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한미 ‘정보저작권’ 갈등 내막

방한한 보즈워스, “이러면 정보공유 어렵다” 항의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9-05-08 11:2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미 ‘정보저작권’ 갈등 내막

    3월23일 촬영된 북한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로켓 발사장 위성사진.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징후가 알려진 2월초부터 발사 직후인 4월초까지, 청와대와 주요 안보부처 관계자들에게는 사실상 ‘언론 접촉 금지령’이 떨어졌다. 기자들의 전화는 아예 받지 말라는 것이었다. 보고선상에서 관련 정보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통화내역을 제출하라는 요구가 수시로 이어졌다. 정보분석자료를 배포받는 사람의 숫자가 극단적으로 제한되는가 하면, 회의 때마다 고위관계자들의 ‘보안강화’ 당부가 잇달았다.

    긴급 현안이 발생했을 때 보안강화 조치가 내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최근 두 달의 분위기는 통상의 수준과는 매우 달랐다. 한마디로 초비상이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행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며 “시간이 꽤 지나야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불미스러운 일’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일까.

    청와대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징후 첩보를 처음 보고받은 것은 1월 중순의 일이었다. 평양 이남의 한 군수공장에서 열차가 위장막으로 가려진 ‘원통형 물체’를 싣고 빠져 나오는 장면을 포착한 미국 정보위성 사진이었다. 열차는 이후 함경북도 화대역에서 ‘물건’을 내렸고, 이는 다시 컨테이너 차량에 실려 무수단리 로켓 발사시설로 운반됐다. 이 정보는 대부분 미국 정보당국이 위성사진과 신호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해 한국과 일본 정부에 통보한 내용이었다.

    상세한 기사, 친절한 확인

    사안이 엄중했던 만큼 이 소식은 2주 가량 한·미·일 정부에서 모두 기밀로 관리됐다. 보안이 깨진 것은 2월3일 일본 ‘산케이’ 신문의 첫 보도.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대포동2호 발사가 임박했다”고 전한 이 기사는 평안북도 동창리에 새로 건설 중인 미사일 발사시설에 트럭이 자주 출입하고 있다는 정보도 함께 실었다.



    일본 언론의 보도가 타전된 이날 오전부터 한국 정부 관계자들도 관련 내용을 확인해주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첫 보도보다 상세한 내용이 공개됐다는 점. 미사일 제조공장의 구체적인 실체, ‘원통형 물체’의 크기와 행방 등을 손에 잡힐 듯 상세히 묘사한 기사가 줄을 이었다. 기사에는 어김없이 ‘미국 정보위성이 촬영한 사진을 보면’이라는 해설이 붙었다. 북한 군사시설에 대한 미국 정보자산의 감시태세를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결정적인 대목은 이날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미사일은 ‘산케이’가 보도한 동창리가 아니라 무수단리에서 발사될 것으로 보인다”고 ‘친절하게’ 정정해준 부분이었다. 발사 준비와 관련해 미국이 한·일 두 나라에 전달한 핵심 정보의 대부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셈이었다.

    이에 대한 미국 측의 분노는 거셌다. 쉽게 말해 정보의 ‘저작권’은 미국에 있고, 한국이나 일본에는 ‘동맹국으로서의 신의’로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한·일 정부 관계자를 통해 미국이 북한을 얼마나 상세히 들여다보고 있는지가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월권’이었다. 북한이 이를 종합, 분석해 미국 측 탐지수단을 속이거나 교란하는 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식은 당부, 내용은 경고

    미국의 행동은 즉각적으로 이뤄졌다. 먼저 움직인 것은 관련 정보를 한국 측에 전달한 주체인 주한미군사령부. 2월5일 윌리엄 샤프 사령관은 김태영 합참의장실을 직접 방문해 정보 유출 문제를 엄중히 항의했다. 정보참모부(J2·Assis-tant Chief of Staff 2)의 수장인 마크 페린 준장도 합동참모본부에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태평양 건너 외교라인도 움직였다. 국무부 고위관계자가 한국 외교통상부와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한미 간 정보공유가 어려울 수 있다”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위였다.

    3월7일부터 나흘간 서울을 방문했던 스티븐 보즈워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구두 메시지는 결정적이었다. 주요 외교안보부처를 두루 방문했던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정보보안에 유의해달라는 뜻을 안보라인 핵심 관계자들에게 전했다. 형식은 예의를 갖춘 당부였지만 사실상 경고의 뜻이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2월 중순 무렵부터 미국 측이 수집한 위성사진이나 감청 등 신호정보 분석 결과가 상당히 뜸하게 한국 측에 전달됐다는 점이다.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던 국면이고 보면 미국이 관련정보 수집태세를 완화했을 리는 만무했다. 일부 안보라인 관계자들 사이에서 “미국이 실제로 정보공유 수준을 재검토한 것 아니냐”는 수근거림이 시작됐다. 며칠 뒤 전달되는 정보량이 ‘정상화’되면서 우려는 가라앉았지만, 미국이 일종의 시위를 벌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한미 ‘정보저작권’ 갈등 내막

    3월9일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오른쪽 세 번째) 일행이 외교통상부 청사를 방문해 북핵 문제 해결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미국이 수집한 정보가 한국 정부 관계자들을 통해 언론에 보도되는 일에 대해 워싱턴이 격하게 반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6월7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한국군 합동참모본부가 언론 브리핑을 강행했을 때도 거의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의 브리핑은 “미사일 발사 같은 소식을 왜 외신을 통해 먼저 알아야 하느냐”는 언론의 질타를 곤혹스러워하던 청와대 안보실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다.

