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호

“기무사, 휴대전화 도청한다”

전직 기무사 고위관계자의 충격 증언

  • 글·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3-06-23 18: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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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향보고, 인권침해 소지 있다
    • 기무사의 김대업 내사는 불법
    • 국정원도 기무사도 도청은 다 한다
    • 무리한 대공수사 지양하고 조직축소해야
    • 사령관 입맛 맞춰 정치인 동향도 파악
    • 인사 좌지우지한 기무사의 블랙리스트
    “기무사, 휴대전화 도청한다”
    국군기무사령부(사령관 송영근 소장, 육사 27기)는 최근 국방부장관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에게 기무사 개혁방안을 보고했다. 기무사 개혁은 새 정부 출범 후 지역편중인사 타파와 더불어 군 개혁의 핵심으로 꼽힐 만큼 군 안팎의 관심을 끌었던 사항.

    기무사는 정보기관이지만 수사권을 갖고 있다. 민간으로 치면 국정원인 셈이다.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국가보안법위반 관련자 등에 대해 제한적으로 수사권을 갖듯 기무사도 군사기밀보호법(군기법), 국가보안법 관련 사안에 대해선 헌병, 군검찰을 제치고 독자적으로 수사한다. 정보수집과 수사기능, 거기에 지휘관들의 동향을 감시하는 감찰권까지 갖고 있다. 기무사에 ‘무소불위’라는 별칭이 따라 다니는 것은 그런 사정 때문이다.

    기무사 개혁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무사 개혁은 군 개혁방안의 단골 메뉴였다. 이는 기무사의 위력이 전신(前身)인 군사정부 시절의 보안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여전히 군 최대 파워기관으로 권력남용, 인사개입, 인권침해, 이권개입 등으로 논란을 빚어온 탓이다.

    하지만 기무사 개혁은 늘 용두사미로 끝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늉에 그쳤기 때문이다. 또한 자율을 표방한 타율개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기무사 개혁논의는 빈 수레가 요란한 꼴이었다. 기무사가 스스로 기득권을 내놓지 않는 한 기무사 개혁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군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번에 기무사가 스스로 내놓은 개혁추진방안의 핵심은 기구·인원 축소와 대민(對民) 정보활동, 인·허가 관련 업무 등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부 업무의 폐지 또는 이관이다.



    당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이른바 ‘개혁적 차원의 인사조치’. 기무사는 송영근 사령관 취임 이후 핵심 보직자 70여 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 적재적소 배치와 더불어 지연편중 시비를 해소했다고 장관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실제로 군 주변에서는 이번 인사로 그간 문제가 됐던 핵심 요직의 호남 편중 현상이 어느 정도 개선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피해 보지 않는 선에서만 개혁

    ‘신동아’는 기무사 개혁추진과 관련해 전직 기무사 고위관계자 A씨의 증언을 들었다. 3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A씨는 기무사의 권력 남용과 구조적 비리를 고발하는 한편 개혁방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기무사 고위직을 지낸 인사가 언론에 기무사 내부 문제를 털어놓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기무사 개혁논의가 한창입니다. 이와 관련해 신임 사령관이 자체 개혁방안을 국방부장관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합니다. 기무사 개혁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크게 사람과 조직, 기능의 문제입니다. (기무사) 밖에서 온 사령관이 하는 개혁은 한계가 있습니다. 조직원들이 겉으로만 충성하고 속으로는 따르지 않기 때문이죠. 사령관에게 조직 내부의 문제는 얘기하지 않아요. 보고를 하더라도 핵심내용은 빼놓습니다. 그동안 사령관이 바뀔 때마다 개혁 얘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늘 핵심은 젖혀두고 곁가지만 거론합니다. 시늉만 하는 거지요. 자기들이 피해 보지 않는 선에서만 개혁을 추진합니다. 그러니 외부에서 온 사령관은 속사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게 되죠.

