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노대통령 지지도, 왜 추락하나

정 안주고 사람 가리고 막말하고

  •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입력2003-09-25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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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대통령 지지도, 왜 추락하나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2차 참여정부 국정토론회’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이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9월 들어 30%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취임초 80%대였던 지지도는 취임 100일(5월말)을 지나면서 50%대로 떨어졌고, 취임 6개월인 8월말을 통과하면서 30% 후반~40% 초반대로 더 하락한 것이다.

    과거와는 여러 가지 상황이 달라진 만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집권 3년째들어서면서 지지도가 30~40%대로 내려앉았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지금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집권 중·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레임덕 초기에 해당한다는 견해도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체로 대통령의 정책수행이 불가능해지는 국정운영 지지도의 마지노선을 25%(4명 중 1명이 지지)로 보고 있다. 4명이 모였을 때 그 중 1명의 지지자는 반대자와 1대3으로 맞붙어 논쟁을 벌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지도가 25%선까지 추락하면 현직 대통령에 대한 지지의 목소리는 듣기 어렵고, 반대의 목소리만 넘쳐나게 돼 정부는 그 어떤 정책도 추진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이와 달리 3명 중 1명의 지지자가 있을 경우 비록 1대2일지라도 1명의 지지자는 반대자에 맞서 논쟁을 벌일 수 있기 때문에 33%대에서는 최소한의 정책 추진이 가능하다는 게 일반론이다. 따라서 현재 30% 후반~40% 초반대에 걸쳐 있는 노대통령의 지지도는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야당은 대통령을 샌드백 두드리듯 마구 공격해대고, 여기저기서 대통령 비판 대열에 끼지 못하면 시류에 뒤처지는 느낌을 갖는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어 결코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원내 다수당인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가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며 노골적으로 노대통령을 깔아뭉갠 데 이어,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도 “노대통령이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 대통령제 자체에 의문이 생기는 상황이 생길 수 있고, 내각책임제로 갈 수밖에 없는 여론이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8월2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 이날 박의장의 내각책임제 개헌 언급은 최대표의 ‘대통령 잘못 뽑았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잘하든 못하든 5년 임기를 마냥 보장해줘야 하는 대통령제를 하느니, 이제는 그때그때 최고권력자를 갈아치울 수 있는 내각제를 하자는 여론이 조성될 것이란 얘기는 바로 ‘대통령 잘못 뽑았다’는 말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현직 고등검사장이나 퇴임하는 대법관이 대통령을 향해 대놓고 비판하는, 대통령이 동네북 신세가 돼 있는 듯한 상황도 지금 노대통령의 약세(弱勢)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지금의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굳이 구별해본다면 청와대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 사이에 온도차가 꽤 크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노대통령을 적극 지지해왔고 지금은 신당 창당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수도권 지역의 한 재선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신당 추진을 위해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했지만, 딱 한 가지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다. 노대통령의 지지도가 이렇게 빨리 떨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는 것이다. 과거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때도 최소한 2년간은 잘 나갔으니까, 내년 4월 총선 때까지는 잘 갈 줄 알았다. 대선에서 이겼을 때만 해도 내년 총선이 문제가 아니라, 당세를 더 확장해서 내년 총선도 이기고, 다음 대선도 이기고, 앞으로 50년에서 100년쯤 냉전 수구세력이 이 땅에서 다시는 집권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는 이어 “이런 지경이면 나 같으면 몸 둘 바를 몰라서라도 뭔가 일을 저지르든지, 사표를 내든지 했을 것이다. 지금 청와대 참모들은 뭘 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노대통령을 만들었던 내가 지역구에서 내년 총선에서 떨어지느니 마느니 하는 소리를 들을 때는 한심하다. 이런 사실을 노대통령이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격분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노대통령을 지지했던 민주당 내의 친노(親盧) 의원 중 상당수는 아마도 이와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의 386 측근그룹의 일원이자 9월5일 민주당을 탈당한 정윤재(鄭允在) 전 부산 사상지구당 위원장도 강도는 약했지만, 부산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 탓인지 비판적인 기조였다. 정 전 위원장은 “솔직히 집권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런 탓에 장기 국정과제를 설정하고 국정운영 시스템을 바로잡는 데 6개월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었고, 현안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정부, 대대적인 설비수리중

    반면 대통령비서실을 이끌고 있는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은 전혀 다른 시각을 보였다. 문실장은 추석 연휴 뒤인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인데, 지지도가 40%면 대단한 것 아니냐.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이 있기 때문에 40%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지금의 지지도는 ‘바닥’을 친 셈이고, 앞으로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대통령 정무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다른 분석을 내놨지만, ‘큰 문제 없다’는 점에서는 문실장의 진단과 비슷했다.

