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호

4·13 총선 후폭풍

‘친박 핵심’ 최경환 변심? ‘朴 위한 십자가’ 안 진다?

참패 새누리당 부글부글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 song@yeongnam.com

    입력2016-04-20 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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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이 과연 180석까지 확보할 수 있을까요?”

    한 지상파 텔레비전의 총선 특별방송에서 진행자는 약간 미소 띤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어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드라마틱한 반전이었다. 개표가 시작됐다. 서울 및 그 경계선을 따라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린 인구 밀집 도시들은 파란색(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으로 물들어갔다.

    무소속을 다 끌어모아야 130석 될까 말까 하게 쪼그라들었지만, 그래도 집권여당은 집권여당. 이 정당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에 관해 들어봤다. 당 사람들은 “총선에 패하면 패한 대로, 그걸 토대로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 간 당권·대권 싸움이 계속될 듯싶다. 당 대표 경선과 원내대표 선거가 첫 격돌장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비박계 좌장 김무성 전 대표는 선거 직후 사퇴했고, 친박계 원유철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親朴 78명, 非朴 37명

    심오한 바둑도 결국 ‘집 숫자’ 싸움이듯 정치권력 투쟁도 종국엔 ‘의원 숫자’ 싸움이다. 자기 계파 소속 국회의원 당선인이 많을수록, 여기에다 자기 계파 소속 원외 당협위원장이 많을수록 이길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친박계와 비박계가 국회의원 당선인과 원외 당협위원장을 각각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는지 조사해봤다. 편의상 지역구에 출마해 낙선한 후보를 원외 당협위원장으로 분류했다.



    이 조사를 위해 일부 새누리당 의원실에서 유통되는 내부 문건을 활용했다. 20대 총선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들을 친박계와 비박계, 기타 계보로 분류한 문서였다. 여권 인사들의 구두평가 및 언론보도 내용을 토대로 계파 구분의 정확도를 어느 정도 검증했다.

    그 결과, 친박계 당선인은 78명, 비박계 당선인은 37명, 계파 구분이 모호한 전문직 비례대표 당선인은 9명으로 분류됐다. 낙선한 원외 당협위원장 수에서도 친박계가 비박계보다 훨씬 많았다. 이는 “친박계 당선인 61명, 비박계 당선인 45명”으로 보도한 ‘한국일보’ 보도에 비해 친박계 당선인 수가 다소 많은 편이다. 어찌 됐든, 두 조사 모두 ‘친박계 당선인이 비박계 당선인을 숫자로 압도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당 대표와 원내대표 선출 때 친박계가 우위에 설 가능성이 높다. 친박계는 마음만 먹으면 두 자리 모두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비대위는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려 한다. 20대 국회 임기가 5월 30일 개시되는 만큼 그 이전에 완료하자는 의견도 많다. 당의 한 관계자는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을 선출해야 국회직을 교통 정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새 지도부는 차기 대선후보 경선을 관리한다. 당권-대권 분리에 따라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할 수 없는 대신 경선 구도를 일정 부분 인위적으로 짤 수 있다.



    “십자가 지는 소명”

    총선 개표 이전까지는, 친박계와 비박계가 총선 후 당권을 놓고 혈투를 벌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선거 참패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공천 파동으로 새누리당이 외면을 받은 마당에 또다시 계파 갈등을 벌일 수 없지 않냐는 것이다. 이런 기류는 친박계를 대표해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 최경환 의원에게서도 감지된다. 최 의원은 총선 때 ‘십자가론’을 폈다.

    “다음에 선출되는 당 대표는 십자가를 지는 소명을 다해야 한다. 임기 2년 동안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도와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권을 재창출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부여받는다. 뚜렷한 차기 대권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그 과정 자체가 매우 어렵다. 잘되면 후보 개인이 잘해서 그렇게 됐다고, 실패하면 대표가 잘못해서 그렇게 됐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래도 책임을 져야 한다.”

    총선 후 십자가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 것 같다. 여소야대 국회 출범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 위기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당 대표는 매력이 반감된다. 최 의원의 일부 측근 그룹도 “당 대표 출마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건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권 관계자는 “최 의원 측도 당권 장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 의원은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만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최경환 대표설’이 한풀 꺾이자 3선 중진이 된 박 대통령 복심(腹心) 이정현 의원이 당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당 대표에 도전하겠다, 당을 확실히 바꾸겠다”고 했다.

    비박계 처지에선 당 대표 자리를 친박계에 그냥 내줄 수 없다. 유승민 의원이 복당 후 대표직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나돈다. 혹은 유 의원과 가까운 이혜훈 의원이 나설지도 모른다고 한다. 일부 당 관계자들은 “수도권에서 지지세를 회복하려면 친박계가 당 대표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총선 참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둘러싸고도 갈등이 깊어진다. 책임을 덮어쓰는 쪽이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박계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 친박계의 공천 파행’, ‘윤상현 의원의 막말 파문’ 탓으로 돌린다. 박 대통령도 “선거 패배의 본질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책임이 박 대통령과 친박계에 쏠리면 레임덕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친박계 의원들이 비박계로 대거 넘어가는 ‘탈박’ ‘멀(멀어지는)박’ 러시가 얼마 안 가 일어날 수 있다.