    반면 내부에서 올라간 사령관은 절대로 기무사의 권한이나 기능을 축소하지 않습니다. 기무사 내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둥지를 절대 못 부숩니다. 그러니 또 개혁이 안 되죠. 패거리 보호주의 같은 게 아주 강한 조직이에요. 국방장관을 비롯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성역입니다.”

    -예산 사용은 어떻습니까.

    “기무사 개혁을 위해서는 예산 사용의 적절성과 효율성을 짚어봐야 합니다. 현재 군에서 유일하게 감사원 감사를 안 받는 기관이 기무사입니다. 사령관과 참모장이 알아서 집행하지요. 기무사 예산은 크게 국방부에서 편성하는 운용예산과 국정원 사업예산으로 구분됩니다. 운용예산은 일반예산에 속하므로 감사원 감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로비를 통해 감사를 받지 않습니다. 다만 국정원 사업예산은 국정원으로부터 감사를 받습니다. 알다시피 국정원은 각종 정보기관을 조정·통제하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각 군의 정보예산은 국정원에서 지급됩니다. 기무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국정원 감사는 사실 형식적인 거죠.”

    -기무사는 정보수집과 감찰이 주 기능이면서도 수사권을 갖고 있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셈입니다. 수사권 남용의 폐단이 지적돼왔는데요.

    “기무사는 대공, 내란, 외우, 반란, 군사기밀, 국가보안 등의 분야에 대해선 수사권을 갖고 있습니다. 나머지 분야에 대해선 수사권을 행사할 수 없는데 실제로는 많이 하고 있죠. 예컨대 대공 문제와 관련 없는 사람을 대공 관련 혐의로 조사하는 겁니다. 필요할 경우 감찰 조사 대상을 수사대상으로 만들어 대공수사실로 연행해 조사를 벌이기도 합니다. 불법이고 인권침해죠.”

    -때로는 민간인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지요?

    “민간인이라도 앞에서 말한 범죄 분야에 해당되면 조사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불법은 아닙니다.”

    -기무사 업무 중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분야가 있다면요?

    “기무사에서 최근 7∼8년 동안 수사한 대공사건들을 살펴보면 용의자 대부분이 기소유예 정도로 풀려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리한 수사를 한 거죠. 승진과 포상을 의식해 실적을 부풀린 겁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마인드와 수사기법으로는 간첩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과거 수사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과 같은 대공수사는 예산 낭비예요. 조직은 축소하되 수사기법을 현대화하고 무엇보다도 수사요원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합니다. 대공수사 파트의 경우 지금의 인력을 반으로 줄여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첩보 기능과 북한군 동향에 대한 분석활동을 강화해야 합니다.

    대공요원들은 업무 특성상 주로 밖에서 활동해야 하는데 사령부 내에 근무하는 요원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오랫동안 공들인 공작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런 게 나오지 않습니다. 상 타먹는 재미로 수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8월에 시작되는 진급심사를 의식해 5, 6월쯤 검거 발표를 하는 겁니다.”

    A씨는 기무사를 망친 주범으로 기무사 실세로 통한 B장군과 김영삼 정부 때 기무사 고위직을 지낸 C씨를 꼽았다. 먼저 B장군에 대한 얘기.

    “DJ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김동신씨도 B장군을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B장군은 정권 실세였던 P씨와 K의원을 배경 삼아 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B장군과 정권 실세들과의 관계는 CIA 관계자한테서도 들은 얘기입니다. 최근 청와대 사정팀에서 B장군의 비리 혐의를 내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물먹은 기무사 전직 장군 몇 명이 청와대에 진정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군에서는 그 누구도 B장군을 견제하지 못했습니다. 총장과 장관보다 힘이 더 셌습니다. B장군은 총장이나 인사참모부장을 밖에서 따로 만나 인사 문제를 논의하곤 했습니다. 호남 편중인사를 주도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B장군은 또 군무원 채용 수를 임의로 늘리는 등 인사전횡을 일삼았습니다.”

