었다. SBS 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50.7%가 유 전 의원을 선호했다. MBC 조사에서 국민의힘 당대표로 유 전 의원이 낫다고 응답한 민주당 지지층은 40.7%였다.(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심과 당심의 괴리는 ‘정치인 유승민’이 마주한 가장 고약한 딜레마다. 그렇다고 해서 ‘역선택’이라고 단순 요약해 버릴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역선택’은 일종의 프레임이 담긴 언어다. 예컨대 민주당 지지층이 나경원 부위원장이나 안철수 의원이 당대표가 될 가능성을 우려해 유승민 전 의원을 ‘전략적으로’ 밀어준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 부위원장이나 안 의원이 정치권에서 그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선거가 치러지는 상황도 아닌데, 야당 지지층이 조직적으로 여론조사마다 유 전 의원을 택한다고 보기도 무리다. 즉 응답하는 당사자가 어느 정당을 지지하건, 정치인 유승민의 독자적인 지지 기반은 분명 현존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월 초, 국내 주요 여론조사업체에서 고위 간부로 일한 적이 있는 전문가와 유승민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유승민에게 호감을 가진 인사다. 그런 그는 “이 사람은 자기 지지 기반이 누군지 모른다. 그래서 정무적 판단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앞으로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가 제시한 사례가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다.

    2015년 2월 10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지도부와 접견하는 자리에서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2월 10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지도부와 접견하는 자리에서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당시 국민의힘 내에서는 ‘유승민 차출론’이 불거져 나왔다. 이에 대해 유승민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출마 가능성을 단칼에 잘랐다. 앞선 전문가가 보기에는 서울시장 선거에 당연히 출마했어야 했다. 한국에는 안보보수와 경제보수가 있는데, 유승민을 지지하는 사람은 경제보수이고 지역적으로는 대구·경북이 아니라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은 2017년 대선에서 바른정당 소속의 기호 4번 후보로 출마했다. 최종 220만8771표(6.76%)를 득표했다. 앞선 전문가의 눈에 5년 전 ‘유승민 선거대책위원회’의 캠페인은 실패작이다. 이때 유승민이 공들여 강조한 어젠다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였다. 유승민은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안보통’이기도 하다. 사드의 경우, 친박근혜계에서 반대할 때도 먼저 나서 찬성했다. 그렇지만 유권자는 유승민에게서 ‘안보’보다는 ‘경제’ 이미지를 연상한다. 앞선 전문가의 진단을 빌리면, 사드 이슈가 커지면 안보 불안감이 형성될 수밖에 없고 이는 다른 보수 후보 즉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와준 꼴이 된다.

    데이터로 본 개혁보수 실체

    데이터를 보면 이 말에는 그 나름의 근거가 있다. 두 명의 보수 후보(홍준표, 유승민)와 한 명의 중도 후보(안철수)가 대선 본선에 모두 나온 2017년 대선을 보자. 대선 직후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의 보수 정치: 몰락 혹은 분화?’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 보수 정치를 분석하는 데 이정표가 될 만한 논문으로 꼽힌다.

    논문에는 강 교수가 연구를 위해 각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주관적 이념의 평균값을 구한 결과가 있다. 10점 척도로, 1점에 가까우면 진보 10점에 가까우면 보수다. 그 결과, 홍준표 지지자들의 평균은 6.88로 나타나 매우 강한 보수적 이념 성향을 보였다. 유승민 지지자들의 경우 5.62로 나타나 홍준표 지지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온건했다. 안철수 지지자들의 평균은 5.10이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세대별 패턴이다. 홍준표 지지자의 평균연령은 60.3세, 안철수 지지자의 평균연령은 52.3세였다. 유승민 지지자들의 평균연령은 42.9세였다.

