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호

“RO는 중간단계 조직, 배후에 전위당 있다”

이석기와 ‘내란음모’ 조직의 실체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황일도 주간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13-09-23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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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는 중간단계 조직, 배후에 전위당 있다”

    이석기 의원이 9월 5일 수원구치소로 호송되기 위해 수원 남부경찰서를 나서던 중 결백을 주장하며 “날조” “조작”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9월 5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형법의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현역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 의원은 “국가정보원이 사건을 조작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내란음모죄와 관련해 검찰과 국정원이 어떤 증거를 추가로 내놓고,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차치하더라도, 북한=애국, 한국=반역이라는 이 의원의 현실인식은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면서 헌법을 어긴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확보한 5월 12일 이른바 ‘RO’ 회합 녹취록에는 종북세력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의원과 조직원들은 ‘미국+대한민국=적’ ‘북한=조국’이라는 틀로 세상을 살았다. 주목할 점은 이 의원의 현실인식, 혁명전략이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판박이라는 점이다. ‘세기와 더불어’는 1925쪽, 273만8347자(字)로 이뤄졌다. 북한은 이 회고록에 담긴 혁명전략을 ‘수령의 유훈’으로 삼고 있다. 종북세력이 학습한 선군사상, 총대사상 등도 김일성이 남긴 메시지에서 비롯한 것이다. ‘세기와 더불어’는 냉전 종식 이후 고립 상황을 항일 유격대 시기와 같게 본다. 이 의원은 ‘세기와 더불어’의 메커니즘대로 전쟁이 임박했다는 위기의식과 적대세력에 둘러싸여 있다는 현실인식을 강조하면서 조직원의 충성심을 이끌어냈다.

    이 의원이 거주하던 서울 사당동의 한 아파트에는 ‘이민위천(以民爲天)’이라는 글귀가 적힌 족자가 걸려 있었다. 이민위천은 주체사상을 함축하는 단어다. 김일성은 ‘세기와 더불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겨왔고 인민을 하느님처럼 섬겨오고 있다. 나의 하느님은 다름 아닌 인민이다. 세상에 인민대중처럼 전지전능하고 위력한 힘을 가진 존재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민위천’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4월 13일 개정된 북한 헌법 서문은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어”라고 명기하고 있다.

    이 의원은 RO 회합에서 이런 말도 했다.

    “한 자루의 권총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3대 이상 중에 항일의 사상 문제를 제기했고(*) 동지애를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세 번째가 한 자루 권총인데, 한 자루 권총이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죠….”



    김일성 메시지대로 전략 세워

    ‘세기와 더불어’대로라면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은 제국주의를 타도하는 데 쓰라면서 두 자루 권총을 아들에게 남겼다. 김일성은 6·25전쟁 중이던 1952년 두 권총 중 하나를 김정일에게 주면서 “아직 끝나지 않은 제국주의 세력과의 혁명투쟁을 ‘총대’로 완성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세기와 더불어’가 극적으로 묘사하는 ‘한 자루 권총 사상’과 ‘총대혁명 원리’가 김정일 선군정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 의원은 RO 회합을 비롯해 각종 강연에서 ‘동지애’를 강조했다. ‘동지애’는 ‘세기와 더불어’에 36회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다. “고난을 각오하라.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각오해야 한다”는 발언에 등장하는 ‘고난의 행군’은 ‘세기와 더불어’에 83회 나온다. 이 의원이 가진 현실인식의 뿌리는 김일성이 남긴 메시지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기와 더불어’에 김일성의 혁명전략 메시지는 총 697회 등장하는데, ①정체성 및 위협인식(106회, 3개 항목) ②규범(4개 항목) ③정책선호(4개 항목)로 범주화할 수 있다. 이 의원은 RO 회합에서 밝힌 ‘미제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 또한 김일성의 메시지를 가져와 현실에 대입했다 ( 참조). 이 의원은 북한이 항일 무장투쟁 역사의 극적인 장면으로 선전하는 ‘보천보 전투’의 사례도 참고했다. 김일성은 적의 영역 안(함경도)에 있는 세력(조선광복회)과의 사전 모의를 통해 기습의 효과를 배가했다. 보천보 전투는 현재 북한 군사전략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국정원이 민혁당 잔류파에 대한 내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지난해 상반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민혁당 잔류파가 지하당을 재건했을 소지가 큰 것으로 봤다. 국정원이 재건의 주체로 처음 의심한 인물은 이 의원이 아니라 민혁당 중앙위원이던 하영옥 씨다. 공안당국에서 책임을 가진 지위에 있는 한 인사는 지난해 5월 초순 이렇게 말했다.

