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철저분석

‘은둔의 후계자’ 김정일이 협상테이블에 나선 이유?

  • 손정우 songmh@donga.com

‘은둔의 후계자’ 김정일이 협상테이블에 나선 이유?

3/3
여기에서 잠깐 김정일이라는 인물이 어떤 유형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수령의 지위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 의 개인 퍼스낼리티나 통치 스타일이 정상회담에 곧바로 영향을 끼 칠 수도 있다.

김정일의 공식적인 생일은 42년 2월16일이다. 올해 58세. 김대중 대 통령과는 20년 가량 차이 난다. 아버지 김일성, 생모 김정숙의 장남 이다. 소련 극동지역인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나 어릴 때 이름은 소 련식인 ‘유라’였다. 남동생 슈라(김만일)가 있었으나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유일한 친동생은 김경희로, 그녀의 남편이 김정일의 오른팔인 장성택이다. 장성택은 현재 중앙당 조직부 제1부부장을 맡고 있다 (조직부장은 총비서 김정일이 겸직). 김일성과 계모 김성애 사이에 태어난 김정일의 이복동생으로 김평일, 김영일, 김경진(여)이 있다. 이들은 일찌감치 ‘곁가지’로 분류돼 권력에서 멀어졌다.

김정일은 74년 2월13일 정치국 정치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공식적으로 아버지 김일성의 권력을 승계했다. 이때 그의 나이 32세였다. 따라 서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한 기간은 26년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의 통치 스타일은 수령주의에 의한 철저한 독재. 96년 12월 김일성 종합대에서 그는 당일꾼들을 앞에 놓고 “지금 나의 사업을 똑똑히 도와주는 일꾼이 없다. 나는 단신으로 일하고 있다. 당 중앙 위원회 책임일꾼들이 나의 사업을 도와주지 못할 바에야 있으나마나 하다”고 언급, 이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늦은 밤에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새벽 3∼4시경에 건 설현장이나 행사준비장에 갑자기 나타나거나 간부들에게 전화를 거 는 등 거의 잠자지 않고 일한다는 것을 과시한다. 김정일은 특별히 신임을 주는 측근들을 통한 정치를 선호하며, 능력과 당성이 비슷할 경우 당성을 우위에 두는 인사를 한다.

또 궁지에 빠진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거나, 상대방을 궁지에 몰 아넣은 다음, 다시 구출하는 방식으로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 다. 모택동과 김일성으로부터 배운 이른바 ‘이따이라이’(一打一 來) 방식이다. 87년 김일성의 당번병 출신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곧바로 모스크바에서 명의를 불러다 치료해주어 혁명 1세대인 오진우의 충성을 받아내기도 했다.

사람을 버릴 때는 냉혈한 같지만, 대외적으로는 ‘광폭(廣幅)정치’ 와 ‘인덕(仁德)정치’를 내세우며 ‘통 크고 자상한’ 스타일로 이 미지 메이킹을 하기도 한다. 취미는 영화감상과 사냥, 승마. 영화취 미는 거의 광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 하기도 했다.

자기 현시욕이 강하며,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자기 연출력을 과시 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놓고 늦은 밤 거의 포기할 때 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불쑥 찾아간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가면 한번쯤 이와 같은 감동적인 연 출을 할 가능성도 있다. 혹은 매우 통이 크거나 지극히 소박한 모습 을 보여 남측의 대통령 수행원들을 감동케 할 수도 있다. 실제 김정 일은 국가 명절인 자기 생일날(2월16일) 소박한 생일상을 받고, 일 찍 현지지도를 나가기도 해 주변으로부터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김정일의 두 가지 전략

그러면 김정일이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 은 무엇인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골자는 합의서 전문에 등장하고 있듯이, “민 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것 이다. 이는 크게 정치군사적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으로 나눌 수 있 을 것이다. 이중 김정일은 경제적 측면을 통해 실리를 챙기려고 할 것이다.

김정일이 정상회담을 수용한 가장 큰 배경은 김대중 정부를 ‘인정 ’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그동안 햇볕정책을 격렬히 비난하면서도 북한에 이익이 되는 남측의 제안에는 과거처럼 심한 어조로 비난하 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은 김대중 정부를 역대 남한정부 가운데 가장 호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김정 일로서는 자신을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국가로 남한과 미국· 일본·중국 중 결국 남한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은 가장 호의적인 김대중 정부로부터 최대한 많은 것 을 얻어내자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은 이를 위해 두 가 지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경제지원을 더 받아내기 위해 남측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정치·군사문제를 실무회담 의제에 많이 올리도록 하는 경우를 상정 해볼 수 있다. 여기에는 주한미군 철수, 미·북 평화협정 문제, 국 가보안법 완전철폐, 국가정보원 해체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면 서 실무회담을 통해 이러한 의제에서 조금씩 양보해가면서 경제적 실리를 많이 챙기는 방법이다.

김정일은 그런 문제를 조금씩 양보해가면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면 남측이 정상회담 자체를 무산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계산할 것 이다. 더구나 북측의 정상회담 합의문에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김정일로서는 “싫으면 관두라 ”는 식으로 책임을 남쪽으로 떠넘길 수 있는 여지가 마련돼 있다.