    세 후보 지지자들에게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도 물었다. 홍준표 지지자들의 71.3%는 박정희를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택했다. 유승민 지지층에서 박정희가 가장 좋다는 응답은 15.6%였다. 반대로 노무현을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라 응답한 비율이 51.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박정희에 대한 강한 선호를 드러낸 홍준표의 지지층이 ‘전통적 보수’를 대표하고 있다면, 오히려 노무현을 선호한 유승민의 지지층은 이들 ‘전통적 보수’들과 구분되는 상이한 정체성을 갖는 ‘새로운 보수’의 등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썼다.

    쟁점 정책에 대한 각 후보 지지자들의 태도도 상이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 홍준표 지지자들의 95.1%가 찬성한 반면, 유승민 지지자에서는 72.7%만 찬성했다. 사드 이슈를 부각할수록 홍준표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셈이라는 앞선 여론조사 전문가의 말이 근거가 있는 셈이다. 대북정책에서도 홍준표 지지자의 80.6%는 적대적 대북정책을 선호했고, 유승민 지지자에서 그 비율은 70.9%였다. 복지 대 성장에서는 홍준표와 유승민 지지자 간 시각의 차이가 가장 확연히 나타났다. 홍준표 지지자의 77.6%가 성장을 중시한 반면, 유승민 지지자에서 해당 비율은 51.3%로 크게 낮아졌다. 대신 유승민 지지자의 48.7%가 복지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정리하면 유승민의 지지층은 매우 젊고, 사드 배치나 적대적 대북정책에서는 상대적으로 유연하며, 복지에 대해서는 전향적이고, 박정희보다는 노무현을 좋아하는 그룹이다. 대체로 정책 민감도가 높은 편이다. 그간의 한국 정치에서는 가시화한 적이 없는 그룹이다. 데이터는 개혁보수가 실체를 갖춘 집단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기자는 4·7 재·보궐선거 이틀 뒤인 2021년 4월 9일. 서울 여의도 ‘희망22’ 사무실에서 유승민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1시간 안팎 진행하기로 약속돼있었으나, 대화가 꼬리를 물 듯 이어져 2시간 넘게 소요된 긴 인터뷰였다. 녹취록만 200자 원고지 132매가 나왔다. 지면의 한계 탓에 45매 분량만 보도했다. 쉴 틈 없이 대화한 기억에 의하면, 그는 표정이 풍부했고 잘 웃었다. 사교적인 면도 엿보였다. 마주 앉자마자 사담(私談)을 통해 자연스레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복지에서는 보수 중 내가 가장 진보적”

    복지에 대한 전향적 태도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는 “빈곤 문제나 복지에서는 보수 정치인 중 내가 가장 진보적”이라 했고 “복지의 사각지대를 다 찾아내 그분들이 사회안전망에 들어올 수 있도록 보수정당이 더 화끈하게 하자”고도 했다.

    그리고 자신만만했다. 모든 현안에 대해 정리된 의견이 있었다. 기자의 경험에서 대선주자급 정치인 중 참모진 배석 없이 1대 1로 인터뷰에 응한 건 ‘야인’ 시절의 오세훈 서울시장을 제외하곤 그가 유일하다. “이 내용은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로 해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책과 논문에 관한 얘기를 경유했다. 누가 “그간 만난 정치인 중 가장 지적인 사람이 누구냐” 물으면 유승민이라고 답하겠다.

    그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에 대해 문답을 나누다가 “그래도 이 지사가 대권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건 현실 아닌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다른 현안이 많아 기사에서 뺐던 내용인데, 지금 답변을 복기해 보면 유승민도 그의 지지자들처럼 정책 민감도가 매우 높은 유형의 정치인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정책 논쟁의 판만 깔리면 돋보일 자신이 있는데, 한국 정치의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인식도 느껴진다. 다소 길지만 유승민의 퍼스낼리티를 이해할 실마리가 있다고 생각해 가급적 축약 없이 소개한다.

