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호

‘자가발전’의 모든 것 읍소, 우회전술, ‘청와대 관계자’ 섭외까지…

쏟아지는 하마평의 배경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9-01-07 1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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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발전’의 모든 것 읍소, 우회전술, ‘청와대 관계자’ 섭외까지…
    자가발전에는 세 종류가 있다. 자기가 어떤 자리에 가려는 자가발전이 있고, 누군가를 그 자리에 못 가게 하려는 자가발전이 있으며, 자기가 속한 그룹 전체를 띄우려는 자가발전이 있다. 앞의 두 가지는 언제나 있어왔지만 세 번째는 요즘 가장 심한 것 같다.”

    1기 이명박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의 말이다. 초가을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한 개각설이 지지부진 이어지다가 ‘연초’로 굳어지면서, 여의도 국회와 청와대 주변, 장관 교체가 거론되는 각 부처 사이에서는 안테나가 분주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정보를 얻고 또 이를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비틀기 위한 싸움이다. 정보가 오가는 길목마다, 사람들이 만나는 자리마다, 단연 화제는 인사개편이고 개각이다.

    연일 쏟아지는 하마평 기사의 상당 부분이 현직 국회의원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분주해진 것은 여의도다. 최근 양상은 한나라당 친이(親李) 그룹과 친박(親朴) 그룹의 행동패턴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모양새다. 2008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친이 그룹의 입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요즘은 오히려 상황이 역전됐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한 한나라당 출입기자의 말이다.

    “지금의 친이 의원들은 어떻게 보면 도망 온 셈이다. 정부 출범 당시 청와대와 행정부의 ‘빡센’ 자리에 가서 대통령을 지키는 대신 금배지를 위해 피신 왔다고 할까. 그런 친이 의원들이 개각을 앞두고 적극적으로 자가발전을 하기란 어렵다. 오히려 이른바 ‘탕평론’을 등에 업은 친박 의원들의 움직임이 더 적극적이다. 굳이 말은 안 해도 표정이 달라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당과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들의 시선도 온통 인사문제에 쏠려 있다. 누가 어느 자리에 갈 것이라는 하마평 기사가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인사권자의 뜻이나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작업의 실체와는 상관없는 이른바 ‘자가발전’이다. 입각에 뜻이 있거나 거명되는 것으로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이들이나 그 주변에서 언론이나 관계자들을 통해 ‘유력설’을 흘린 결과다.



    겸양과 자기절제를 미덕으로 아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식의 자가발전이 좋은 평을 듣는 경우란 드물다. 그러나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세 번 네 번 언론에 이름이 오르고 사람들의 입을 타기 시작하면, 인사를 주도하는 이들도 ‘혹시 내가 모르는 장점이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 지난 정부에서 고위급 인사 추천 업무에 관여했던 이의 회고담이다.

    “나도 직접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자가발전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뿐’이라고 잘라 말하곤 했다. 밤잠 못 자가며 뜻을 모아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데 뜬금없는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면 되레 귀찮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나중에 돌이켜 생각하니 그런 유의 인사보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 같다. 관심 없던 인사의 고향이나 경력 등 잘 모르던 내용이 솔깃하게 기사에 나는 경우가 특히 그랬다.”

    이 때문에 인사에 관여하는 사람들, 특히 장관급 고위인사를 다루는 인물들은 이러한 ‘방해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애쓰곤 한다.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둔 2003년 초, 명실 공히 ‘실세’였던 김병준 당시 대통령직인수위 정무분과 간사는 신문 가판을 들고 집으로 찾아오는 기자들에게 일일이 ‘빨간펜 첨삭지도’를 하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인물들을 자신이 직접 지워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빠지도록 하는 식이었다.

    K대사의 경우

    당연한 말이지만 자가발전에는 여러 기법이 사용된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당사자가 직접 자기 입으로 퍼뜨리는 것으로, 아예 기자들에게 대놓고 장관 자리를 제의받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다. 취임 준비를 시작했다거나 해당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는 식의 ‘실황중계’도 그때그때 이어진다. 이전 정부 청와대 요직에서 일했던 J모 전 의원, 안보부처 수장을 지낸 C모 전 의원이 이 스타일의 대표주자다. J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측근의 설명이다.

