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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비주류 의리파’ 홍준표

이명박 배신감에 며칠간 통음… ‘운하 무너뜨리기’ 선봉으로

  •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자칭 ‘비주류 의리파’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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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고 나왔습니다”

자칭 ‘비주류 의리파’ 홍준표

2006년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오세훈, 맹형규, 홍준표 후보.

가진 것 없던 고대 법대생 홍준표를 상징하는 사건이 있었다. 첫 미팅을 하게 됐다. 파트너는 대구 출신이었다. 경북여고를 나온 학생이었다. 그녀는 대구 출신이라는 홍준표에게 자연스럽게 “경고(경북고) 몇 회세요?”라고 물었다. “영남고를 나왔다”는 말에 그 여학생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잃어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은 그를 늘 비주류로 만들었다. 검사와 국회의원 등 주류가 됐지만 그는 자신을 비주류로 생각한다. 홍준표는 검사 시절을 곧잘 회고한다. 정덕진 박철언을 잡고, 이건개를 치던 무용담 늘어놓기를 좋아한다. 술을 잘 못하는 그는 술 한잔만 들어가면 늘 그 이야기를 반복한다.

“박철언 전 장관이 잘나가던 시절에 언젠가 우연히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박 전 장관이 나더러 ‘홍 검사 어느 고교 출신이요’라고 묻더라. 내가 ‘영남고 나왔다’고 했더니 박 전 장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거기 나와도 사시가 되냐’고 하더라. 속으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너 이놈 한번 두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검사 시절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했다. 대신 그는 검찰 주류의 심장부를 향해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그것이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를 만들었다. 그의 수사는 조직과의 투쟁 과정이었다. 그는 그 투쟁을 위해 언론을 이용할 줄 알았다. 조직이 반대하는 수사는 언론에 먼저 흘렸다. 그래서 수사를 기정사실화했고, 윗선은 그에게 수사 중단 압박을 가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 인연을 맺은 기자들과 지금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홍준표는 골프를 좋아하는데 자세가 독특하다. 스윙을 할 때 폴짝 뛴다. 그래서 ‘개구리 폼’이라고 불린다. 그런 자세로 과연 공이 맞을까 싶다. 그가 티샷을 하면 그런 스윙을 처음 본 동반자들이 키득거릴 때가 많다. 그러나 의외로 공은 잘 날아간다. 더욱이 그는 쇼트게임만큼은 프로 골퍼 못지않은 수준이다.

그는 골프를 순전히 독학으로 배웠다. 광주지검에 있을 때 골프 연습장을 찾은 홍준표에게 레슨 프로가 ‘똑딱이’를 시켰다. 공을 톡톡 맞히는 연습만 시킨 것이다. 홍준표는 짜증이 났다. 옆 좌석에선 몇몇이 공을 시원하게 치고 있었다. 자존심도 상했다. 몇 분간 똑딱이를 하던 그도 덩달아 후려대기 시작했다. 레슨 프로가 황급히 뛰어와 “뭐하는 거냐, 왜 시킨 대로 안 하냐”고 고함을 질렀다. 홍준표는 “어디서 큰소리냐, 오늘 연습한 비용 빼고 내가 낸 돈 돌려달라. 나 안 다닌다”고 했다. 홍준표의 골프 레슨은 그렇게 끝났다. 홍준표는 귀가 길에 골프 레슨 비디오테이프를 샀다. 그의 스윙 자세는 혼자 비디오를 보면서 연구를 거듭한 결과물이다.

1999년 5월. 정권이 넘어간 뒤였다. 정치 입문 이래 ‘DJ 저격수’를 자처했던 그를 DJ 정권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걸어 ‘저격’했다. 의원직을 스스로 그만둔 그는 무작정 방미 길에 오른다. 처음 가는 미국이었다. 더욱이 더 이상 의원도 아닌 백수 신분이었다. 그는 영어회화에 자신이 없었다. 당장 미국에 도착해 세관을 통과할 일도 막막했다. 그는 ‘민병철 생활영어’의 ‘세관’ 파트를 열심히 외며 미국에 도착했다.

두려움과 긴장 속에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내렸을 때 그의 눈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이명박이었다.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마중 나온 것이다.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고 한다. 이명박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워싱턴 공항의 반가운 얼굴

홍준표는 국회에 입문한 이래 대학 선배인 이명박과 곧잘 어울렸다. 자신과 비슷한 ‘개천’출신이란 점이 끌렸다고 했다. 그는 그때부터 이명박을 ‘형님’이라 불렀다. 1996년 가을 선거법 위반으로 이명박이 위기에 몰렸다. 그가 구속될 것이란 설도 파다했다. 이때 앞장서 이 전 시장을 변호하고 나선 것이 홍준표였다.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과천 정부종합청사의 잔디광장으로 홍준표는 신한국당 사무총장 강삼재 의원을 불러냈다.

“이명박 의원을 건드리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제가 검사 시절에 YS 대선 자금을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이걸 터뜨릴 수 있습니다.”

이런 인간적 인연으로 따지면 지금의 그 누구보다 홍준표는 이명박의 측근이었다. 그런데 왜 홍준표와 이명박은 멀어졌을까. 홍준표는 이를 ‘이명박의 배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홍준표는 자칭 ‘의리파’다. 배신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좌충우돌형이지만 한번 인연 맺은 사람은 철저히 챙긴다. 2004년 초 최병렬 대표체제가 무너질 때 몇 안 되는 최 대표 사수파 중 한 명이 홍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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