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권력 주도 과거청산, 도식적 이분법은 위험천만!

  • 글: 안병직 서울대 교수·서양사학 ahnbj@snu.co.kr

    입력2004-09-22 16: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권력 주도 과거청산, 도식적 이분법은 위험천만!

    민간인 학살, 의문사, 인권유린 등 반인도적 행위는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사진은 2001년 12월 철저한 의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재야인사들.

    바야흐로 한국사회는 마치 과거와의 ‘전쟁’에 돌입한 듯하다. 무엇보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그러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과거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국가적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 필요성을 되풀이해 역설하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 국정의 중추기관도 자체적으로 규명해야 할 과거사 과제를 제시하며 대통령의 뜻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집권 여당을 비롯해 친여 언론과 사회단체 역시 과거사 규명과 청산을 위한 입법과 여론 조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국가적 사업’ ‘국정의 우선과제’가 된 과거사 규명 및 청산 시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과거청산 논의에 대한 비판

    현재 우리 사회에 과거청산 문제를 두고 찬반 입장 사이에 심각한 논란과 갈등이 일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 문제를 ‘철저한 규명과 처벌을 통해 청산해야 한다’는 ‘청산론’과 ‘갈등을 피하고 사회통합을 위해 가능한 한 덮고 관용해야 한다’는 ‘관용론’의, 대립된 두 입장의 문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청산과 관용,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정하기에 앞서 따져보고 숙고해야 할 것은 과거청산의 대상, 기준, 방식 등이 과연 그 명분에 부합하고 합리적인가 하는 점이다.



    이 글은 바로 그런 관점에서 지금 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선도하는 과거청산 논의를 비판하고자 한다.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과거청산 논의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이 친일 과거청산문제다. 친일파 문제는 그동안 우리 사회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어온 것이고, 최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특별법’의 제정 및 개정 시도를 계기로 정치적·사회적 이슈로 공론화되고 있다.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 역사는 우리 민족에게 불행하고 부끄러운 과거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잘 알아야 할 부분이라는 점에서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규명하려는 작업은 매우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현재 논의중인 친일 과거청산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결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지적할 것은 친일행위 규명을 일제 식민지배 청산작업의 전부인 양 여기는 경향이다. 일제 강점기와 관련해 과거청산의 목적은 불행한 역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역사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는 데 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일제 과거청산은 식민지배라는 불행한 역사의 면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성찰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친일세력 개개인의 행적을 밝혀내고 심판함으로써 식민시대의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간단하고 편리한 방식일지는 몰라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려는 태도나 다를 바 없다.

    30년이 훨씬 넘게 지속된 일제 식민통치의 역사적 책임을 단지 소수 친일세력에만 한정함으로써 오히려 일제 강점기 역사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친일세력 청산을 부르짖는 데는 여러 가지 명분과 논변이 있다. 즉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모순과 폐단의 주요인은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친일세력이 온존한 데 있으며, 따라서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그들의 반민족행위를 규명, 심판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례는 戰時라는 특수성 지녀

    친일행적을 은폐하거나 호도(糊塗)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렵고 비난받아야 할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학살, 고문, 인권유린, 인종차별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거스르는 반인륜적 행위가 아니라 조국과 민족이라는 특수한 가치에 반하는 부역행위를 청산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물론 외국의 사례 가운데 조국을 등지고 적과 내통하며 부역한 행위를 규명하고 청산한 경우가 없지는 않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 부역자를 대량 처벌한 프랑스의 경우가 그러하다. 전후 10만여 명의 대독(對獨) 부역혐의자를 재판에 회부해 8만여 명을 처벌한 프랑스는 우리 사회에서 과거청산의 모범사례로 간주되며, 친일파 청산과 관련해 비교의 대상으로 빠짐없이 거론된다.

    그러나 프랑스의 나치부역자 청산 사례가 우리에게 과연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또 그것이 정말 모범적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의 여지가 많다. 우선 프랑스의 경우 독일이 점령한 시기는 전시에 해당하고, 레지스탕스의 관점에서 보면 부역행위는 직접적이고 명확한 이적행위였다. 그 점에서 36년간 일제 통치가 이어진 우리 경우와 비교하기 어렵다.

