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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한 김영환씨도 주체사상은 버리지 못해”

대한민국 주사파를 말하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전향한 김영환씨도 주체사상은 버리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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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한 김영환씨도 주체사상은 버리지 못해”

2003년 6월 24일 민혁당 사건으로 복역 중 교도소 측의 배려로 특별휴가를 받은 이석기 씨(오른쪽)가 대전교도소 앞에서 동료 하영옥 씨를 끌어안으며 반가워하고 있다.

“나름대로 근거를 가진 친북론까지 종북으로 몰아 해로운 정쟁으로 흘러가서는 안 돼요. 종북과 친북은 구분해야 합니다. 이석기 의원 같은 통합진보당 내 구 민노당계와 임수경 선배는 크게 달라요. 통합진보당의 종북 세력은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가 예전에 표현한 대로 광신도 비슷해요.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해요? 그 사람들은 답이 없어요. 386 정치인들은 구 민노당계와 다릅니다. 새누리당이 오버하고 있어요.”

그는 고려대 총학생회장 시절 주사파 지하조직 자주민주통일운동그룹(자민통)의 ‘지도’를 받았다. 1990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현재는 민주당 소속인 윤진호 씨도 자민통이 관리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던 송갑석 씨를 전대협 의장으로 만들고, 고려대 총학생회장 윤진호 씨를 후원한 게 자민통이다. 자민통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전대협을 사실상 주물렀다.

북한 선진화 운동을 하는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이 자민통의 리더였다. 그는 1994년 사회주의를 버렸다. 주사파 팸플릿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김영환 씨와 함께 ‘푸른사람들’이라는 단체를 꾸리면서다. 주체사상을 완전히 버리는 데는 그 뒤로 10년이 더 걸렸다고 한다. 김영환 씨는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다 현재 중국에 구금돼 있다.

“사회주의를 버리고 주체사상에 회의를 품었는데도 극복하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영환이형(김영환 씨)이랑 요즘도 청계산에 함께 다녀요. 올해 2월 마지막으로 산행을 하면서 몸조심하라고 당부했는데, 중국에서 그렇게 됐네요. 예전엔 법륜 스님이랑 영환이형 저, 이렇게 셋이 자주 만났어요. 지금 상황에서 적절한 얘기는 아니지만 영환이형이 주체사상을 버린 건 아니에요. 황장엽 선생하고 비슷한 거죠. 또한 뉴라이트 쪽 사람들에게는 주체사상의 정서 같은 게 남아 있어요. 정서는 남아 있는데 완전히 정반대로 간 겁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를 지낸 한 인사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황장엽 선생은 주체사상을 남한에서 발전시키려 했던 의도가 강했다. 주체사상은 북한 인권 문제와 다른 문제다. (황장엽 선생은) 주체사상이 잘못됐다는 것을 강조한 게 아니라 주체사상을 남한에서 더 개선해 파급시키려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구 씨는 2000년대 초반 SK텔레콤 남북경협 담당 상무로 일하면서 주체사상의 잔향을 날려버렸다고 했다.

“게다가 이념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기업을 경험해본 게 주체사상을 버리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

중앙일보는 5월 29일자 1면에 구 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실으면서 ‘자생적 주사파 리더에서 자본주의 첨병으로’라고 썼다. 그는 ‘중도 보수’를 자처한다. 북한 민주화가 아니라 북한 선진화를 강조한다. 북한 정권을 바꾸려들지 말고 개혁, 개방으로 나아가게끔 정권을 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01년 9월 젊은 시절의 이상향이던 평양을 찾았다. SK텔레콤이 북한 휴대전화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협의하러 간 것. 눈으로 본 평양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고려호텔에 여장을 풀었는데, 노동당 간부 한 명이 찾아와 물었다. “자민통 지도원 동지, 김정일 장군님께서 동지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가 답했다. “위원장님을 만나도 협의할 게 없습니다.”

안희정의 반미청년회

“전향한 김영환씨도 주체사상은 버리지 못해”

5월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회의는 당권파 당원들의 의장석 난입과 폭력 사태로 파행을 빚었다.

자민통 이전에 학생운동의 헤게모니를 쥔 것은 주사파 지하조직인 반미청년회다. 책임자는 조혁 씨다. 주사파 조직은 총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중심은 북한 노동당이기 때문이다. 조 씨는 1998년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에 참여했다. 반미청년회의 2인자 격인 인물이 안희정 충남도지사다. 1987년 결성된 전대협은 사실상 반미청년회가 ‘조직한 것’이다. 우상호, 오영식, 이인영 의원이 반미청년회의 영향력 아래에서 학생운동을 했다. 이들은 모두 대중정치인으로 거듭났다. 조 씨는 캄보디아에 머물면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환 씨의 구국학생연맹(구학련)은 반미청년회, 자민통과 달리 학생운동의 헤게모니를 쥔 적이 없는 소수파였다. 구학련·반미청년회·자민통이 1980년대 주사파 3대 조직으로 불린다. 구학련은 ‘강철서신’을 통해 주체사상을 보급하는 데 역할을 했으나 대중운동에서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주사파의 원조로 불리는 김 씨는 1986년 말 구학련 사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가 50일 동안 고문당했다. 이 같은 경험이 김 씨를 더욱 급진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김 씨는 1991년 강화도에서 북한 잠수정을 타고 월북해 김일성을 만나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남조선에서 지하당을 조직하겠다”고 다짐했다.

구학련은 반제청년동맹으로 이어진다. 통합진보당 옛 당권파의 리더 격인 이석기 의원이 반제청년동맹 중앙위원을 지냈다. ‘김영환 그룹’은 대중운동보다는 학습그룹을 만들어 책 읽고 토론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구학련→반제청년동맹→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최근 불거진 종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민혁당은 김영환·하영옥·박OO 씨 3인이 중앙위원회를 구성했다. 김 씨와 함께 민혁당 해체를 결의하고 자수한 박OO 씨는 국제 관계 전문 변호사로 활동한다. 하 씨는 김 씨에게 “전향하려면 북한 접촉망과 자금을 넘기라”고 요구하곤 민혁당을 재건했다. 경기동부의 핵심인 이석기, 이상규 의원이 민혁당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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