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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신, 괜찮은 사람이니 잘 봐줘”

‘북풍사건’과 김동신·이수동 로비 커넥션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김동신, 괜찮은 사람이니 잘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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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역사의 그늘에 가려질 뻔했던 이 사건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2000년 4월 김OO예비역 육군대령의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서다.

북풍사건 당시 합참 전략정보과장이었던 김씨는 판문점 사태에 대해 군 수뇌부의 의지에 거슬리는 정보판단보고를 했다가 무능력한 장교로 낙인 찍혀 그후 한직을 돌고 여러 차례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김씨의 주장을 반박하며 ‘북풍’의 실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언론의 취재 결과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관계자들의 증언과 여러 정황증거가 드러남으로써 국방부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김씨는 기자회견을 갖기 10개월쯤 전인 1999년 6월 청와대에 이 사건을 진정했고, 민정수석실에서 진상조사에 나섰다. 그러잖아도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1998년 9월부터 이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던 중이었다. 김씨의 제보로 민정수석실의 북풍사건 조사는 활기를 띠었다. 약 3개월간의 조사 끝에 보고서가 작성됐고, 당시 김성재 민정수석은 이를 김대통령에게 대면보고했다.

청와대 보고서에 따르면 김동신 국방부장관(보고서 작성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1996년 4월에 있었던 북풍사건 당시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중장으로 합참 작전본부장이었던 그는 청와대 고위관계자로부터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 사태를 언론에 적극 홍보하라는 지시를 받고 충실히 이행한 후 그 결과를 김동진 합참의장(후에 국방부장관 역임)과 이양호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청와대 보고서가 올라간 지 한 달이 채 안돼 김동신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임기 만료 5개월을 앞두고 사퇴했다. 대외적 명분은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한 ‘용퇴’. 하지만 호남군맥의 선두주자로 최초의 호남 출신 육군참모총장인 그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정치권과 군 주변에서는 북풍사건에 대한 문책인사라는 얘기가 돌았다. 일부 일간지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2000년 10월 국방위 소속 민주당 정대철 의원은 국방부 국정감사를 통해 북풍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의원은 “북풍사건 당신 군 수뇌부가 북한군의 통상적인 무력시위활동을 군사적 도발이 농후하다고 왜곡·확대시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다양한 홍보 메뉴를 개발해 언론을 상대로 8회 이상 공개 브리핑을 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K국장이 북풍사건 제보자인 김씨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6월19일. 당시 김씨는 대령으로 육군 정보학교 어학처장이었다.

K국장은 김대령을 비롯해 영관급 장교 3명으로부터 북풍사건 관련 증언을 들었다. 이들은 북풍사건이 있었던 1996년 4월 합참 상황실(지휘통제실)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다. K국장은 이를 근거로 당시 군 지휘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돈봉투와 여하사관의 식사 시중


K국장이 계룡대에 있는 육군참모총장 집무실에 찾아간 것은 1999년 7월14일이다. 그전에 참모총장 비서실을 통해 면담일정을 잡았다. 김동신 총장은 비서실 관계자를 통해 “일정이 빠듯해 10분 이상은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에 따라 면담시간은 오전 11시20∼30분으로 잡혔다. K국장은 11시쯤 도착해 비서실에서 기다렸다.

11시20분. K국장과 만난 김총장은 “대전에서 점심 약속이 있다”며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K국장은 “딱 한가지만 물어보면 된다”고 운을 뗀 뒤 북풍사건을 끄집어냈다. 김총장의 얼굴빛이 바뀌었다. 애초 약속은 10분이었지만 면담은 한 시간 가량 이어졌다.

“1996년 4월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 때 합참 상황실에서 유종하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전화를 받지 않았냐”는 K국장의 질문에 김총장은 “전화를 받는다면 김동진 합참의장이 받지 왜 내가 받겠냐”고 반박했다. 제보자인 김대령 주장에 따르면 당시 유종하 수석과 김동신 합참 작전본부장은 4월6∼8일 세 차례에 걸쳐 통화했다.

김대령의 일기에는 구체적인 통화일시와 통화내용(김동신 작전본부장의 말)이 적혀 있다. 또 통화가 끝난 후 그때그때 김작전본부장이 상황실 근무자들에게 하달했다는 유수석의 지시사항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주로 대언론 홍보 강화에 관련된 내용이다.

김대령 일기에 따르면 애초 유수석이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찾은 사람은 김동신 작전본부장이 아니라 김동진 합참의장이다. 그런데 김합참의장이 자리에 없어 김작전본부장이 대신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김씨 일기 내용대로라면 김작전본부장은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유수석의 지시사항을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유 전수석과 김장관은 2000년 4월 김씨의 기자회견 직후 이 문제가 불거지자 통화 사실 자체를 부인한 바 있다. 다만 유 전수석은 “김동진 합참의장과는 통화했을 수도 있겠지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K국장은 이날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김총장의 집요한 요청에 제보자가 누구인지를 밝힌 것이다. 이것이 뒷날 문제가 됐다. 이날 김총장은 K국장에게 방문 기념으로 도자기를 선물했다.

7월18일, K국장은 민주당 임복진 의원을 면담했다. 임의원이 1996년 4월 북풍사건 직후 국회 상임위에서 이 문제로 이양호 당시 국방부장관을 질타한 데다 그해 9월 국방부 국정감사 때도 이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임의원은 진상조사를 위해 국방부 건물에 있는 합참 상황실에 들어가려다 뒤쫓아온 김동신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작전본부장은 임의원을 안내한 군인에게 “왜 이런 데 의원을 들어오게 했냐”고 나무랐다.

결국 임의원은 북풍사건에 대해 의혹만 제기했을 뿐 진상조사에는 실패했다. K국장이 북풍사건에 대해 묻자 임의원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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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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