    또 프랑스에서는 전시상황에서 초법적 처벌이 행해졌고, 전후 사법적 처리단계에서도 처벌의 형평성, 일관성 등에 많은 문제가 따랐다. 사실 프랑스의 사례는 숙청과 처벌을 통한 인적·제도적 청산 노력만으로 과거의 불행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후 프랑스 문단에서 진행된 부역 지식인 숙청작업은 그 점을 특히 잘 보여준다. 프랑스 문단의 부역 문인 숙청작업은 처벌론과 관용론이 맞서는 가운데 분열과 반목, 갈등과 혼란만 초래했을 뿐 성찰과 치유의 노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1980년대 이래 프랑스 사회가 종전 후 숙청당한 부역 지식인들을 반민족행위가 아니라 파시즘이 지배한 당대의 지적·문화적 풍토의 측면에서 재조명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철저한 과거청산 과정이 있었다는 것은 나치 점령기 동안 영웅적인 레지스탕스 운동을 전개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후 프랑스가 국가재건을 목적으로 창조한 하나의 신화에 불과한 면이 있다. 알제리 사례는 그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알제리의 식민종주국이었던 프랑스는 1954년에서 1962년까지 8년여에 걸친 알제리 독립전쟁 기간 중 학살과 고문 등 비인도적인 범죄를 자행함으로써 또 하나의 과거청산 과제에 당면했지만 오랫동안 망각과 침묵, 은폐로 일관했다. 알제리 식민지배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태도는 나치 지배에 대한 태도와는 대조적인 것으로 과거청산 작업이 윤리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잣대와 기준

    둘째, 친일세력 청산작업의 또 다른 문제점은 그 잣대와 기준에 있다. 집권여당 의원이 중심이 되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과 최근 여당이 다시 국회에 제출한 이 법의 개정안은 현재 논의중인 친일청산의 잣대와 기준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진상규명의 대상인 친일행위에 대한 규정이 극히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점, 사실상 구체적인 행위가 아니라 특정 지위나 직책 자체를 조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규정은 노 대통령을 포함하여 유신헌법을 공부해 국가고시를 치르고 법관의 지위에 올랐던 사람은 모두 유신시대 과거사 규명과 관련해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주장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그런 주장이 타당하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법안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이 법안이 입법화될 경우 악용될 소지가 많으며, 인권침해와 명예훼손이 극도로 우려된다.

    최근 우리는 우려하는 현상이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음을 목격한 바 있다. 친일세력 청산을 앞장서 부르짖던 여당 의원들이 오히려 일제시대 부친의 경력이 문제가 되어 마치 부메랑 현상처럼 정치적·도덕적으로 타격을 입은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듯이 입법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악용의 소지가 농후한 법률을 용인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특별법의 취지에 대해 특정 인물이나 언론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사실 이 법안만으로 본다면 친일행위 규명의 의도나 목적의 순수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친일 과거사 규명과 관련해 정략적인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불식하고 싶다면, 친일행적을 폭로함으로써 단순히 증오나 울분을 해소하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기준과 방식에 대해 거듭 숙고하고 신중을 기해야 마땅하다.

    친일 과거청산이 일방적이고 흑백논리적인 심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친일행위 자체뿐 아니라 행위의 배경인 역사적 상황과 맥락에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성세(盛世)를 구가하던 일본제국주의의 힘이 식민지 엘리트집단의 현실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통치권력의 억압과 회유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하는 등의 물음은 친일행위 규명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역사적 상황논리를 통해 친일행위에 면죄부를 주자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늦게 태어난’ 행운을 누리는 자 역시 스스로 역사적 경험의 당사자가 되어 자신이 선택할 행동의 가능성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자는 의미다.

    과거사 규명이나 청산이 과거사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제에 순응하고 협력한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민족반역죄로 몰아 도덕적으로 낙인찍고 정치적으로 응징하겠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바람직한 것은 친일행위를 ‘한 개인의 악’이 아니라 ‘한 시대의 불행’으로 인식하고, 비판과 더불어 연민의 시선으로 보아야 하며, 과오를 지적하고 책임을 추궁함과 아울러 그 과오에 대해 함께 가슴 아파해야 한다.

    사실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좇았던 매국노’라는 역사상은 식민지 현실에 적응하는 다양한 행위양식의 복합적 측면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 규범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친일행위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역사교육으로는 문제가 있다.

    반인도적 행위는 규명해야

    현재의 도덕적 규범을 잣대로 역사적 행위를 평가하는 역사교육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에서 당위성을 인정받을지 모르나 실제 현실상황에서는 자칫 공허한 것이 되기 쉽다. 역사적 행위에 대한 비판이 공감을 얻고, 진정한 역사의 교훈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선택하는 결정과 행위가 어떤 것이며, 그것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향후 유사한 현실상황에 당면하였을 때 역사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과거청산의 진정한 의미다.

