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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⑤

“우리가 슬픈 노래 부르면 그는 눈물을 흘렸다”

[단독 인터뷰] ‘김정일의 여인’이 밝힌 김정일 사생활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우리가 슬픈 노래 부르면 그는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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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이 달라졌으니 으리으리한 방이 기다리고 있었겠네요.

“아닙니다. 처음 안내된 방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화장실과 이불만 있고 정말 하나도 없어요. 아주 작은 뙤창문이 하나 붙어있는데, 제 키로는 밖을 내다볼 수 없었어요. 밤에는 밖에서 이상한 새소리들과 벌레 소리들이 나서 무서웠어요. 어떤 남자가 밥을 날라 올 때만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그나마 말도 못해요. 매일 책을 가져다 줘요. 김일성·김정일 노작, 혁명역사 등 밖에서도 봤던 책들이고 소설책도 있었어요. 책을 읽고 반드시 감상문을 써야 해요. 책 하나를 놓고도 감상문을 몇 가지로 쓰라고 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받쳐놓고 서면 창밖을 내다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방의 천장에 감시 카메라까지 붙어있어 그럴 엄두를 못 냈어요. 이건 뭐 감옥과 똑같았죠. 머리가 정말 복잡하더군요. 남들이 다 좋은 데 간다고 했는데 내가 왜 이런 데 와 있나,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정말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랬어요. 다행히 끼니때마다 예전엔 구경도 못했던 세계 여러 나라 음식을 다 갖다주어 감옥은 아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간첩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왜냐면 학교 이름이 ○○군사학교이기 때문이죠. 학교 이름은 쓰지 마세요. 이름이 알려지면 아마 여기 출신이라고 사칭하는 사람들이 나올 거예요.”

▼ 감금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졌나요.

“한 달입니다. 한 달쯤 지난 뒤 어떤 방에 데려갔는데 그 자리에 여자애 10명이 있었어요. 얼굴을 처음 보는 애도 있었고 3차 시험 때 본 애도 있었어요.

모두 전국에서 고르고 골라 뽑아온 나름 개성 있는 미인이죠. 외국 여자같이 생긴 애도 있어요. 제가 제일 어린 또래 같지만 서로 정확한 나이는 몰라요. 사적인 말을 못하게 엄격히 통제하거든요. 2년 동안 서로 거의 말을 안 하고 살았어요. 그리고 선배도 후배도 없어요. 한 기수를 졸업시키고 그 뒤에야 새로 받는 것 같았어요. 그 자리에서 학교 입학식을 한다고 하면서 군복을 내주었어요. 넥타이를 매는 인민군 협주단 군복 비슷한 것을 주더군요. 입학식이 끝나고 다시 제가 있던 방으로 돌아갔지만 생활에 변화가 있었어요.”



▼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우선 외출이 허용됐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씩 평양 시내에 데리고 나갑니다. 아주 멋진 양복차림으로 나가요. 좋은 곳도 구경시켜주고 고급식당도 데려가죠. 옥류관에 귀빈용 방이 따로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어요. 향만루 같은 고급 식당도 갔는데, 가기 전에 미리 방을 다 예약해서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게 하지 않아요. 다시 한 달 지나서부터 사진을 엄청 많이 찍어요. 화장 안 하고 찍고, 화장 진하게 하고 찍고 그러는데, 아마 김정일에게 보내나 봐요. 그리고 사진사가 인심 좋게 이건 보관하고 있으라면서 사진을 주기도 해요. 그때 받은 사진을 남한에 몇 장 갖고 왔어요.”

▼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이를테면 교육과정이라든가 하는 것 말입니다.

“공부도 하고 사격이나 수영도 시키고, 비디오도 보고, 예능 훈련도 하고, 식사예절 등등 아무튼 여러 가지를 배우죠. 상세히 말하려면 끝이 없어요. 저희 10명을 가르치는 언니는 모두 3명이었습니다. 제가 있던 건물은 구조가 아주 특이해요. 공부하러 갈 때는 같은 층에 가면서도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면서 가요. 한마디로 구조를 알 수 없는 미로처럼 만들었죠. 실제 있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상상이 안 돼서 그 구조를 그리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건물의 방음이 너무 잘돼 있어 조용해요.”

