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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이회창家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예산의 이회창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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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첫날인 8월6일 예산의 날씨는 잠시만 걸어도 땀이 흐를 정도로 후텁지근했다. 장마 중간에 찾아드는 무더위였다. 이총재는 부친 생가 복원이 논란에 휩싸이자 “예산문화원측이 문화재 지정을 제안했다”(중앙일보 7월28일자)고 말한 바 있다.

예산문화원은 예산군청에서 걸어 5분 거리였다. 예상과 달리 문화원측은 이총재 종가의 문화재 지정 시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할 뿐더러 별 관심이 없었다. 이지호 문화원장은 “(이총재) 집안에서 문화재 지정을 신청했다고 들었다”며 이총재와 다르게 얘기했다.

“그 집을 복원하면 문화재로 지정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군에 전달한 모양이다. 명가의 종가이니 지방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집의 원형이 거의 사라져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겠느냐는 반론이 있어 더 이상 얘기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는 군에서 지정하는 것이 아니다. 군에서는 자료만 제공할 뿐 결정은 도에서 한다.”

이문화원장은 “예산에서 이총재 집안은 명가”라고 말했다.

“한국 최초의 이학박사인 이태규 박사를 배출했고 그 동생인 이홍규씨가 대검 검사를 지냈고 홍규씨 아들인 회창씨가 총리까지 지냈으니 명가라 할 만하지 않은가.”



이총재는 전주 이씨 주부공파(主簿公派)에 속한다. 주부공파의 파조는 시조 사공공(司空公) 한(翰)의 18세손인 이영습(李英襲)이다. 주부공파라는 이름은 영습이 고려말 위위주부동정(尉主簿同正)이라는 벼슬을 한 데서 비롯됐다. 이총재는 시조로부터 41세, 파조로부터는 23대손이다.

주부공의 증손자인 세분(世芬)은 조선왕조 개국공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냈다. 주부공의 6대손이자 이총재의 17대조인 우계당(牛溪堂) 소생(紹生)은 단종 때 사헌부 집의(執義)를 지냈는데,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예산군 대흥면 우정촌(현 교촌리)에 은거했다. 이것이 이총재 가문이 예산에 자리잡게 된 배경이다. 주부공파 종친회장을 지낸 이회준씨에 따르면 이소생이 예산으로 내려온 것은 성종 때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처남 서거정(徐居正)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전주 이씨에는 120여 개 파가 있는데,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 등록된 파만 86개에 이른다. 대동종약원에 따르면 주부공파는 전주 이씨의 주류는 아니다. 큰 파엔 종재(宗財 : 종중의 재산)가 있기 마련인데 주부공파에는 없다는 것이다.

1987년 발행된 예산군지에는 이총재(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중부인 이태규 박사, 부친 이홍규 변호사, 형 이회정 박사(삼성의료원 과장), 동생 이회성 박사(KDI수석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역임), 숙부 이완규씨(삽교고교 교장 정년퇴임), 이태규 박사의 아들 회인씨(당시 미 버클리대 연구원) 등 이총재 일가의 인사들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그러나 지난해 개정된 예산군지에서는 그 비중이 크게 줄었다. 특히 1987년판과 달리 이총재를 비롯한 이홍규씨 자식들에 대한 설명이 완전히 사라졌다. 오기(誤記)도 있다. 이태규씨의 장남은 이회인인데 이회정이라고 표기돼 있다. 이태규씨에 대해서는 ‘한국사람으로서는 최초의 이학박사가 된 세계적인 석학’ ‘예산이 자랑하는 큰 인물 중의 한 사람’ 등의 표현을 쓰며 4줄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반면 이홍규씨 소개는 간단하다.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을 파헤쳐 척결검사라는 별명을 얻은 이홍규 공증인 겸 변호사는 이박사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

이태규·홍규 형제는 둘 다 예산초등학교를 나왔다. 각각 1회, 6회 졸업생이다. 이홍규씨는 몇 해 전 모교에 학교발전기금으로 100만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이지호 문화원장은 이홍규씨에 대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검사 시절 청렴하고 강직하고 고지식하다는 평을 들었다. 청탁을 일절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이홍규한테 가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그 탓에 집안사람들한테도 인심을 잃었다고 한다. 광주지검장을 지낼 때 조카가 어떤 사건에 연루돼 체포됐는데 전화 한 통 해달라는 부탁도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 꼬장꼬장하고 융통성 없는 성격을 아들(이회창 총재)이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문화원장에 따르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예산에서 이총재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아버지 홍규씨와 달리 예산에 산 적도 없고 학연도 없기 때문이다. 그 탓에 이총재가 예산을 고향으로 내세우자 처음엔 주민들이 ‘언제부터 고향이었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예산 사람 누구나 이총재의 선영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총재를 고향사람으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한다.

문화원에서 나와 예산신문(주간)을 찾아갔다. 최근 이 신문을 인수한 정낙규 사장은 “자민련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으며 이총재를 지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사장에 따르면 예산은 전통적으로 보수성이 강한 곳이어서 민주당 지지세력은 미미하다. 지난해 총선 당시 각 당 후보의 득표율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당선자인 자민련 오장섭 의원(3선·건설교통부장관)은 55.5%의 득표율을 보였으며 한나라당 최승우 후보는 31.3%를 얻었다. 반면 민주당 윤병승 후보는 10.4%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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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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