    셋째, 현재 논의되는 과거사 진상규명은 일제 강점기뿐 아니라 해방 이후 전쟁과 독재 시기를 그 대상으로 포함한다. 과거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뜻에 따라 지난 세기 한국현대사 전체가 과거사 진상규명이라는 도마에 올라 있는 셈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과 테러,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아래의 의문사와 인권유린 등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반하는 반인도적인 행위로 친일행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이 경우 사건의 진상이 은폐, 왜곡되었다면 철저히 규명해 책임을 가리고 피해자의 희생과 고통에 대해서는 보상이나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전후 한국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진상규명에도 유의하고 경계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규명해야 할 과거사를 도식적이고 정형화된 이분법적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마치 선과 악, 흑과 백의 구분처럼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해 시비를 가리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외국의 과거청산 사례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범주가 불분명한 경우가 종종 있다. 게토와 강제수용소에서 나치 독일군의 업무를 보조하면서 유대인 학살을 도왔던 일단의 유대인이나 백인지배체제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경찰, 프랑스군에 부역한 알제리 인 등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기의 과거사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절대적으로 양분하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진상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전쟁기의 테러와 학살의 양상은 다양하며 학살과 보복의 연쇄 속에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경험의 사례가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악의 이분법적 시각과 아울러 지나친 도덕적 우월의식과 독선도 경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살, 테러, 고문 등 반인도적인 범죄행위를 규명하고 청산하는 작업은 명분과 도덕성을 강조하는 만큼 자칫 균형감각을 잃고 독선에 빠지기 쉬우며, 일방적인 매도나 흑백논리에 의한 심판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에 대한 테러나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역시 그러하다. 특히 이 경우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이념적 편향성을 극복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한국전쟁의 성격과 책임문제를 소홀히 한 채 과거사 규명이 이념적 편향성을 띤다면 청산해야 할 좌우 이념 갈등과 ‘사상(思想) 전쟁’이 오히려 다시 재현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스페인 ‘망각협정’의 교훈

    20세기 후반 한국사회가 겪은 전쟁과 독재의 경험을 다루는 데는 스페인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페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난 세기 좌우 이데올로기에 의한 내전과 참혹한 동족상잔 그리고 장기간 독재를 경험한 나라로 과거사 처리 문제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비교의 대상이다.

    1936∼39년 스페인 내전기에 수십만 명이 좌파와 우파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에 희생되었으며,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의 집권 초기에도 학살, 테러, 고문, 추방 등의 비인도적 행위가 대량으로 자행됐다. 이처럼 스페인은 내전과 독재시기 동안 불법과 폭력에 의해 엄청난 희생이 따랐지만 스페인의 과거사 처리방식은 의외로 단순했다.

    스페인은 1975년 독재자 프랑코의 죽음 후 사면법을 제정하여 고문, 테러, 학살행위를 포함하여 내전 및 독재시기에 좌익과 우익세력이 행한 모든 불법, 폭력행위에 대해 일대 사면조치를 단행했다. 1977년에 발효된 이 사면법은 프랑코 사후 민주화를 향한 이행의 시기에 구체제의 중심이었던 군부 및 보수우익세력과 사회노동당 중심의 좌파세력 사이에 이뤄진 정치적 타협의 소산이다.

    흔히 ‘망각협정’이라 부르는 이 사면법은 보는 이에 따라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 과거의 범법행위를 규명하고 책임을 묻기는커녕 오히려 사면하고 덮어버림으로써 과거사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망각협정’에 의한 스페인의 과거청산 방식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면도 있다.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구체제 세력이 건재한 가운데 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정한 타협과 양보가 불가피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스페인 국민 대다수가 정치세력간 타협에 의해 이뤄진 이러한 과거사 처리방식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 4반세기 동안 스페인은 구세력의 위협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과거사 문제가 정치적·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는 일은 없다. 좌우익 상호 가해와 보복이 이어졌고, 따라서 좌우 할 것 없이 책임을 공유한 내전기의 과거사를 재론하는 것은 그동안 아문 상처를 건드리고, 잊고 싶은 참상을 다시 떠올리는 것일 뿐이라는 태도가 지배적이다.

    또 정치적 억압과 급속한 경제발전이 동시에 진행된 독재시기에 대해서는 그 공과를 아울러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독재자가 사라진 뒤 과거청산의 과제에 당면한 스페인 사회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한 과거사를 들추어 시비를 가리려 함으로써 다시 분열과 반목을 조장하기보다는 서로 관용과 화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불행한 과거를 잊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망각협정을 받아들인 대다수 스페인 사람들의 태도를 사회정의에 부합하지 못하고 불의와 타협한 수치스럽고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난할 것인가.

    명분과 도덕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 균형감각을 잃은 독선, 선악의 이분법적 시각 등은 과거청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물론 진상과 책임규명이 없는 화해란 진정한 화해가 아니라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망각’에 의한 스페인의 과거사 처리방식을 과거청산의 ‘실패 사례’라고 간단하게 규정하고 넘길 수는 없다.

