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호

긴급특집 | 김정은, 공포를 쏘아 올리다

“제재 오래 못 간다 압박하되 대화 꾀해야”

朴정부 1기 통일부 장관 류길재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6-09-22 14: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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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류길재(57)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30년 넘게 북한 문제에 천착해온 정치학자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입안(立案)에도 기여했다. 2013~2015년 2년간 북한을 다루는 최전선에 서 있었다.

    류길재 전 장관은 9월 2일과 9일 북한대학원대(서울 종로구 북촌로) 등에서 가진 ‘신동아’ 인터뷰에서 북한이 처한 현재 상황과 남북관계 현안에 대해 학자적 식견과 전직 장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견해와 해법을 제시했다.

    류 전 장관은 지난해 통일부 장관에서 물러난 후 언론 인터뷰에 나선 적이 거의 없다. 남북관계가 살아 움직이는 생물 격인 데다 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터라 언행에 신중을 기했을 것이다. 그는 “북한 5차 핵실험에 맞춰 압박과 제재를 단호하게 해야 한다”면서도 “대화 통로를 뚫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에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북한이 핵능력을 더욱 고도화한 것인데, 넓게 보면 4차 핵실험 이후와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한국의 핵무장론까지 나오는데, 그렇게 되면 한반도가 대량살상무기의 전시장이 될 겁니다. 북한에 대한 강력한 압박과 제재에 나서면서도 대화를 통한 해법을 도모해야 합니다”.  





    “무슨 꿍꿍이로 왔는지…”

    ▼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보겠습니다. 2014년 10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에 황병서(북한군 총정치국장), 김양건(노동당 비서, 사망), 최룡해(노동당 비서)가 참석한 것이 떠오릅니다. 드라마틱했다고나 할까요. 당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류 장관이 그들을 상대했죠.

    “의외였죠. 극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고요. 무슨 꿍꿍이로 왔는지는…. 1971년 적십자 접촉이나 이후락-김영주 채널, 그 후 정상회담 막후 접촉을 보면 남북 간엔 돌발적으로도 뭐든 할 수 있죠. 획기적 방식으로 돌파구를 만들 수밖에 없어요. 정주영 회장이 소떼 몰고 방북한 일도 그렇고요.”

    ▼ 이른바 ‘실세 3인방’의 방남(訪南)이 남북관계의 변곡점이 되진 않았습니다.

    “특정한 의지를 갖고 찾아왔다고 볼 수 없어요. 속된말로 ‘떠봤다’고 할까요. 말 그대로 아시안게임 보러 온 거예요.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북관계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국가 간 관계였으면 그런 식으로 찾아오는 건 결례죠. 송도의 호텔에 방이 없어 우리도, 그쪽도 투숙객이 퇴실해 방이 비기를 기다리면서 회의실에 앉아 쉬었습니다.”

    ▼ 깊은 대화는 없었습니까. 상견례 비슷하게 덕담만….

    “공식 석상에선 깊은 얘기를 나누기 어렵죠. 김양건과는 이동하는 자동차, 폐막식 때 옆자리에서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우리가 남북관계를 어떻게 하려 한다는 것도 설명했고요. 그런데 폐막식 현장이 굉장히 시끄러운 데다 김양건이 우물우물 말하는 스타일이에요. 목소리가 낮아 잘 안 들릴 때가 많았습니다.”  

    ▼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명박 정부)에 따르면 임 전 실장과 김양건은 비선(秘線) 접촉 때 밤새도록 위스키를 마신 적도 있다더군요.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저와 최룡해가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각 1병, 그래봐야 백세주지만. 최룡해가 ‘류 장관이랑 언제 술 한잔 해야 합니다’라고 하더군요. 평양 갈 기회가 있었으면 최룡해와 술을 좀 마셨을 것 같아요.”



    김정은의 ‘내 색깔’ 내기

    ▼ 북한 김정은이 ‘비타협적이다’ ‘굴복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집니다.   

