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호

노무현 정권 ‘친위대’ 막후 파워게임

원칙론 부산파 vs 현실론 서울파의 ‘불안한 동거’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3-06-24 09:5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노무현 정권 ‘친위대’ 막후 파워게임
    ‘파워게임설’은 노대통령의 부산지역 후원자인 강금원(姜錦遠·창신섬유 회장)씨가 지난 6월4~5일 문재인(文在寅) 청와대 민정수석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을 계기로 불거졌다. 노대통령 후원회장인 이기명(李基明)씨의 경기도 용인 땅이 불씨였다.

    문제의 땅 1차 계약자인 강씨는 그동안 감춰졌던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거론되자 해명을 위한 공개기자회견 석상에서 난데없이 문수석을 향해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강씨는 이날 “능력 없는 사람이 정치에 참여해 대통령을 방해하고 있다. 이번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문재인 수석은 물러나야 한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강씨는 이어 노대통령의 정신적 사부로 불리는 부산지역의 송기인 신부를 향해 “종교인이 무슨 정치에 관여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데도 대통령에 대해 막말을 함부로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부산정치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인 조성래 변호사에 대해서도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패거리 정치를 하려 하는데 그런 인물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씨는 반면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안희정(安熙正) 부소장에 대해서는 나라종금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강한 친근감을 나타냈다.

    강씨의 이 같은 발언은 곧바로 청와대 내 ‘부산파’와 ‘서울파’의 파워게임설로 비화됐다. 강씨가 지목한 비난의 대상이 모두 부산파라는 점과 나라종금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안씨의 문수석에 대한 섭섭함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맞물려 권력 내부의 암투로까지 해석됐던 것이다.



    이에 발끈하고 나선 사람은 안부소장이다. 한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던 그는 이례적으로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파워게임설은 완전한 소설”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안부소장은 “현 정권에서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그런 부분의 갈등이 적다. 우리가 서로를 너무 잘 알지 않나. 문수석은 과거 정권의 어느 어느 사람들처럼 계보를 만들어 대장을 할 사람이 아니다. 언론에서 그렇게 상황과 분파를 만들어놓고 싸운다고 하고, 그러니까 해명하라고 한다”며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또 파워게임설에 불을 지핀 강씨까지 직접 나서서 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의구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로부터 10일 정도가 지난 6월14일 오후 기자는 강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발언이 파워게임설로 데 대해 강씨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 그런 발언을 한 솔직한 속내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20여 분 정도의 전화통화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강씨는 ‘정식 인터뷰는 거부한다’고 못박았다. 그간 언론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가 적지 않은 듯했다.

    “(언론을 향해)섭섭합니다. 사람의 진심을 몰라주고 왜 이렇게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발언 내용 중에) 파워게임이니 뭐니 그런 내용은 없었어요. 그리고 내가 파워게임에 휘말릴 사람도 아니구요. 옳은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비치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습니까.”

    -문수석이나 부산 쪽 사람들에 대해서만 비판하고 안희정씨의 입장을 대변해주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제 분수를 압니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아요. 그리고 저는 솔직합니다. 할 말은 하고 살아요. 그런데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눈치만 보고 잘 못하는 것 같아서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저는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안희정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압니다. 부자도 아니고, 숨겨놓은 돈도 없고. 그런데 무슨 파렴치범처럼 몰리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한때 조금 잘못돼가는 것 같아서 제가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이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라가 잘되려면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는 조용히 옆에서 보이지 않게 일처리를 해야 합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나서면 안되죠. (진위가 어떻든) 그렇게 비쳐진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문수석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기분 나빠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청와대 내 ‘부산파’와 ‘서울파’간에 갈등이 있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같은 사물을 놓고 봐도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갈등은 있어야 합니다. 비겁한 갈등이 아니라 충분히 토론하고 대화하면서 풀어가는 건전한 갈등 말입니다.”

    -솔직하게 한번 물어보죠. 문수석이 안씨를 좀 도와주기를 바라지는 않나요.

    “문수석이 도와줄 상황도 아니고, 안희정이도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합니다.”

    강씨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했지만 더 이상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다만 대화 말미에 아집과 분파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일종의 서운함을 내비치면서 묘한 뉘앙스를 전했다.

    강씨는 “항상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자기들끼리만 만나고. 특정인을 지목해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 입장에서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 고민하고 인정하고 들어가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며 답변을 마무리하다가 뜬금 없이 “…서운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남겼다.