    기자는 청와대 사정팀에서 B장군에 대해 내사를 벌였다는 소문을 A씨를 만나기 전 청와대 주변과 군 수사기관 관계자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모 지역 기무부대 이전 신축공사 이권에 개입한 것이 주된 혐의라고 한다. 하지만 내사 결과 특별한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기무사를 사조직화

    A씨는 B장군의 비리혐의 몇 가지를 더 언급했으나 확인하기가 곤란한 내용이었다. A씨는 김영삼 정부 시절 기무사를 좌지우지했던 C씨에 대해서도 “기무사를 사조직화한 장본인”이라고 비판했다.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노골적으로 정치권에 줄 대는 군인들이 생겨났습니다. C씨는 이른바 ‘현철 인맥’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인사는 물론이고 전방 지역 군사보호구역 해제 등 이권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를 비롯해 몇몇 정치군인이 김현철에게 충성맹세를 했습니다. YS 때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김동진씨, 현 정부에서 국방 관련 요직을 맡고 있는 D씨 등이 이 인맥의 핵심인물입니다.”

    A씨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 후 군에서는 호남 인맥이 약화되면서 YS 정부 때 막강한 세력을 형성했던 인맥이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있었던 일부 요직 인사에서 그 조짐이 나타났다는 것.

    “기무사 요직인 1처장(군내 동향정보 총괄)에 D씨의 고교 후배인 H대령(육사 33기·서울)이 임명됐습니다. 참모장에 임명된 P장군(육사 31기·서울)은 YS 정부 때 기무사 고위직을 지낸 C씨의 비서실장을 오랫동안 지낸 사람입니다. 또 육본 인사참모부장에 임명된 Y장군(육사 29기·충북)은 D씨의 핵심 측근으로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Y장군은 D씨가 현역 시절 청와대 요직을 맡았을 때 그 밑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군 주변에서는 친미통에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D씨에 대해 “능력은 인정하지만 정치적인 군인이었다”는 평이 들린다.

    어쨌든 군내 특정인맥에 대한 A씨의 주장은 사실보다는 해석에 가깝다. 그렇긴 해도 군 안팎에서 이와 비슷한 얘기가 나돌고 있는 건 사실이다. 심지어 DJ 정부 초기 논란이 됐던 한 사조직에 관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 영남 출신의 한 영관급 장교는 “YS 시절 군을 주름잡았던 모 사조직 인맥이 노무현 정부 들어 호남세 약화를 틈타 다시 득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내 호남 인맥은 여전히 무시 못할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게 군 안팎의 대체적인 평이다. DJ 정부 5년 동안 심화된 지역편중현상이 하루아침에 해소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국방부만 해도 수뇌부는 여전히 호남 인맥이 장악하고 있다. 국방부에서 1급 이상 요직은 장관 포함해 6명. 그중 4명이 호남 출신이다. 갑종 172기인 조영길 국방부장관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광주 숭일고를 나왔다. 유보선(육사 24기) 차관은 서울, 성동고 출신이다.

    전남 출신으로 인사를 총괄하는 오치운(육사 25기) 차관보는 광주일고를 나왔다. 박종기(육사 26기) 기획관리실장은 전남, 광주고 출신. 차영구(육사 26기) 정책실장 역시 전남 출신으로 서울 성동고를 나왔다. 최동진(육사 25기) 획득실장은 경북, 경주고 출신.

    국방부 수뇌부와 더불어 호남 인맥의 아성으로 꼽히는 조직은 군 수사기관인 헌병. 지난 인사 때 한두 자리가 바뀌긴 했지만 합동조사단과 육군 헌병감실 및 중앙수사단 요직의 상당수를 호남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특히 중앙수사단에는 헌병 고위직 인사의 고향인 전남 모 지역 출신 준사관과 부사관이 몰려 있어 눈길을 끈다. 합동조사단 장교와 부사관들 중에도 유난히 호남 출신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 청와대 경비를 책임지는 33헌병대장, 인사 관련 요직인 육본 인사운영실 기행과장, 헌병 보직장교 등도 호남 출신이다.