    ‘자가발전’의 모든 것 읍소, 우회전술, ‘청와대 관계자’ 섭외까지…

    국정감사가 한창인 2008년 10월24일 국회 복도가 답변을 준비하는 국회 관계자들과 정부 관료들로 만원을 이뤘다. ‘정보’가 흐르는 현장이다.

    “처음에는 보좌진도 그냥 하는 소리이겠거니 했다.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우연히 한두 번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하더니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결국에는 진짜 임명장을 받는 것이었다. 다들 많이 놀랐다.”

    물론 이런 스타일의 자가발전은 위험한 측면이 있다. 공직자가 ‘다른 자리’를 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용납되기 어려운 분위기 때문이다. 최근 구설에 오른 K대사가 대표적이다. 사석에서 “여기가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데…”라거나 “서울에서 할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진 K대사는, 개각설이 한창일 무렵 서울을 다녀간 사실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제대로 곤욕을 치렀다. 본인의 적극적인 해명도 전혀 먹히지 않았을뿐더러, 그간 이어지던 장관 하마평은 일제히 자취를 감췄다.

    우회전술의 미학

    더욱이 이런 노골적인 기법은 웬만큼 얼굴이 두꺼운 고참 정치인이 아니고서는 구사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입각 희망자들이 ‘우회전술’을 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누가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이런 스타일이 되어야 한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현직 장관이 청와대와 부처의 가교 역할을 제대로 못해 도마에 올랐다면 ‘장관의 임무는 청와대를 대신해…’라며 지론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물론 그런 스타일의 대표주자는 자기 자신임을, 굳이 말하지는 않아도 듣는 사람 역시 잘 알고 있다. 노련한 고위관료들의 돌려 말하기 기술은 거의 예술의 경지다.

    최근 여의도 국회 주변에서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어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전 장관은 현 내각에서 유일하게 의원을 겸직하고 있는 각료다. 입각을 희망하는 정치인들이 “충성심과 추진력을 겸비했다”거나 “여의도와 과천의 소통이 원활해졌다”고 입을 모으는 것은 다음 개각에서 더 많은 의원이 발탁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 ‘겸손형’의 특징은 절대로 잠재적 경쟁자의 이름을 먼저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 한 여당 출입기자의 말이다.

    ‘자가발전’의 모든 것 읍소, 우회전술, ‘청와대 관계자’ 섭외까지…

    2008년 9월26일 이명박 대통령이 경기도 포천 승진훈련장을 방문, 합동화력운용 시범을 관람하기에 앞서 친박 핵심인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대부분 한 상임위에서 오래 일한 중진들이 이런 스타일이다. 전문성 있는 의원들이다 보니 기자들이나 주변에서 관련부처 하마평 이야기를 묻곤 하는데, 절대로 누구 이름을 먼저 얘기하지 않는다. 기자가 특정인을 찍어서 물어도 절대로 좋게 얘기하지 않지만, 또 거꾸로 티 나도록 나쁘게 말하는 법도 없다. 아주 가까운 기자가 ‘의원님은 어떠십니까?’ 물으면 처음에는 빼다가도 ‘굳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고 말끝을 흐리는 식이다.”

    “나 여기 있어요”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 최근 들어 언론 기고나 관심이 집중되는 외부 강연 등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많아진 것도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자가발전의 한 유형이다. 주로 전직 관료나 대선캠프에 관여했던 인사들이 이런 전략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나 여기 있어요,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라며 존재를 상기시키는 식이다.

