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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비화

“문명자 기자, 이 친서를 김정일에게 전하시오!”

모리·김정일 北日정상회담 불발내막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문명자 기자, 이 친서를 김정일에게 전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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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서를 받은 북한측은 국제 외교 관례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너무나 파격적인 행동과 내용이어서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총리가 공식 외교경로를 통하지 않고 총리 명함에 친필을 써서 보낸다는 것은 국제 외교 관례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0년 9월 중순 은밀하게 조총련을 통해 일본 외무성에 모리 총리가 진짜로 명함에 친필로 편지를 써서 북한으로 보냈는지 사실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일본 외무성과 정보기관들은 깜짝 놀랐다. 확인과정에서 눈치를 챈 일본언론은 “모리 총리가 외국 여기자의 말만 듣고 외무성과 의논도 하지 않고 김정일에게 친서를 보낸 것은 국가의 망신이며 일본 국민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처사”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일본 국민과 언론을 더욱 자극한 것은 그 중간다리 노릇을 한 사람이 일본 기자도 아니고 친북한 로비스트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계 여기자라는 점이었다.

사태가 악화돼 ‘모리 총리 사퇴’라는 정치 문제로 비화하자, 일본애국당·일본을 지키는 청년동맹 같은 우익단체 회원들이 매일같이 버스 10여대에 나눠타고 문명자씨가 머무는 호텔 앞에서 “문명자 물러가라!” “북한의 스파이 문명자를 일본에서 축출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일본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프린스호텔 주변을 경계하는 등 문명자씨가 떠날 때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이 때부터 모리 총리는 자질 문제에 시달렸다. 일본 야당은 내각 사퇴, 국회 해산, 총선거라는 공세를 퍼부었고 자민당은 궁지에 몰렸다.

요미우리의 폭로

“문명자 기자, 이 친서를 김정일에게 전하시오!”




이런 와중에 또다른 불씨가 불거졌다. 1200만부라는 최대 발행 부수를 가지고 있는 ‘요미우리 신문’과 영어판 ‘Daily Yomiuri’신문이 올해 3월3일자 1면 톱기사로 ‘수상 친서를 팩스로 보내다’는 제목 아래 모리 총리와 문명자씨가 관련된 친서 파동의 새로운 사실을 폭로하는 기사를 크게 보도한 것이다. ‘Daily Yomiuri’의 관련 기사는 다음과 같다.

정부 소식통은 요시히로 모리 총리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내는 친필 팩스를 2000년 여름 북경에 있는 북한 로동당 상급 관리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총리 친필 사인이 들어간 이 팩스는 북한 로동당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북경사무소 황철(黃哲) 상무에게 보내졌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는 일본의 오랜 외교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반적으로 이런 정도의 문서를 외국 지도자에게 보낼 때는 특사를 통해 직접 전달한다. 정부 관련자들은 친서를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그렇게 쉽게 팩스를 보낸 모리의 행동은 얼토당토않은 처사라고 말했으며 시즈오카현(縣)대학의 한국정치담당 하지메 이즈미 교수는 “만약 최근의 폭로가 사실로 판명된다면, 이는 총리가 커다란 실수를 범한 것이다.… 총리가 (김정일에게) 내각의 뜻을 전하려 했다면, 그는 공개된 편지를 보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즈미 교수는 다만 “일본 국민과 타국에까지 알려진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모리 총리는 북한으로부터는 커다란 신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리는 지난 해 여름 황씨와 연결되어 있는 재미 한국 언론인 문명자씨를 도쿄에서 만났다. 문씨는 계속해서 모리에게 김정일에게 편지를 보내라고 청했다. 이 사건과 밀접히 관련된 소식통에 따르면 모리 총리는 문명자가 보는 앞에서 황씨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팩스를 보냈다. 이 소식통은 또 모리 총리는 자민당이나 외무성 관리에게는 이 사실을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편지에서 모리 총리는 북일 관계 개선을 강력히 희망했다는 것이다. 이 편지에서 모리는 가능한 한 빨리 김정일이 자신과 회담을 갖기를 바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소식통은 지난 해 9월, 평양은 모리 총리가 자필로 쓴 팩스가 사실인지 여부를 도쿄에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 정부는 일본 정부에 “그 편지는 적절한 시기에 김정일 총서기에게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제보원들에 따르면 이 팩스는 김정일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제보원들은, 아마 편지 내용 정도는 김정일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팩스를 받은 황철은 북한 로동당 비서 김용순의 측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철은 지난해 8월 키사라주현(縣)·시바현(縣)·도쿄 등에서 열린 외교관계 정상화 회담에 참석했다. 황의 지위는 일본 외무성의 과장급에 해당된다고 한 정부 관리는 말했다. 지난해 모리 총리는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회담을 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이 통화 직전에 남한과 북한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지난 해 9월 유엔에서 열린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참석차 출국하기 전에 모리는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만나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모리 총리가 김영남과 회담하려는 계획은 무산되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미국측의 까다로운 몸수색을 이유로 갑자기 뉴욕행을 철회해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에 유력 야당 민슈토(일본 민주당)의 준 이즈미 의원은 팩스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정부에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정부는 “총리는 8월에 김정일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모리 총리가 남한의 저널리스트 문명자를 알고 있었고, 그를 2000년에 만났다고 말했다. 모리 내각의 에이치 미야무라 장관은 요미우리 신문 회견에서 “모리 자신이 이미 말했듯이 총리는 결코 친서를 김정일에게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즈미 교수는 만약 그 편지를 황철이 받았다면, 김용순이 이 편지를 김정일에게 전해야 하는지를 가운데서 조절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모리의 메시지가 김정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즈미 교수는 “총리는 적절한 채널을 통해 편지를 처리할 수 있는 직위에 있는 북한 관리에게 친서를 지닌 특사를 곧바로 보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정도 일을 꾸민 문명자씨는 누구인가. 그는 1930년 경북 금릉에서 출생해 1950년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1955년 일본 명치대 상학과를 졸업했다. 당시만 해도 한일간에 국교가 없어 오갈 수가 없었으나, 그에게는 일본에 이원국이라는 형부가 있던 터라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갈 수 있었다.

이원국씨는 일제시대에 일본의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씨는 변호 업무보다는 운동에 취미가 있어 일본에서 가라데를 배워, 관련 활동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문씨는 이원국씨에게서 돈을 받아 공부를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61년 4월 미국으로 건너가 그때부터 그 해 11월까지 여원사(社) 워싱턴 지국장을 지냈고, 1961년 12월부터 1973년 11월까지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과 문화방송 주미 특파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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