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美, 핵전쟁 감수하며 韓 위해 핵 사용하진 않을 것

  •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 저자

    입력2022-12-0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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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전 비핵화 불가능한 현실 인정해야

    • ‘공포의 균형’일 때 진정한 억지력 확보

    • ‘우호적 핵확산’ 논리로 美 설득해야

    • 美가 핵무장 허용하면 제재 실현 안 돼

    4월 25일 북한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진행했다. 최신형전술미사일 종대와 주력탱크 종대, 전략미사일 종대 등 여러 종대가 이날 열병식에 참가해 광장을 행진했다. [노동신문]

    4월 25일 북한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진행했다. 최신형전술미사일 종대와 주력탱크 종대, 전략미사일 종대 등 여러 종대가 이날 열병식에 참가해 광장을 행진했다. [노동신문]

    최근 30년간 미국의 북핵 정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제네바 합의’, 조지 부시 대통령의 ‘6자 회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까지 모두 실패했다. 미국과 북한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합의했으나, 그것은 형식적 합의에 불과했다. 하노이 회담도 실패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에 제시할 마땅한 카드도 더는 없다.

    냉전 종식 후 한미동맹과 한국의 안보는 느슨해졌다. 독일 통일이나 소련 해체와 같은 평화가 한반도에도 곧 실현될 것으로 보였다. 현실은 달랐다. 1991년 한반도에서 전술핵이 철수되고 비핵화 공동선언이 이뤄졌지만,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전력을 다해 핵개발에 매진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화해 무드와 햇볕정책으로 상징되는 대북포용정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불가능해진 북한 비핵화

    북한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조치와 10·3 합의, 2012년 2·29 합의 등 비핵화에 대한 모든 약속과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북한은 2006년 10월부터 2017년 9월까지 6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개발을 완료했다. 그간 북한은 끈질긴 대외협상과 벼랑 끝 전술의 반복을 통해 흔들림 없이 핵개발을 진행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위장한 채, 핵무기 개발과 배치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 대해 협상과 합의 및 파기, 제재 거부와 재협상 그리고 합의 및 파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합의의 핵심 내용은 언제든 무시하는 정책을 취했다.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정한 대북 제재 결의는 계속 강화됐지만 한계를 노정했다.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의 본질적 한계로 모든 회원국의 완전한 제재 이행이 담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소극적인 대북 제재는 북한이 핵개발을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외려 방패 역할을 했다. 안보리 결의가 유엔헌장 제42조에 규정된 강제적 조치와 같은 내용을 담지 않는 한, 이런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다.



    이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사반세기 이상 계속돼 온 줄다리기를 되풀이하는 건 무의미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지지하는 한, 북한에 대한 제재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비확산 체제의 붕괴를 우려해 북한의 핵무장을 부인하고 있지만, 그러는 동안 북한의 핵무장은 견고해지고 있다.

    NPT 체제 밖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에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목표는 이스라엘이나 인도, 파키스탄처럼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 밖의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북한 핵개발의 롤 모델이 된 파키스탄을 포함해 ‘사실상 핵무기국 보유국’인 3개국의 핵개발 과정을 보자.

    이스라엘은 5대 핵 강대국 외에 최초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국가다.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 3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있어 선례가 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3개국과 달리 지금까지 핵무기 보유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정책(NCND)을 취한다. 북한을 제외한 3개국은 NPT 체제 밖에서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핵개발을 시도한 이라크와 시리아를 전격 공습해 핵 확산을 막았는데, 예방적 내지 선제적 자위권을 주장해 국제법상 논란이 됐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는 초기에 강대국의 핵무기 보유에 강력히 반대했다. 인도는 미국과 소련에 대해 핵무기 없는 제3세계 국가에 대한 핵공격 금지의 보장을 요청했는데, 미국과 소련이 응하지 않자 독자적 핵무장을 검토하게 된다. 인도는 1974년과 1998년 두 번의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인도의 핵실험은 5대 핵 강대국의 기득권과 NPT 질서에 대한 도전이 됐고, 인도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평화적 핵폭발’이라는 명분을 강조했다.

    파키스탄은 1971년 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의 패배와 1974년 인도의 핵실험 성공으로 핵개발에 나섰다. 패전국 파키스탄은 국토의 16%를 차지했던 동파키스탄을 방글라데시로 분리·독립시킴으로써 존망의 기로에 처했다. 생존을 위해 핵개발에 나선 파키스탄의 경우는 경제력이나 기술이 없는 국가도 핵무장에 성공할 수 있다는 실례가 됐다.