    기무사의 월권 시비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게 DJ 정부 때의 병무비리수사다. 군검찰에 따르면 기무사는 병무비리수사 초기 수사를 방해하거나 압력을 가한 혐의를 받고 있다. 뒷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해 온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김대업씨에 대한 기무사의 ‘사찰’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병무비리수사 과정에 기무사가 병무비리의 온상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었죠?

    “기무사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비리였습니다.”

    -기무요원들의 병무비리 혐의가 드러나자 기무사가 군검찰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지 않았습니까. 부산 기무부대 요원인 김아무개씨가 군검찰에 자수하려 하자 기무사령부에서 막은 사례도 있고요.

    “잘못 알려진 겁니다. 우리는 김씨가 군검찰에 출두하는 걸 막은 적이 없습니다. 사건이 터지자 김씨는 도망갔다가 자수하러 나타났습니다. 기무부대 요원이 군검찰에 출두한다면 사령관한테 어떤 사유인지 사전에 보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출두하기 전 감찰과에 들러 조사에 대비한 교육을 받고 가라고 한 겁니다.”

    -민간인으로 군검찰 수사에 참여한 김대업씨를 기무사가 사찰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민간인이지만 군 관련 일을 했으니 순수한 민간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또 김대업이 기무사가 병무비리의 몸통이라고 떠들고 다니니 우리로서는 그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던 거지요.”

    -어쨌든 앞서 말한 군사기밀 유출이나 국가보안법 혐의도 아닌데 민간인을 뒷조사하는 건 기무사 권한을 벗어난 일 아닙니까.

    “사실 기무사가 김대업을 내사한 거나 군검찰이 병무비리 전과자인 김대업을 수사에 참여시킨 거나 둘 다 불법입니다.”

    불륜혐의 민간인을 대공수사실로

    기무사가 김대업씨를 오랫동안 사찰(또는 내사)한 사실은 지난해 ‘신동아’ 취재로 밝혀졌다(2002년 7월호). 당시 ‘신동아’는 서울지검이 2001년 김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할 때 기무사에서 서울지검에 넘긴 김대업씨 관련 문서를 확보해 이같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A4 용지 12쪽 분량인 이 문서엔 기무사가 파악한 김씨의 과거 행적과 범죄사실, 전과기록 등이 적혀 있다. 이에 대해 기무사측은 고위관계자를 통해 “업무 협조 차원에서 서울지검에 김대업씨 관련 자료를 넘겼다”고 설명했다. 또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선 “사찰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 알아본 정도”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무사의 일부 요원들이 1999년 병무비리수사 과정에 김씨의 뒤를 캐고 다닌 것은 당시 병무청 관계자, 군의관 등의 군검찰 진술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기무사, 휴대전화 도청한다”

    1990년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하는 윤석양 이병.

    군검찰이 민간인인 김씨를 수사에 참여시킨 데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군검찰은 김씨를 정보원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씨가 수사에 참여해 수사관 노릇을 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무사측은 이런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지만 군검찰과 김씨는 이를 부인해왔다. 어쨌든 김씨가 간첩이 아닌 다음에야 기무사가 나선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었다. 김씨에 관한 내사자료를 검찰에 넘긴 것은 대공·방첩 업무를 담당하는 기무사 3처였다.

    2001년 기무사에서는 고위직에 있던 S대령(장군 진급예정자)이 부하 직원 부인과의 불륜 혐의로 강제 전역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S대령의 불륜 상대로 지목된 여인은 대공 수사실로 불려가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된 강압수사를 받았다. 이 여인은 끝까지 불륜 혐의를 부인했고 S대령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묵살당했다.

