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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폐허된 정치, 찢겨진 사회…한국은 몇시인가

국회 소추 당한 노무현 정치 1년

  • 글: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국회 소추 당한 노무현 정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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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적당한 관용이나 애매모호한 타협을 싫어하는 노 대통령의 의식의 저류에는 비주류 의식, 나쁘게 말하면 변방의식이 강하고 넓게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3월11일 기자회견에서 형 건평씨에게 인사청탁을 한 대우건설 남상국 전 사장을 향해 “좋은 학교 나오시고 성공한 분들이 시골에 있는 사람에게 머리 조아리고 돈 갖다주고 그런 일 말아달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의식의 단편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또한 2002년 민주당 경선 당시 돌풍을 일으킬 때 일부 보수언론이 자신을 깎아내리는 보도를 계속하자 노 대통령은 사석에서 “일부 언론에서는 내가 마치 ‘만적의 난’이라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한 적도 있다.

노 대통령의 비타협주의는 ‘숫자의 정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로 나타났다. 여소야대 국회라는 상황을 맞았지만, 노 대통령은 인위적인 정계개편이나 야당의원 흡수를 통한 안정의석 확보에는 애초부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과거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전격적인 3당합당을 통해 여소야대를 거여(巨與) 구도로 전환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의원 빼내기를 통해 과반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 전례가 있다. 그렇지만 과거 3당합당을 거부했던 노 대통령으로서는 ‘자기부정’이 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접근방식을 취할 수도 없었고, 취할 의사도 없었다.



생사 갈리는 승부수 즐겨

그는 오히려 ‘뺄셈정치’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자신의 원내 지지세력을 줄이는 쪽의 선택을 했다. 2002년 12월 대선 승리 직후,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조순형 추미애 천정배 신기남 의원 등의 주도로 민주당 의원 23명이 당 해체를 결의했다. 대선 승리의 기세를 몰아 민주당을 노무현당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당시 이를 주도했던 천정배 의원은 제주도로 휴가를 가있던 노무현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속전속결로 민주당 해체를 추진하자고 건의했지만, 노 당선자의 반응은 간단했다. “그래도 당내 절차를 밟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는 답이었다.

노 당선자가 즉각적인 민주당 해체 추진에 소극적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들의 활동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당시 노 당선자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고, 이 때를 기점으로 두 사람의 거리는 점차 멀어져갔다. 그리고 이번 탄핵 사태에서는 극과 극의 위치에 서고 말았다.

이후 민주당의 환골탈태 작업은 구주류와 신주류가 대립하며 질질 끌어 진척되지 못하다,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30%대까지 추락한 최악의 시점인 지난해 8월 분당(分黨)으로 구체화됐다. 원내 2당을 목표로 삼았던 노무현 지지 의원들은 47명의 의원을 규합하는 데 만족해야 했고, 그 결과는 대통령 탄핵 가결선인 원내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야당에 내주는 것이었다.

이처럼 세몰이식 정계개편보다는 당내 절차를 중시했던 노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천정배 의원은 “노 대통령이 법률가 출신이라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고 분석한 적이 있다. 항상 세(勢)가 불리한 위치에서 정치를 해오다 보니, 노 대통령은 ‘국민의 힘’ ‘여론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여론의 힘’을 얻기 위해 명분을 앞세워 정면돌파의 승부수를 던지는 길을 선택해왔다. 그것도 나중에 크게 문제가 될 성싶으면 빠져나갈 퇴로를 만들어놓는 정치적 수사로 덧칠한 승부수가 아니라, 승패와 생사가 분명하게 갈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여기에 법률가적 면모가 투영되면서 그의 승부수에는 법률적 계약서처럼 늘 갑과 을이 분명했고 효력과 조건이 확실하게 따라붙었다. 이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그냥 해보는 얘기가 아니라, 진검승부를 건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반영돼 있음을 뜻한다.

2002년 대선후보가 된 뒤 8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도가 급락세를 보이자 노 대통령은 “부산 경남 지역에서 단 한 명의 광역단체장도 건지지 못하면 재신임을 묻겠다”고 선언했고, 민주당내 ‘반(反)노무현’ 의원들이 후보교체론을 거론하자 재경선을 주장했다.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발언이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도, ‘대통령직’을 내건 조건이 분명한 승부수다. 탄핵 표결을 앞둔 상황에서 내던진 총선 결과와 재신임 연계방안도 ‘대통령직’을 조건으로 건 도박 같은 승부수다.

대통령후보 시절부터 노 대통령을 죽 지켜본 문희상 대통령정치특보는 지난해 11월 이를 ‘올인(All-in)의 정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은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나라와 국민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목표 달성에 집착하는 불안한 지도자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의 행태에 익숙해 있는 국민에게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기도 했다. 또한 권력 전체를 건 승부수는 유권자에게 자유로운 의사표시보다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개혁독재’의 발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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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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