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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경쟁으로 본 미국대선과 한국선거

‘中道’를 선점해야 대권 잡는다

  • 모종린

‘中道’를 선점해야 대권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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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호황이고 평화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부시 진영으로서는 이러한 중도 노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관건은 과연 부시 후보가 자신의 중도 노선을 2년의 긴 선거기간 동안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가였다.

대통령 후보들이 대선에서 중도노선을 유지하기 힘든 첫째 이유는 예비선거라는 변수 때문이다. 부시의 경우 공화당의 지명을 받기 위해서 2000년 초 아이오와에서 시작된 예비선거에서 과반수 이상의 대의원을 확보해야 했으며, 다양한 성향의 공화당원들이 참여하는 예비선거에서 중도 노선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예비선거가 시작되기 전에는 한결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주장하는 백만장자 스티브 포브스가 부시의 경쟁자가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막상 선거가 시작되자 정치자금법 개혁을 테마로 삼은 존 맥케인 후보가 부시를 위협했다. 부시보다 더 중도적인 맥케인 후보의 등장으로 부시는 원래 의도보다 더 보수적인 노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뉴햄프셔에서 맥케인에게 일격을 당한 직후인 2000년 2월2일 부시가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위치한 보수 기독교의 본산인 밥 존스대학에서 강연한 이유도 그때까지 일정 거리를 두었던 보수 종교계에 지지를 호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부시는 슈퍼 화요일 이후 맥케인 후보의 도전이 약화된 후에나 자신이 원래 의도했던 중도노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편 고어는 예비선거에서 자신보다 더 진보적인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과 싸워야 했다. 민주당의 전통적 기반인 노조의 지지를 받은 브래들리는 고어의 중도 노선을 비난했으며, 고어도 이를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이때부터 고어 진영은 공화당의 세금감면안과 사회보장제도 개혁안에 대해서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계급주의적 비난을 시작한다.

그러나 부시와는 달리 고어는 예비선거를 끝내고 민주당 지명을 얻은 후에도 주로 전통적 민주당의 지지세력인 중하층 유권자를 목표로 하는 선거전략을 고수했다. 선거자금 면에서 부시 후보에 비해 열세였던 고어 후보는 민주당의 선거자금원인 노동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은 또 클린턴과 다르게 보이려 했던 고어의 의도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선거기간 중 고어는 스캔들로 얼룩진 클린턴을 선거운동에서 배제했을 뿐만 아니라 클린턴과 연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민주당의 최대 치적인 경제 호황을 홍보하는 데에 소극적이었고, 그러다 보니 클린턴 시대에서 소외됐던 빈곤층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대선 후보들은 예비 선거를 거치면서 선거운동에 물질적·인적 지원을 해주는 전통적 지지세력과 새롭게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부동층 사이에서 필연적인 갈등을 겪게 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부시 후보가 고어 후보보다 이런 당내 갈등을 원만하게 관리했다.

대통령 후보가 자신의 중도 노선을 유지하기 어려운 둘째 이유는 정보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나타난 현상이지만, 각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도는 선거 과정에 여러 번 바뀐다. 선거 전문가들에 따르면, 후보의 기본 메시지는 단기적 상황 변화에 영향을 받으면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그때그때 국면에 따라 기본 전략을 수정하고 싶은 충동을 극복해야만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 점에서도 공화당이 유리했는데, 이는 부시의 타고난 성격 때문이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후 부시 후보는 자신이 선거기간 중에 집중하고 싶은 이슈로서 사회보장제도, 교육, 의료보험, 단 세 가지 안건을 참모들에게 제시했다.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있고, 미국에서 가장 큰 주의 하나인 텍사스 주지사로서 경험이 있는 이슈를 중심으로 선거운동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소박하고 단순한 성격의 부시는 선거운동도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에서 추진한 것이 오히려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는 데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2000년 미국 대선이 ‘제3의 길’의 미래에 주는 함의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보수 진영이 ‘제3의 길’ 노선에 대응하는 전형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미국 정치학자들은 선거 전에 고어의 승리를 예측했다. 미국 대선을 예측하는 통계학 모델에 따르면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거시경제 상황이며, 2000년 미국 경제의 호황을 고려할 때 민주당이 적어도 8% 이상의 차이로 공화당에 승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의 부시 후보가 고어 후보를 선거인단 수에서 승리하고, 총투표 수에서도 33만7576표(총투표 수의 0.3%) 차이로 승리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전략 차원에서 보면 부시의 전략은 의외로 범상한 것이다. 상당한 지지를 받는 집권당의 이념과 경쟁하려면 그에 가깝게 자신의 이념을 조정하는 중도 노선이 유리하다는 교훈을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둘째 교훈은 2000년 대선에 패배했지만 진보주의의 승부수인 ‘제3의 길’이 실패한 선거노선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선 민주당은 선거에서 더 많은 유권자의 표를 얻었다. 그리고 고어는 선거기간 중 전통 진보주의 성향을 너무 강하게 보였다. 이런 이유에서 DLC 위원장인 알 프롭은 고어의 패배가 ‘제3의 길’ 노선의 패배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또 민주당 보수파들은 이번 선거에 출마한 자파 의원들이 대부분 재선에 성공하여 민주당 의석수가 상·하원 모두 늘어난 것을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논쟁 속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3의 길과 보수진영의 대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제3의 길’

