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호

2005년 겨울 달군 ‘북한인권국제대회-서울’

민간 주도… 北 인권 개선 국제연대화 전기 마련

  •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6-01-13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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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겨울 달군 ‘북한인권국제대회-서울’
    “(상략)…우리는 이번 서울대회를 새로운 전기로 삼아 국제적 연대를 통해 북한 정권을 향해 북한 주민의 참혹한 인권 억압을 중지하라는 압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며, 아래의 합의된 입장을 기초로 지속적인 공동보조를 취해 나갈 것이다…(하략).”(2005년 12월9일, 북한인권국제대회 ‘서울선언’)

    지난 12월8일 개막된 ‘북한인권국제대회-서울’(공동대회장·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김재정 대한의사협회장, 유세희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이 세계인권선언 57주년 기념일인 12월10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북한인권콘서트’를 끝으로 사흘간 일정을 마쳤다.

    이번 대회는 지난 11월 유엔총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결의안’이 통과된 이후, 한국을 비롯한 10개국 50여 인권단체와 100여 명의 북한 인권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개최한 첫 국제행사. 그보다 앞서 7월19일 미국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 주최로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북한인권국제회의의 차기 행사 성격이 짙다.

    하지만 북한과 지척에 있으면서도 ‘북한 인권 무풍지대’란 오명을 듣는 서울에서 최초로 열린 대규모 북한 인권 관련 행사라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국제적 인권 네트워크를 갖춘 프리덤하우스는 1978년부터 해마다 세계 192개국의 민주주의 및 정치적 자유 수준을 비교 평가한 ‘세계자유상황 보고서’를, 1980년부터는 각국의 ‘언론자유 평가보고서’를 발표해왔다. 프리덤하우스는 2005년 한국의 인권 수준을 세계 58위로 평가하고, 북한은 미얀마·소말리아 등과 함께 최하위 9개국에 포함시킨 바 있다.



    북한인권대회의 세 가지 목적

    이번 대회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한국 내에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것. 이는 지금까지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가 7000여명에 달하고, 그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사회의 인권 유린 실태가 공개됐음에도 아직껏 구체적 내용을 모르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 하나는 국제적 성격을 띤 이번 대회를 통해 북한 정권에 인권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전세계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더불어 북한인권운동을 벌이는 국내외 단체들이 국제적 연대를 실현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 이번 대회를 연 취지다.

    대회 개막을 알린 행사는 12월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북한인권운동보고회.’ 내외신 기자 150여 명이 몰려 취재 열기가 뜨거웠던 이 행사에서 이번 대회 상임고문인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친북반미를 주장하는 (남한) 학생의 0.1%만이라도 북한에 가서 북한 청년들과 함께 노동하고 북한 군대를 체험하면 자신들의 주장이 신중해질 것”이라며 “북한 독재집단 범죄행위의 엄중성은 인권 말살과 인권 침해의 마수를 남한에까지 뻗치고 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보고회에서는 북한 인권 실태에 관한 탈북자 김수철씨와 김태산씨의 증언도 이어졌다. 특히 2003년에 북한 정치범 수용소인 요덕수용소에 수감된 바 있는 김수철씨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요덕수용소 서림천 구역에 있던 수감자 121명의 명단과 수감 이유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수감자 121명 중 85명은 2003년까지 살아 있었으나, 26명은 고문 후유증이나 영양실조로 사망했고 7명은 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터져나왔다. 탈북자인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남한 정부는 인권보다는 평화 정착을 우선하면서 김정일 독재체제를 용인하고, 북한 인권 문제엔 눈감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국제기독연대 인권옹호 변호사인 엘리자베스 바사도 ‘유럽연합(EU)의 북한 인권 결의안 제안과정과 채택의 의미’라는 주제발표에서 “지난 11월 유엔에서 통과된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해 남한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은 실망스럽다”며 우리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정면 비판했다.

    그러나 남한 내에서 북한인권운동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도 없지 않았다.