‘장군님 보위하리’ 컴퓨터 게임

▼ 계속 아무것도 없는 그 방에서 생활했나요.

“아니요. 석 달쯤 됐을 때 저를 2층의 다른 방으로 데려가더군요. 예전에 머물던 방은 건물의 날개 부분에 위치했는데 옮겨간 방은 건물 중심 쪽에 있었습니다. 이전 방보다 훨씬 크고 침대는 없지만 장도 있고, 책상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그랬어요. 심심할 땐 컴퓨터 게임도 했는데, 이런 게임도 있어요. 게임 제목이 ‘장군님 보위하리’인가 그런 것인데, 적을 죽이면서 미션을 수행하고 끝까지 가면 머리가 곱슬머리이고 점퍼를 입고 배가 나온 작은 사람이 나와서 ‘짝짝짝’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어요. 누가 봐도 그 캐릭터가 김정일인 걸 알죠. 박수를 치면 주변 배경음악으로 ‘만세’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무튼 게임까지 충성심을 유도하는 것이라니깐요. 그게 1990년대 중반인데 그런 게임이 있었다는 것은 아마 상상도 못하실 걸요.”

최종 2명에 발탁

▼ 그 방에도 혼자 있었나요.

“아니요. 새 방으로 옮겨간 다음부턴 미옥 언니와 한방에서 지냈어요. 저희들을 가르치는 3명의 선생 중 조장 격이었어요. 미옥 언니는 소좌(소령)였어요. 그렇지만 군복은 안 입어요. 언니와 나는 누구나 친자매 같다고 할 정도로 정말 비슷하게 생겼어요. 키도 둘이 거의 비슷하고요. 언니랑 같이 산 다음부턴 김정일을 만날 때를 포함해서 어딜 갈 때마다 그 언니와 항상 함께했어요. 저희 기 10명 중에 교관 언니와 함께 생활한 것은 함흥예술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한 영미라는 애와 저 두 명뿐이었어요. 영미와 저는 2층에서 언니들과 있었고 나머지 8명은 1층에서 살았습니다. 영미와 함께 있던 언니 이름은 미소였어요. 미소 언니보단 미옥 언니가 상관이었습니다. 이후 김정일을 만날 때는 언니들과 나, 영미 이렇게 4명이 늘 만났습니다. 물론 저와 미옥 언니만 만날 때도 있었고요. 아마 10명의 사진을 엄청나게 찍어서 올려간 뒤 김정일이 저희 두 명을 최종 낙점했고 그래서 저희만 언니들과 특별히 생활한 것 같아요.”

▼ 김정일을 처음 본 것이 언제죠.

“1995년 늦은 여름쯤 됩니다. 학교생활을 시작해 반 년이 안 됐을 때입니다. 갇혀서 지내다보면 시간 개념이 없어져요. 이틀 전에 미옥 언니가 저와 영미를 불러다 ‘너희들은 장군님을 곁에서 보필하는 일을 맡아서 할 것이다’고 아주 엄숙하게 이야기 해주었어요. 여러 주의사항도 자세히 알려줘요. 과잉반응하지 말고 차분하게 행동하라는 것, 장군님의 말씀이 끝나면 자기가 하는 대로 따라서 박수를 치라는 것 등등을 말해줍니다. 저는 어렸을 때 설맞이공연에 참가해 김일성과 김정일 앞에서 공연을 한두 번 했었습니다. 영미는 그런 경험이 없었어요. 영미에게 더욱 조심하라 당부하더군요. 그날 저는 한숨도 못 잤어요. 말해준 그날부터 마사지를 받게 하고 머리도 손질시키고 그랬어요. 당일 날에 분장을 다 시켜요. 저는 10대이니 그 나이에 맞게 화장도 아주 살짝 하죠. 학교에선 매일 아침 입을 옷을 지시해줘요. 그런데 그날은 옷을 새로 가져다주었어요. 저희 신체 사이즈는 이미 다 파악돼 있기 때문에 훗날 말만 하면 어디서 제 몸에 딱 맞는 옷을 만들어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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