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호

‘이명박 시대’의 軍

‘왕형(王兄)’등에 업은 하나회 귀환? ‘경영 혁신’ 한국판 럼스펠드 등장?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8-01-09 18: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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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시대’의  軍

    이명박 당선자가 2006년 12월 강원도 철원의 백골사단을 방문, 북한과 대치한 경계초소에서 k-3기관단총을 겨눠보고 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저녁자리. 기자와 마주 앉은 군 당국 관계자들에게 “MB가 대통령이 되면 군으로서는 좋은 일인가”를 물었다.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던진 질문이지만, 자리에 앉은 이들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저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흔히 군인들은 보수적이니까 이명박을 좋아하지 않냐고 하는데, 그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군이 나아질 게 별로 없다. 이명박 후보의 콘셉트가 뭔가? ‘작은 정부, 시장 중심’ 아닌가. 군 또한 정부의 한 부분이고 보면, 효율화를 구호로 삼은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 수도 있는 것이다. 관련 기관의 정책 당국자들은 대체적으로 ‘두려워하는’ 측면이 있다.”

    노무현 정부 임기 5년 동안 청와대와 군은 외형상 엄청난 긴장을 이어왔다. 특히 ‘북한·미국을 보는 인식차’에서 빚어진 정치적 견해의 충돌은 숱한 갈등사례를 낳았고, 임기 초 청와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로 대변되는 대통령의 참모들과 군 고위 관계자들은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그 부분만 제외하면 노무현 정부는 군에 그리 ‘나쁜 정부’는 아니었다. 사실상 산타클로스나 다름 없었다”고 국방부 산하 전문연구기관 관계자는 말한다. ‘전쟁이냐 평화냐’를 슬로건으로 내건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단면과는 달리, ‘협력적 자주국방’을 표방해 국방비를 매년 9% 가깝게 증액해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 최근의 원화 강세에 힘입어 국방비는 달러로 환산하자면 5년새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 됐다. 이 과정에서 군은 IMF 경제위기 과정에서 좌절됐던 대형 무기도입 사업의 상당부분을 완성했거나 혹은 시작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국방정책이 과연 이러한 흐름을 유지해나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만만찮다. 군 정책당국의 한 관계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지 아래 효율성을 모토로 강력한 군사변혁을 추진한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과 이에 반발한 에릭 신세키 당시 육군참모총장 사이의 대립 같은 일이 서울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부 5년의 ‘전선(戰線)’이 정치적 견해차 때문에 빚어졌다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경영혁신’ 문제를 두고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명박 당선자의 대선 캠프에는 예비역 고위장성 등 군의 견해를 대변할 만한 인물이 그리 많지 않다. 당선자에게 ‘군의 특수성’을 설득할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 김재창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 지난 가을 공개적으로 대선판에 뛰어든 군 출신 인사들은 대부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에 몸을 실었다. 물론 경선이 끝난 후에는 이들이 모두 이명박 캠프에 힘을 합쳤다는 게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공식 설명이지만, 실제로 캠프 안보정책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조직상으로는 합쳐졌지만, 실제로 뛰는 일은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이명박 당선자의 군사정책을 보좌한 인물들의 면면은 대선 과정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고, 후보와의 ‘스킨십’도 상대적으로 그리 밀접한 편이 아니었다. 전문가 그룹은 물론 군 출신 인사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을 정도. 물론 물밑에서 조력한 이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는 매섭도록 치열한 움직임이 있었다. 어느 선거 캠프에서나 그렇지만, ‘후보의 시선’을 차지하기 위해 뒷말과 자가발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은 각개약진의 형태로 ‘이명박 당선’을 위해 뛰었다.

    ‘이명박 시대’의  軍

    이명박 당선자의 군사정책 자문에 참여한 대표적 예비역 인사들. 오른쪽부터 이종구 전 국방장관, 도일규 전 육군참모총장, 김인종 전 2군사령관.