    그후 S대령은 강제 전역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불륜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 사건은 기무사의 수사권이 어떻게 남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도대체 불륜과 대공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최근 군검찰(공군 검찰부)은 민간 아파트를 군 관사용으로 매입하는 과정에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이아무개 중령(대령 진급예정자·대구 공군기지 기무부대장)을 구속·기소했다. 군 수사기관 고위관계자는 이 사건에 대해 “기무의 전형적인 이권 개입 사례”라며 “밝혀지지 않아 그렇지 이런 비리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기무사 직원들의 비리유형 중 대표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흔한 것이 각종 군 공사 이권에 개입하는 것이죠. 계약업체 관계자를 공사 실무를 맡은 부대 관계자와 만나게 해주거나 계약업체와 하도급업체를 연결해주면서 소개비 조로 돈을 챙기는 겁니다. 제가 있을 때도 전방 모 부대에서 공사 이권에 개입한 준사관, 부사관 등 수십 명이 징계를 받거나 타 부대로 방출된 적이 있습니다. 그밖에 인사 청탁, 보직인사 개입, 고급정보 취득을 통한 부동산투기 등 부정한 영리행위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는 데도 아직도 안하무인 격으로 으스대고 다니는 일부 요원들이 문제입니다.”

    악용되는 동향보고

    -병역과 관련한 청탁도 많지 않습니까. 실제로 병무비리수사 과정에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청탁 실태가 드러나기도 했는데요.

    “고위층 인사들이 병역 문제로 청탁하는 건 사실입니다. 참모총장이나 국방부장관, 국회의원들도 청탁합니다. 언론사 사주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자들을 통해 은근히 부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결정되면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청탁 내용은 입영훈련 마치고 어디로 배속됐는지 미리 알려주거나 근무하기 편한 자리에 보내주거나 부대 근무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움을 주는 정도입니다. 인력 관리의 전산화로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많이 줄었습니다만 연대급 이하 부대의 경우 아직도 수작업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부정한 청탁이 개입될 여지가 있습니다. DJ 정부 때 군에서 호남 편중인사가 문제가 되긴 했지만 저는 영남 사람들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 고향 사람 챙기기가 너무 심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미덕으로 여겨왔습니다.”

    A씨는 이른바 동향보고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기무부대 요원들은 소신을 갖고 일반 부대원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체크해야 합니다. 군인도 정치적 소신은 간섭받아선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DJ 정부 때는 어디서 DJ를 흉보기라도 하면 곧바로 상부에 보고되고 응징 당하는 풍토가 조성됐어요. 개인에 대한 동향보고를 악용한 거죠. 동향보고서를 작성할 때 비록 체크리스트가 있긴 해도 기무부대 요원의 주관적 잣대가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침해 소지가 있지요. 명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6하원칙에 따라 작성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기무사의 동향보고서는 핵심자료가 아니라 참고자료로 쓰여야 합니다. 진급 심사 때 관련 부서에 넘어가는 기무사의 존안자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무사의 역할은 자료를 넘겨주는 것으로 끝나야 하는데 과거 기무사의 실력자들은 자신이 직접 인사 부서 고위관계자들을 만나 될 사람, 안 될 사람을 점찍어주곤 했습니다.”

    A씨는 군 인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수직평가를 보완해 수평평가를 곁들이고 평가 내용도 공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평가 기준을 다양하게 하되 업적 부문에 점수를 많이 줘야 합니다. 그래야 부정이 개입될 소지가 적어집니다. 예전엔 기무사의 블랙리스트가 인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인사참모부에서 그걸로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년 평가결과가 공개돼 진급 대상자들이 자신의 점수를 알게 되고 또 그것이 공식화되면 기무사나 인사 관련 부서에서 무리한 짓을 못하게 되지 않을까요. 진급 대상자들도 무리한 청탁을 안 할 것이고요. 미국군의 인사는 그런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정치인 동향도 파악

    -기무사 개혁방안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기구와 인원 축소입니다. 장군 자리 2개를 없애는 것을 비롯해 전체 정원의 10% 가량을 감축한다는 것인데요.

    “정원 축소는 사령관이 바뀔 때마다 기무사가 자체 개혁안으로 내놓았던 사항입니다. 사실 없어도 되는 자리들이에요. 특별히 인원을 줄일 필요는 없습니다. 정년으로 발생한 빈 자리를 채우지 않으면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눈 가리고 아옹’이 될 가능성이 있죠.”

