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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색깔론은 新나치스를 닮았다

격돌논쟁

  • 황태연 <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한나라당 색깔론은 新나치스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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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켄을 중심으로 한 프라이부르크 학파의 질서자유주의는 ‘경기변동’ 또는 경제 흐름에 대한 국가의 간섭정책을 위험하게 보고 대신 경쟁질서를 형성, 유지하는 질서정책을 주장하는 점에서 케인스주의와 구별된다. 질서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규제와 개입의 법치성(法治性)과 ‘시장합치성’을 강조한다. 이런 이유에서 이들은 ‘시장합치적이지 않은’ 간섭을 원칙적으로 잘못된 개입으로 간주한다.

질서자유주의는 또 신자유주의와도 대립한다. 신자유주의는 궁극적으로 경쟁을 초월하는 소수의 거대기업으로 구성되는, 결국 ‘시장 없는’ 독점경제를 용인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독점경제를 대변하는 셈이다. 그러나 오이켄은, 국가는 자신의 임무를 시장의 ‘일반적 조건’의 창출에 국한해서는 안되고 시장불균형을 방지하는 단호한 질서 정책을 기본적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오이켄의 질서자유주의는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시장질서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독점체의 권력남용과 집단이기주의로부터 시장질서를 보호하는 것’도 중시한다.

그러나 오이켄 이론의 문제점은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이해와 처방에서 권위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국가의 과잉개입이 벌어지는 원인을 경제적 집단이기주의의 강제로 보고, 다시 집단이기주의의 영향력이 늘어난 원인을 민주화로 규정한다. 오이켄의 질서자유주의는 전투적 집단이기주의의 직접적인 원인을 ‘민주화’로 보기 때문에 시장논리를 침해할 수 있는 ‘강한 국가’를 주장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만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 정부의 시장경제 철학은 오이켄의 권위주의적 요소를 극복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의 질서자유주의와 친화적이다. 그는 오이켄처럼 집단이기주의의 발호와 민주화를 인과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본인권과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집단이기주의를 이기려는 태도를 취한다. 따라서 그의 시장철학은 ‘민주적 질서자유주의’로 불릴 수 있다.



에르하르트의 경제개혁 기본원칙은 외부로부터 시장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이익집단간의 권력투쟁을 시장 내부의 생산적 경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경쟁원칙과 경제적 기본권을 유린하는 집단이기주의에 대해 원칙적으로 경제적 기본권을 단호히 승인하는 ‘민주적 국민여론’에 의거하여 정부의 엄정한 민주원칙과 민주주의를 강화해 대처해야 함을 뜻한다.

하지만 국민여론을 중시한다는 말은 지역감정이나 저간의 사회주의 망령 같은 유언비어, 흑색선전과 불공정보도에서 유래하는 속론(俗論)들까지 다 존중한다는 뜻이 아니다. 합리적 논거에 바탕을 둔 공개토론과 쟁론이 보장된 공론장(公論場)에서 형성되는 ‘여론(public opinions)’은 어디까지나 음지의 뇌동심리(雷同心理)로 형성되는 ‘속론(popular opinions)’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전후 독일의 경제장관과 수상을 지낸 에르하르트에 따르면 경쟁을 저해할 위험을 질서정책으로 제거해 자유경쟁의 유지를 보장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적 사회질서에 기초한 국가의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다. 여기서 공언되는 원칙은 개인적 자유를 억압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권력을 어떤 개인과 집단에게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만인을 위한 복지’와 ‘경쟁을 통한 복지’는 목적과 수단의 관계로서 불가분적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디딤돌로 삼아 시장경제를 확립하려는 국민의 정부의 경제개혁은 우리 헌법에 녹아든 이와같은 에르하르트의 민주적 질서자유주의 정신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간 정부가 주도해온 공공개혁, 재벌개혁, 금융개혁, 노동개혁등 4대 경제개혁을 통한 시장경제의 창출, 유지정책과 단계적 시장개방 및 이를 위한 투자환경의 개선작업, 벤처·중소기업육성정책 등은 헌법에 합치하고 또 헌법에 반영된 질서자유주의적 요소들로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다.

결국 현정부의 시장철학은 한편으로 사회주의, 케인스주의, 관치경제에 대해,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분명한 대립성을 보이는 중용 노선이다. 질서자유주의는 모든 국가규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시장질서 보호를 위한 규제’를 새로 도입하고 ‘시장질서를 저해하는 규제’를 철폐하는 방향을 취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나라당이 국민의 정부의 경제정책을 사회주의적·포퓰리즘적 정책으로 매도하는 것은 우리 헌법과 질서자유주의의 시장경제원리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거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의 그릇된 국가개입에 능란했던 한나라당의 ‘사회주의’ 비난은 더 더욱 몰염치한 짓이다.