    “SD를 살펴야 한다”

    캠프 관계자들이 첫손에 꼽는 인물은 노태우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종구 한국안보포럼 회장이다. 이 전 장관은 대선 기간 이명박 캠프의 국방정책자문특별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지난 여름부터 정책자문을 맡아온 이 전 장관이 캠프에 참여하게 된 것은 이 당선자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의 인연 때문. 이 부의장은 이 전 장관과 동기인 14기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젊은 시절은 물론 1988년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수십년간 이 전 장관과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전 장관의 참여도 “도와달라”는 이 부의장의 요청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캠프에 관여한 예비역 가운데 ‘최선임’에 해당하는 이 전 장관이 군사정책자문의 ‘좌장’ 노릇을 했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연배나 기수로도 가장 위지만, 여기에는 ‘이 분야에 관한 한 이 부의장의 대리인이나 다름없다’는 위상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캠프 최고위기구였던 이른바 ‘6인회의’의 멤버이자 당선자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이 부의장이 힘을 실어주니 자연스레 이 전 장관을 중심으로 체제가 형성됐다는 것. 한 캠프 관계자가 “당선자의 군사정책을 미리 엿보려면 SD(이상득 부의장에 대한 캠프 내 별칭)를 살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이 부의장은 단순히 옛 육사 경력 덕에 인맥이 있는 정도를 넘어 정책에도 깊숙이 관여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2월4일 기자가 방문한 이종구 전 장관의 서울 청담동 개인사무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예비역 군 관계자들로 가득찬 사무실의 산더미 같은 서류들 사이에는 이틀 후로 다가온 TV 안보분야 정책토론회를 준비하느라 작성된 문서가 즐비했다. 정책자문 작업에 관여했던 한 전직 장성의 말이다.

    “예비역 장성 등 군 관계자들의 모임은 대부분 조찬을 겸해 이뤄졌다. 강남 프리마호텔 등에서 열린 조찬 자리에서 정책토론을 벌이고 자료를 작성해 캠프로 보내는 식이다. 수십명의 예비역이 일주일에도 몇 차례씩 모였다. 재정지원이 전혀 없어 식비를 갹출해야 하는데도 사람들이 그렇게 모이는 걸 보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형식적으로 이 전 장관이 맡았던 국방정책자문특별위원회는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자문했던 모든 예비역 인사들을 아우르는 모양새였지만, 실제로는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우선 이 전 장관이 이끄는 모임이 있고, 김인종 전 2군사령관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서초포럼’ 그룹, 도일규 전 육참총장을 중심으로 하는 ‘용산포럼’, 박승부 예비역 소장이 이끄는 ‘마포포럼’이 그것이다.

    각 그룹의 관계에 대해서는 참여 인사들 사이에도 견해가 엇갈리지만, 국방정책자문특별위원회라는 외피를 두르고 각개약진하는 형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각 그룹에서 논의된 내용이 위원회를 거쳐 후보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각 그룹별로 후보와 직접 ‘스킨십’이 되는 캠프 내 주요 인사가 있어 이들을 경유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금세 드러나듯, 이명박 당선자 주변의 군 출신 인사들은 ‘올드보이’에 가깝다. 가장 최근에 공직을 떠난 김인종 전 사령관이 군복을 벗은 것이 2001년. 노무현 정부에서 공직을 지낸 조영길 전 장관이나 남재준 전 총장 등 박근혜 캠프에 몸담았던 사람들과 비교해봐도 그렇다.

    ‘이명박 시대’의  軍

    2007년 12월6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안보분야 TV 합동토론회에서 대선 후보들이 주제별 질의와 답변을 주고받으며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하나회는 정치적 희생양”

    특히 좌장 격인 이종구 전 장관의 ‘파워’는 그 상당부분이 옛 하나회 인맥의 예비역 인사들로부터 나온다. 이 전 장관 본인이 하나회 창립 당시 전두환 회장 밑에서 총무를 맡는 등 핵심 멤버였고, 최근 그의 사무실에서 함께 대선을 도운 이의 적지 않은 수가 하나회 출신이다. 실제로 이들로부터는 ‘하나회의 복권’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젊은 장교들의 동호모임에 불과했고 전두환 정부 이후 실체도 없어진 하나회를 김영삼 정권에서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어 강제 퇴출시켰다”는 식이다.

    또한 이들 군 출신 인사의 상당수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이다. “‘좌파정권 10년의 종식’을 위해 도왔을 뿐, 이명박 후보 개인이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 박근혜든 이회창이든 이명박이든 유력한 보수 성향의 후보 누구에게나 ‘안보 중심의 사고’를 각인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선거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정책적으로는 ‘반(反)노무현’ 태도가 명확하다. 대표적인 것이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 이명박 캠프를 도왔던 군 출신 인사 상당수가 이 문제를 미국과 재협상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재협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한다 해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는 학계 전문가들과 달리 이들은 “주한미군 등 미국에도 지휘관계 변화에 부정적인 인사가 많다”며 “충분히 다시 협상할 여지가 있다”고 확신한다.

    2020년까지 군 병력을 50만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국방개혁2020’의 내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에서는 이를 근본적으로 백지화하고 ‘더욱 강화된 안보’를 중심개념으로 하는 새 계획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특히 핵문제 등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아직 그대로이므로 섣불리 감군이나 군축, 체제개편 등을 시도해선 안 된다는 견해가 많다.