    자가발전의 가장 보편적인 경로는 주로 보좌진이나 측근을 통해 기자들을 접촉하는 방식이다. 개각을 앞두고 하마평 기사가 나올 즈음에 평소 친분이 두터운 여당이나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우리 영감 이름 좀 넣어달라’고 읍소하는 방식이 가장 많다. 국회의원 보좌관들로서는 민감한 시기에 의원 이름이 등장하도록 만드는 일이 대단히 큰 성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열성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한 여당 중진의원 보좌관은 “경쟁자 이름은 들어갔는데 자기 이름은 빠진 경우 평소에 ‘기자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며 꾸중을 듣게 되는 때가 바로 이때”라고 푸념했다. 거꾸로 기자들 입장에서는 국정감사 시기 대(對)정부 자료요청 등에서 의원 보좌관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 번만 도와달라’는 요청을 쉽게 뿌리치기 어렵다.

    ‘자가발전’의 모든 것 읍소, 우회전술, ‘청와대 관계자’ 섭외까지…

    2008년 11월6일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측근인 김무성, 유승민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런 종류의 ‘읍소형 전략’이 불꽃 튀게 벌어지는 때는 단연 정권교체기다. 새 정부에 어떤 인사가 입각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기 때문. 새로 들어서는 정부의 경우 축적된 인사자료가 상대적으로 빈약하기 때문에 언론의 ‘파워그룹’ 인물보도나 하마평 보도가 상대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때이기도 하다.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 보니 평소에는 진중한 편이었던 인사들이 “나 이번에 꼭 기차 타야 돼” 식의 노골적인 말을 던지는 경우도 보게 된다.

    이렇듯 보좌진을 통해 기자들에게 청하는 방식은 현역 의원이나 관료가 아니면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전직 관료나 전문가들은 발 벗고 나서줄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 이 때문에 이들은 보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정보가 흐르는 길목’을 노린다. 간접적이니만큼 효과가 떨어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잘만 하면 오히려 더 제대로 ‘먹히는’ 길이 열린다.

    어느 분야, 어느 진영에나 공식적인 직함과는 무관하게 ‘정보의 유통경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관계자들과 기자들을 모두 정기적으로 접촉하는 사람들이다. 학계나 연구소, 일반기업이나 단체에서 일할 수도 있다. 당국자들이 적당히 ‘흘려야 할’ 정보가 있을 때 접촉하는 채널이 이들이고, 기자들이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수시로 체크하는 길목이 이들이다. 물론 이들이 아무 관료, 아무 기자나 접촉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과 사례를 통해 신뢰가 확인된 멤버들만이 ‘이너서클’에 속할 수 있다.

    안보관련 국책연구소의 K연구원. 지난 정부의 핵심인사들과도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이번 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정보력을 과시하는 인물이다. 특정부처 사안의 뒷이야기를 들으려면 K씨를 만나는 게 가장 빠르다고 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관련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는 ‘교차확인을 할 때 가장 유용한 취재원’으로 통한다.

    정보가 흐르는 길목

    최근 K씨는 전직 장관 한 사람이 입각 검토 제의를 받은 모양이라는 이야기를 몇몇 기자에게 한 적이 있다. 본인이 옛 부하직원들에게 ‘준비하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평소 그의 ‘실력’을 신뢰하는 사람들로서는 이런 이야기를 무시하기 어렵다. 꼭 바로 기사를 쓰지는 않더라도 해당부처 관료들이나 관계자들, 혹은 또 다른 ‘정보 유통창구’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이야기하게 마련이다. 정보 가운데 가장 관심이 쏠리는 정보는 역시 인사 관련 정보고, 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말은 금세 ‘동네’ 전체에 퍼져나간다.

    정보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이들은 바로 이들을 자가발전 경로로 선택한다. 의도적으로 그런 인물들의 귀에 들어가도록 말을 흘리거나, 혹은 그런 이들을 상대로 직접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한번 신뢰도 높은 경로를 타고 흐르기 시작한 관련 정보는 금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힘을 발휘한다. 당연히 인사 하마평 기사에도 반영된다. 한 정부 출입기자의 말이다.