    “민혁당이 재건돼 경기동부연합을 장악한 후 통합진보당 당권을 획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영옥 주도로 이뤄진 것인지, 북한과 연계성이 있는지 행적을 조사하고 있다. 하영옥은 잠적한 상태다. 공식 수배는 아니지만 행적을 찾으면 내사를 거쳐 조사할 수 있다.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이라 조심스럽지만 이석기도 재건에 가담했다고 본다.”

    이 인사는 며칠 후 이렇게 덧붙였다.

    “하영옥의 소재를 확보했다. 하영옥의 그간 행적이 어땠는지 내사가 진행 중이다. 요새 보안관찰이 무력화해 있어 대상자의 소재가 곧바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대북 연계점을 검증하고 있다.”

    “RO는 중간단계 조직, 배후에 전위당 있다”


    국정원이 하 씨를 민혁당 재건 주체로 지목한 것은 결과적으로 헛발질로 드러났다. 주사파 조직 내 헤게모니 다툼에서 밀린 것인지, 생각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하 씨는 변혁운동을 접었다고 한다.

    민혁당은 주사파의 원조 격인 김영환 씨가 주도해 만든 이적(利敵)단체다. 1997년 김 씨 주도로 해체를 결의했다. 하 씨는 이 같은 해체 결의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민혁당 산하 경기남부위원회, 영남위원회를 관리했다. 하 씨의 ‘재건민혁당’(김 씨가 민혁당 해체를 결의한 후 1999년까지의 민혁당)은 1999년 공안당국에 적발되면서 와해됐다. 앞서의 공안당국 인사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말하지 않았나, 민혁당이 재건됐는데, 경기동부연합이 그중 하나라고.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이념적 모의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 다른 범죄다.”

    국정원이 민혁당을 재건한 전위당이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동부연합이 그중 하나’라는 표현은 또 다른 조직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면 통합진보당과 이 의원은 “국정원의 날조, 조작이다” “경기도당 당원 모임이었다” “RO라는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단체생활하며 고립 자초

    이 의원은 5월 12일 이른바 RO 회합 때 자신들의 종북적이면서 시대착오적 사고를 “20~30년 쌓아왔던 양심과 신념, 세계관”이라고 표현했다. 조직원들은 이 회합에서 적기가(赤旗歌)를 불렀다. 6·25 전쟁 때 북한군이 군가로 사용한 노래다. 붉은 기 높이 들고 감옥, 단두대를 불사하며 원수, 즉 ‘미제와 그 앞잡이들’과의 전쟁에 나설 것을 선동한다.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는 RO 회합 때 권역별 토론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 준비(정치·군사적 준비)를 갖추는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앞으로 더욱 강력한 조직 생활, 팀 생활 이런 것을 통해서 저희들이 당장 키워야 되는 대중도 마찬가지고 저희들이 앞으로 이 대결을 통해서 엄중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목숨 걸고 싸우는 각오로 군중사업도 해야 되고 자기 책임도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습니다.”

    조 대표도 민혁당 출신이다. ‘팀 생활’ ‘조직 생활’ 이라는 조 대표 표현대로 ‘이석기 그룹’은 묵가(墨家)를 닮은 일종의 공동체였다. 운동 기풍에 개인적 요소가 등장할 수 없었다. 노동을 해 돈을 벌면 공동체에 내놓았다. 단체생활을 했다. 우위영 전 통진당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6~7명 정도의 핵심간부들은 상근활동을 했기에 새벽에 신문배달이나 우유배달을 해 생계비와 활동비를 충당했습니다. 하루 일과는 새벽 3~4시 사이에 시작됐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됐습니다. 최소한 1년의 절반은 그렇게 생활했습니다.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자는 것은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습니다.”(민중의소리, 2010년 2월 19일자 인터뷰)

    ‘이석기 그룹’은 성남을 중심으로 한 경기동부 지역에서 터사랑청년회 청년학교 청년대학 등을 꾸려 ‘군중사업’을 벌였다. 김미희 통진당 의원, 우 전 대변인 등이 터사랑청년회 출신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이석기 그룹을 두고 “광신도” “발달장애”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왜 시대착오적 인식에 매몰된 걸까.

