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포럼 대표인 도일규 전 육군참모총장.
실무진 중 대표 인사로는 육군 정책처장을 지낸 정용범 전 준장을 비롯해 신모 전 육군 준장, 변모 전 해군 소장,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장을 지낸 배모 전 해병대 소장, 홍모 전 공군 준장을 꼽을 수 있다.
서초포럼은 대선이 끝난 직후 공식 활동을 접었다. 포럼 핵심 관계자는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해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초포럼의 영향력은 살아 있다. 포럼의 핵심 회원인 정용범 전 준장이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자문위원으로 새 정부의 국방정책을 수립하는 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를 맡았던 김인종 전 2군사령관이 국방부 장관 후보군에 포함된 점도 서초포럼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다.
매일같이 분임토의, 주 1회 총회
용산포럼은 세 포럼 중에서 회원이 가장 많다. 예비역 장성을 주축으로 예비역 대령, 교수 등 모두 22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 군인 출신은 153명으로 예비역 장성이 103명, 예비역 대령이 50명이다.
용산포럼이 창립된 것은 지난해 3월15일이다. 예비역 장성 30명이 창립 회원이다.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이 자리 잡은 용산은 한국 안보의 심장부라 할 만하다. 지금은 계룡대에 있는 육군본부도 오랫동안 용산에 터 잡고 있었다. 용산포럼이라는 이름은 이처럼 용산이 한국의 ‘안보 메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나라꼴이 엉망이었다. 예비역 장성들이 친목모임만 가져서는 좌파정권을 종식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행동에 나선 건 오로지 ‘나라 구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들이 중점적으로 연구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국방정책인 ‘국방개혁 2020’. 매일같이 분임토의를 했고, 주 1회 총회를 열었다. 사무실 운영비와 연구비, 식비 등은 회비로 충당했다. 도서관에서 각종 자료와 씨름하는 한편 현역 후배들을 만나 필요한 자료를 구하는 등 발품을 팔았다. 포럼 핵심 관계자는 “회원 중에 국방개혁위원회와 육군개혁위원회에 몸담았던 사람도 있고 방위사업청에서 근무했던 사람도 있어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용산포럼은 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을까. 한나라당 경선 당시 국방 관련 자문단은 박근혜 캠프가 더 화려했다.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고위직 출신의 예비역 장성 상당수가 박 후보를 지지했다. “개인적으로는 친(親)박근혜 성향”이라는 포럼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방을 잘 모르는 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문제라고 생각했다. 군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사실상 영부인 노릇까지 한 박근혜 후보는 군을 잘 아는 편이다. 반면 이 후보는 평생 장사만 한 사람이다. 경선 당시 여론조사로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박 후보보다 높았다. 그런데 이 후보 주변엔 상대적으로 국방 전문가가 적었다. 따라서 이 후보를 돕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경선 열기가 뜨겁던 7월 중순, 용산포럼은 이명박 후보에게 ‘국방정책 연구’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작전, 인사, 군수, 한미동맹 등 몇 달 동안 팀별 토의와 전체 토의를 거쳐 정리한 정책자료를 A4 용지 80쪽 분량의 책으로 묶었는데, 이 후보에게 전달된 것은 12쪽 분량의 요약본이었다. 모임 결성을 주도한 한광문 예비역 소장이 이 후보에게 대면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