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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한나라당의 ‘호남 모시기’

예산지원 최우선, 반성 또 반성… 동토에서 싹 틀까?

  •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점입가경, 한나라당의 ‘호남 모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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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호남 지역에서 민정당 관계자로 있던 C씨는 “호남 사람들은 누가 볼세라 가슴 깊숙이 넣어두고만 있던 민정당과 집권세력에 대한 응어리를 이때부터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민정당 당원 집 담벼락에는 자고 나면 시뻘건 색 글자로 욕설이 씌어져 있곤 했다. 린치 사건도 잇따랐다. 봉변을 당한 민정당원이 많았다. 이전까지 잘 지내던 동네 주민들이 민정당원이라는 이유로 굴비처럼 엮어서 인민재판 하듯 두들겨 팬 일도 있었다. 민정당 관계자는 쉽게 말해 ‘왕따’였다. 하루아침에 천양지차 분위기가 됐다.”

이회창 호남 전략은 ‘포기’

가슴 깊이 잠복해 있던 감정이 한번 표출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다. 여기에다 ‘김대중’이라는 정치적 구심체도 등장한 상황이었다. 호남인들은 김대중이란 이름 아래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그때의 분위기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공보특보를 맡고 있는 이정현씨는 이렇게 정의한다. 그 역시 호남 출신이다.

“호남의 분위기는 ‘우리도 우리 지역 출신 대통령을 한번 가져보자’로 요약될 수 있다. 그것이 선택의 제1 기준이 됐다. 그것은 한마디로 ‘이념’이었다. 이 같은 생각은 DJ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줄곧 호남인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1992년 치러진 14대 대선에서 민자당 김영삼 후보는 호남 지역에서 3%대라는 최악의 득표율에 그쳐야 했다. 이 같은 득표율은 1997년, 2002년 대선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 1997년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맞붙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광주에서 1만3294표, 전북에서 5만3114표, 전남에서 4만1534표를 얻었다. 전체 호남 지역 유효 투표자수 329만여 표 가운데 3.2% 득표였다. 호남과의 골이 이처럼 깊어졌지만 한나라당은 다가서지 못했다. 이회창 총재 시절의 한나라당의 대 호남 전략은 한마디로 ‘포기’였다. 당 관계자였던 C씨의 설명이다.

“호남은 사실상 포기했다. 호남을 포기함으로써 다른 지역에서 반사이익을 챙기자는 생각을 했다. 삼고초려니, 지원이니 이런 것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발버둥도 없었다. 더더욱 호남에서 한나라당의 입지를 꺾어놓고 말았다.”

또 다른 관계자 D씨는 “그쪽이 그렇게 냉대하니 이쪽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예산 배정, 전국구 배정, 당직 배려 등은 최근에나 등장한 일이다. 심지어 호남 예산을 깎아서 나눠 갖기도 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도 이회창 후보는 호남을 좀처럼 방문하지 않았다. 그래도 호남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는지 한인옥 여사가 대신 호남을 찾곤 했다. 하지만 떠들썩하게 호남으로 오지는 않았다. 잠행하다시피 와서는 지역 단체, 유력인사를 만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그것도 2002년 3월까지였다. 이후 한나라당은 호남을 사실상 선거운동 지역에서 제외했다.

결국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광주에서 얻은 표는 2만6869표, 전북에서 거둔 표는 6만5334표, 전남은 5만3074표였다. 5년 전보다 약간 나아지긴 했다. 상대가 부산 출신 노무현 후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호남과 한나라당 사이에 파인 골은 복구불능처럼 보였다.

‘720표’ 쇼크

호남의 한나라당 배척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절정에 이른다. 1인2표제가 처음 실시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광주에서 얻은 정당 득표는 ‘720표’였다. 58만5716명이나 투표했지만 제1야당 한나라당이 이런 득표를 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시 존폐 위기에 있던 자민련이 광주에서 얻은 표가 2144표였다. 한나라당의 광주 득표율은 호남의 한나라당 배척 ‘결정판’을 보여주었다.

한나라당에 대한 호남의 배척이 절정에 달했던 2004년, 한나라당 안에서 비로소 ‘서진(西進)’이란 용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두 번의 대선 패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여기엔 2004년 당 대표로 한나라당의 전면에 선 박근혜 당시 대표의 역할이 컸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로 어쩌면 호남과 대척점에 서 있다고 여겨지는 박 대표였다. 하지만 그는 가장 먼저 ‘서진’을 얘기하면서 호남으로 가자고 얘기한다.

“지금같이 지역으로 갈라져서는 미래가 없다. 국민이 화합하지 않고는 경제회생이나 국가발전이 있을 수 없다.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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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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