정부의 생산적 복지정책은 빈곤과 궁핍화에 직면한 중산층과 서민에게 단순히 금전적으로 베푸는 과거 사회주의 정당의 시혜적인 복지정책에 반대하고, 직업·전직(轉職)훈련과 교육기회의 제공 및 고용창출 정책을 강화하여 스스로 노력해 일자리를 획득하고 소득 증대를 바탕으로 인간다운 생활과 직업적 성공을 달성하도록 지원하는 인간개발 중심의 복지정책을 말한다.

21세기에 새롭게 대두된 복지정책은 전통적 사회주의의 소극적·시혜적·사후적·금전적 비버리지 복지이념과 신보수주의의 최소주의 복지이념에서 벗어나 ‘적극적 복지사회’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복지정책의 기본방향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넘어 세계화와 지식기반 사회의 각종 리스크에 맞설 수 있도록 ‘모든 국민’에게 ‘일로 통하는 복지(welfare to work)’를 적극 제공하는 것이다.

단순히 시장경제에서 패배한 자활능력 없는 자들과 실업자들을 돌보는 ‘수용시설’이 아니라 시장경제에서 도전정신을 발휘, 성공하도록 뒷받침해 주는 ‘성공의 디딤돌’로서의 적극적 복지인 것이다. 이 적극적 복지정책의 수단은 인력개발, 사회개발, 사회 전분야(경제와 시민사회)에서의 고용창출을 위해 국가가 모든 인적 자원의 완전한 생산적 활용의 관점에서 복지예산을 투입하는 일종의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다.

이에 기초하여 국민의 정부가 내세우는 생산적 복지는 세 종류의 복지를 포괄한다. 우선 좁은 의미의 생산적 복지인 인간개발 및 사회투자 중심의 복지정책을 중심으로 하면서 동시에 시혜적인 기초생활보장도 생산적 복지의 ‘전제’로 간주한다. 여기에 더하여 국민의 정부는 ‘시혜성’과 ‘생산성’이 중복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보건·문화복지정책도 지식·정보·문화가 주요 생산자원이 된 지식기반사회에서 생산적 복지의 일부로 설정했다.

이러한 생산적 복지 철학에 따라 국민의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입법통과시켜 시행하고 있으며 국민연금·의료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등 4대 보험제도의 내실화 및 확대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했으며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와 취약계층 자활지원을 확충함으로써 국민기본생활보장제도를 더욱 발전시켰다. 아울러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인력개발과 고용창출, 취업알선, 생산활동 참여기회의 확대를 통한 생산적 소득창출 및 향상에 주력하고 있으며 고소득층·중산층·서민 의 계층차이를 뛰어넘는 보편적 국민복지 성격의 보건·문화복지 기반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따라서 국가구성원에게 복지기본선을 보장하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생산적 복지정책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10조)는 우리 헌법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당한 것이다.

장님이 된 한나라당

이와같은 생산적 복지정책을 ‘낡은 사회주의’ 정책으로 매도하는 한나라당은 분명 장님이거나 색맹 사회주의자들이다. 하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애초부터 ‘가진 자의 복지’에 길들어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을 보지 못할 정도로 장님이 된 한나라당으로서는 취약계층에 대한 기초생활보장과 중산층·서민의 일하는 복지를 위한 인간개발정책 등 현정부의 생산적 복지정책을 사회주의 정책으로 볼 만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벌어진 한나라당의 색깔공세는 인식의 빈곤과 정책의 혼란에서 비롯된 듯하다. 국민여론에 귀기울이면서 인내와 관용을 통해 시민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정도(正道)의 정치에 대해 대중영합 정치라는 라벨을 붙이는가 하면,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 없는 법치에 대해서도 권위주의적 밀어붙이기와 비판세력 길들이기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중산층과 서민의 질 높은 삶을 구현하고자 하는 민생챙기기에 대해서도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인기몰이식 퍼주기’라고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요구가 최대한 국정에 반영되는 것을 욕하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탄압이라고 비난하며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정책에 대해 사회주의라고 매도한다면 도대체 한나라당의 국정철학과 국정운영 원칙은 무엇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과 국정방향에 무지한 나머지 정치적 삼원색도 구별하지 못하는 한나라당의 색맹증상은 다른 세력을 다 ‘빨갱이’로 모는 일본 극우파나 독일 신(新)나치스의 색깔론을 꼭 빼닮았다. 한나라당의 좌충우돌식 혹세무민은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마저 정면으로 모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정책은 헌법의 경제·복지이념에 비해 미흡하면 미흡했지 이것으로부터 한치도 벗어난 것이 없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합헌적 정부정책들을 ‘사회주의’ 정책으로 몬다면 한나라당도 사회주의 정당일 것이다.

더욱 실소케 하는 것은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로 몰아붙이는 현정부의 경제정책을 한나라당이 반대로 ‘사회주의’로 매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반된 비방은 제각기 자기 노선의 극단성을 폭로하는 것인 동시에 정부가 합헌적인 ‘중도개혁주의’ 노선에 확고히 서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루빨리 한나라당이 균형 잡힌 인식을 되찾기 바란다.

신동아 200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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