    “그것이 정치 현실이니까. 5년마다 대통령을 뽑는데, 국민들이 뽑아놓고 늘 후회한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닿아 있다고 해야 할까. 선거 전에 정책이나 국정을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것에 대해 TV 토론 서너 번 하고 치우잖나. 내가 언론에 대해 늘 불만이, 언론은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말을 하면 크게 써준다.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면 크게 안 써준다.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에 부동산 정책이나 세금 정책에 대해 심각하게 검증해 본 적 있나. 매번 대선 전에 수박 겉핥기로 ‘쓱’ 하고 TV토론 몇 번 하고 지나가는데, 선진국형 선거는 누가 입당을 하는 식의 이슈보다 정책적인 현안이 훨씬 중요하다. 미국 선거에서 늘 중요한 게 무엇인가. 메디케어(medicare), 교육, 세금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이슈가 중요해지는 정치로 갔으면 좋겠다. 뽑아놓고 ‘저 사람이 이렇게 세금 때릴 줄 몰랐다’고 이야기하지 말고.”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으나 정치인의 메시지라기보다는 전문가의 진단서 같다. 선진국의 정치 기사와 한국의 정치 기사가 다른 건 옳은 분석이다. 최근 영국 ‘가디언’이 선거 기사를 쓰는 방식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 ‘가디언’에는 후보 간 말다툼이나 비방, 정치 공방, 협잡 등을 다루는 정치 보도가 없었다. 주로 유력 후보이던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내세운 세금 감면이나 공무원 임금 삭감 공약 등 보통 사람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 이슈를 조명했다. 한국 언론이 성찰해야 할 대목이 많다.

    그렇지만 영미권 선거 혹은 언론과 한국의 그것이 가진 차이를 논하는 건 학계의 일이다. 저잣거리에서 아등바등해야 할 대선주자가 할 일은 아니다. 정책이 물론 중요하나, 미디어에서 다룰 만한 정치적인 말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자칫 소신은 강하되 대중과 주파수를 맞추려는 의지가 없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이 기자에게 남은 유승민의 인상이다.

    “고집과 신념만으로는…”

    2월 17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오른쪽)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유승민 전 의원과 면담을 마치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월 17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오른쪽)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유승민 전 의원과 면담을 마치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제부터는 유승민과 종종 교류해 온 두 사람의 ‘유승민론’을 소개한다. 두 사람의 평에는 또렷한 온도차가 있다.

    먼저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이다. 보수정당의 당료(黨僚) 출신인 장 소장은 각종 시사 방송의 단골 패널로 지명도가 높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당대표실 부실장이었고 바른정당 창당에도 관여했다. 최근에는 방송을 통해 유승민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해왔다. 잠행하는 유승민과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나누기도 한다. 그런 그는 유승민을 두고 “활로가 없다”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그의 행보에 대한 실망감도 읽힌다. 장 소장과 나눈 문답이다.

    유 전 의원은 전당대회에 출마할까.

    “본인의 의지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출마할 여건이 안 될 것 같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한 자릿 수 지지율이 나오기 때문에 현행 룰(당원 투표 70%, 일반 여론조사 30%)에서는 (당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 떨어지더라도 하고 싶은 말 하고 존재감을 드러내겠다고 생각하면 출마할지 모르겠으나,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전당대회가 내년 4월 이후에 열릴 것으로 보여 후보군이나 전당대회 룰이 많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하에서 유승민이라는 사람이 존재감을 발휘할 방법은 뭔가.

    “양당 체제가 이렇게 고착화돼 있으면 유 전 의원의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강력한 양당 지지층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틈새를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정계 개편이 일어나지 않으면 유 전 의원에게는 활로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비토가 워낙 심해 보수우파를 지지 기반으로 정치적 활로를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윤 대통령이 레임덕 상황에 처하면 유 전 의원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변수다. 양당 기득권이 무너지면 활로가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힘들어 보인다.”

    유 전 의원의 측근과 참모 그룹이 주변에서 많이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떠났다. 그분이 원래 누구랑 상의를 잘 하지 않으니 (측근들의) 마음이 멀어진 거지. 마음에 안 들거나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정치인은 내가 하기 싫어도 내 사람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런데 하기 싫어서 안 하고 내 사람을 챙기지 않으면 누가 같이 정치를 하려고 하겠나. 그런 점들이 (주변에) 섭섭함을 주는 것 같다. 싫더라도 내 사람을 만들어야지.”

