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호

유종근 “경제대통령 자신있다”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입력2004-11-01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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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유종근 전북지사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지사는 그 자리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민주당의 6번째 대선주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유지사는 이날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외면한 채 권력다툼만 일삼는 한국정치의 병폐를 바로잡고,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강한 한국을 건설하는 데 신명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유지사는 또 “김대통령의 이념과 철학을 계승하고, 그 과오를 실천적으로 극복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유지사는 미국 뉴저지주립럿거스대 교수로 있던 1983년, 당시 망명중이던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1993년 영국에서 귀국한 김대통령이 아태재단을 창립하자 유지사는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2년 뒤 유지사는 김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북지사 경선에 출마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유지사는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굳히고 김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김대통령은 “잘해보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유지사의 출마 명분은 경제다. 그는 12월12일 민주당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각을 단행하고, 경제팀을 모두 갈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지사는 “경제부처 장관들에게 ‘재벌개혁을 강력히 하라’고 했더니, ‘나도 물러나면 재벌 계열사 사장이라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말하더라”며 경제관료의 ‘직무유기’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유지사는 “국민은 경제를 잘 알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며 자신이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것도 경제회복에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저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유종근이가 가장 적임자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현재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 중에서 경제전문가는 제가 유일합니다. 저는 우리 경제가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졌을 때 최일선에서 뛰어다니면서 검증받은 사람입니다.”

    유지사는 1997년 12월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IMF사태 극복을 위해 노력한 일을 강조했다. 만일 그때 자신과 같은 경제전문가가 없었다면 한국경제는 모라토리엄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지사는 “한국경제는 구조적으로 대미관계를 잘 풀어야만 살아날 수 있게 돼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 경제인들과 폭넓게 교류하고 있는 나야말로 경제대통령이 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의 성공을 주목하라

    유지사는 차기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 경제회복을 꼽았다. 경제가 풀리지 않으면 교육, 사회복지, 문화 등 모든 부문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지사가 경선구호로 구상중인 ‘흑묘백묘(黑猫白猫)론’도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다. 유지사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를 한국경제에 맞게 패러디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유지사는 “민주당의 정권재창출 여부도 사실상 경제에 달려 있다”며,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와 구(舊)소련의 사례를 제시했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재선을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아칸소주 주지사를 지낸 빌 클린턴이 나타나 ‘문제는 경제다’라고 외치면서 선거판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또한 군사적으로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소련이 왜 망했습니까? 경제적으로 미국을 따라갈 수 없으니까 결국 두 손을 들고 사회주의의 깃발을 내린 거잖아요.”

    유지사는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조화’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신자유주의는 민영화, 금융시장 개방, 기업의 해외매각,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촉진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유지사는 “신자유주의는 세계사적 조류인데 한국 국민은 이것에 지나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자본은 많이 들어올수록 한국경제에 보탬이 되는 것이며, 헐값에 기업이 팔리더라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영국은 빅뱅을 통해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지금 영국 금융계를 지배하는 것은 외국계 은행입니다. 더구나 한국은 민족주의적 특성 때문에 100% 시장을 잠식당할 수도 없고요. 따라서 경제정책도 이젠 세계사적 흐름에 맞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지사는 최근 한국경제가 침체한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미진한 구조조정과 여야간 정쟁이 그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처음 계획한 대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더라면 우리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좋아졌을 거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자신이 집권한다면 재벌개혁을 포함한 광범위한 구조조정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주장도 유지사의 지론이다. 유지사는 경선출마를 선언하기에 앞서 출간한 ‘신(新)국가론’에서 다음과 같이 정치권을 질타하고 있다.

    “금융기관들로부터 빌린 단기 외채의 만기를 연장하는 협상이 성공해 경제가 어려운 고비를 넘기기가 무섭게 정치권은 언제 그런 위기가 있었느냐는 듯이 또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여야의 정쟁은 하루도 그칠 날이 없어 급기야 IMF체제 이전보다 심해졌다. 그 결과 우리는 또다시 제2의 IMF사태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어려운 경제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유지사는 자신의 장점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검증된 경제전문가이고, 민주적 리더십을 갖추었으며, 도지사를 두 차례나 지냈다는 것. 유지사는 이 가운데 전북지사 연임을 강조했다. 유지사는 “미국의 경우 지미 카터,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모두 주지사 출신이다. 이것은 행정경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편 단점으로는 급한 성격과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그의 낮은 인지도를 거론하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해 유지사는 “클린턴이 처음 나왔을 때 이길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클린턴은 1% 미만의 지지율로 출발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현재의 판세로 보면 유지사는 예선과 본선이 모두 험난하다. 예선에서는 취약한 당내기반이, 본선에서는 호남출신이란 점이 부담이다. 유지사는 “미국식 예비선거를 도입할 경우 당내기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호남후보 불가론’에 대해서는 “특정지역의 패권논리다. 영남후보만이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번 선거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시민혁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지사는 전라북도에서 7년 동안 지방행정을 경험했다. 전라북도는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다. 최근 쌀값이 떨어지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유지사의 해법은 무엇일까.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예외규정을 두는 순간 무서운 보복이 들어오게 돼 있어요. 쌀값이 떨어지고 시장이 열리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농민은 양질의 쌀을 생산하고, 생산비 절감을 위해 노력해야죠. 또한 정부는 농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득보전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유지사는 전북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구설수에 여러 차례 휘말렸다. 김강용 절도사건, 새만금개발 논란, 동계올림픽 유치 논쟁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김강용 사건은 오해가 풀렸지만, 새만금과 동계올림픽은 진행형이다. 이에 대해 유지사는 “아무런 대안도 없이 한창 진행중인 국책사업을 중단하라는 환경단체의 요구는 합리적인 주장이 아니며, 동계올림픽은 강원도와 공동개최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6·15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여준 일련의 행태에 대해 유지사는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까지 찾아가니까 김위원장도 여러가지 약속을 한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막상 실천하려니까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러던 중에 남쪽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미국 대통령도 바뀌다 보니까 답방 자체가 어려워졌습니다.

    북한은 김정일이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더 어려운 겁니다. 시스템을 바꾸려면 지금까지의 잘못을 시인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한 거죠. 중국은 마오쩌둥 사후에 저우언라이가 그 역할을 했지만, 북한은 구조가 달라요. 문제는 북한도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에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시간만 보내는 것이 요즘의 북한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입시와 공교육 문제에 대해 유지사는 “미국처럼 기본적으로 대학에 맡겨야 한다. 대학마다 자기 기준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부는 관리만 하면 된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교육이 부실하다는 점이다. 미국처럼 스포츠, 놀이, 게임 등을 교육에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지사는 음악에 조예가 깊다. 고등학교 때부터 합창을 했고, 대학 때는 독학으로 음악이론을 공부했다. 그는 지금도 피아노, 트럼본, 튜바, 스자폰 등을 능숙하게 다룬다. 1999년에는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기도 했으며, 콘서트에서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한 일도 있다.

    유지사가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로버트 퍼트남의 ‘민주주의를 가꾸는 방법’과 A. K. 센의 ‘발전개념으로 본 자유’이며, 즐겨 부르는 노래는 가곡 ‘청산에 살리라’, 유심초의 ‘사랑이여’, 노사연의 ‘만남’ 등이다. 유지사는 몸관리를 철저히 하기로 유명한데, 2001년엔 두 차례나 마라톤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현재 전주 서문교회 안수집사이며 생활신조는 ‘최선을 다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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