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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광수·南 이종갑, 두 戰士의 엇갈린 운명

‘동해안 무장공비 소탕작전’ 그후 7년北

  • 글: 이형삼 hans@donga.com

北이광수·南 이종갑, 두 戰士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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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광수·南 이종갑, 두 戰士의 엇갈린 운명

1996년 11월5일 용대리 교전 현장에서 사살된 무장간첩 잔당 2명.

그는 ‘인간 병기(兵器)’였다. 임관한 이래 안 받아본 특수훈련이 없다. 특전사에서 낙하산 4주 기본훈련만 받아도 ‘특전요원’으로 불리지만, 이소령은 기본훈련은 물론, 강하조장(降下組長·Jump Master) 훈련, 고공(高空) 훈련, 해군정보부대 수중폭파조(UDU) 훈련 등 각종 특수훈련을 다 거쳤다. 한밤중에 강원도 외진 산골짜기에 혼자 떨어뜨려놓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부대로 복귀하는 훈련을 밥 먹듯 해서 강원도 일대의 산세는 손바닥 보듯 훤했다.

정보부대 훈련교관으로 유사시 북한에 침투해 특수작전을 수행할 요원들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그런 자신이 남한에 ‘침투’해 ‘특수작전’을 수행하려던 북한 ‘요원’들에게 당했으니 운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종갑 소령은 수도통합병원으로 실려와 수술을 받았다. 병원측은 이소령의 부상 정도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골반뼈를 조금 잘라내 으깨진 팔뼈 부위에 이식하면 뼈에서 진이 나와 자연스레 위 아래가 연결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경과는 좋지 않았다. 글자 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뼈는 붙지 않았다. 그 무렵엔 치료를 받는 것보다 X레이 촬영이 더 고통스러웠다. ‘이번에는 붙었겠지’ 하며 잔뜩 기대를 품고 사진을 찍어보면 결과는 늘 마찬가지였던 것.

그렇게 7개월을 허비했다. 그 기간 내내 왼팔을 고정시켜놓고 지냈다. 목욕은 팔에 비닐을 덮어씌우고 했다. 그는 민간 병원에서 재수술을 받게 해달라고 몇 번이나 사정한 끝에 겨우 서울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이소령은 군 병원보다 오히려 민간 병원에서 ‘상이용사’ 대우를 제대로 받았다. 이대병원 정형외과장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이렇게 다쳤으니 전의료진이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다”고 약속했다. “뼈뿐만 아니라 피부와 근육도 많이 상해서 성형 수술을 함께 받는 게 낫겠다”며 성형외과에도 협조를 구했다. 수술 일정이 빨리 잡히지 않자 “저런 분을 위한 일인데, 왜 이렇게 일 처리가 늦냐”며 자기 일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채근했다.

이소령은 1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오른쪽 다리뼈 일부를 잘라서 팔에 이식하고, 뼈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혈관 일부도 잘라 이식했다. 마취를 너무 오래 할 수 없어 일단 수술을 끝낸 다음, 이튿날 아침 왼쪽 허벅지 두 부위에서 살을 떼내 팔에 갖다붙이는 수술을 다시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팔은 빠른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좀더 일찍 이런 수술을 받았으면 결과가 훨씬 좋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었지만, 일곱 달 만에 왼팔을 ‘내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기쁨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치료비 일부 본인 부담

그러나 이소령은 군인이 전투에 참가해 공상(公傷)을 입더라도 국가가 치료비를 다 지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는 이대병원에서 두 달 남짓 입원했는데, 군인연금법은 공상으로 인한 요양 기간을 20일밖에 적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외부 병원에서 피부 이식 등 성형 치료를 받을 경우에는 비용을 지원받을 수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규정도 이유가 있고 필요해서 만들었겠지만, 그렇다고 ‘예외’와 ‘참작’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800여 만원에 이르는 병원비 가운데 일부를 자신이 부담했다. 국가가 지원하는 부분도 일시불로 지급되지 않았고, 정산 절차도 복잡했다. 그는 일단 자비로 병원비를 치른 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의료보험공단 등으로 뛰어다니며 일일이 서류를 작성하고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고 나면 은행 계좌로 몇푼씩 입금되곤 했다. 그나마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주위 사람들이 요로에 호소한 덕분이었다.

사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든 것은 수도통합병원에 있을 때부터였다. 용대리 교전 이틀 후인 1996년 11월7일, 수도통합병원에서 오영안 대령 등 전사자 3인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거행됐다. 그런데 행사 직전에 원주병원에서 막 수술을 받고 입원중이던 부상자 3명을 통합병원으로 급히 이송했다. 영결식에 참석할 고위 인사들이 부상자들을 한 장소에서 ‘위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부상자 중 한 명은 영결식이 끝난 후 다시 원주병원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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