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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마지막 회>

북한 협동농장의 어두운 오늘

농민, 군인 가릴 것 없이 농장 곡식 훔쳐가기 바빠 … 전기 없어 탈곡 못한 벼이삭, 겨우내 절구로 찧어 먹어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북한 협동농장의 어두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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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들이 국가계획에 미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농민들의 근로의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 풍작을 거둬봤자 놀고먹던 간부들이 이래저래 다 빼돌려 자기 배만 채우니, 농민들로서는 일할 의욕이 생겨날 수가 없다.

또 다른 이유는 국가계획 과제가 너무 높게 하달되기 때문이다. 농장의 정보당 쌀 생산량이 2t에 불과한데 국가에선 4t으로 정해주는 식이다. 이러면 아무리 노력해도 계획을 달성할 수가 없다. 국가계획이 높게 내려오는 것은 지역 및 농장 간부들의 책임이 크다. 추궁이 두려워 상부에 생산량을 과장해 보고하는 바람에 농민들만 애꿎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선군정치가 시작되면서 농민들의 피해는 더욱 커졌다. 이때부터 가을이면 군인들이 총을 메고 농촌에 와 군량미를 걷어가기 시작했다. 원래 군량미는 국가계획에 포함되는 것이지만 농장들이 늘 국가계획에 미달하자 당국은 군부대별로 농장을 지정해주고는 필요한 군량미를 직접 조달해가도록 한다. 군량미 챙기기에 혈안이 된 군인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가택수색까지 벌여 양곡을 걷어가고 있다.

이런 일은 특히 곡창지대인 황해도 농촌에서 심하다. 고난의 행군 초기에는 황해도 쪽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은 풀 캐 먹는 사람들이 이 지역에 가장 많다고 한다. 특히 이곳 농촌은 규율조차 엄격해 개인 텃밭 일을 할 시간조차 내기 쉽지 않다.

과거에는 계획에 미달한 농장에 한해 국가가 외상으로 농민에게 배급해주고, 다음해 알곡 생산량에서 이를 공제해줬다. 그러나 이마저 국가에서 배급해주던 시절의 얘기고, 이제는 이런 것도 없다.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농촌은 점점 황폐해지고 있으며, 농민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봤자 남는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먹어야 농사지을 힘이 있는 법이므로 각 농장은 가을에 농민들에게 최소한의 양곡을 분배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전력난 때문에 12월 결산분배 때까지 탈곡을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벼나 옥수수 이삭째로 배급을 주는 경우가 많다. 북한 주민들은 겨우내 벼나 옥수수를 절구로 찧어 먹느라 고달프다.

달갑지 않은 ‘지원노력’

벼나 옥수수는 수분 함량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농민들이 받는 몫이 크게 차이가 난다. 양곡 수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개는 수분 감모를 최소한으로 계산해준다. 이렇게 되면 장부상으론 100㎏을 받은 것으로 돼 있어도 이를 말려보면 실제로는 60~70㎏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농민들은 장부상으로는 식량을 많이 받은 것 같아도 실제로는 봄까지 견디기가 힘들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전인 1990년대 초반에는 모내기철이 되면 농장마다 지원노력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가 지원노력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배급제가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엔 농촌지원 노력에 한해 배급을 줬지만, 이제는 지원노력을 먹이는 부담도 농장이 상당부분 걸머져야 한다. 풀뿌리를 캐 먹는 농민이 많은데, 지원노력들에게 나눠줄 식량이 있을 리 만무하다.

물론 지원노력들은 일차적으로 식량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요즘 국가에서 하는 일이라곤 그냥 사람들을 농촌으로 내모는 게 전부다. 도시 사람들 입장에선 자기가 장사해 번 양곡을 메고 농촌에 내려가 한 달 이상 무보수 노동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일단 농촌에 가면 모자란 식량이나 부식물을 현지에 손을 내밀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농장 입장에선 농사를 망쳐도 좋으니 지원노력이 오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 어차피 국가계획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 뻔해 추수 후에 받는 몫이 거의 없긴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부들은 정해진 시일 내에 모내기나 추수를 마치지 못하면 추궁을 받기 때문에 이런 반발을 누르고 지원노력을 보내달라고 한다.

가을마다 지원노력들은 곡식을 훔쳐가는 데 열을 올린다. 농민이 훔쳐가고, 지원노력이 훔쳐가 상당히 많은 곡물이 유실된다. 이를 막기 위해 북한은 가을마다 군인들에게 실탄을 지급해가며 포전 경비를 서도록 한다. 그래서 농작물 도둑질을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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