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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특집|역사의 대전환, 남북화해시대

김대중 리더십과 김정일 리더십

  • 함성득 고려대 교수 ·대통령학

김대중 리더십과 김정일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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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필자의 ‘대통령학’ 강좌를 수강한 학생들은 바버의 기준으로 제15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김대중 후보의 개성을 분석해 인물평가와 함께 국정운영 스타일을 예측한 적이 있다. 수강생들은 김후보가 ‘적극-부정형’ 리더십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적극-부정형 지도자의 장점으로는 매우 야심적이며 모든 일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꼼꼼하게 집행을 통제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단점은 권력욕(power)이 너무 강해 모든 일을 투쟁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대통령 중 링컨과 윌슨 대통령이 성공적인 경우로 평가된다. 존 아담스, 후버, 존슨 대통령도 여기에 포함된다. 반면 실패한 인물로는 닉슨 대통령이 꼽힌다. 당시 수강생들은 김대중 후보의 경우 행동은 적극적이나 정치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것으로 분석했다. 장점으로는 치밀성이, 단점으로는 지나친 권력욕이 지적됐다.

이러한 평가를 반영하듯 지금까지 김대통령은 국정 운영 과정에서 전반적이고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사고와 치밀함까지 갖추고 혼자서 세밀한 부분까지 챙기려는 성향을 보여왔다.

결과적으로 너무나 많은 국정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직접 국민과 언론에 설명하려다 보니 남북관계를 제외한 다른 국정분야에서 정책 일관성이 다소 결여된 점이 있었다. 또한 참모와 일선 관료의 자율성과 창의성, 나아가 자발적 협조를 저해한 부분도 다소 있었다.

이렇게 대조적인 적극-긍정형의 김위원장과 적극-부정형의 김대통령이 남북공동선언 합의라는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유형의 리더십 근저에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철저히 추구하는 ‘실용주의’ 또는 ‘실사구시’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용적 리더십은 상황변화에 잘 대응하며 매우 유연하다. 실제로 6·15 남북공동선언은 대조적인 리더십을 가진 두 정상이 각자 추구하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타협한 결과물이다.



두 정상이 가장 첨예하게 논쟁을 벌인 문제는 통일방안이었다. 당초 김대통령이 준비한 핵심은 ‘평화공존’이었다. 그러나 공동선언에는 이 표현이 빠지고 김위원장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논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타협을 봤다. 또 통일문제와 관련해 ‘자주적 원칙’ 부분도 김대통령이 김위원장에게 양보했다.

김대통령의 계산된 양보

이러한 양보가 국내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김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데는 고차원적 계산이 있다. 첫째, 김대통령은 자신이 시도한 분단 55년만의 첫 정상회담 의미가 훼손당하는 걸 원치 않았다. 정상회담의 모양새가 좋으면 국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 커질 뿐 아니라 노벨평화상에 한 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신의 국내 정국 주도권 확보를 위해 정상회담의 가시적인 성과가 절실히 필요했다. 즉 그는 공동선언 제1항과 제2항의 양보를 통해 쉽게 ‘8·15 이산가족 상봉’과 ‘김위원장의 답방’이라는 반대 급부를 얻을 수 있었다.

셋째, 김대통령은 모양새 좋은 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및 김위원장의 답방이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제1항과 제2항의 양보에 대한 비난을 충분히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김대통령은 정계은퇴를 번복하여 정계복귀를 시도할 때도 강력한 대응 논리를 개발했을 만큼 논리적이기 때문에, 남북공동선언의 양보에 대한 비난에도 충분히 대응하는 논리를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김위원장은 이러한 김대통령의 정치적 목표와 능력, 그리고 제한점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의 모양새를 최대한 좋게 만들어 주었다. 대신 그는 공동선언 제1항과 제2항이라는 선물을 받아낼 수 있었다. 또한 북한 경제가 바닥을 친 상태에서 자신이 직접 나서서 남한과의 교류를 통해 확실한(?) 경제적 도움을 얻을 수 있고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 팽배하던 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단숨에 불식시킬 수 있었다. 아울러 그는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 북한 인민이 모두 자신을 존경하고 신뢰하며 지지한다는 것을 과시했고, 그의 정권 기반이 공고하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이렇게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의 대조적 리더십은 실용주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형식면이나 전술적으로는 상황에 따라 언제나 변화할 수 있지만, 내용면 또는 본질적으로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실용주의에 기초한 리더십의 지도자는 어떠한 용어를 같이 사용했더라도 각자가 그 용어를 달리 이해하고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그들은 자기 편리한 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이해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 개발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실용적 리더십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약속이 상황에 따라 또는 자신의 편의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점, 즉 신뢰성의 문제다. 이러한 경향은 김대통령의 경우 그의 긴 정치적 역정에서 항상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김위원장의 말로 대변되는 북한의 주요 정책사안에 대한 약속도 늘 신뢰성이 문제였다.

김정일 상대할 차세대 주자는?

이러한 신뢰성 문제를 남북관계에 적용해보자. 남북은 과거 당국자 회담에서도 이번 공동선언 못지 않은 내용을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선언에 그치고 이행되지 못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에 대한 김위원장의 시각이 진정 변화하고 있는지 여부는 향후 남북공동선언 5개항의 이행 과정을 지켜보아야 알 수 있다.

이 시점에 우리는 표면적으로 나타난, 김위원장의 말로 표출되는 북한의 변화와 현실인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북한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주의깊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김위원장은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쥐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통일방안 마련을 위한 남북 당국자간의 정치협상이 어느 정도 무르익고, 경협 분야에서도 남한측의 성의 있는 태도와 가시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등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서울 답방을 비롯해 구체적인 남북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 같다.

결국 실용주의에 기초한 두 유형의 리더십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각자가 추구하는 정치적 이익을 충분히 이해할 때 타협과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따라서 향후 남북협력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김대통령과 김위원장간의 지속적인 대화가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2002년 12월18일에 있을 우리의 대통령 선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김대통령 이후의 차세대 지도자들이 김위원장을 상대해 평화통일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다행히 김대통령은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김위원장을 효과적으로 상대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1인 보스정치에 얽매여 소신도 패기도 비전도 없는 우리 정치인들을 볼 때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항간에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 ‘통일 달성’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김위원장이 출마하면 압도적으로 당선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분명해진 것은 다음 대선에서 우리 국민은 30여 년간 ‘제왕학’을 공부한 김위원장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패기와 비전을 갖춘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동아 200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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