    이 의원은 1980년대부터 경기동부지역 주사파 운동권에서 ‘탁월한 리더’였다. 1980년 2월 성남시에 위치한 성일고를 졸업했다. 고교 졸업 2년 후인 1982년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중국어통번역과에 입학했다. 1987년 8월 하영옥 씨 등과 “모든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남한 민중을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무장시키고 주체형 새 세대 청년혁명가를 양성해 미군을 축출하고 현 정부를 타도한 후 조국 통일을 이룩해 공산정권을 세우기”로 의기투합했다. “김일성이 1927년 청년학생들을 모아 조직했다”고 북한당국이 선전하는 ‘반제청년동맹’을 조직명으로 삼았다.

    성남市는 신념, 세계관의 토대

    이 의원, 하 씨 등은 1988년 4월 ‘반제청년동맹 결성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김영환 씨가 이 조직에 가입한 것은 10개월 뒤인 1989년 2월이다. 이때만 해도 이 의원과 김 씨는 수평적 관계였다. 1992년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인 김 씨, 하 씨, 박○○ 씨가 반제청년동맹을 토대로 민혁당을 창당했다. 북한은 김 씨를 통해 하 씨, 박 씨에게 김일성 훈장을 수여한 사실을 알렸다. 이때부터 이 의원은 하 씨의 지도를 받았다.

    1971년 8월 10일 경기 광주군에 서울의 도시빈민을 수용하고자 광주대단지가 건설됐다. 도시빈민들은 영세한 작업장에서 노동을 했다. 산모가 갓난아이를 삶아 먹었다는 소문이 나돌 만큼 환경이 열악했다. 이 의원이 학창 시절을 보낸 성남은 광주대단지가 시로 승격한 곳이다. ‘이석기 그룹’은 차별, 배제를 받던 성남에서 단체생활을 하면서 노동운동, 빈민운동을 벌였다. 동지애가 싹틀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 의원이 1993년 8월 하 씨에게 보고한 ‘1993년 경기남부위원회 상반기 사업총화’에 따르면 이 의원은 당시 민혁당 당원 4명(민혁당 전체 당원 수는 100명이었다.) 반제청년동맹 조직원 14명을 지도했으며 관할하는 기본역량은 700명, 최대역량은 2000명에 달했다. 공안당국은 이 인맥 중 상당수가 이른바 RO로 이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RO 회합에 참석한 김미희 의원은 김영환 씨가 지도한 서울대 지하서클 단재사상연구회에서 활동하다 졸업 후 터사랑청년회에 합류했다. 김 의원은 광주대단지에서 성장한 백승우 전 통진당 사무부총장과 결혼했다. 김 의원은 윤원석 전 ‘민중의 소리’ 대표가 성추행 전력이 문제돼 성남 중원구 통진당 국회의원 후보에서 낙마하면서 후보직을 넘겨받아 당선했다. 윤 전 대표 역시 광주대단지에 위치한 성남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석기 그룹’에게 성남이 갖는 의미는 활동거점 수준이 아니라 양심과 신념, 세계관의 토대가 되는 ‘집단적 기억’의 기초가 되는 곳이다. 성남을 거점으로 수원, 용인 등에서 구축한 ‘동지애’에 기초한 네트워크는 경기동부연합이 민노당, 통진당의 당권을 잡는 데 혁혁한 역할을 했다.

    이 의원이 혁명을 꿈꾸는 조직의 핵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국정원 수사로 상당 부분 드러났으나 편향된 사상을 갖는 데 영향을 끼친 인생 궤적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는 지난해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경선 홍보영상에서 “젊은 시절 그 흔한 사진 한 장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의원은 가족의 행복 같은 일상의 가치보다 변혁운동을 앞에 뒀다. 1990년 결혼해 2002년 이혼했다.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불우한 삶의 궤적

    1980년대 초반 이 의원은 TV로 대학가요제를 시청하다 가요제에 참가한 여대생 A씨에게 눈길이 가 직접 찾아가 교제를 청했다. A씨는 이 의원의 의식체계를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으나 비판의식과 열정에는 공감했다. 변혁운동가 중엔 부부가 같은 길을 걷는 예가 적지 않지만 이 의원의 아내는 그런 일과는 무관했다.

    이 의원은 대학 졸업 후에도 변혁운동을 하느라 직업을 갖지 않았다. A씨가 10년 넘게 경제를 책임지면서 아이를 키웠다.

