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이는 독재의 경제논리를 지탱하는 구조와 조치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독재정권의 존속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따라서 독재자는 내부 생산성 증가 없이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 특히 외환을 조달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한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자원수출과 원조유입이다. 이처럼 내부 경제의 생산성이 아니라 자원수출과 원조유입 등에 의해 지탱되는 국가를 외래지대 의존 국가(rentier state)라고 한다. 여기서 지대란 석유처럼 ‘자연의 선물로부터 벌어들인 수출 또는 획득된 소득’ 또는 ‘비생산적 경제행위를 통해 자산을 획득할 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기회’라는 뜻이다.
북한은 1990년대 이래 외래지대 의존 국가의 길을 밟아왔다. 최근의 외래지대 추세를 보면 이렇다. 2010년 이래 북한에서 ‘원자재 지대’, 그러니까 원자재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70%에 달한다(석탄 50%, 기타 광물, 가공도가 낮은 광물 상품 및 농수산물 등 1차산업 상품 포함). 나진 선봉 및 청진 등 항만을 중국 또는 러시아에 임대하고 받은 임대수입, 러시아로부터 한국으로 가는 가스관을 설치하고 통과 수입을 확보하는 계획 추진,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관광 진흥 정책, 한국과 인접한 개성에 경제특구 설치 등은 ‘위치 지대’다. 중국의 대북 원조, 한국의 ‘평화보장’을 위한 대북 원조,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외교적 활용을 통해 확보한 원조는 ‘전략적 지대’라고 할 수 있겠다. 끝으로 ‘이민자 지대’가 있다. 탈북자의 대북 송금, 중국을 비롯한 해외로의 노동력 수출이 그것이다.
내부 권력 균형 깨지기 전엔…
이러한 외래지대 수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수입의 대부분이 국가에 의해 독점된다. 내부경제 생산성을 높이지 않고서도 정권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준다. 비생산적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어서 생산을 위해 재투자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수입에 습관을 들이면 노력과 성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해 공짜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지하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내 경제 생산성 증가 조치는 등한시하는 한편, ‘공짜’ 소득을 바탕으로 충성집단 치부, 대내외 정권안보 강화 등 비생산적 지출 및 투자에 자금을 헤프게 쓰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서술했듯 북한의 독재는 정치적, 경제적 구성에 있어 다른 국가의 경우보다 강한 내구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덧붙여 지적해야 할 것으로는 정치변동 주체의 부재와 정권의 강압능력 강화 등이 있다.
1990년대 재앙적 경제위기가 발생했는데도 국내 정치의 동요 없이 정권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 내 정치 행위자 분포의 특징 때문이다. 독재정권에서 등장 가능한 정치행위자로는 정권 강경파, 정권 온건파, 온건 야당과 급진 야당이 있는데, 이 중에서 1990년대 현실적으로 북한에 존재했던 것은 정권 강경파뿐이었다. 따라서 치명적인 것으로 보이는 위기가 도래했는데도 정권 강경파는 시간을 벌면서 재(再)안정화를 모색할 수 있었다.
아울러 김정일은 정권 재편을 통해 노골적 강압기구인 군부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다. 또한 급작스레 악화된 경제난으로 마비에 빠진 당 기구와 국가 기구를 대신해 1995년부터 핵심 무력기구인 군부를 체제 유지의 근간으로 설정하고 선군정치를 시작했다.
또한 무자비한 탄압 및 공안기구의 대대적 강화에 나섰다. 무자비한 탄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공개처형이다.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공개처형의 빈도수는 1990년대 초부터 점차 증가하기 시작해 1995년이 되면 122회로 전년 대비 2.5배 증가하며, 1996년에는 227회로 다시 1.9배 증가하고, 1997년 229회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 1998년 151회로 0.7배 감소하고, 1999년 93회로 0.6배, 2000년에는 90회, 2001년은 42회로 계속 감소한다. 이후 2000년대에는 대체로 약간 줄어든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개처형 숫자로만 보면 북한의 내부 위기는 1995~1998년에 정점에 달했으며, 2001년 이후 상대적으로 안정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에도 이러한 추세에서 그다지 변화된 것이 없다. 김정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는 해도 김정은은 절대적 독재자로서의 위상을 구축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회사는 망해도 소유주는 흥하는 구조’라고 하겠다. 기득권 집단은 20여 년 동안 국가의 공공기능이 붕괴하고 인민경제가 침체한 것을 바탕으로 치부하고 흥성했다. 기득권 집단의 개인은 참담한 북한 현실을 대체로 잘 알고 있고, 유감스러운 생각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기득 이권을 위협할 만큼 현실이 크게 바뀌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은 엘리트 내부의 권력 균형이 깨지는 정치적 변화가 발생하기 전에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세습 정권인 김정은 정권에서 당분간 내부 정치 변혁은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앞으로도 상당 기간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북한은 ‘개혁개방’도 ‘붕괴’도 하지 않은 북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