    유 전 의원의 지지율이 유지돼 다시 정치 일선으로 돌아오면 참모들이 결집하지 않을까.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아지고 국민의힘에 지도자급 인사가 없는 상황이면 중도에 소구력이 있는 유승민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해 모일 수는 있겠으나, 주위 사람 챙기지 않고 독불장군 형태의 모습을 취하면 (결집이) 쉽지는 않겠지.”

    유 전 의원은 요새 언론 인터뷰도 하지 않더라.

    “포용력 있는 정치인이 돼야 지도자로 우뚝 설 기회가 있다. 고집과 신념만으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언론 인터뷰도 하기 싫을 때는 안 하면 지도자라고 볼 수가 없다. 그런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뭘 할 수 있겠나.”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는 분”

    이번에는 유승민의 대선 경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여당 인사와 나눈 대화다. 그를 소개해 준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언론에 알려진 측근보다 유 전 의원과 더 가깝다”고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익명을 전제로 취재에 응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도 있다. 장 소장에게 던진 질문과 대동소이한 편이고 공통된 답변도 있으나, 뉘앙스는 또렷하게 다르다. 제3자의 시각에서 두 사람의 답변을 종합하면 유승민의 퍼스낼리티가 어렴풋이 그려진다. 그와의 문답이다.

    유 전 의원을 떠올리면 차갑다는 이미지가 있다.

    “너무 똑똑한 이미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깍쟁이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참모들의 의견을 잘 듣지 않는다는 평도 있다.

    “그런 부분도 있지. 그건 사실이다.”

    좋게 해석하면 소신이지만 나쁘게 해석하면 독불장군처럼 비칠 수가 있는데.

    “정말 올곧은 소신을 갖고 있다. 주변에서 정무적으로 이득이 되는 판단을 하시라 조언해 드려도 그런 것에 잘 따르지 않는 건 맞다. 정치인이어도 윤리적으로 아니라고 생각하면 따르지 않는다. 대선 경선 당시 젠더 갈등 이슈로 뜨거웠을 때 (남성에 대한) 역차별 이슈가 불거졌다. 유 전 의원은 ‘그래도 여성들이 피해 받은 건 맞잖아’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젠더 갈등에 편승하는 게 아니냐는 인식을 가졌다. 이대남(20대 남성)의 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참모들이) 조언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대남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들어야 한다고 (유 전 의원에게) 말했고, (페미니즘에 문제 제기를 해온) 이선옥 작가를 초빙해 두 분이 몇 시간을 면담했다. 그 뒤에야 문제를 깨닫고 생각을 바꿨다. 즉 본인이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메시지를 바꾼다.”

    좋은 태도이긴 한데, 순발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겠다.

    “이슈에 대해 숙성의 시간을 갖는 건데, 사실 참모들은 힘들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정치인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이슈를 이용해 이름 한 번 더 나가게 하려는 행태와는 어울리지 않는데, 나는 그래서 만날수록 소신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반윤(反尹) 행보를 보이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배신자 프레임을 못 벗는 시간이 그렇게 길었는데, 왜 또 저러시지’하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대통령한테 힘도 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해 보니 누가 대통령이건 국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생각하면 소리를 내겠다는 거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자신이라도 쓴소리를 해야겠다는 소신이라는 건가.

    “나는 그렇게 본다. 왜냐하면 이건 정치인으로서 너무 악수(惡手)거든. 정권 말기도 아니고, 우리 진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에게) 앙금이 남은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정말 소신인 거다. 그게 아니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음 대선 도전의 꿈이 아직 남아 있다고 봐야 할까.

    “나도 진짜로 모르겠다.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를 것 같다.”

