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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마지막 회>

북한 협동농장의 어두운 오늘

농민, 군인 가릴 것 없이 농장 곡식 훔쳐가기 바빠 … 전기 없어 탈곡 못한 벼이삭, 겨우내 절구로 찧어 먹어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북한 협동농장의 어두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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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협동농장의 어두운 오늘

남쪽의 비료 지원이 중단된 이후 중국산 비료가 장마당에서 비싼 가격에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 사진은 2007년 3월 전남 여수 낙포항에서 북한으로 갈 비료를 선적하는 모습.

하지만 추수기에 어떻게든 훔치지 못하면 내년 봄까지 무사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훔치는 쪽도 필사적이다. 농민들 입장에선 지원노력들까지 도둑질에 합세하면 자기 몫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들이 더구나 반갑지가 않다.

훔치는 방법도 정말 다양하다. 대담한 농민은 아예 밭에 구덩이를 파고 벼이삭이나 옥수수를 몇 t씩 묻어버린다. 그리고 군인들이 가택수색까지 끝내고 철수한 다음에야 천천히 꺼내 집으로 나른다.

옷 안에 큰 주머니를 만들어 붙인 뒤 탈곡 과정에 몰래 숨겨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점심 저녁 먹으러 드나들 때마다 몇 ㎏씩 훔쳐도 상당한 양이 된다. 밤에 배낭을 메고 논에 나가 볏단에서 벼이삭만 잘라오는 사람도 상당수다. 서두에 썼듯 ‘농장 포전이 나의 포전’이 되는 순간이다.

물론 농장 포전을 나의 포전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농민뿐만이 아니다. 대도시 주변 농촌에는 남새(채소) 작업반이 상당히 많다. 도시에서 소비하는 각종 채소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가을마다 훔치고 붙잡고…



이들 남새 작업반의 가장 큰 임무는 김장철에 도시에서 소비되는 배추, 무, 고추 등을 공급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농민들이 남새 농사를 지으면 도시에서 기관이나 공장별로 내려와 인원수만큼 배추나 무를 실어갔다. 물론 이런 배분에서도 남새 농사가 가장 잘된 포전 순으로 노동당, 보위부, 보안부, 검찰, 행정위원회 등 권력기관들이 차지했고, 농사가 잘 안된 포전은 힘없는 노동자 몫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1990년대 북한 경제사정이 어려워지고 비료 공급 상황이 열악해지면서 툭하면 남새농사를 망쳤다. 농민들도 잘하든 못하든 자기 먹는 것과 별 상관없는 남새농사에 매달리지 않았고 대신 개인 텃밭 관리에 열을 올렸다. 당국이 아무리 농민들을 닦달해도 “비료가 없어 방법이 없다” 또는 “식량이 없어 배고파 일을 못 하겠다” 등의 구실을 대기 일쑤였다. 결국 그 손해는 도시 주민들이 볼 수밖에 없었다. 도시에 집중돼 살고 있는 간부들조차 김장배추를 구하기 힘들어졌다.

그러자 1990년대 중반부터 아예 농장 포전을 기관, 기업소, 군부대별로 나눠주고 가을 김장용 남새를 해결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등장했다. 멈춰선 공장에서 딱히 할 일이 없는 노동자들은 자기 공장에 할당된 농장 밭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 비료도 자신들이 구입해야 했다. 밭을 아예 도급 받았기 때문에 농사가 잘되든 못되든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다. 가을 밭 경비를 서는 것도 모두 노동자들의 몫이 되었다. 군부대들도 공장과 마찬가지로 농사부터 경비, 운송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권력기관들은 포전을 가꾸는 흉내만 낼 뿐이다. 이들 몫의 포전은 공장, 기업소에 땅을 나눠줘 농사 부담이 줄어든 농민들이 떠맡았다. 권력기관들의 밭에는 비료도 잘 공급됐다.

북한의 현실에서 이런 식의 땅 떼어주기는 모두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것이라 하겠다. 권력기관은 자기 몫의 밭만 집중적으로 지원하면 그만이고, 농민들은 농장일이 줄어든 덕분에 텃밭 관리를 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이 많아져 좋았다. 흉작이 많이 든 밭만 할당받은 힘없는 공장, 기업소, 군부대들은 넘쳐나는 유휴 노동력을 활용해 열심히 농사지으면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나은 수확을 거둘 수 있어 나름대로 만족했다.

한편 수많은 아사자를 초래했던 고난의 행군은 북한 농촌의 양상을 바꾸어놓았다. 이제는 농촌에 ‘지주’가 생겨나고 있다. 북한 농촌의 지주는 일종의 작업반장이다.

수하에 10~20명을 거느린 분조장보다 이런 분조를 여러 개 관할하는 작업반장의 권한이 더 센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북한 농장은 부락별로 작업반이 구성되기 때문에, 작업반장은 그 부락의 장(長)이나 다름없다.

국가에서 농사를 위해 대주는 것이 일절 없으니 농사를 어떻게 짓는가 하는 것은 농장 간부들의 수완에 달렸다. 또 식량이 없어 자기 부락의 농민이 굶주리면 대개 작업반장이 이들을 돌봐야 했다. 이를테면 작업반장은 마을의 보스다.

요즘 들어 북한의 작업반장들은 농장 일에 별로 머리를 내밀지 않는다. 대신 비료, 농기계 연료, 비닐박막 등 영농자재를 구한답시고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이리저리 읍내를 돌아다닌다. 능력이 좋은 작업반장이 영농자재도 많이 구해온다.

작업반장의 능력은 딴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보통은 가을에 눈치껏 딴 주머니를 얼마나 찼는지에 달렸다. 비료나 연료 역시 숨겨둔 알곡을 내다 팔아 구해오기 때문이다. 물론 분조장들도 이런 일을 하지만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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