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호

총선특집 | 새누리당 50일 공천전쟁

이한구_ ‘찌라시’와 녹취록에 굴복 김무성_ ‘부산 식구’ 다 구하고 ‘대구 학살’ 묵인 유승민_윤상현 先攻 못해 ‘도마 위 생선’ 신세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 song@yeongnam.com

    입력2016-03-23 15: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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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주요 시도별로 1~5명의 현역 의원을 컷오프하겠다고 했다. 유혈 낭자한 공천이 예상됐다. 그러나 물갈이 개혁을 희망하는 쪽에서 보기에 결과는 용두사미에 그쳤다. 현역 의원 탈락 비율은 역대 공천에 비해 낮았고 개혁성은 야당보다 떨어져 보였다. 

    김무성 대표는 상향식 공천을 주장했다. 현역 의원에게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방식이다. 그는 비(非)박근혜계 현역 의원을 많이 생존시켜 총선 후 당내 최대 계파 수장이 되고자 한 듯했다. 이것이 그의 대권가도에도 유리했다. 반면, 친(親)박근혜계는 ‘박 대통령과 진심이 통하는 사람들’로의 대폭적 물갈이를 원했다.

    이런 가운데 2월 초 친박계가 지지하는 이한구 의원이 공천관리위원장이 됐다. 김 대표는 통화에서 “이미 룰이 확정돼 있어 위원장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예상은 빗나갔다. 이한구 위원장은 김 대표가 금기시하는 전략공천, 우선추천, 컷오프를 보란 듯 밀어붙이겠다고 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위원장 인사에 동의해준 게 김무성의 결정적 패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부 관계자는 “김무성은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김 대표는 ‘남는 장사’를 했다. 친박계에 내줄 건 내줬지만 자신도 알짜배기를 챙겼다. 우선, 김 대표 본인이 컷오프되지 않았다. ‘당 대표니 당연한 거 아냐’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 위원장은 당 대표가 두 차례 낙천한 사례를 언급했고 김 대표는 당을 해롭게 한 행위(살생부) 논란에도 휩싸였다. 김 대표는 “내가 말하면 내가 죽는다”며 20여일 간 입을 닫고 지냈다. 낙천 공포, 자기보호본능의 정황이다. 이어 김 대표는 자신의 친위대인 부산지역 의원 전원을 살려냈다. 우선추천·컷오프의 와중에도 상당수 지역에서 상향식 공천이 실시되게 했다. 덕분에 전국적으로 수많은 비박계 현역 의원이 살아남았다. 예를 들어 3월 13일 경선 결과 10곳 중 9곳에서 현역이 이겼다. 김 대표의 오른팔, 왼팔인 김학용·김성태 의원도 공천을 받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 사정을 잘 아는 여권 인사 A씨는 공천 흐름을 바꾼 요인으로 살생부 파문, 여론조사 결과 유출, 윤상현 막말 녹취를 꼽는다. A씨의 설명이다.



    “이한구는 김무성·유승민을 날리고 비박계도 무더기로 쳐낼 기세였다. 살생부 ‘찌라시’와 이를 뒷받침하는 당 여의도연구원 여론조사 결과 유출로 그 기세가 꺾였다. 찌라시에 친박계 중진이자 공천을 추인하는 최고위원회 멤버 서청원이 들어 있었다. 친박 내부에 균열이 났다. 친박 소장파 핵심 윤상현이 여기에 열 받아 ‘김무성 죽여버려, 이 XX’라고 욕설을 했는데 이것도 녹취돼 폭로됐다. 구도가 ‘현역 물갈이’에서 ‘친박실세 공천 개입’으로 돌변했다. 이한구는 위축돼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김무성도, 서청원도, 전국 각지 여러 의원들도 다 살았다. 그러니 3선 주호영이 ‘왜 나만 탈락시켜?’라고 반발할 수밖에.
    이한구는 막판에 물갈이 여론이 힘을 얻자 유승민계 전체와 이재오 등 비박계 일부를 대상으로 마지막 칼을 휘둘렀다. 동시에 윤상현도 컷오프 할 수 밖에 없었다. 김무성 직계는 별로 다치지 않았다. 찌라시와 녹취록이 집권 여당 공천에서 최고 위력을 발휘했고 결과를 바꿔놓았다. 다른 말로, 친박의 역량이 그만큼 부족했던 것이고.” 
     