    진정한 과거청산은 과거지향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이라는 점에서 스페인의 경우처럼 과거의 질곡과 족쇄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오히려 현명하고 지혜로운 결정일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부작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과거사는 들춰내야 한다는 ‘청산지상주의자’나 과거사 규명을 관용과 화해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는 ‘맹목적 청산론자’가 아니라면 스페인의 사례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는 한번도 과거청산에 나서보지 못했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스페인의 사례는 하다못해 작은 위안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회적 기억을 만들 것인가

    넷째, 불행한 과거사를 잊고자 한 스페인의 과거청산 방식을 가리켜 ‘망각’이라고 표현하지만 기억과 망각이 대비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보존하지 않는 한 기억이란 선택적이고, 따라서 망각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그 점에서 사실 기억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며, 특히 사회적 차원의 기억은 그 사회가 선택하고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이 갖는 이러한 의미는 과거청산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선 과거사 규명과 청산작업은 한마디로 사회적 기억을 만드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즉 그것은 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의 관점에서 지난 역사적 경험 가운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을 특별히 선택하여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거청산을 사회적 기억의 창출 과정으로 본다면, 과거청산 논란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사회적 기억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기억의 종류나 사회적 기억을 통해 지향하는 가치를 둘러싸고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이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과거청산 논란도 마찬가지다. 현재 과거사 진상규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논란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적 기억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 대통령이 포괄적인 과거사 규명을 강조하고, 그에 따라 일제 강점기에서 한국전쟁과 유신독재를 거쳐 5·6공 정권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한국현대사 전체가 규명 대상으로 망라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실 노 대통령이 중심이 된 현 집권세력은 과거사 규명을 통해 20세기 한국현대사 전반에 대한 재해석과 재평가를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현대사를 보는 노 대통령의 시각이 어떤 것인지는 그동안 보도된 대통령의 발언들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2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를 청산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바 있고, 최근에는 좌파 독립운동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이제까지의 현대사를 가리켜 “시대를 거꾸로 살아온 사람들이 득세한 역사”라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複數의 해석이 바람직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의 한국현대사를 불의와 기회주의가 지배한, 왜곡과 굴절의 역사로 해석하는 것 자체를 굳이 비판하고 거부할 필요는 없다. 20세기 우리 현대사를 식민지배, 내전, 독재 등 내외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빈곤을 극복하고 정치발전을 성취한 성공적인 역사로 보는 것과 똑같이 그것 역시 한국 현대사에 대한 하나의 역사해석으로 정당하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복수의 해석을 허용한다. 또한 역사 해석에서는 절대적인 해석보다 상호 대립하고 경쟁하는 복수의 해석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역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새로운 해석이나 재해석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역사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그 해석이 절대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오늘날 역사가들 가운데 단 하나의 해석만이 절대적으로 정당하다는 의미에서 역사의 ‘진실’이나 ‘객관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과학이 역사적 지식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나 역사는 ‘객관적’ 입장에서 지나간 과거를 ‘실제 있었던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이제 역사가들은 역사의 인식 대상으로서 과거의 현실은 직접적으로 지각할 수 없고 검증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역사란 근본적으로 낯설고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나간 과거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역사란 역사가가 구성하고 ‘창안’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따르면 역사는 결코 퍼즐처럼 조각난 그림을 하나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직접 팔레트에서 색을 선택해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역사는 합의·청산 대상 아니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에서 보면 한국 현대사를 성공과 실패, 긍정과 부정, 희극과 비극의 어떤 관점에서 보든 하나의 역사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한국 현대사의 현실은 명암이 교차하는 대단히 복합적인 것이고, 따라서 그런 엇갈린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 대한 하나의 특정 해석이 절대적으로 유효한 양, 마치 그동안 은폐, 왜곡된 역사의 진실인 양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역사의 진실과 객관성을 내세워 역사를 한 가지 관점에서 파악하고 단 한 가지 해석의 절대적인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가 제공하는 것은 과거에 관한 진실이 아니라 진실의 가능성일 뿐이다. 역사는 항상 다시 씌어지고, 모든 역사해석은 언제나 수정된다.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도덕적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할 수 있지만 역사가 그 해석을 절대적으로 정당화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논란과 시비의 대상일 뿐, 결코 합의와 청산의 대상은 아니다.



    역사에서 객관성과 진실을 바랄 수 없다면 역사는 항시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 해석에 권력이 개입할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권력에 의한 과거규명과 청산을 정당화하는 것은 현재의 정치적 필요성이지 과거의 역사적 진실이 아니다. 극히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역사 지식, 그리고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의 이분법적 역사인식을 잣대로 한 과거사 규명은 역사의 진상이나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것은 정쟁의 도구이자 정치적 헤게모니를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성찰과 화해의 방안이 될 수는 없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