    2006년 출범한 방위사업청(방사청)에 대한 반감은 이견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이전의 군수획득 분야 시스템이 일정부분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방사청은 개악”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386과 변호사들이 비전문분야인 획득·조달업무에 관여해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 최근에는 그간 방사청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몇몇 방위산업체에서 방사청 체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사례를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해 이들 군 출신 인사들에게 배포한 일도 있다.

    이러한 태도는 실제로 발표된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에도 닿아 있다. 군사제한구역의 규제를 완화해 개발이 가능하도록 단계적으로 조정하겠다는 공약에 이들이 격하게 반발했다거나, 직업군인에게 주택을 무상 공급하는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곤욕을 치렀다는 캠프 내 인사들의 설명이 대표적이다. 이 후보를 자문한 한 전문가 그룹 인사의 말이다.

    “기본적으로 군사정책보다는 군인정책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나쁘게 말하자면 여전히 제복 입은 사람의 눈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뜻이다. 군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할까. 누군들 직업군인에게 집을 지어주고 싶지 않겠는가. 국가경제나 재정규모 등을 감안해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 일인지를 따져보면 답이 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군사정책을 자문한다기보다는 군의 이익단체 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관심의 초점은 과연 이명박 당선자가 정권인수 과정이나 취임 이후 이들 ‘올드보이’들의 영향력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냐의 문제다. 앞서 말했듯 대선 과정에서는 캠프나 그 하부조직에 예비역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국방분야 전문가가 드물었고, 따라서 예비역 인사들의 생각이나 조력이 상당부분 후보에게 그대로 입력되는 구조였다.

    이들 군 출신 인사들은 모두 ‘집권 이후 자리를 탐내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작성하고 선거에 뛰어든 데다 연령대도 높은 편이다. 일부는 “옛 경험도 중요하다”며 은근히 의욕을 내비치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이들이 새 정부의 군사분야 핵심 실무에 투입될 것이라는 판단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이 당선자의 ‘약점’ 때문에라도 이들이 국방정책과 국방부 장차관 등 주요 인선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무시할 수 없다. 본인이 이 분야에 전문성과 정통성이 취약한 만큼 인맥·혈연으로 얽힌 군 출신 인사들의 견해나 방향 제시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작 이명박 당선자의 생각은 어떨까. 정말 안보분야에는 ‘별 생각이 없는’ 것일까.

    “분명 자기 생각이 있다”

    이 당선자는 경선 및 대선 과정에서 국방분야의 주요 이슈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명확하게 언급한 사례가 거의 없다. 전작권 환수 재협상만 해도 간헐적으로 “탄력적으로 검토하겠다” “한반도 긴장상황에 따라 필요할 경우 할 수 있다”는 정도로 언급했을 뿐이다. 이는 “전작권 환수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던 이회창 후보나 “다음 정권에서 재협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던 박근혜 전 대표의 확언에 비하면 해석하기 나름인 모호한 표현이다. 안보분야 정책수립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의 말이다.

    “결국 대선은 표 싸움이고, 당선자는 중도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었다. 재향군인회 등 보수진영이 아무리 강하게 요구한다 해도 중도 성향의 ‘집토끼’를 흔들지 모르는 선택을 하겠는가. 그렇다고 보수표가 이회창 후보에게 쏠리도록 놔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결론은 아예 언급을 안 하거나, 한다 해도 여지를 두는 일종의 ‘전략적 모호성’이었고 ‘전술적 회색’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내부 논란이 있었고 특히 군 출신 인사들의 요구가 거셌지만, 캠프 지도부나 후보 본인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한마디로 주변의 말에 끌려 다닐 만큼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 참모는 “군을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군납 경험이나 중동에서의 군사시설 건설공사 등을 통해 군이 움직이고 일하는 시스템이나 메커니즘,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분명 당선자 본인만의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이 당선자가 최소한 군의 경영적 요소에 대해서는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당선자와 오랜 시간 토론을 거친 안보분야 참모들은 “북한의 위협에 대한 당선자의 인식도 현실성의 기반 위에 서 있다”고 말한다. 핵 문제의 심각성이나 북한 ‘적화(赤化)의지’의 심각성에는 공감하지만, 남북한 사이의 군사력 격차가 매우 크고 경제력에도 차이가 있으므로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지는 않는 식이라는 것이다. 한 참모는 “보수적인 ‘절대적 안보관’이 아니라 중도적인 ‘현실적 안보관’”이라는 말로 이를 정리했다. ‘비핵·개방3000’ 등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겠다는 공약이 달리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경제성장률과 국방비