    “남한 내 탈북 대학생 단체가 15개에 달하고 회원도 500명이나 된다”고 밝힌 김익환 북한인권학생연대 대표는 “학생들 사이에 북한 관련 학회와 소모임도 늘고 있어 북한인권운동이 한국 학생운동의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감을 피력했다. 손광주 ‘데일리NK’ 편집장도 “비록 그 역사가 10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북한인권운동은 단순한 민족지상주의 개념에서 벗어나 세계주의 차원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북한인권운동은 종교계와 학계뿐 아니라 뉴라이트 운동으로도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열기 넘친 본행사

    대회 둘째 날인 12월9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본행사 ‘북한인권국제회의’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역할’ ‘북한인권개선 전략회의’ ‘NGO 회의’의 3개 세션으로 나뉘어 하루 종일 진행됐는데도 참가자들과 일반 시민, 대학생 등 700여 명이 몰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음을 드러냈다.

    이 행사에서 이번 대회 공동대회장 중 한 명인 유세희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한국 시민사회의 북한 인권 개선 노력’이라는 주제발표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방관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우리 정부가 2005년 한 해 북한 인권 시민단체에 지원한 금액이 4500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관련 단체의 재정상황이 열악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에서 북한인권운동이 시민운동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으로, 진보를 자처하며 과거 민주화운동을 한 주류 시민단체의 주도자들이 북한 인권에 무관심하고 북한 정권에 관용적인 경향, 그리고 북한 주민이 아니라 북한 정권과의 관계 개선만을 추구하는 정부의 대북정책 등을 꼽았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중국의 역할론도 제기됐다.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수많은 탈북자가 중국 곳곳에서 강제북송당할 두려움에 떨며 숨어 지낸다”고 말했다. 제이 레프코위츠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미국에선 북한 난민을 위한 자금을 승인하는 ‘북한인권법’이 제정됐는데, 앞으로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자금이 사용될 것”이라며 “중국은 탈북자의 난민지위를 인정하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이 탈북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정의용 의원은 중국을 압박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는 않으며, 중국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혀 견해차를 보였다.

    탐 밀리아 프리덤하우스 사무부총장은 “북한인권운동가들을 영입하는 한편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보고서도 계속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 인권 정보, 수집·공개해야

    두 번째 세션인 ‘북한인권개선 전략회의’에서 마이클 호로위츠 미 허드슨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고국에 돌아가 박해를 받게 될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송환해선 안 된다. 탈북자를 북한으로 내모는 중국은 유엔협약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중국 정부의 탈북자 북송을 문제삼지 않는 미국 정부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북한 정권이 쌀과 같이 선별적 배분이 가능한 물자를 지원받을 경우 인도주의적 지원 목적과 무관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대신 병원을 지어줄 것을 제안했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알리기 위해 위성사진 등 북한 인권 관련 정보를 모아 전세계 정부에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탈북자가 본 북한 인권 개선방안’을발표한 강철환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는 “북한에 연간 1억달러어치 이상의 쌀이 공급되는데도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가 굶는 주민이 여전히 많다”고 밝혔다.

    피에르 리굴로 프랑스 북한인권위원장은 “북한 문제는 내부 개혁에 달려 있는데, 국제사회가 북한의 문호 개방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사카나카 히데노리 탈북귀국자지원기구 대표는 ‘일본의 대북(對北) 인권 문제 접근현황’에 대해 말하면서 “최근 북한에 대한 재일교포의 지지도가 크게 떨어졌는데 그들과 힘을 합쳐 활동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세 번째 세션에선 북한 인권 관련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의 북한 인권 개선 촉구가 잇따랐다.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장은 “북한 당국은 납북자의 생사를 확인해주고 서신 교환과 유해 송환을 허용하라”는 요지의 납북자 송환 촉구 호소문을 낭독했다. 1969년 12월 대한항공기로 출국하다 강제납북된 황원씨의 아들인 황인철 납북자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한국에 남아 있는 납북자 가족은 통일의 방해자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편 이번 대회 참가자들은 이날 채택한 이른바 ‘서울선언’을 통해 ▲탈북주민에 대한 가혹한 보복 중단 ▲정치범 수용소 해체 ▲납북자, 국군포로, 납치 일본인의 생사 확인 및 송환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유린 중단 ▲북한 영·유아와 어린이들이 겪는 영양결핍과 의료·교육권 침해 시정 ▲북한 인권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 관심 촉구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 호소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 구성 등 8개항의 촉구사항을 결의했다.