    이 의원이 민혁당 사건 등으로 수배돼 집을 나간 후 A씨는 이 의원의 신념과 이상만을 고집하는 태도에 조금씩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A씨는 이 의원이 도피생활을 할 때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으면서 이 의원이 민혁당 사건과 관련돼 있으며, 이념세계가 가정생활과 병행하기 어려울 만큼 편향돼 있음을 알게 됐다.

    2001년 A씨는 e메일로 이혼을 제안했으나 이 의원은 거절했다. A씨는 결국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혼인생활이 위기 상황에 이른 것을 현실 정치체제의 모순 탓으로만 돌렸다.

    국방부 부이사관으로 일하던 누나는 이 의원의 도피 자금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정직을 당했다. 나중에 “징계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을 받았으나 다발성 경화증을 앓다 2005년 숨졌다. 암 투병을 하면서 옥바라지를 한 어머니는 2008년 사망했다.

    이 의원의 인생 궤적은 이렇듯 불우했다. 소련, 북한의 몰락을 지켜본 후에도 삶의 항로를 전환하지 않은 이면에는 ‘소외되고 고립된 광주대단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경험’ ‘용인지역 운동권으로서의 마이너 의식’ ‘조직생활, 동지애를 바탕으로 군중운동에서 이룬 성과’ ‘평범하지 않은 개인사’ 등이 똬리 틀고 있다고 분석해볼 수 있다.

    이 의원은 2003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후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정치 컨설팅업체인 CNC(옛 CNP전략그룹)를 통해 통진당의 전신 격인 민노당의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NL(민족해방) 계열의 후보가 총학생회를 장악한 대학에서도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각종 노동조합 선거 컨설팅도 했다. 성남 용인 수원을 중심으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와 사업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민노당, 통진당의 당권을 장악하는 데 뒷배 구실을 했다.

    군자산의 약속

    ‘신동아’는 2012년 5월호 ‘국회 진입한 마지막 주사파 실체 : 김일성주의 신봉한 하영옥 그룹이 경기동부 핵심’, 7월호 ‘대한민국 주사파를 말하다’, 8월호 ‘위대한 김정은 동지 만세! 김정일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9월호 ‘김영환 심층인터뷰 : 북한서 민중봉기 일으키겠다, 내 방식 주체사상 포기 안 해’, 10월호 ‘꿩 잡는 게 매, 모든 정보 까서라도 이석기 감옥 보낼 것’ 등의 기사를 통해 이석기 그룹과 종북세력의 실체를 심층보도했다. 경기동부연합으로 상징되는 이석기 그룹의 실체, 그들이 가진 사상의 본질, 진보정당 당권을 잡아가는 과정 등과 관련해 최근 나오는 기사의 대부분이 ‘신동아’가 지난해 5개월에 걸쳐 집중보도한 내용이다. 민혁당 잔류파가 경기동부연합의 핵심임을 알린 것도 ‘신동아’가 처음이었다.

    경기동부연합이란 명칭은 1991년 12월 결성된 NL계열 운동권의 전국 조직인 전국연합의 성남·용인 중심 지역조직에서 비롯했다.

    전국연합 지도부는 2001년 9월 충북 괴산 군자산에 모여 “3년 내 민족민주정당 건설, 10년 내 연방통일조국 건설” 등의 내용이 담긴 ‘군자산의 약속’을 결의한 후 PD계열(평등파) 중심으로 2000년 창당된 민노당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민노당의 비주류이던 NL계열(자주파)은 위장전입, 당비대납 유령당원 동원 등을 통해 2004년 9월 이후 당권을 장악해갔다. 2006년 1월 지도부 선거에서 자주파 중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이 연대해 당권을 확보했다.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을 ‘범(汎)경기동부연합’이라고도 한다. 지난해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동 이후 오랜 동지이면서 경기동부연합과 경쟁해왔던 울산연합은 등을 돌렸다. 이석기·김재연·김미희·이상규·오병윤·김선동 등 통진당 의원 6명 전원이 범경기동부연합 소속이다.

    요컨대 자주파 전체가 종북 노선을 따른 것은 아니지만, 종북파가 자주파를 장악하고 자주파가 당권을 쥔 게 2004년 9월 이후의 민노당이다. 그 중심에 ‘이석기 그룹’이 자리 잡고 있었다.

