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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폐허된 정치, 찢겨진 사회…한국은 몇시인가

국회 소추 당한 노무현 정치 1년

  • 글: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국회 소추 당한 노무현 정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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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11일 오전 회견에서 “잘못한 게 뭔지 모르는데 시끄러우면 무조건 대통령이 원칙에 없는 일을 해서 적당하게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것은 좋은 정치적 전통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대결과 충돌의 악순환 끝에 결국 탄핵소추안은 거대야당의 힘에 의해 가결됐고,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탄핵소추를 당한 ‘불행한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여기에는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노 대통령 특유의 정치스타일이 크게 작용했다. 원칙에 있어 타협하지 않는 일관된 태도는 어떤 면에서는 그를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원동력이었다.

패배를 예상하면서도 지역주의 타파라는 명분을 내걸고 부산 출마를 세 차례나 감행했고, 2002년 대선 때 후보단일화를 막판까지 거부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1988년 야당이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유보에 합의하자 당시 통일민주당 소속 의원이었던 노 대통령은 국회의원직 사퇴서를 내고 지방으로 잠적했고, 1989년 초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에 나와 변명으로 일관하는 석명서를 읽자 국회의원 명패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과 비타협적 정치스타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노무현류’의 정치스타일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두고도 노 대통령의 일부 측근들은 “노 대통령은 지난 15년 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고개를 숙여본 일이 없다. 해본 적이 없고 그게 체질이 돼 있는데, 쉽게 숙일 수 있었겠냐”고 말한다.

노 대통령의 비타협적 정치관은 1990년 1월 3당합당 합류를 거부한 데에서 비롯됐고 이후 더욱 고착됐다. 이어 정치권의 본류가 아닌 비주류의 길을 걸었고 거기에서 ‘노무현류’ 정치는 완성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386 측근 중의 한 명인 정윤재(열린우리당 부산 사상구 후보)씨는 “노 대통령이 과거 정치역정을 회고하면서 가끔 ‘내가 3당 합당 때 김영삼 대통령을 따라갔다면 아마 정책위의장도 했을 거고, 원내총무나 사무총장도 해봤을 거다. 그랬다면 내 정치인생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고 말하곤 했다”고 소개한 적이 있다.

원내총무를 하면 국회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배우는 동시에 상대 정당과 타협하는 법을 배우고, 사무총장을 했다면 자금과 조직을 배우고, 정책위의장을 했다면 정부 고급관료들과 호흡을 맞추게 돼 정부의 생리를 알게 되는데 그런 경험을 갖지 못했음을 은연중에 토로한 것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 3김식 정치메커니즘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 순기능 작용과 동시에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목적을 달성하는 유연함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역기능으로 작용했다.

“쌀 한 톨 안 남기는 게 습관”

이런 그의 태도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대로 유지됐고, 거대야당이 지배하는 국회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취임한 지 2개월여 만에 국회는 고영구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해 ‘임명 부적절’ 의견을 냈으나, 노 대통령은 “시대착오적인 색깔 덧씌우기를 하고 있다”며 임명을 강행했다.

지난해 9월 야당이 노무현 정부 내각의 상징이던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가결하면서 또다시 충돌이 빚어졌다. 노 대통령은 한동안 해임건의 수용을 거부하다가 10여일이 지나 김 장관 사표를 수리했고, 이는 국회에 상정돼 있던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로 이어졌다. 타협할 줄 모르는 대통령과 거대야당의 대결상태는 이번 탄핵사태가 있기 전부터 여러 차례 되풀이된 셈이다.

노 대통령의 고집스런 행동철학은 사생활에서도 종종 드러난다. 지난해 가을 청와대 관저에서 참모들과 식사를 하던 노 대통령은 삶은 호박에 약밥을 얹은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어먹으려다 실수로 식탁에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약밥에 섞여 있던 잣, 대추, 밤이 흩어지고 말았는데, 노 대통령은 이것을 일일이 손으로 집어먹었다.

옆에서 함께 식사를 하다가 이를 지켜본 정찬용 인사수석비서관이 “꼭 드시고 싶으시면 주방장을 불러서 하나 더 갖다달라고 하지, 그걸 다 주워서 드십니까? 요즘은 애들도 그러지 않는데, 다른 자리에서는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점잖게 충고했다.

대개는 “그런가요?” 하고 가볍게 넘어갔을 일인데, 노 대통령은 정색을 하고 반박했다.

“나는 1946년생으로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에 자랐습니다. 쌀 한 톨이라도 남기지 않는 것이 습관처럼 돼 있습니다. 정 수석도 잘 알면서 왜 그래요. 그리고 음식을 남겨서 버리면 환경에도 좋지 않습니다.”

노 대통령이 조목조목 따지면서 식탁 위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먹은 행위를 정당화하는 반론을 펴는 바람에 대통령의 ‘품위’를 생각해서 한마디 꺼냈던 정 수석만 머쓱해지고 말았다. 정 수석은 그 때 일에 대해 “노 대통령의 얘기는 ‘솔직히 말해서 너나 나나 똑같은 촌놈인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얘기하느냐’는 것으로 들렸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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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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