    사실 이번 강씨의 발언으로 제기된 문수석과 안부소장측 간의 문제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부산파의 대표격인 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李鎬喆) 민정1비서관과 서울파의 핵심 안희정, 이광재(李光宰) 국정상황실장 간의 견제와 긴장관계가 파워게임설의 출발점이라는 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부산파는 원리원칙주의적 성향이 강한 반면 서울파는 현실정치적이다. 스타일에서 일단 다르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황을 보는 시각과 대처방안에 대한 인식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노대통령과의 관계도 다르다. 문수석과 이비서관은 노대통령과 친구이자 정신적 동지관계다. 반면 안부소장과 이실장은 노대통령을 가장 오랜 기간 보좌해온 최측근 참모다. 때문에 그동안 서로간에 역할과 위치가 달랐다. 부산파나 서울파, 그리고 청와대 안팎에 포진해 있는 이들과 절친한 386세대 정치권 관계자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부산파와 서울파 간의 관계를 견제와 긴장관계가 아닌 경쟁과 상호보완관계라고 규정한다. 한 386 정치인의 설명이다.

    “노대통령은 예전부터 서울파에서 정책적 아이디어를 얻어 부산파에서 최종승인을 받는 식의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중요한 정치적 결단을 내릴 때마다 양측간에 견해 차이가 있었다. 서울파가 정치적 이유와 현실을 들어 반대할 때, 부산파는 원칙론을 내세워 강행할 것을 권유했다. 노대통령은 서울파의 건의를 수용할 때 나름의 정당성을 부산파에서 찾았다. 반대로 서울파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한 반대논리를 부산파에서 얻기도 했다.”

    15년 전부터 시작된 긴장관계

    그동안 정치권에 알려진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부산파와 서울파 간의 일정한 긴장관계는 그 뿌리가 깊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1988년 노대통령이 정치권에 입문하면서부터다.

    노대통령이 13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이호철(부산대 77학번) 비서관과 이광재(연세대 83학번) 실장은 의원회관에서 함께 노대통령을 보좌했다. 이실장은 이때부터 단 한시도 노대통령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이비서관은 13대 의원 임기가 끝날 때까지만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을 뿐 그 후부터는 선거 때만 나타나 도와주고 다시 현업으로 복귀했다.

    일각에서는 이비서관이 노대통령의 주변에 머무르지 않고 떠난 것에 대해 이실장과의 성격차이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비서관이 소탈하고 후배들을 잘 아우르는 참모장 스타일이라면, 이실장은 겉보기엔 덤벙거리는 듯하지만 샤프하면서 일에 있어서는 깐깐한 타입이라는 것. 또 정치적 감각도 이비서관에 비해 이실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천성적으로 순수한 이비서관이 정치적 성향이 강한 이실장에게 밀려 부산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후배에게 양보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어떤 이야기가 맞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주변에서는 이비서관과 이실장 간의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한 사례로 노캠프에서 두 번이나 나갔다가 복귀, 현재 민정수석실에서 문수석을 보좌하고 있는 고성규 보좌관 경우를 든다.

    고보좌관은 서울대 약대 출신으로 토익 만점자다. 1997년 초 주변의 소개로 노대통령의 영어 개인교사가 되어 인연을 맺은 고보좌관은 1997년 말 국회의원 노무현의 수행비서로 신분이 바뀌었다.

    노무현 정권 ‘친위대’ 막후 파워게임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29일 청와대 연무관에서 비서실 전 직원을 상대로 한 워크숍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00년 총선까지 3년 정도 노대통령을 보좌했던 고보좌관은 총선 직후 현업으로 복귀했는데 이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자발적으로 나갔다기보다는 이실장에 의해 내보내진 측면이 크다는 것. 2001년 말 노대통령이 경선캠프를 차리면서 다시 합류했던 고보좌관은 2002년 4월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노대통령이 승리, 후보로 결정되자마자 또 떠났다. 그때도 내부의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8개월 만에 고보좌관을 청와대로 다시 불러들인 사람이 바로 이호철 비서관이다. 이비서관은 당초 부산에서 올라오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노대통령과 문수석이 설득하자 ‘고성규와 함께라면 일하겠다’는 조건을 달아 고보좌관을 청와대로 끌어들였던 것. 문수석과 이비서관, 고보좌관 등 세 사람은 인수위 초기부터 함께 민정팀을 꾸려오고 있다. 이 같은 전후사정을 아는 이들은 이비서관과 이실장 간에 보이지 않는 긴장관계가 조성돼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노대통령은 무서운 사람”