    “50만 감군 같은 조치도 이 당선자는 안보 이슈인 동시에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로 인식할 가능성이 커 근본적으로 문제 삼을 리 없다”는 전망 역시 같은 관점에 서 있다. 발표된 공약 가운데 감군이나 구조개편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미래 최첨단 정예강군’이나 ‘군 역량 전투분야에 집중’ 같은 항목은 사실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2020의 전체 콘셉트와 그리 다를 바 없을뿐더러 오히려 구조개편이나 병력감축을 뒷받침하기에 좋은 논리다. 관련 전문기관 연구원의 말이다.

    “이명박 후보는 경제성장률을 연 7%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이를 초기부터 공격적으로 추진하려면 당장 경기부양 효과가 작은 재정지출의 축소가 불가피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무기체계 획득비다. 솔직히 최근 수년간 계속돼온 9%대의 국방비 증가는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하드웨어’는 채울 만큼 채웠으니 이제 소프트웨어 정비와 다운사이징(downsizing)만 남은 것이다. 군 처지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2~3년간 안보분야의 최대 이슈였던 전시작전권도 마찬가지다. 미국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은 한반도에서의 지상군 개입 수준을 줄여나가는 등 ‘대북(對北) 방어는 한국 주축’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다. 전작권 역시 미국측이 조속한 전환을 주장하고 한국측이 가급적 연기에 무게를 뒀음은 잘 알려진 사실. 이미 합의가 완료되어 작업이 진행 중인 현재 상황에서 새 정부가 전작권 전환 백지화를 추진할 경우 워싱턴이 전혀 반기지 않으리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의 여지가 없다.

    ‘전략적 모호성’의 배경

    또한 가지 살펴봐야 할 것은 현대건설이나 서울시, 대선 캠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 당선자가 보여준 바 있다는 독특한 ‘용인술’이다. 한마디로 예전에 도와줬다고 끝까지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관계자의 말이다.

    “당선자는 참모를 곁에 두긴 하지만 일을 아예 맡기지는 않는다. 어제 지시한 일을 오늘 다시 물었을 때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겠지만, 당선자는 ‘지금까지 해놓은 것 갖고 오라’고 하는 식이다. 그렇게 확인해서 문제가 있으면 두 번 기회를 주지 않고 가차없이 포기한다. 사람을 쳐내는 결정이 매우 빠르다. 인연이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당장 경선 과정에서 일했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대선 캠프에서는 배제됐고, 대선 정책공약을 만들어낸 사람들과 인수위 구성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다르다. 흔한 말로 ‘안면 깐’ 것이다. 가는 과정에서 쓴 사람과 도착하고 나서 쓸 사람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소한 비정치적인 분야에선 그렇다.”

    그렇다면 관심의 초점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간다. ‘가는 과정에서 쓴 사람’을 쳐낼 수 있다면, ‘도착하고 나서 쓸 사람’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이 당선자가 갖고 있다는 ‘경영적 관점에서 군의 합리화 추구’라는 콘셉트에 맞는 인물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한국의 럼스펠드’를 찾아보려 해도 후보가 마땅치 않다는 데는 캠프 관계자들과 군사문제 전문가들, 군 출신 인사들의 의견이 똑같다.

    한국에서 군사분야는 오랫동안 군에 맡겨져 있었고, 경영적 마인드를 가진 이 분야의 전문가는 사실상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방장관을 맡길 만한 중량급 인사는 특히 더 그렇다. 노무현 정부의 문민화 슬로건은 ‘민간이 군을 통제해야 한다’는 정치적 당위성에 초점을 두고 진행된 만큼 경영적 합리성 콘셉트와는 거리가 있었고, ‘경영적 관점에서 군을 개혁할’ 인물을 찾아내거나 키워내지는 못했다.

    총선이 임박해 있다는 국내 정치 스케줄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게 당선자 주변 인사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이회창 후보나 박근혜 전 대표 등 ‘선명 보수’와 경쟁하려면 보수적인 군 출신 그룹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총선까지는 ‘전략적 모호성’을 계속 유지하리라는 것. 더욱이 당선자 본인이 안보·군사 분야에 그리 밝지 못하고 초기에는 경제문제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고 보면, 안보 이슈는 ‘당장 손댈 일’의 리스트에서 빠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꼿꼿 장수’의 인기

    정권인수 과정이나 취임 초기에는 현재의 군 핵심이나 노무현 정부에서 중용됐던 인사들을 안고 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게 이 때문이다. ‘코드 인사’ 비판을 받았던 몇몇을 제외하고 실무형 인사 상당수가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캠프 주변의 보수적인 군 출신 인사들도 이들 현직 인사에 대해서는 반감이 크지 않아서, ‘군인은 상부 명령을 따를 뿐 그 사람들 자체가 문제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관점에 가깝다. 현직 인사들의 ‘시한부 중용’이 모두 양해할 수 있는 교집합인 셈이다.