    공론화의 장(場) 열다

    이번 대회는 이렇듯 북한 인권 실태의 공개와 함께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논의하고 수렴하는 실질적인 공론화의 장(場)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탈북자에 대한 보복과 20만명으로 추산되는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의 인권 문제뿐 아니라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폭력과 고문, 공개처형, 불법구금, 한국인 납북과 일본인 납치, 법치와 재판의 부재, 사상과 정치적 자유의 박탈 등 북한 정권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 실태를 망라한 덕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그 하나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소극적 태도. 정부측 인사로는 최성주 외교통상부 군축담당심의관이 참석했을 뿐이다. 이번 대회의 준비위원회는 당초 통일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인권대사, 국가인권위원장, 여야 4당 대표 등 8명에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만 대회 첫날의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참여연대, 경실련, 인권운동사랑방 등 14개 진보성향 단체도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더욱이 임채정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 유재건 국방위원장 등 열린우리당 중진의원 5명은 12월9일 공동성명을 내고, “이번 대회가 정치적 의도에서 진행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며 “미국의 보수 강경파와 한국의 일부 보수세력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는가. 북한 인권을 위해 북한과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생존권 없는 인권은 없다. 북한에 더 많은 식량, 의약품, 비료를 보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대회 개막 당일인 12월8일, 천주교인권위원회와 통일연대 등 20여 단체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북한인권국제대회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어느 사회든 해당 사회의 국민이 사회체제를 결정하고 운영하는 것은 세계인권선언이 보장하는 권리”라며 “북한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자결권을 위협하는 또 다른 인권 침해”라고 공박했다.

    또한 이번 대회 주요 행사의 하나로, 해외동포 대학생 모임 ‘LINK’와 탈북자 학생 단체 ‘통일교두보’ 회원 등 국내외 대학생 300여 명이 12월10일 이화여대에서 열기로 했던 ‘북한인권대학생국제회의’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학생단체간 갈등과 장소를 제공키로 한 대학측 사정으로 회의장소가 이화여대→숙명여대→명지전문대→성신여대로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대회는 북한 인권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환기하는 한편 대북 압력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공고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대회에 이어 2006년 3월말∼4월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 인권단체 주관으로 북한 인권 공론화를 위한 후속 국제회의인 ‘제3차 북한인권대회’를 개최키로 결정한 것. 또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매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즈음해 세계 각지에서 ‘북한인권 국제 캠페인’을 추진하고, 이를 위해 이번 대회 참가자를 중심으로 각국 정부와 민간의 양심세력을 망라한 ‘북한인권을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성키로 하는 성과도 거뒀다.

    “유리병을 깨뜨리자”

    대회 공동대회장을 맡은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는 대회 성과와 관련해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주로 전개돼온 북한 인권 논의에 국내 관련단체와 관계자들의 공식 참여가 이뤄지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이번 대회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며 “앞으로 북한 인권 문제가 남북간 평화 관계 구축과 통일 준비과정에서 절대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널리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총평했다.

    이번 대회의 주제가는 ‘유리병.’ 북한체제를 유리병으로 묘사해 ‘깰 수 없는 유리란 처음부터 있을 수 없어’라고 외치는 노랫말대로 ‘유리병’을 깨뜨릴 날은 과연 그 언제쯤일까. 아마도 이번 대회는 그 유리병을 깨뜨리기 위한 ‘망치질’의 시작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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