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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격론! ‘과거사 전쟁’

권력 주도 과거청산, 도식적 이분법은 위험천만!

  • 글: 안병직 서울대 교수·서양사학 ahnbj@snu.co.kr

권력 주도 과거청산, 도식적 이분법은 위험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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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좇았던 매국노’라는 역사상은 식민지 현실에 적응하는 다양한 행위양식의 복합적 측면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 규범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친일행위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역사교육으로는 문제가 있다.

반인도적 행위는 규명해야

현재의 도덕적 규범을 잣대로 역사적 행위를 평가하는 역사교육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에서 당위성을 인정받을지 모르나 실제 현실상황에서는 자칫 공허한 것이 되기 쉽다. 역사적 행위에 대한 비판이 공감을 얻고, 진정한 역사의 교훈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선택하는 결정과 행위가 어떤 것이며, 그것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향후 유사한 현실상황에 당면하였을 때 역사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과거청산의 진정한 의미다.

셋째, 현재 논의되는 과거사 진상규명은 일제 강점기뿐 아니라 해방 이후 전쟁과 독재 시기를 그 대상으로 포함한다. 과거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뜻에 따라 지난 세기 한국현대사 전체가 과거사 진상규명이라는 도마에 올라 있는 셈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과 테러,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아래의 의문사와 인권유린 등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반하는 반인도적인 행위로 친일행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이 경우 사건의 진상이 은폐, 왜곡되었다면 철저히 규명해 책임을 가리고 피해자의 희생과 고통에 대해서는 보상이나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전후 한국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진상규명에도 유의하고 경계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규명해야 할 과거사를 도식적이고 정형화된 이분법적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마치 선과 악, 흑과 백의 구분처럼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해 시비를 가리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외국의 과거청산 사례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범주가 불분명한 경우가 종종 있다. 게토와 강제수용소에서 나치 독일군의 업무를 보조하면서 유대인 학살을 도왔던 일단의 유대인이나 백인지배체제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경찰, 프랑스군에 부역한 알제리 인 등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기의 과거사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절대적으로 양분하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진상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전쟁기의 테러와 학살의 양상은 다양하며 학살과 보복의 연쇄 속에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경험의 사례가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악의 이분법적 시각과 아울러 지나친 도덕적 우월의식과 독선도 경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살, 테러, 고문 등 반인도적인 범죄행위를 규명하고 청산하는 작업은 명분과 도덕성을 강조하는 만큼 자칫 균형감각을 잃고 독선에 빠지기 쉬우며, 일방적인 매도나 흑백논리에 의한 심판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에 대한 테러나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역시 그러하다. 특히 이 경우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이념적 편향성을 극복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한국전쟁의 성격과 책임문제를 소홀히 한 채 과거사 규명이 이념적 편향성을 띤다면 청산해야 할 좌우 이념 갈등과 ‘사상(思想) 전쟁’이 오히려 다시 재현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스페인 ‘망각협정’의 교훈

20세기 후반 한국사회가 겪은 전쟁과 독재의 경험을 다루는 데는 스페인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페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난 세기 좌우 이데올로기에 의한 내전과 참혹한 동족상잔 그리고 장기간 독재를 경험한 나라로 과거사 처리 문제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비교의 대상이다.

1936∼39년 스페인 내전기에 수십만 명이 좌파와 우파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에 희생되었으며,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의 집권 초기에도 학살, 테러, 고문, 추방 등의 비인도적 행위가 대량으로 자행됐다. 이처럼 스페인은 내전과 독재시기 동안 불법과 폭력에 의해 엄청난 희생이 따랐지만 스페인의 과거사 처리방식은 의외로 단순했다.

스페인은 1975년 독재자 프랑코의 죽음 후 사면법을 제정하여 고문, 테러, 학살행위를 포함하여 내전 및 독재시기에 좌익과 우익세력이 행한 모든 불법, 폭력행위에 대해 일대 사면조치를 단행했다. 1977년에 발효된 이 사면법은 프랑코 사후 민주화를 향한 이행의 시기에 구체제의 중심이었던 군부 및 보수우익세력과 사회노동당 중심의 좌파세력 사이에 이뤄진 정치적 타협의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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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병직 서울대 교수·서양사학 ahnbj@sn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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