    이때도 미사일 궤적 등 관련 정보의 상당부분은 주한미군을 통해 ‘협조’받은 것이었다. 격노한 버웰 벨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군 합참에 친서를 보내 “때로는 침묵이 더 의미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라며 ‘청와대 NSC’를 직접 겨냥했다. 여기에는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 차이도 한몫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통상적이고 연례적인 훈련이었다”고 설명했지만, 벨 사령관은 “한국군과 한국 국민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된 신형 단거리 미사일을 실험하기 위한 것”이라며 사실상 이를 공개 반박했다.

    뿌리는 정책의 차이?

    2007년의 논란에 대해 미 국무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정보저작권 문제에 미국이 민감한 것은 단순히 정보수집역량 노출을 우려한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민의 세금을 쏟아 부어 수집한 정보는 미국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공개한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시점이 언제인지 미국이 결론 내려야 한다는 ‘철학적 기반’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미국의 정보는 미국의 정책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의 문제라는 것이다.

    2월 이후 줄줄이 이어진 미국 측 인사들의 격렬한 항의를 ‘정책적 판단’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미 양국이 갖고 있는 대북정책 견해 차이가 한 배경일 수 있다는 것. 미국이 수집해 한국이나 일본에 전달한 정보가 백악관의 정책방향과는 어긋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활용’되는 것을 경계한 때문이 아니냐고 볼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미 혹은 미일 간의 ‘정책적 차이’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의 행보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3월 방한 당시 안보당국자들에게 “백악관은 북한과의 직접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정보기관 인수팀장을 지낸 아서 브라운 전 CIA 동아시아 지부장은 3월말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대화를 통한 해법을 미국에 주도적으로 제안해야 하며,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미국이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켓 발사와 관련해서도 미국은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은 정부와 언론이 모두 강경한 분위기를 이어갔고, 특히 일본의 공포 분위기 조성은 자국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될 정도였다. 그 고비마다 미국이 생산해 양국에 제공한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한 언론보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의 정보가 미국의 정책적 이해관계에 어긋나게 ‘활용’됐다는 불만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그만하면 선방했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등장한다. 3월24일 ‘중앙일보’가 1면 톱으로 보도한 미국 여기자 2명의 최근 상황 관련 정보다. 익명의 정보소식통을 인용한 이 기사는 “(우리 정보당국이) 이들 여기자가 현재 평양 근교의 보위사령부(북한의 정보보안부대) 관할 초대소에 머물며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미국 측 관계기관이 서울의 정보협조 채널을 통해 관련 정보의 조속한 제공을 요청해와 대북 정보망을 가동했다”고 전했다.

    특히 기사 가운데 “여기자들의 억류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애를 먹던 미 정보기관이 한국 측에 휴민트(HUMINT·정보요원 등을 통해 얻은 인적 정보)를 제공해 달라는 뜻을 밝혔다”는 대목은 정보저작권 문제를 둘러싼 최근 상황과 맞물려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인공위성, 감청 등 첨단장비를 통한 대북 첩보에는 우위에 있지만 인적 정보 수집에는 한국의 정보기관이 월등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안보부처 실무 관계자들 사이에서 “최근의 논란에 대한 한국 정보당국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전한 기사 아니냐”는 이야기가 회자된 것은 이 때문이다. 서로 ‘특장점’이 다르니 협조, 보완해가며 지내자는 뜻을 전하기 위해 ‘미담 사례’로 흘린 것 같다는 시각이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기사 내용 가운데 사실과 다른 부분이 섞여 있는 등 고전적인 언론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견해다.

    일련의 상황이 마무리된 4월 중순 현재, 우리 측 당국자들의 견해는 긍정적인 편이다. 2007년의 정보저작권 갈등이 버웰 벨 당시 사령관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들의 성토로 이어지는 등 감정적인 수위까지 치달았던 것에 비해, 이번 경우는 논란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됐다는 것이다. 우선 한국이 같은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고, 미국도 한국이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오해를 상당부분 풀었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2월초부터 4월 중순까지 청와대와 안보부처에 내려진 최고 수위의 보안강화 명령은 그 같은 조치의 일환이었다. 미국이 제공한 내용은 기밀정보가 아닌 경우에도 핵심 관계자 외에는 공유하지 않을 정도로 ‘빡빡한’ 분위기가 지속됐고,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의 보안 담당 요원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안보당국 관계자들이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북한 로켓 발사 이후에도 궤도나 낙하지점 좌표 등 구체적인 정보가 한국 언론을 통해 보도되지 않은 것도 상당부분 이러한 보안 강화 노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로켓 추진체 낙하지점의 거리 같은 구체적인 정보는 주로 일본 언론이 보도했고, 그나마 일본이 이지스함 레이더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모은 게 대부분이었다. 미국이 수집해 양국에 제공한 감청 신호정보와 레이더 궤도추적 결과는 현재까지 어느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미국도 최근 한국 안보라인 관계자들에게 ‘적극적인 협조에 감사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사이의 반전

    그러나 저작권 갈등이 정책방향의 차이와 관련이 있다면 비슷한 일이 재발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 큰 뜻이 같을 때는 디테일에서 어긋날 가능성도 줄지만, 뜻이 다르다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마찰이 생길 공산이 큰 까닭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만하면 선방했다”는 정부 당국자들의 인식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2007년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저작권 갈등 당시에는 한국이 냉정한 태도를 취했고 미국이 발사실험의 의미를 심각하게 평가했다. 공교롭게도 이번과는 정반대였던 셈이다. 이는 물론 노무현-부시 행정부 조합이 이명박-오바마 행정부 조합으로 바뀐 것과 관계가 깊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벌어진 이 기막힌 반전이 앞으로 4년 동안 임기를 공유하게 될 양국 정부의 딜레마로 이어지리라는 예감이 드는 이유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