    -대 전복(顚覆), 대 테러, 방첩 등 핵심 고유 업무는 더 강화할 방침이라고 들었습니다.

    “다 좋은데 대 전복 기능이 문제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이냐는 거죠. 인권 침해 소지가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수단을 찾아야 합니다. 방첩 기능도 개혁 대상입니다. 최근 몇 년간 기무사 수사사례를 보면 잡을 때만 요란했지 공소유지가 힘들었던 사건이 많았습니다. 생색이나 내려는 부풀리기 수사나 허위수사 관행을 없애야 합니다.”

    -지난해 대선 때 국정원의 도·감청이 문제가 됐었죠. 그런데 도·감청 능력은 국정원보다 기무사가 더 뛰어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도청 능력과 첩보수집 능력은 돈에 비례한다고 보면 됩니다. 국정원 예산은 우리보다 20배 많습니다.”

    -기무사에서는 휴대전화 도청도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휴대전화 도청이 되느냐 안 되느냐 말이 많지만 사실 번호만 알면 가능합니다. 휴대전화 간 통화내용을 감청할 수 있는 장비가 있습니다. 몇년 전 구입했습니다. 도청은 국정원도 기무사도 다 합니다. 다만 유선전화 통화를 감청할 때는 감청영장을 청구합니다. 군검찰도 감청장비를 갖고 있어요.”

    A씨의 주장에 대해 군검찰 관계자는 “군검찰이 감청장비를 가진 건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하지만 기무사와 달리 휴대전화 감청기는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의 얘기를 좀더 들어보자.

    “군검찰의 감청장비로는 유선전화 감청만 가능하기 때문에 도청이 아니라 합법적인 감청을 하는 겁니다. 유선전화를 감청하기 위해서는 전화국 협조를 받아야 하므로 정식으로 감청영장을 법원에 청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무사는 다릅니다. 군 전화선에 접근할 수 있는 시설과 장비가 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군내 전화에 대한 도청이 가능하지요.”

    어쨌든 A씨의 증언은 군내에 팽배한 기무사의 휴대전화 감청의혹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감청영장을 남용한 사례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마치 백지수표처럼 한꺼번에 한달치를 끊어놓는 식으로. 민간인에 대해서도 그렇게 한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이 경우 사생활 침해 소지가 크죠.

    “예전엔 기무사가 민간인 통화도 제한 없이 감청했습니다. 지금도 악용할 소지는 있지만 과거와 달리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사령관 입맛에 맞추기 위해 정치인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의도를 갖고 도청을 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거죠. 그렇긴 해도 지금은 정치에 거의 개입하지 않습니다.”

    A씨는 도청 사례 하나를 들었다. 기무사가 아니라 CIA다.

    “몇 년 전 김현철씨가 미국 텍사스에서 납치될 뻔한 사건이 있었지요. 괴한들은 모두 6명이었는데 그 중 2명은 국내 정보부대 요원이었습니다. 그 사건엔 정권 실세와 호남군맥의 실력자가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CIA에서 이 사람들이 식사자리에서 나눈 얘기를 도청해 그 사실을 파악했다고 들었습니다.”

    -기무사 개혁안 중엔 IT·방산업체 관련 업무를 강화한다는 내용도 있지요?

    “장단점이 있어요. 전문가도 아니면서 기무사가 나서서 좌지우지한다면 업체들이 기무사 눈치만 보게 되지 않겠습니까. 감시 기능은 좋지만 밤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건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사령관이 특정업체에 기울어져 있을 경우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영외에 위치한 시도 단위 기무부대를 영내로 옮긴다는 계획도 잡혀 있습니다.

    “문제없다고 봅니다. 영외에서 먹고 노는 부대가 많아요. 민·관 조정 기능을 한다고 영외로 나가 있는데 시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특별히 기무사가 나서서 조정할 일이 없습니다.”