미국에서는 이렇게 정책 대결, 이념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은 한국은 고질적인 지역주의 때문에 진정한 정책 대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 뿌리깊은 지역주의가 단기간에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2000년 4월 총선에서 지역주의가 더 강화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에서도 이념 경쟁은 이미 시작됐고, 2002년 대선에서는 이념 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한국에서도 중도 노선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정당이 승리한다는 가설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속도를 더해가는 이념 대립의 발단은 김대중 정부의 등장에서 비롯됐다. 남북관계를 둘러싼 이념 갈등은 사실상 광복 이후 잠재적으로 계속돼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정당간의 이념 경쟁으로 보기에는 대중적 기반이 부족했고, 그 범위도 남북관계에 치중해왔기 때문에 국가 운영의 철학에 대한 논쟁이라고 보기 어렵다.

김대중 정부의 이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필자는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전폭 수용하면서도 전통 진보의 가치인 형평·정의·복지를 추구하는 ‘제3의 길’ 노선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자신을 중산층과 서민을 토대로 한 국민정당이라고 선언한 데서도 보이듯 민주당의 기본 노선은 진보주의다. 그러나 민주당이 추구하는 진보는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나 뉴딜 진보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의 병행 발전을 통해 신자유주의와 진보주의를 통합한 일종의 ‘제3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선 전환은 집권 후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0년 초까지도 자신의 저서 ‘대중경제론’에서 피력했듯이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이 강했으나, 92년 대선 패배 후 이미지의 보수화를 시도해 시장개방, 주식시장 활성화 등의 시장경제 논리를 적극 수용해왔다.

1997년 당시 김대중 후보의 대선 전략개발에 참여했던 이영작 박사는 중도노선의 선택이 김대중 후보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이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도 노선이 강력한 지배 이념에 대한 성공적인 대응 전략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그리고 그 전신인 국민회의가 자신들의 진보주의를 일부 포기하고 이념 스펙트럼의 중앙으로 이동했다면, 그 반대편에 위치한 보수주의는 어떠한 성격인가. 미국 민주당이 ‘제3의 길’을 선택했을 때 상대방의 이념은 레이건의 신자유주의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그가 중도 노선을 선택했을 때 경쟁 상대로 인식한 이념은 기존의 보수주의였을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세력은 있지만 보수이념은 없다고 흔히 말하지만, 필자는 한국적 맥락에서 보수주의는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 단위의 가치체계로 발전할 만큼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이념적 프로그램을 추구했던 박정희 정권의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통치이념은 1962년 이후 근 20년 동안 한국의 지배이념이었고, 이에 대한 도전을 통해 한국 정치사회의 이념화가 이루어졌다.

이런 현상은 1979년 박정희 정권의 퇴장 후 가시화됐고, 한국의 정치 엘리트도 진보와 보수,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으로 나누어졌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의 이념 갈등은 서구적 성격의 전통적인 이념 갈등이 아니며 한국적 요인, 그러니까 박정희 시대를 보는 시각차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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