    그는 “지금 지지도 하락의 주원인은 경제난 때문이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최대 불만으로 경제문제를 꼽고 있다. 거꾸로 말해 경기가 회복되면 노대통령의 지지도는 바로 회복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고 풀이했다. 그는 “주가가 700선을 돌파하고, 미국 경제상황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경제가 나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별로 걱정 안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또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내에서 불안감이 돌았다. 나 자신도 이래가지고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상당히 동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청와대 안에서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다. 노대통령이 가는 방향이 옳고, 그대로 가면 잘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붙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노대통령 본인은 지금의 지지도 추락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노대통령은 9월7일 기자들과 만났을 때 “국민의 시계와 내 시계가 다르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한 적이 있다. 국민은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보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제품을 생산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공장의 오래된 설비를 대대적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피부에 닿는 성과를 내보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또 “논쟁을 하자고 하면 다 대답할 자료를 갖고 있다. 하나하나 따지자면 나도 할 말이 많다”고 말해 지금의 냉담한 평가에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노대통령의 말대로 지금 정부는 대대적인 설비 수리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2개의 국무회의’가 상존하고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매주 화요일은 고건(高建) 국무총리 이하 전 국무위원이 참석하는 통상적인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고, 목요일에는 이른바 ‘설비 수리’에 해당하는 국정과제회의가 열린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등과 같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번갈아 여는 국정과제회의다. 여기에는 관계 부처 장관도 당연직 위원으로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제2국무회의’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이들 위원회는 집행권은 갖고 있지 못하지만, 사실상 현 정부 임기 5년의 개혁과제를 수행해갈 로드맵을 작성하는 등 실질적인 영향력 면에서는 적지 않은 권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노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에는 앞에서 열거한 것처럼 경제난,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조해가는 과도기적 상황, 인재풀의 부족과 같은 집권 준비 부족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노대통령만이 두드러지게 갖고 있는 인간적 약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주장도 있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대개 이성적인 요인보다는 감성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놓고 볼 때 그런 주장도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다.

    “경제가 어려워서 먹고살기 힘들다”고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통령이 무슨 말을 저리 함부로 하느냐”고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노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지도자로서의 면모에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뀐 것이다.

    노대통령은 스스로 ‘다변(多辯)’과 ‘사교적이지 못한 점’을 인간적인 한계, 또는 약점으로 꼽고 있다. 전혀 상반되어 보이는 특징이지만, 노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이 두 가지만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나서 바라본다면 노대통령을 달리 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노대통령은 다변도 다변이지만, 특유의 거친 발언으로 취임 후 여러 차례 시비를 일으켰다. 평검사와의 대화에 이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10여 차례의 특강을 통해 숱한 말을 남겼고, 8월27일에는 전남 광양에서 ‘검찰 견제론’을 설파하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도 별것 아닌 일로 조사를 받았다’는 ‘별것 아닌’ 발언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처음에는 노대통령 스스로 조심하기도 하고, 참모들도 말리는 쪽이었다. 노대통령 못지않게 입이 거칠기로 유명한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올해 초 “대통령께서 말씀을 좀 줄이시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다가 노대통령으로부터 “내가 말을 안 하면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지 않느냐”는 핀잔만 들어야 했다. 이후 노대통령은 “내 식대로 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고, 참모들도 ‘뜻대로 하시라’는 분위기다.