    -육해공군 기무부대를 단일 부대로 통합하는 건 문제가 없습니까.

    “지금까지 3군 기무부대장은 계룡대 한 건물에서 근무했습니다. 통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줄 압니다. 예산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죠.”

    -사단 기무부대 기능을 축소하고 연대급 이하 부대에 파견된 기무반을 폐쇄한다는 방안도 마련돼 있는데요.

    “옛날부터 기무사 개혁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나온 얘기입니다. 실천이 중요하지요.”

    기무사 개혁안 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일부 핵심 업무의 폐지와 축소 및 관련 부서 이관이다. 하지만 A씨는 이에 대해 다소 다른 견해를 드러냈다. 권한과 임무를 본래의 목적에 맞게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지 폐지하고 축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취지다.

    -보안감사 신원조사 동향관찰 등의 기능을 축소하는 방안은 어떻습니까.

    “군부대에 대한 보안감사 기능은 축소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동향관찰도 마찬가지입니다. 동향관찰이 제대로 안 되면 대 전복 기능이 마비될 수 있습니다. 기능을 축소하는 것보다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요원들에 대해 정신교육을 강화하고 본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경우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 더 적절한 개선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납적격업체 심사, 무역대리점 능력 측정 등 이권 개입 소지가 있는 인·허가 업무의 경우 해당 부대 등 관계부서로 이관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글쎄요. 조금 안타까운 측면이 있습니다. 무역대리점 능력 측정은 군사보안 차원에서 꼭 체크해야 할 사안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요원들을 제대로 교육시켜 긍정적 기능은 살려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군납적격업체 허가업무도 마찬가지예요. 유령업체나 무자격업체가 난립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기능은 기무부대 요원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금융실명제처럼 인·허가 업무에 관여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확실히 묻는 제도를 정착시킨다면 폐단이 없어지리라고 봅니다. 체크리스트를 강화해 거기에 맞게 했는지 안 했는지를 엄격히 따지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징계를 받도록 관련규정을 강화하는 거죠. 인·허가 업무를 일반 부대로 넘기면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할 겁니다. 기무사가 손을 뗄 경우 군내 감찰 기능이 그만큼 약화되는 거죠.”

    부대 지휘관과 기무 요원 유착 위험

    A씨의 견해는 군 안팎의 여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기무사의 고유 기능이 긍정적으로만 발휘된다면 기무사의 월권과 권력남용에 대한 성토가 잦아들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그 권한을 축소하려는 것 아닌가. 어쨌든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에 대한 애정을 가진 A씨로서야 그런 주장을 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무사가 보고한 개혁방안 중엔 업무풍토 쇄신안이 포함돼 있다. 그 중 귀가 번쩍 뜨이는 것은 야전부대 지휘관에 의한 ‘문제 기무부대원 보고제도’를 신설한다는 것. A씨는 이에 대해서도 탐탁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 모 국방부장관도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있었는데 끝내 무산됐습니다. 취지는 좋지만 그렇게 되면 일반 부대 지휘관들과 기무요원이 유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큰 폐단을 낳을 수 있습니다.”

    업무풍토 쇄신안 중엔 자체 감찰기능을 보강해 인사나 이권에 개입한 자들을 척결한다든가 골프 부킹, 병사 청탁 등 특권의식적 관행과 군기문란 행위를 일소하겠다는 등 좋은 얘기가 많다. 부정확하고 왜곡된 첩보를 보고하는 자는 진급이나 보직인사 때 반영하겠다는 방안도 평가할 만하다.

    교과서 같은 얘기긴 하지만 그대로만 된다면야 기무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천의지다. 과거에 사령관, 장관이 바뀔 때마다 그래왔듯이 개혁방안이 말잔치로 끝나거나 생색내기로 활용돼서는 안 될 것이다. 제도 개혁안을 마련하는 것보다 더 앞서야 할 것은 과거 잘못된 관행과 풍토가 있었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권위주의적인 마음가짐과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그럴 때 기무사 개혁은 비로소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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