    반면 친박계는 김무성 전 대표의 ‘옥새 파동’ ‘살생부 파문’ 등이 총선 패배의 주된 이유라고 주장한다. 김무성 전 대표의 책임이 크게 부각되는 경우 그는 대선주자로서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정말 바보 같은 전략”

    서울 노원병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맞붙어 낙선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친박계와 김무성 전 대표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 이 위원은 총선 전 ‘신동아’ 인터뷰에서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이 40% 초·중반에 그치는 수도권 지역구가 속출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그대로 됐네요.  

    “제가 그때 ‘서울 강남을도 어렵다’고 예상했는데, 그것도 맞혔죠?”

    ▼ 그러네요. 여당 참패의 원인이 뭐라고 봅니까.

    “유승민 의원에 대한 공천 배제 자체는 수도권에서 이슈가 되지 못했어요. 다들 ‘배제돼도 무소속으로 나와 이기겠지’라고 생각했거든요. 문제는 유 의원에 대한 공천을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날 자기 발로 탈당하게 한, 바로 그 전무후무한 방식이었어요. 그러자 김무성 전 대표는 옥새 파동을 일으켰고…. 이런 장면들을 보고 수도권 유권자들이 돌아선 거예요. 지역구별로 하루 1000표씩 떨어져나간다고 아우성이었어요.”

    ▼ 여론조사 지지율과 실제 득표율 간 격차가 커진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 당과 더민주당 사이에 국민의당이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 당은 중간에 있는 국민의당을 공격하고 밀어붙여야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중간을 키워주는 발언들을 했어요.”

    ▼ 맞아요. 새누리당이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를 지원했죠.

    “정말 바보 같은 전략이었죠. 반면, 더민주당은 국민의당을 격렬하게 때렸어요. 그랬기에 더민주당 지지층이 중간으로 이동하지 않고 결집했어요. 우리 당은 지지자들이 중간으로 이동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어줬어요. 중간을 맹공했어야죠. 어이없이 국민의당을 치켜세워주는 바람에…저는 직격탄을 맞은 거고요. 당 전략이 그 모양이었으니.”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은 김무성 전 대표가 새누리당의 선거 패배에 상당한 책임이 있으며 이로 인해 김 전 대표의 대선가도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주장한다. 그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기득권자를 지향하는 것으로 국민에게 인식됐어요. ‘복지에 돈을 쓰긴 쓰는데 억지로 쓰는 모양새’로 비쳤죠. 20~50대, 중산층, 청년, 수도권이 일제히 등을 돌린 겁니다. 대통령 다음으로 책임이 큰 사람은 김무성 전 대표라고 생각해요. ‘선거에 져도 좋다’고 말하면서 상향식 공천을 밀어붙였죠.

    그 결과, 부산을 비롯해 각지에서 현역 기득권을 지켜준 꼴이 됐어요. 당 대표가 살생부 파문의 주역이 되더니, 급기야 ‘도장 런(run)’ 쇼를 했죠. 새누리당은 그래도 145석 정도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 대표가 이렇게 정치를 희화화하는 행위를 하니 의석수가 더 줄어든 거죠. 총선을 거치면서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안대희 전 대법관 등 새누리당 대선주자들은 큰 상처를 입었어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 외엔 내년 대선에서 이길 방법이 없어 보일 정도예요.”



    “朴 대통령, 선거 참패와 무관”

    더 나아가, 친박계 한 인사는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박 대통령이 아니라 김무성 전 대표”라고 직격탄을 쏜다. 이 관계자는 “‘정새후더(정당은 새누리당에 투표하고 후보는 더민주당에 투표)’, ‘정새후무(정당은 새누리당에 투표하고 후보는 무소속에 투표)’ 지역구가 속출했다. 지역구 180여 곳에서 새누리당이 정당투표 득표 1위를 했다. 박 대통령이 선거 참패와 무관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김무성 전 대표의 공천 훼방이 없었다면, 그래서 친박계 중심으로 현역을 대거 처내고 잡음 없이 공천했다면, 이번 총선에서 압승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의 한 측근은 “새누리당 지지자 대부분은 ‘이한구가 잘못한 건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게 정말 공론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박계 한 의원은 “이번 총선 참패는 역설적으로 ‘친박계를 중심으로 선거를 치러야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박계의 김무성 책임론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도 많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김무성 전 대표는 힘을 비축한 뒤 적당한 시기에 컴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김 전 대표가 ‘총선 패배가 꼭 내 잘못이냐. 막말로 진박 공천 잘 못해서 그런 것 아니냐’라고 하면 국민이 이 해명을 받아들일 것 같다. 총선 패배가 김 전 대표의 대권 행보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와대와 가까운 한 여권 인사는 “19대 국회는 여대야소였지만 국회선진화법으로 박근혜 정부의 발목을 무던히 잡았다. 박 대통령은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바뀐다 해서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총선 결과에 그러려니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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