    ‘김 대표가 친박계로부터 40명 물갈이를 요구받았다’는 살생부 파동은 비박계 정두언 의원의 2월 27일 언론 폭로로 시작됐다. 김 대표가 살생부의 존재를 부인하자 정 의원은 김 대표로부터 살생부에 대해 들었고 논란이 되자 입을 맞추자는 요청까지 받았다고 했다.

    3월 3일 여의도연구원에서 공천 신청자들의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가 4장의 사진 파일로 유출됐다. 민감한 몇몇 선거구는 언론 여론조사 결과와 달랐고 이 때문에 살생부가 더 그럴듯해졌다.
    그날 밤 대통령정무특보를 지낸 윤상현 의원이 술에 취해 “형”이라고 칭한 인물과 통화하면서 김 대표를 향해 막말을 했다. 윤 의원 옆에 있던 누군가가 이를 녹음했고 며칠 뒤 이 녹취록이 채널A에 전달돼 폭로됐다.



    “무대 아니라 무졸”

    김 대표는 철저히 침묵했다. 살생부와 관련해 ‘공관위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선 엄중 조사해 문책한다’는 최고위원회 결의에도 동의했다. 굴욕이었다. 윤상현 막말에도 별말을 하지 않았고 그의 사과도 받지 않았다. 반면 이 위원장은 당 대표 낙천 사례를 언급하면서 김 대표를 몰아붙였다. 윤상현과 김무성 공천을 함께 묶어서 보류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 대표가 일방적으로 밀리자 ‘무대’가 아니라 ‘무졸’이라는 말이 나왔다. 당에선 주도권이 친박계로 완전히 넘어갔다고 여겼다. 그러나 알파고가 이상하게 지지 않듯, 김 대표는 밀리지 않은 공천 결과를 받아 쥐었다. 100% 상향식 공천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대권 가도에 아스팔트를 깔았다. 고향 부산 18곳의 현역 전원이 살아남았는데, 이들은 김무성의 백기사, 흑기사가 될 게 틀림없다. 역대 총선의 부산지역 현역 교체율은 50%에 달했다.


    “넋 놓고 있었겠나”

    김 대표의 참모 B씨는 김 대표가 밀릴 때 “지금 평가하지 말자.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자. 우리가 넋 놓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부산 공천심사가 마감되자 B씨는 득의에 찬 표정으로 “거봐라”라고 했다. “처음에 이한구가 뭐라고 했나. 시도별로 4~5명까지 현역을 쳐내겠다고 하지 않았나”라고 이한구를 조롱했다.

    김 대표는 사석에서 이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토로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이 박민식 부산시당위원장에 대한 공천을 미루면서 부산 선거에 차질을 빚게 했다는 이유였다. 김 대표의 측근인 박 의원은 박에스더 예비후보와 경선을 치르는 것으로 3월 14일 확정됐다. 김 대표는 “부산시당위원장은 낙동강벨트를 책임져야 하는데 공천 결정을 질질 끌다가 부산에 연고도 없는 후보와 경선을 붙인 건 이해할 수 없다”며 이 위원장을 성토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C씨는 “김 대표가 단단히 뿔이 나 있었다”고 했다. C씨는 “이 위원장이 김 대표를 골탕 먹이려 하는 것 같았다. 이성을 잃은 짓”이라고 함께 분개했다.

    김 대표의 다른 측근인 D씨는 김 대표의 침묵에 대해 “떠들면 싸움밖에 더 나느냐. 이한구는 골치 아픈 인물이다. ‘당 대표도 컷오프된 적 있다’고 마구 말하는 사람을 맞상대하면 분란만 일어나기 때문에 참고 참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무성 대표는 일부 현역 탈락자의 경우 납득할 수 없다며 자기와 가까운 공관위원들을 통해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이럴 때마다 김회선 공관위원의 방어벽에 번번이 막혔다는 전언이다. 검사 출신으로 국정원 2차장을 지낸 김 위원은 공관위 산하 자격심사소위원장과 클린공천지원단장을 겸하고 있다.

    김 위원은 고소, 투서 등 당에 접수된 후보자의 신상 정보를 집중 검토해 세밀한 검증자료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후보자의 평판, 범죄 전력, 도덕성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김무성 대표가 일부 탈락자들에 대해 설명을 요청하자 공관위는 김 위원이 확보한 자료를 들이밀며 부적격 사유를 나열했다고 한다. 당의 한 관계자는 “그중엔 알려지지 않은 민망한 추문도 있어 김 대표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부산과 달리, 대구에선 현역 10명 중 상당수가 날벼락을 맞았다. 유승민계로 알려진 초선 의원들뿐만 아니라 친박계 중진인 서상기 의원도 탈락했다. 이를 두고 김무성-이한구 빅딜설도 나온다.