    대선 과정에서부터 캠프 주변에서 ‘김장수 유임론’이 흘러나온 것 역시 이와 관계가 깊다. ‘꼿꼿 장수’라는 별명으로 보수층의 높은 신망을 산 김장수 국방장관에 대해서는 이 당선자 주변의 군 출신 인사들도 후한 평가를 아끼지 않기 때문. ‘안보상황의 안정성과 연속성 확보’라는 명분도 나쁘지 않다(물론 김 장관 본인의 생각은 이와 다를 수 있다). 또한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정책 분야 핵심으로 일한 하나회 출신 인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카드’라는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총선 이후, 전작권 재협상을 주목하라

    그러나 ‘관료는 관리는 잘하지만 개혁은 하지 못한다’는 오랜 속설을 감안하면, 이 당선자가 ‘사람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참모가 더 많다. 군 출신이 아닌 참모들의 경우에 특히 이런 의견이 강하다. 당장은 ‘한국의 럼스펠드’를 찾을 수 없어 현직 중심 인선으로 가겠지만, 그 ‘후보’들을 찾아내 키우는 작업을 함께 시작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 출신 참모의 말이다.

    “MB가 사람을 처음 쓸 때는 우선 작은 임무부터 맡긴다. 그걸 잘 해내면 더 큰 임무를 맡기고, 그것도 잘 해내면 더 큰 자리를 주는 식이다. 이렇게 보면 군사분야에서도 자신의 뜻에 맞춰 ‘경영적 합리성’을 관철해낼 만한 인물들, 지금은 그리 중량감이 없는 인물에게 작은 자리부터 맡기려 할 것이다. 청와대일 수도, 국방부일 수도 있으며, 병영시설 개선 같은 덜 민감한 업무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런 그가 흡족한 결과물을 갖고 온다면, 정치 환경이 달라지고 국정운영이 안정되는 2009년 이후에는 청와대 안보실장이든 국방부 장관이든 ‘이명박식 국방 경영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그가 군인인지 아닌지는 MB의 성격상 의미가 없을 것이고, MB는 당장부터 그런 ‘지금은 작은 인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것이라고 본다. 눈 밝은 이들은 그런 후보들을 주목할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구도를 종합하면, ‘이명박 정부’의 군사정책 운용은 결국 구심력과 원심력의 팽팽한 긴장 사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현직 관료들과 예비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국방은 군의 전문영역’을 주창하는 이들이 구심력에 서 있는 반면, 반대로 ‘경영적 합리성’에 대한 당선자 본인의 고유한 컬러나 사고방식은 원심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원심력’에 힘을 싣고 있는 참모들 중에 학자 출신이 많다 보니, 노무현 정부의 안보정책 결정과정에서 나타난 ‘전문관료와 학자 출신 참모들의 대립’이 새 정부에서 고스란히 반복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한 전문가 참모의 말이다.

    “당선자가 취임 이후 안보분야를 완전히 눈 밖에 두지만 않는다면, 청와대 NSC 혹은 안보실과 국방부 사이의 파워게임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당장 군 출신 인사들은 ‘청와대 관여 최소화’를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또 다른 참모는 “결국 키는 SD가 쥐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겠지만, 당선자의 형인 이상득 부의장이 어떤 식으로, 얼마나 정책결정이나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지가 관전 포인트라는 것. 현실적으로 그의 그림자에 따라 그와 가까운 군 출신 인사들의 영향력도 결정될 것이며, 그에 따라 정책적 차이도 나타나리라는 견해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참모들과 군 출신 인사들, 관련 전문가들은 모두 “현재 상황에서는 전작권 환수 재협상을 둘러싼 논쟁이 그 첫 바로미터가 될 것이며, 구체적인 시점은 4월 총선 이후”라는 데 동의했다. 국내 정치의 부담을 벗은 당선자가 전작권 문제에서 ‘옛 인연’으로부터 자유로운 결정을 내리는지 여부를 보면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5년을 위한 ‘영향력 확보’ 경쟁이 이미 시작됐음은 당선자 주변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한 싸움이 끝나면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대선은 끝났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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