둘째는 거꾸로 실무단계에서부터 가능한 한 정치·군사적인 문제보 다는 경제협력에 관한 의제를 많이 올려놓도록 지시할 가능성도 있 다. 왜냐하면 남한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많이 받으려면 우선 경제협 력에 관한 의제를 대폭 늘려 실무논의 자체를 경제지원 쪽으로 몰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중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전자다.

그러나 김정일의 이른바 ‘광폭(廣幅)정치’ 스타일이 발휘되면, 사 태는 예상치 못한 데로 흐를 수도 있다. 남북간에 생각할 수 있는 의제는 안보와 평화체제, 교류와 협력, 통일문제 등으로 볼 수 있는 데,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김정일이 안보문제와 경제문제를 일 괄타결하자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북측이 남 측의 민족경제공동체안을 받아들이고, 남측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안을 김정일이 던져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괄타결안은 김일성 시대 북한의 남북회담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이럴 경우 누가 이익인가. 당연히 북한이다. 김대통령의 민족경제공 동체안의 밑그림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단정하긴 힘들지 만, 주한미군 철수는 곧바로 남측의 ‘무장해제’를 의미한다. 북한 이 남북회담마다 들고 나온 것이 ‘정치문제 우선 해결’이었다. 즉 외세(미국)를 배제하고 민족 대단결의 원칙에 따라 자주적으로, 평 화적으로 정치문제를 먼저 해결하자는 것은 북한의 변하지 않는 주 장이다.

남북간의 정치문제는 곧바로 군사문제와 직결된다. 군사력이 약한 경제강국과 경제력이 약한 군사강국간의 게임은 결국 ‘군사’ 쪽에 서 이니셔티브를 쥐게 마련이다.

김정일은 개혁·개방으로 나올까?

그리고 민족경제공동체안이 던져졌을 경우, 북한이 어떤 기준에 따 라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다. 이와 관련한 모델로는 나진 ·선봉지역을 들 수 있다. 나선지역은 북한 내륙지역과 철조망으로 차단돼 있다. 북한이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해놓 은 것이다.

나선지역은 한마디로 실패한 경제특구다. 도로·항만·철도·전기 등 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아 투자해서 이윤을 내기에는 너무 오 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외국 투자자들이 대부분 외면했다. 따라서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이 제안한 SOC(사회간접자본) 확충은 실질적인 남북경제교류 활성화를 위한 큰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 SOC 확충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어떤 식으로 받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남한을 비롯한 서방세계와의 경제교 류에서 북한이 보여준 원칙은 ‘자본은 환영, 사람은 반대’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 자본과 시설을 들여오는 것은 환영하지만, 인력 이 대거 들어와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반대하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기술수준이 매우 낮은데도 인력이 필요하면 자기네들 이 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김대통령의 표현대로 “중동특수 버금가는 북한특수가 이뤄지게“ 될 경우 북한으로서도 이를 ‘관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로서는 북한의 ‘관리 능력’이 따라주는 범 위 내에서 점진적인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할 것이 다.

남북정상회담으로 김정일은 또 다른 부수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남한 국민들에게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사 실을 보여주고, 이에 따라 남한 내 반(反) 김정일 세력을 약화시키 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는 탈북자 문제와 북한 내 인권 탄압 문제 등이 같이 덮여버리는 효과도 가져다 줄 수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궁극적인 의문은 “김 정일의 북한은 과연 개혁개방으로 나올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4월12일자 ‘동아일보’의 ‘말 말 말’ 난에는 남북정상회담을 보는 두 가지 재미있는 견해가 실렸다.

“남북정상회담은 권좌에 오른 뒤 적대 진영의 지도자는커녕 외국인 을 거의 만나지 않았던 김정일의 공식적인 국제사회 데뷔무대가 될 것이다.”(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 11일 기고에서 김대 중 대통령의 일관된 ‘햇볕정책’은 오랜 남북문제 연구와 경륜으로 부터 나온 것이라며).

“이솝우화에나 나오는 고전적인 내용을 북한에 적용시키려는 것은 우리를 모르는 것이다.”(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77그룹 정상회의에 참석한 북한대표단 직원. 11일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소감을 묻 자 햇볕정책으로 우리가 기본노선을 바꾼다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 며).

브루스 커밍스의 발언은 김대중 정부의 일관된 햇볕정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사회에 나오도록 했다는 뜻을 담고 있고, 북한대표단 직 원의 발언은 “햇볕정책이 지금까지의 북한의 노선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서 ‘기본노선’이란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 두 견해는 어쩌면 현 김정일의 북한과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두 관점을 압축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 관점 은 상반된다.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관점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 같다. 한쪽은 궁극적으로 북한은 바뀌지 않을 도리가 없다 는 희망적인 견해를, 다른 한쪽은 그래도 북한은 바뀌지 않는다는 경험에 의한 견해를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누구도 자신있는 견해를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이제 게임이 시작됐다”는 것만 빼고는.

신동아 2000년 5월호

3/3
손정우 songmh@donga.com
목록 닫기

‘은둔의 후계자’ 김정일이 협상테이블에 나선 이유?

댓글 창 닫기

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