    노대통령을 20년 이상 가까이서 모셔온 최도술(崔導術)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은 노대통령의 ‘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노대통령이 정치를 하면서부터 그동안 숱한 사람이 말 좀 조심해서 하라고 건의했다. 나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노대통령은 ‘촌놈이 뒤통수 톡 때리면 바로 왁 하고 쏟아져나오는데 우짜겠노’ 그러더라. 못 고치겠으니 더 이상 말리지 말라는 얘기였다. 그나마 옛날에 비해 요즘은 많이 나아진 거다. 원래 노대통령은 섀도 복싱하듯이 양어깨를 앞뒤로 흔들며 걷는 버릇, 기분 좋으면 바짓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고 휘파람을 부는 버릇도 있었다. 그래도 두 가지는 고쳤더라.”

    최 전 비서관은 노대통령의 거친 입을 직정(直情)적인 성격 탓으로 보고 있다. “예전에 부산에서 거리 유세를 할 때 얘기다. 유권자들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노무현이 니가 왜 나와서 까부느냐’고 시비를 걸었다. 그냥 모르는 척 지나가면 되는 일인데, 노대통령은 가만 있지 않더라. 그 사람에게 곧바로 ‘당신이 나 안 찍으면 그만이지, 시비는 무슨 시비냐’고 받아쳐 한바탕 멱살잡이가 벌어졌다. 그때 우리 선거운동원들은 표 다 떨어졌다고 울상이었는데, 노대통령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이런 노대통령을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옹호하는 사람이나 세력이 별로 없다는 점은 노대통령의 약점을 더욱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여기에는 교제를 꺼리는 노 대통령의 ‘샤이(Shy 수줍음타는)한’ 면모가 한몫을 하고 있기도 하다.

    노대통령 자신은 원칙과 소신이라고 생각하는데, 독선과 아집으로 비치는 것도 그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 탓이 크다.

    지난해 대선 당시 정치적 동반자 관계였던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조차 “추석 선물도 안 하고…”라고 푸념했듯이, 노대통령을 접해본 사람들은 인간적인 정을 잘 느끼지 못하겠다고들 말한다.

    노대통령의 적극적 지지자인 천정배(千正培) 의원은 “노대통령을 옆에서 쭉 지켜보니 몇 가지 약점이 있더라. 나도 그리 사교적인 편은 아니지만, 노대통령은 사람 대하는 걸 잘 못하더라. 한번은 고쳐야 한다고 말했더니 ‘그것은 내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며 고개를 젓더라”고 전하기도 했다.

    주류정치 못해본 노무현의 한계

    친노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노대통령이 민주당 사람들은 왜 안 만나나. 이 정권이 민주당 정권 아닌가. 대선 전 지지도가 몇 개월째 하락할 때 신주류가 안 받쳐줬으면 후보 자리도 보전하기 힘들었던 것 아니냐”며 배신론이 터져나오는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노대통령을 오래 모셔온 측근들은 이같은 문제의 원인을 노대통령이 주류 정치인으로서 활동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한 측근의 설명.

    “노대통령이 예전에 ‘YS가 3당합당을 하지 않았다면 사무총장도 하고, 원내총무, 정책위의장도 했을텐데…’라고 아쉬워한 적이 있다. 사무총장을 하면 당과 조직을 알고, 원내총무를 하면 의원들과 국회를 알고, 정책위의장을 하면 정부 메커니즘과 관료 인맥을 알게 되는데,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얘기다. 3당합당을 거부하고 정치권 내에서 비주류의 길을 걸으면서 노대통령은 당3역 같은 자리를 거치지 못했고, 그것이 정치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여러 덕목을 배우지 못한 이유가 됐다. 부산상고를 졸업한 이후 고시공부를 하고 변호사로 성장하는 인생역정에서 여유를 느낄 기간이 없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좀처럼 행동에 나서지 않는 성격 때문에 최병렬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과는 대화가 잘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측근도 있다. 그는 “노대통령은 정치인 중에서 이인제(李仁濟) 의원을 가장 싫어하고, 그 다음으로 5공 출신을 싫어한다. 그러니 최대표와 제대로 말이 통할 리가 없다. 서청원(徐淸源)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가 됐다면, 아마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고 말했다.

    문희상 비서실장은 지난해 8월 민주당 대선기획단장을 맡았을 당시 노후보를 가리켜 “잘 조련하면 명마(名馬)가 될 야생마”라고 말한 적이 있다. 꼭 1년여가 지난 지금 노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문실장은 노대통령에 대해 마음속으로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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