    하지만 당사자인 고보좌관은 말을 무척 아꼈다. 그는 노캠프에서 떠난 배경에 대해 “당시 약국을 개업하기 위해 그만둔 것이지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면서 “이실장과도 지금은 별다른 문제 없이 서로 상의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때 섭섭한 감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지금은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뭔가 숨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비서관이 청와대에 들어올 때 고보좌관과 함께 일하는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고 하던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마 내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비서관과는 개인적으로 많이 친합니까.

    “일로 만났어요. 그동안 개인적인 친교는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하는 과정에서 존중하고 존경하는 형이자 선배로 모시게 됐습니다.”

    -이실장이나 안부소장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그렇게 친하지 않아요. 그 두 분도 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느끼는 바는 조금 다릅니다.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다르잖아요.”

    -그 두 사람과 함께 일하면서 호흡이 잘 맞았나요.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네요. 하려면 긴 이야기입니다. 그 두 분은 나름의 몫을 훌륭히 했다고 봅니다.”

    -최근 청와대 내 부산파와 서울파 간에 파워게임설이 제기됐습니다. 그동안 의견대립이 잦았다고 하던데요.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같겠습니까. 오랜 기간 같이 일하면서 항상 의견이 일치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분명히 생각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지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들 사심이 없어요.”

    -이비서관과 이실장 간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더군요. 고보좌관이 두 차례 그만뒀다가 이번에 다시 이비서관에 의해 노대통령 주변으로 복귀한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예전부터 두 사람 사이에 일정한 긴장관계가 있었던 건 아닙니까.

    “실은 호철이형(이비서관을 이렇게 부름)을 오히려 내가 (청와대로) 올라오도록 설득했습니다. 호철이형이 없었다면 청와대가 큰일났을 겁니다. 그만큼 지금의 역할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왜 파워게임설이 등장한 걸까요. 언론이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을 소설 쓰듯 썼다고 봅니까.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르더군요. 하지만 오해받을 일이 있었으니까 나온 거겠죠. 지금 권력투쟁을 일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대통령의 성격을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노대통령은 내부 다툼이 벌어질 경우 그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까지 다 집으로 돌려보내는 성격입니다. 과거의 사소한 공(功)을 가지고 권력 투쟁을 일삼거나 국가경영에 부담이 된다면 그 사람 또한 깨끗하게 자를 겁니다. 노대통령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한두 가지 예가 있는데 지금은 말을 못하겠습니다. 대통령이 알게 되면 당장 잘리기 때문에….”

    안희정(고려대 83학번) 부소장이 노대통령 캠프에 합류한 것은 1993년 당시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다. 이때부터 서울파는 이실장과 안부소장의 쌍두마차 체제가 구축된다. 조금은 소심하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꼼꼼한 일 처리 능력을 인정받은 안부소장은 이실장으로부터 재무를 넘겨받았다. 이실장은 기획과 전략, 안부소장은 재무 등 살림살이를 맡아 두 사람의 역할이 분담된 것.

    두 사람 간에도 다소간 마찰은 있었다고 한다. 그간 이실장의 연대 후배들이 하부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안부소장이 참여하면서 고대 출신이 늘어나 조금씩 잡음이 들려왔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386 출신 당직자는 “이실장과 안부소장, 두 사람 간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가끔 연고대 후배들 간에 신경전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난다”고 전했다. 이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동고동락하면서 굉장히 가까워졌다.

    부산파와 서울파로 양분되는 노대통령 측근 내부의 갈등은 이처럼 오래 전부터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한 형태로 이어져왔다. 그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1차적 목표를 함께 이뤄낸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공동의 목표가 생겼다. 노무현 정권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을 놓고 청와대 내 부산파와 서울파, 양측의 대립구도가 매우 다각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움직임도 부산파와 서울파 간 파워게임설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최근 서울지역 386 정치인이나 주변인들은 참여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보여 준 문수석 등 부산파의 판단과 행보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 한 386 관계자는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언론의 노무현 정권 흔들기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보수세력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도록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화물연대 파업이나 교육부 NEIS 파동 등 사안에 따라 강경한 정책을 폈어야 한다”며 “그러나 문수석 등 부산파는 원리원칙주의자들답게 ‘대화와 타협’이라는 현 정부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지나칠 정도로 양보해 상황을 오히려 더 어렵게 한 측면이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측근은 “내년 총선에서 승패는 올해 1년 동안 노정권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모든 사안에 대해 대화와 타협으로 간다면 집단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이고 결국 사회불안을 가중시켜서 민심으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신당 둘러싸고 부산-서울 386 갈등