    유 전 의원 주변 사람이 많이 떠난다는 평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보면 ‘왜 내 자리 안 챙겨주느냐’는 얘기 아닌가. 능력이 많지도 않은데 내 사람 심는 건 일종의 계파 만들기다. 물론 당사자들은 섭섭할 수도 있다. (유 전 의원의 선거를 위해) 열심히 뛰었는데 안 챙겨주면. 그런데 그분은 원래 그런 분인 거다.”

    ‘유승민의 귀환’은 향후 정국을 달굴 뜨거운 감자다. 여기서 남는 질문은 두 가지다. 둘은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다. ①유승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②윤석열 대통령 혹은 윤핵관은 유승민의 전당대회 출마에 어떻게 대응할까.

    전대 출마 가능성 낮다

    10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0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먼저 ①과 관련해 본인은 뚜렷한 입장은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일단 그는 11월 3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에서 진행된 강연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아직 (출마 여부에 대해) 전혀 마음을 안 정하고 있다”며 “전당대회 날짜가 언제일지도 굉장히 불확실하고 전당대회 날짜가 정해지면 그때 가서 제 결심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앞서 장성철 소장도 내다봤듯 출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다른 전문가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 전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론조사를 30%만 반영하는데, 당원이나 대의원 쪽 득표를 많이 끌어올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스스로 나서지 않겠다 할 수 있다”면서 “이번 당대표가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는 만큼 윤 대통령 측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신 교수는 “시간이 더 지나가면 윤 대통령의 당내 영향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유 전 의원이 지금 목소리를 높이는 건 그때를 대비하는 차원으로 보인다”며 “그렇기 때문에 유 전 의원의 (정치적 재기)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전당대회를 건너뛰어도 총선이 바로 이어지고 보궐선거가 실시될 여지도 있는 만큼 반드시 당대표 출마만 ‘유일한 카드’로 보지는 않을 거라는 논리다.

    다음으로 ②. 윤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유승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여당 내부에서는 유 전 의원이 경선 당시 윤 대통령을 겨냥해 ‘미신·주술 논란’을 언급한 시점부터 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겼다는 게 중론이다. 윤핵관의 정서는 비교적 또렷하게 알 수 있다. 장제원 의원은 11월 14일 국회에서 기자들이 ‘친윤’과 ‘비윤’의 갈등설에 관해 물었는데 그에 대해 “이해 못 하겠다”면서 “유승민 전 의원의 애정 없는 비난이 당내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유 전 의원에 대한 질문이 아닌데도 유승민이라는 이름을 부정적 뉘앙스로 언급한 것이다.

    실제로 친윤석열계에서는 유 전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을 낮게 보는 분위기다. 외려 다음 스텝을 겨냥한 전략적 행보라고 생각하는 인식도 읽힌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결국 전당대회에 못 나올 것이다. 나오면 온갖 독설을 퍼부으면서 선거를 치를 텐데, 그렇게 하고도 낙선하면 공정한 룰 속에서 패하는 셈이 된다. 유 전 의원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그럴 바에 (지금처럼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적당히 ‘잽’을 날리다가 총선을 앞두고 당내에서 ‘공천 실패론’이 퍼지거나 판세가 최악의 국면으로 갈 경우 험지에 출마해 극적으로 생환하는 방식이 낫겠지. 그렇게 해서 5선 의원이 되면 다시 유승민계가 규합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영향력은 미지수겠지만.”

    유승민의 전쟁

    2021년 4월 9일 인터뷰로 돌아가 보자. 이날 유승민은 “헌법에는 자유 말고도 공정·정의·평등·복지·인권·생명이 있는데 보수는 너무 자유에만 매달리고 나머지 가치는 등한시했다”며 “그러니 저 얼치기 사이비 좌파들이 공정·정의·평등·복지·인권·생명을 전부 자기네 것이라고 하면서 그동안 거짓말만 했다”고 말했다. 단 두 문장으로 이뤄진 이 말에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 녹아 있다. 당선 가능성도 없는 ‘바른정당 대선후보 유승민’을 찍었던 유권자들의 정체성을 오롯이 관통하는 관점이라 말할 수도 있다. 동시에, 한국 보수의 주류와는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세계관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유승민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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