    “통진당은 전술 전당”

    ‘군자산의 약속’은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이라는 문건으로 정리돼 있다. 이 문건은 박헌영의 ‘8월 테제’에 빗대 ‘9월 테제’로 불린다. 9월 테제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 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각론은 이렇다. △통일전선운동의 꽃은 중간층과의 사업이다 △변혁의 성패는 중간층을 누가 전취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당을 갖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미 투쟁은 이남 민중만의 과제가 아니라 전 민족적 과제이며 반미 자주화를 실현하는 힘 역시 전체 민족 자주 역량으로부터 나온다 △민주 노조운동을 반미 자주화를 주선으로 하는 운동으로 발전시키자 △반미 자주화 투쟁을 승리로 이끈 이후 민족민주 진영이 광범위한 민중의 지지를 받는 정치적 다수파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국회에 제출된 체포동의안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지난해 8월 경기 광주시 곤지암에서 열린 ‘진실승리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2014년 광역, 2016년과 2020년 총선에서 제일 진보인 야당을 구성하고 2017년이야말로 진보집권시대의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올리자는 전략적 방향을 세운 바 있다”고 말했다. 과대망상에 가깝지만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20대 총선을 통해 제1야당의 위상을 확보한 뒤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집권 시간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석기 그룹’이 걸어온 길은 이렇듯 9월 테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민노당 정책위 부위원장, 진보신당(현 노동당) 정책위 의장을 지낸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진보정당운동사’(2009년)에서 이렇게 썼다.

    “자주파, 특히 종북파에게 민노당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통일전선적 성격을 지닌 정당으로, 그것은 전략적 지위의 정당이 별도로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통일전선적 성격의 전술 정당이기에 그들에게 민노당은 장악해야 할 대상에 불과했고 당을 장악하면 종북파 노선의 패권주의적 관철이 우선시됐다. 이들의 기본노선과 숙원사업은 2001년에 마련된 59쪽 분량의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이른바 9월 테제 문건에 잘 드러나 있다.”

    조 교수의 언급에서 ‘전략적 지위의 정당’이 전위당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의원은 5월 12일 회합에서 “당 쪽에 있는 분들은 은연중에 합법주의적 사고가 침투해 있더라”는 식으로 회합에 모인 사람들과 통진당을 분리해 말했다.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된 한동근 전 통진당 수원시위원장은 “우리가 지금 남부연합이라든지 당과 차이가 있지만 일상적인 전시 비상체계가 필요하다.…가장 중요한 무기는 우리 조직 보호에 있다”고 말했다.

    공안당국 수사범위 확대중

    민혁당은 직접 지도한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 반제청년동맹과 별도의 RO 17개 등 18개의 RO를 갖고 있었다. 민혁당의 RO는 전위조직(VO·Vanguard Organization)의 지도를 받으면서 RMO(혁명적 대중조직)와 MO(대중조직)를 아래에 둔 중간단계 조직을 가리켰다. RMO와 MO는 VO 핵심이 누군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민혁당 시스템을 단순대입하면 ‘이석기 그룹’ 핵심세력이 VO, 5월 12일 회합에 모인 이들이 RO, 통진당에서 활동하는 핵심인사가 RMO, 통진당 전체가 MO가 된다. 따라서 또 다른 RO 혹은 RO들이 존재할 소지를 배제할 수 없다.

    RO 배후에 민혁당 형태의 지하당이 존재하는지와 관련해 주사파 조직생활을 하다 노선을 전환한 인사들의 의견은 서로 달랐다. “RO가 중간단계 조직”이라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했지만, “배후에 지하당이 존재한다, 그렇지 않다”를 두고 견해가 엇갈렸다. RO(혁명조직)-통진당(대중조직)-민중의 소리(언론)-CNC(재정)-경기도 외 조직-학생운동권 등을 아우르는 수뇌부가 존재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는 5월 12일 회합에서 “전쟁이 발발하거나 했을 때 중요한 문제는 수뇌부를 지켜야 하는 거예요. 대표님(이 의원)을 중심으로 해서”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서 ‘수뇌부’를 VO에 해당하는 조직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한 인사는 “국정원이 이번에 적발한 것은 통진당 경기도당 당원들이다. 그게 전부일까. 경기도당 밖의 조직을 아우르는 수뇌부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안당국 역시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대착오적 이념을 손에 들고 ‘혁명의 승리’를 꿈꿨던 이석기 그룹.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느니 그렇지 않으니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가 아닐까. 이들에 대한 심판은, 2016년 총선 때 국민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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