    “(주요 취재원들 사이에서) 말이 돌기 시작하면 자가발전일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안 쓸 수가 없다. 기사의 완결성을 위해서도 가급적 많은 이름을 거명해야 할 때가 있다. 암묵적으로 경쟁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는 쓰고 누구는 안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음에는 들리는 대로 거명하지만, 이후 상황이 진행되면서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명단에서 빠진다. 그 과정을 세 번 네 번 거쳐 끝까지 살아남는 이름이 인사권자가 진짜로 염두에 둔 이들인 경우가 많다.”

    그러한 압축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당연히 청와대 관계자들의 언급이다. 청와대 행정관들을 통한 자가발전이 ‘최고급 기법’으로 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드시 인사수석실 등에서 관련 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청와대 관계자’로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통로로 활용된다. 이들을 ‘섭외’해 언론에 말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핵심에서 일했던 관계자의 말이다.

    “검토명단에 올려준다면야 ‘평생 은인’이지만, 꼭 실제로 올라가진 않아도 말을 여기저기 뿌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물론 그때도 기술이 필요하다. 절대로 기자들에게 ‘그 사람이 명단에 올랐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하수(下手)는 없다. 대신 ‘그 사람 요즘 평이 어때요?’라고 묻는다. 그렇게만 물어도 충분하다.”

    이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명박 청와대에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오래 일했던 행정관이 적지 않다. 전에 ‘모셨던’ 의원들이 이들을 채널로 삼는 경우도 있고, 오랜 기간 함께 일했던 옛 동료 보좌관들이 ‘모시는’ 의원을 위해 말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부처 파견 행정관이라면 자기 라인의 상사를 위해 말을 흘리기도 한다.

    “모 매체의 모 기자가…”

    서두에서 인용한 것처럼 자가발전에는 잠재적 경쟁자에 대한 네거티브도 포함된다. 경로는 똑같다. 다만 내용이 반대일 뿐이다. 특히 최근 들어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네거티브는 ‘지난 정부 사람’이라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에 있었던 인물들을 ‘제거’하는 데는 가장 강력한 카드이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든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노무현 정부에서 안보부처 핵심 업무를 담당했던 K씨. 현재는 여권에 몸담고 있어 예전부터 ‘조커’로 거론되곤 했지만 번번이 지난 정부에서의 경력이 문제가 되어 여전히 강력한 후보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장관급 두 자리 인선에 동시에 거명되지만 가능성은 여전히 그리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러한 네거티브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음을 본인이 모를 리 없다. 그의 측근들이 “우리 영감이 지난 정부에서 얼마나 핍박을 받았는지 아느냐”며 그 구체적인 실례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당시에 알려졌다면 큰 뉴스거리였을 뒷이야기도 섞이게 마련. 이를테면 반론성 폭로인 셈이다.

    또 하나의 전통적인 네거티브 기법으로 ‘그 사람은 심각한 약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흘리는 방식이 있다. 장관 교체대상으로 거론되는 부처에서 오랜 경력을 갖고 있는 차관급 인사 K씨의 경우를 보자. 그가 결정적인 낙마요인 때문에 절대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설은 이미 정부 출범시기부터 파다했다. 대선캠프에도 참여해 유력 후보로 꼽혔지만 ‘말’에만 그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 내용도 아주 구체적이다. ‘모 매체의 모 기자가 모모한 내용을 쥐고 있다더라’라는 수준이다.

    최근 청와대 분위기에 정통한 인사들은 “자가발전은 실효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무엇보다 인사실무를 담당하는 인사수석실 등 관련부서 구성원들이 기자들이나 주변인들과 개각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 연초 개각에 대해 말은 많지만 구체적으로는 누가,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후보자를 압축해나가고 있는지도 이전에 비해 거의 공개되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의 상황은 후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질이나 커리어보다는 그룹 대 그룹으로 판이 갈려 설왕설래가 이뤄지는 형국이다(상자기사 참조). 누구를 입각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가 최고인사권자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정치적 결단’과 맞물려 있는 것. 후보자 한두 사람의 이름이 도는 걸로는 대세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큰판’이다. “대통령 본인이나 진짜 핵심측근에게 직접 연결하는 게 아니라면 별 효과 없을 것”이라는 단언이 회자되는 이유다.