    ‘김 대표는 이 위원장이 유승민계를  자르는 것을 묵인하는 대신, 이 위원장은 김 대표 측근인 부산 현역들을 살려줬다. 대구 학살을 위해 부산에선 최대한 상향식 공천 원칙을 적용해줬다’는 게 얼개다. 이 과정에서 이 위원장이 간접 경로로 청와대와 논의했을지 모른다고 한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에 의해 ‘배신의 정치’ 당사자로 지목된 바 있다.



    “고교 선배가 해도 너무해”

    공관위는 대구 현역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김회선 위원은 면접 때 유승민계로 분류된 의원 6명과 서상기 의원에게 “지역에서 교체지수가 높게 나오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 소명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대구의 초선 E의원은 “아무리 알아봐도 여의도연구원에서 현역 의원 교체지수를 공식적으로 조사한 게 없더라. 김 위원이 자체적으로 했는지, 언론사 여론조사를 근거로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때부터 친박, 비박을 막론하고 대구 의원들은 모두 불안에 떨었다고 한다. 친박계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병)조차 “부산은 다 살고 대구만 난리가 났다”고 불안해했다.

    이한구 위원장은 16대 국회에 전국구(현 비례대표)로 진출해 대구 수성갑에서 내리 3선을 했다.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공관위를 이끌면서 고교(경북고) 후배가 다수 포함된 대구 현역들을 쳐내는 데 팔을 걷어붙인 셈이다. 이에 대구 출신 의원들은 “고등학교 선배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면서 부글부글 끓었다.

    컷오프된 주호영 의원(수성을)은 “완전히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이 위원장을 비난했다. 경쟁할 ‘진박’ 후보가 없어서 안심하고 있다 탈락한 홍지만 의원(달서갑)은 “차라리 진박이라도 내려 보내지…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탄식했다. SBS 앵커 출신 홍 의원은 지난해 초 유승민 원내대표-원유철 정책위의장 후보 조합을 엮어 두 사람이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에 당선되는 데에 혁혁하게 기여했다. 유-원-홍 의원은 당시 그렇게 사이가 좋을 수 없었다. 그러나 1년 만에 세 사람의 운명은 갈렸다. ‘신박(新朴)’이 된 원 의원은 유 원내대표가 물러난 뒤 원내대표가 된 반면, 유-홍 의원은 정치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유승민계로 알려진 김희국 의원(대구 중남구)은 공천 탈락 전날 통화에서 이한구 위원장과 친박계를 비판했다.
    “지난해 가을 유승민 의원이 부친상을 당했을 때 상가에서까지 윤상현 의원이 ‘TK 물갈이’ 어쩌고 떠들고 다녔다. 그 때 두들겨 잡았어야 했는데. 이한구 위원장은 요즘 칼춤을 추듯 매일 뉴스를 쏟아냈다.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고향 선배라 말도 못하고 죽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도마 위에 오른 생선이었다.”

    ▼ 왜 이한구 위원장에게 항의하지 않았나.

    “구체적으로 말한 게 아니고 추상적이어서 뭐라 할 수 없었다. 컷오프 지역이 권역별로 1~4곳 된다고 했다가, 또 5곳까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소문만 내고, 그 기준도 도덕성, 지지율 이런 얘기만 하니 어쩌겠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 이 위원장이 왜 이렇게 했다고 보나.

    “고도의 공명심에서 날뛰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듣는 사람들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공관위원장이 ‘내 마음대로 한다’며 그렇게 입을 함부로 열면 안 되는 거였다. 자기는 재미로 돌을 던지지만 맞는 개구리는 머리가 깨진다. 신중하게 했어야 했다.”

    김 의원은 “친박계 핵심이 박근혜 대통령을 팔아 ‘좌건외역(左建外易)’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좌건외역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로, ‘신하가 군주를 팔아 권위를 세우고 군주의 명령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살짝 왜곡하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의원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뛴 정황은 없다. 윤상현 의원과 유 의원이 ‘패키지’로 묶이는 상황이 되자 김 대표의 스탠스는 더 모호해졌다.

    친박계 최경환 의원은 유 의원에 대해 “국회법 파동으로 사퇴하면서 헌법 1조 1항을 들먹였으니…왜 저렇게 해야 하느냐 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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