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⑨

북한 젊은층의 사랑방정식 집중 분석

불시 소지품 검사 해보니 여학생 가방에서 피임약이 우수수…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젊은층의 사랑방정식 집중 분석

3/6
평양의 오렌지족

그런데 이런 연애도 지역과 학교마다 좀 다르다. 연애에 대한 생각은 평양 등 대도시와 농촌이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특히 대도시에 있는 예능계 학교에선 수십 년 전부터 자유연애가 성행했다. 기자가 중학교를 다니던 때도 예술학원 학생들이 지나다니면 ‘바람둥이들’이라면서 손가락질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런 학교는 지금은 더 심할 것이다.

북한에서 남자는 대학에 가지 않으면 10년씩 군에서 청춘을 보낸다. 중학교 시절 커플이 10년 뒤에 다시 만나 결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군대에 나갔던 젊은이들이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제대해서 집에 돌아오면 우리 나이로 27세 정도가 된다. 결혼적령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에 쫓기듯 허겁지겁 결혼하는 일이 많다. 게다가 군에서 10년씩 있다보면 웬만한 여자는 다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결혼에 이르기까지 곡절이 그다지 많지도 않다.

제대군인들은 연애결혼보다는 중매결혼을 많이 한다. 최근에는 군인들이 아예 주둔지 인근에서 여성을 사귄 뒤 제대하자마자 결혼식을 올리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군에서 연애는 금지됐기 때문에 주둔지 인근 여성들과 연애를 할 수 있는 병사들은 대개 제대를 눈앞에 둔 최고참들이다.



이러한 군인들의 연애문제도 북한 당국의 골치를 썩게 하는 일임이 틀림없지만 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의 풍기문란이다. 특히 이러한 변화의 최전선에는 연애 풍속도를 주도하는 평양의 오렌지족 중학생과 대학생이 서 있다.

기자가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학교뿐 아니라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는 상당히 ‘건전’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남한처럼 대학 캠퍼스에서 남녀가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학에 다닐 때 기자의 학급에도 결혼할 여성을 고르느라 선보러 다니는 30세 전후의 제대군인들을 제외하고는 연애를 하는 ‘직통생’은 거의 없었다. 직통생은 군에 안 가고 곧바로 대학에 온 학생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들은 만 22~23세 때 대학을 졸업했다. 일부 부유한 직통생들이 졸업학년이 돼서야 사회 처녀들과 연애를 시작했지, 대다수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사랑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일탈은 있었으니 이따금씩 임신으로 퇴학당하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기억나는 사례 중에는 이런 일도 있다. 방학이 돼 고향으로 갈 때면 남학생 몇 명과 여학생 몇 명이 보통 함께 기차를 탄다. 서로 보호해주고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번을 같이 다니게 되면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된다.

1990년대 북한의 열차는 전깃불이 없어 밤이면 한치 앞도 가려보기 힘들 정도로 늘 캄캄했다. 한번은 기자가 한밤중에 자다가 깨났는데 인근에서 언뜻 번뜩이는 라이터 불빛을 통해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는 친구 녀석이 역시 우리와 같은 일행인 여학생을 안고 더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정말 놀라운 순간이었다. 가슴이 후두두 떨렸다.

“둘이 언제 눈을 맞추었지.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저 녀석이 실은 저런 바람둥이였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순진한 모습에 내가 속고 산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20대 초반이었지만 기자는 당시까진 서로 손잡고 다닐 정도만 돼도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다. 이후부터 그 친구가 이상한 변태로 보이면서 자연히 마음이 멀어지기까지 했다.

그때는 기자처럼 생각하는 대학생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금은 캠퍼스 분위기가 급속히 바뀌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됐다고 한다.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 변화는 그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중학교 시절부터 외부의 문물에 노출돼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요즘 학생들은 부모들마저 자식들의 변화에 매일 놀랄 정도로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손만 잡아도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던 우리 세대와는 달리 요즘 학생들 사이에는 사랑과 연애, 결혼은 별개라는 인식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지금 평양의 중학교에서는 짝이 없는 학생들은 모자라는 아이처럼 인식돼 여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징표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런 학생들은 사랑이 아닌 연애를 위한 연애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우리 세대는 중학교 때에 좀 좋아했다고 소문난 커플들은 연인이 군대 나갈 때에 바래다주는 것도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커플들이 생일에도 함께하고 평소에도 붙어 다니는 등 예전에 비해 훨씬 과감해졌다고 한다. 특히 평양에선 일부 중학생들은 좋아하는 연인 사이라면 성관계까지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3/6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연재

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잠맘경

더보기
목록 닫기

북한 젊은층의 사랑방정식 집중 분석

댓글 창 닫기

2022/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