    자가발전에 나서는 이들도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자가발전은 계속되고, 출처가 불분명한 하마평은 꾸준히 나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마평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위상이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오래 일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에 입성한 관계자의 말이다.

    “‘잊히는 걸 두려워하는’ 이들로서는 그런 이야기가 꾸준히 나와줘야만 한다. 청와대와 자신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과시하는, ‘끈이 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정작 장관이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입각 제의가 오면 거절할 사람도 많다. 어찌됐든 거명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정보와 권력의 생리

    오랫 동안 한 안보부처의 ‘통’으로 불렸고 이번 정부 출범 이전부터 그 수장에 발탁될 것이 유력하다고 했던 J모 전 의원. 지난 가을 이미 다른 자리에 내정됐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 측근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곧 안보부처 발령이 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흘렸다. “보좌진에게 준비하라는 명이 떨어졌다”는 식이었다. 모두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모시는 분’의 위세가 곧 자신의 위세가 되는 측근들이 정작 본인보다 더 자가발전에 적극적인 경우는 부지기수다. 가망이 없다고 확인되는 순간 주변에서 사람들은 떠나고 정보는 끊긴다. 연초로 예정된 개각까지 앞으로도 계속해서 ‘알 만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말이 안 되는’ 하마평 기사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쩌겠는가, 그것이 권력의 생리이고 정보의 생리인 것을.

    “진짜 싸움은 ‘큰판’에서 벌어진다”

    개각이나 인사를 두고 최근 나오는 기사에는 묘한 특징이 있다. 특정 그룹에 대한 중용 가능성을 점치는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 친박 진영 의원들을 과감히 입각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탕평론’과, 총선이나 6월 청와대 비서진 개편 때 대통령 곁을 떠난 측근들이 돌아와야 한다는 ‘책임 국정론’이 대표적이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이런 논전이야말로 진짜 큰판의 자가발전이다. 여기서 어느 쪽이 논리적 우위를 점하고 대통령의 결심을 얻느냐에 따라 개각의 폭과 면면은 완전히 달라진다. 개인이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는 다음 문제다. 우선 자신이 속한 그룹이 낙점을 받아야 자기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단체전’인 셈이다. 물론 그 동안에도 자기 이름이 나오도록 애는 쓰겠지만, 일단은 그건 마이너다.”
    최근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이 친박 의원들과 회동을 가졌다거나 정무수석실이 대통령에게 “일부 장관은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추천받자”고 보고했다는 기사가 정치면을 장식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움츠리고 있던 대통령 측근들이나 1기 청와대 인사들이 언론 인터뷰를 재개하며 ‘몸을 푸는’ 것도 마찬가지다. 밖에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청와대나 여권 핵심 안에서도 같은 싸움이 벌어진다. 보고서와 보고서, 의견과 의견이 맞부딪치는 ‘진검승부’다. 여기서 한쪽이 잠깐이라도 밀리면 기정사실화 단계로 넘어간다. 언론을 통해 ‘대통령, 탕평론 받아들일 듯’ 등의 기사가 나오도록 흘리는 식이다. 최근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인사의 말이다.
    “그렇게 안팎에서의 작업으로 방향이 잡힌 것처럼 굳어지면 ‘어어’ 하는 사이에 판이 끝나고 만다. 밀렸다고 생각하는 쪽이 세게 치고 나오면 ‘제대로 한판 붙는’ 큰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최근의 기사들은 그 전초전에 가깝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정권의 핵심이나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생각이나 이해가 엇갈리는 연합체 성격이 강하다. 한때 같은 캠프에서 일한 이들끼리 네거티브를 뿌리는 것은 더 이상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인사를 두고 갖가지 견제와 소문이 난무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느 정부에서나 이런 일들은 벌어져왔지만, 문제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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