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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기 ‘토사구팽’ 공신학

범려, 한신 100명 나와도 ‘공적(公的) 숙청’은 계속돼야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정권교체기 ‘토사구팽’ 공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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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공신 사대부의 횡포

정권교체기 ‘토사구팽’ 공신학

2003년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직후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연산군이 국정을 돌보기보다 모후의 죽음에 더 관심을 갖고 이토록 모진 피의 의식을 치르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세조와 성종이 제때에 공신을 제거하지 못하고 그들을 기고만장하게 만든 탓이 크다. 그 후유증은 그리하여 두고두고 왕실과 조선 백성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으니 조선 왕조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왕조의 정치 이데올로기는 주자학이었다. 주자학은 남송 때의 유학자 주희가 사대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고안해낸 이론으로, 이로 무장한 조선의 선비들은 왕을 ‘제1의 사대부’로 격하시켜 왕의 위엄까지 무너뜨렸다. 왕이 왕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셈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의 권력계층으로 자리 잡은 사대부들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온갖 특혜를 누렸다. 조선 중기 김인후와 기대승, 송순, 정철, 이황, 이이 등과 교분을 나누면서 관직에 있던 미암 유희춘(1513~1577)은 ‘미암일기’에서 고향에 자기 집을 지으면서 지방수령에게 토지와 건축자재를 대달라고 했다는 사실을 떳떳이 밝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조선조 여느 양반들처럼 납세와 국방의 의무도 면제받았다.

정조가 탕평책을 쓰고 국정쇄신을 단행하자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축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온갖 방법으로 왕권을 위협했다. 결국 정조 역시 자신의 큰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이렇듯 조선 왕조의 무능함은 그 뿌리를 캐다보면 공신을 버리지 못한 세조의 사욕, 단견과 마주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이 같은 공신우대의 관행은 왕조시대가 끝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런 예를 따랐기에 국민은 혹독한 고충을 겪었다. 물론 ‘참여정부’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직전의 정권도 그랬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정권을 잡도록 공을 세운 이들로 비서진을 짜고, 내각 또한 그렇게 구성했다. 수족 노릇을 한 비서진은 그렇다 해도 공기업 수장에 대한 낙하산 인사는 도를 넘었다. 그는 흠이 있어 물러난 이들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재기용했다. 과거의 끈을 과감히 뿌리치고, 경험 있고 비전을 가진 자들을 외부에서 대거 발탁했다면 정책의 우선순위와 타이밍을 제대로 살려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들의 기대를 상당부분 충족시킬 수 있었을 터였다. 그는 대승적 국가 인사가 아니라 ‘인기’라는 눈앞의 이익과 ‘자기를 도와준 자들을 저버려선 안 된다’는 의리를 지키느라 부산했다.

노무현과 세조의 비극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져갈 때 냉정하게, 혹은 눈물을 흘리면서 보내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이라면 눈물을 흘리며 보내야 하겠지만 민족이라면 다르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민족’을 ‘공인’으로 치환하면 공신에 대한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공신에 대한 토사구팽은 이처럼 의리를 저버린 행동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국가경영의 필요악이다.

헌법과 법률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몇 가지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대부분 자리에 대한 인사가 대통령의 자유재량에 맡겨져 있다.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국회의 권한이라 규정하고 있으나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은 눈치만 볼 뿐, 결국 자신의 뜻에 따라 인사를 할 수 있다. 견제장치가 부실한 우리의 경우 공신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劉備)는 끝까지 수하 참모들을 지켰다. 덕분에 그에게는 ‘덕장’이란 칭호가 따라다닌다. 이는 공신이나 참모들을 우대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되는 게 아니라는 증거다. 공신이나 참모가 자기가 섬기는 주군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사욕을 챙기지 않는다면 나무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동양은 일찍이 유학을 숭상했기에 덕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했다. 유학은 우주질서와 사회질서는 일치한다고 믿었으니 그렇게 굴러만 간다면 나무랄 게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주와 사회의 질서는 따로 놀고, 권력의 그늘에 들어간 공신은 덕보다는 사리를 쫓는다. 인간은 욕심을 가진 ‘불완전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주군의 생각만을 쫓고 거기에만 집착한다면 그는 주군도 죽이고 나라도 죽이는 죄를 범하고 만다. 주군 또한 이런 자들을 가까이 두면 자기도 죽고 나라도 죽이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 때문에 부적절한 공신들을 초기에 제거해야 하는데 세조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때 제대로 토사구팽을 하지 못했다. 부적절한 공신이 빠져나간 자리를 새로운 인재로 채워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혁신을 일으켜야 했다. 혁신이 일어나려면 창의성과 위험 감수의 노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이론이다. 현대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혁신에 대해 ‘목적과 초점을 갖고 조직의 경제적, 사회적 잠재력에 변화를 일으키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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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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