    파키스탄은 핵개발 과정에서 미국의 경제적 지원과 묵인 그리고 중국의 적극적인 기술 지원과 협조를 잘 활용했다.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을 둔 미국과 중국을 이용한 점은 파키스탄 외교의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다. 파키스탄의 핵개발은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증명했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은 중동 국가뿐 아니라 중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선택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19년 출간한 ‘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상태에서 한국에 남은 옵션을 심층적으로 다뤄 호평을 받았다. [궁리]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19년 출간한 ‘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상태에서 한국에 남은 옵션을 심층적으로 다뤄 호평을 받았다. [궁리]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의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소극적 방어태세는 효과적이지 않다. 킬 체인이나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또는 대량응징보복체계 등 이른바 ‘3축 체계’로는 북한의 핵·미사일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미사일을 발사 이전에 탐지해서 격퇴하거나, 발사된 미사일을 탐지해 요격할 수 있는 확률은 아주 미미하고 무의미하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핵무기에 대한 확실한 대응수단은 핵무기뿐이다. 서로의 핵무기로 ‘공포의 균형’을 이룰 때 진정한 억지력이 확보된다.

    한국이 북핵 위기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대응책은 복잡하지 않다. 한국은 이론적으로 독자적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또는 핵무기 공유를 통해 핵억지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런데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기 공유는 미국이 동의해야 가능하다. 독자적 핵무장도 마찬가지다. 한미원자력협정과 미국 국내법의 규제와 제한을 풀고, NPT나 국제원자력기구의 제약도 해결해야 한다.

    미국은 1958년부터 1991년까지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했다. 주한미군은 1967년 최대 949기의 전술핵을, 철수 당시 150기의 전술핵을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은 당시의 핵배낭이나 핵지뢰, 핵포탄을 모두 폐기했기 때문에 과거처럼 많은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기는 어렵다. 최근 한미 양국 정부도 전술핵 재배치의 가능성을 부인했다.

    핵무기 공유도 많이 거론되는 방안이다. 이는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핵무기 관리와 유지를 제공하는 방식을 말한다. NATO 회원국은 핵계획그룹(NPG)을 통해 미국과 관련 정책을 협의하지만, 핵무기 사용의 최종 권한은 미국이 갖는다. 현재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터키에 B61 전술핵이 배치돼 있다. 동북아 지역에는 다자간 동맹 체제가 없어 이 방식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한일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되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북핵 위기에 대한 현실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확장억지에 너무 오래 기댄 탓인지 핵 억지력 강화에 대한 적극적 의지가 잘 안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50개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한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2021년 4월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랜드연구소의 예측에 따르면, 2027년까지 북한의 핵탄두는 200개 이상이 된다고 한다. 이제 한반도 핵 질서의 현상유지는 더는 의미가 없다.

    독자적 핵무장과 확장억지의 분담

    남은 해법은 독자적 핵무장인데, 미국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에 ‘적대적’ 핵확산이지만, 한국의 핵무장은 ‘우호적’ 핵확산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강조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하면 국제사회의 반대는 극복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제재를 주장하더라도, 미국이 거부하면 제재는 실현될 수 없다.

    핵무장 반대론자들은 한국이 NPT의 탈퇴로 감내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NPT 같은 국제조약도 국제정치적 합의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루이 르네 베레(Louis René Beres)가 지적한 것처럼, 국제법은 ‘자살협정’이 아니므로 국가의 생존을 위해 조약도 탈퇴하거나 종료시킬 수 있다. NPT에는 탈퇴 규정이 있을 뿐 아니라, 조약의 이행 정지와 같은 해법도 있다. 정부가 그런 결단을 내리고 미국을 설득하면 NPT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한국의 핵무장이 가능해지면, 미국의 확장억지에 대한 부담도 대폭 경감된다. 미국이 동맹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지는 너무 넓은 범위에 걸쳐 있고 비용도 많이 발생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능력이 되는 동맹국은 미국의 확장억지력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안보 비용을 분담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북한 경제의 50배를 넘고, 인구는 2배를 넘는다. 일본의 경제 규모는 한국의 3배 가까이 되므로 상대적 비교가 가능하다. 이런 한국과 일본이 동북아에서 안보 비용을 분담하지 않는 것은 전략적인 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다.

    핵확산은 핵무기 사용의 잠재적 가능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은 적대국에 대한 동맹국의 핵억지력 강화라는 장점이 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해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맞서 강력한 핵억지력을 구축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이 실현되면, 설령 북한이 한일 양국을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공격하더라도 미국은 북한과 직접적 대결을 피할 수 있다. 미국의 처지에서 볼 때,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국에 ‘우호적 핵확산’을 허용하는 것이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또 효과적이다.

    한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무기라는 공동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미사일은 수차례 실험을 거쳐 미국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핵무기와 미사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2012년 핵보유국의 지위를 헌법에 명시한 데 이어, 올해 9월 공세적 핵무기 사용의 조건도 법제화했다.

    심각한 북핵 위기의 극복을 위해 한일 양국은 한미일 3국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한미일 공조는 한국과 일본의 협조 체제가 정착돼야 가능하다.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와는 별도로 안보 문제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동북아 지역에서 NATO와 같은 다자간 동맹 체제를 구축하기는 힘들겠지만,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라는 두 개의 동맹을 협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핵무장한 북한과 평화 공존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미국의 확장억지에 계속 기대도 상관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제는 현실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은 핵전쟁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을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창위
    ● 고려대 법대 졸업, 일본 게이오대 법학박사(국제법)
    ● 국제해양법학회 회장
    ● 現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 회장
    ● 現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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