    내년 총선 승리 여부를 좌우하게 될 신당추진 과정에서도 부산지역 386과 서울지역 386 간에 불만이 커지고 있다. 같은 386이라도 부산은 부산대로, 서울은 서울대로 각자 따로 움직이면서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지역적인 특징 때문이다.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386은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 3인방이다. 민주당 정윤재(鄭允在·83학번) 사상구지구당 위원장과 최인호(崔仁昊·85학번) 해운대·기장갑지구당 위원장, 송인배(宋仁培·88학번) 경남양산지구당 위원장 등이다.

    정위원장은 ‘부산의 노무현’이라고 불릴 정도로 노대통령과 가깝다. 1988년 총선 때 대중연설 경험이 전혀 없는 노대통령에게 웅변연습을 시키기도 했다. 최위원장은 1998년 노대통령이 종로 보궐선거에 당선된 뒤 비서관으로 일하다 2000년 총선 때 부산지역 구석구석을 돌며 헌신적으로 뛰었다. 그 직후부터 부산에 남았다. 송위원장은 부산지역 386의 막내다. 송위원장 역시 1998년 비서관으로 정치권에 입문, 해양수산부 장관 비서관, 대선캠프 의전담당관 등으로 노대통령을 보좌하다가 고향인 양산으로 내려가 지역구를 다지고 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2004년 총선을 준비해오면서 상당한 지역적 기틀을 다져놓았다. 또 훨씬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움직여왔기 때문에 굳이 서울의 386들과 연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구도가 어떤 형태로 짜여지느냐이다.

    이들은 민주당의 신당이 확실하게 ‘탈호남’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만 내년 총선에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역구도를 깰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며 원칙론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서울지역 386들의 생각은 다르다. 기존의 민주당 지지세력에 외부 개혁세력이 참여하는 국민통합형 신당을 바라고 있다. 극히 현실적이다. ‘헤쳐모여’식은 그만큼 모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 신주류와 구주류간 정면 충돌의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분당까지 거론되고 있어 잔뜩 긴장하고 있다.

    또 부산지역 386들이 모두 노대통령의 측근으로 청와대와 일정한 협의채널을 가동하고 있는 반면 서울지역 386들은 자체적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할 처지다. 당내 신당추진 과정에서 서울지역 386의 중심이 돼야 할 안부소장이 나라종금 사건으로 발이 묶인 데 따른 결과다. 우상호(禹相虎) 서대문구지구당 위원장, 이인영(李仁榮) 구로구지구당 위원장 등을 중심으로 386 운동권 출신들이 총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안부소장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부산은 정서, 서울은 정치 코드

    부산과 서울이 이처럼 각기 따로 움직이면서 신당의 방향까지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386 외곽조직을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부산파는 정서적인 코드이고, 서울파는 정치적 코드다. 그런데 최근 상황을 보면 두 코드가 서로간에 완전히 빠져있다”는 말로 복잡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우상호 위원장은 “지역적 또는 당 안팎의 상황을 고려해 적절히 조율해야 할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정무기능이 약화되면서 모든 민원과 사건이 민정수석에 집중돼 ‘파워게임’으로 오해받을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위원장은 “사람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정권 초기 인사문제를 놓고 이광재 실장과 문수석 간에 다소 의견차이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전해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약간의 긴장관계 속에서 상호 견제해주면 오히려 건강한 권력으로 가는 데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위원장은 그러나 부산파와 서울파간 청와대 내 파워게임설에 대해서는 “모두 권력에 사심이 없는 분들이다. 안희정 부소장이 법원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나온 뒤 가장 먼저 만나서 술 마신 사람들이 민정팀이었다”며 “안부소장이 민정팀이나 부산팀에 서운한 감정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우위원장은 다만 “만일 지금의 건전한 긴장관계에서 벗어나 권력투쟁으로 비화할 때는 외부 세력들이 관여할 것이며 노대통령도 인사권을 발동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