    “김정은은 5년 동안 본인의 색깔을 보여주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김정일과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지 늘 궁리한 것 같아요. 회의 때 졸았다고 간부들을 숙청한 것도 리더십이든 스타일이든 본인의 색깔을 보여주려는 심리에서 비롯했다고 봐요.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준 뒤에 정상적 통치라고 할까요, 그쪽으로 갈지, 아닐지 지켜봐야죠. 김정일도 김일성 죽고 나서 심화조, 6군단 사건 등을 통해 숙청을 계속했죠.”

    ▼ 김정일 시기에 더 많은 이가 숙청됐죠. 김정은의 공포통치가 북한 체제에서 특이한 현상은 아닌 듯합니다.  



    “숫자로는 김정일 때 더 많이 죽었어요. 황장엽 선생이 그때 망명했죠. 현성일, 고영환 같은 외교관도 시기는 그보다 앞서지만 탈북했고요. 김정일이 숙청된 사람을 가족이 보는 앞에서 처형했다는 탈북자 증언이 있습니다. 잔인한 방식으로 아랫사람을 다루는 게 김정일, 김정은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 ‘합리적’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으나, 독재자의 처지에선 공포심을 일으키는 게 체제 유지를 위해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김정일은 뭐라고 할까, 김정은보다 노회했습니다. 직접 나서기보단 조직 간 갈등을 유발해 서로 치고받게 했거든요. 한쪽이 다른 쪽을 숙청하고, 숙청을 주도한 이들을 또 숙청하는 방식으로 중재자처럼 행동했습니다. 그에 반해 김정은은 전면에 직접 나섭니다. 그것 또한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는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는 행동이라 하겠습니다.  

    김정은이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의 타격 능력을 확실히 키우겠다고 나섰는데, 김정일 때 같으면 상황을 살펴봅니다. 국제 정세, 남북관계를 고려해 핵실험 했다가, 로켓 쐈다가, 중간에 대화하다가 그러는데, 김정은은 일직선으로 쭉 간단 말이에요. 타이밍을 재는 데 아주 인색합니다.”

    ▼ 김정은이 정책 결정을 오로지한다고 봐야 할까요.

    “그렇게 생각해야 할 겁니다. 유일사상 체계예요, 북한은. 수령의 생각과 다른 얘기를 해서 수령이 마음먹은 것을 바꾸게 하는 문화나 시스템이 있을 수 없죠. 유일사상 시스템에서 수령의 말과 생각을 거슬러 정책이 결정되긴 어렵습니다.”



    ‘北 체제 불안’ 해석은 성급

    ▼ ‘북한 붕괴론’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1990년대부터 나온 얘기예요, 그게. 주관적 바람(wishful thinking)이 굉장히 강해요. 희망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게 대부분입니다. 붕괴론을 강하게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체제 내에 불만 세력이 있더라도 정권의 붕괴로 이어지느냐는 별개의 문제란 말이에요. 언론에서 붕괴론을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북한을 전공하는 학자나 전문가가 그렇게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체제의 동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북한 붕괴를 염두에 두고 대북 압박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의 망명 등을 보면 체제가 흔들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텐데요.

    “붕괴할지, 안 할지는 사실 알 수 없는 노릇이죠. 1990년대 상황과 비교하면, 그때가 훨씬 더 위기였습니다. 고위 탈북자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망한 나라였어요.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요.

    앨버트 허시먼(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사상가)에 따르면 어떤 체제에 대한 인간의 선택은 충성하거나 이탈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로열티(loyalty, 충성), 엑시트(exit, 이탈), 보이스(voice, 목소리). 엑시트만 갖고는 체제가 무너지지 않죠. 보이스가 생겨야 합니다. 북한이란 나라에선 목숨 걸고 투쟁하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흔적조차 안 남기고 깡그리 다 없애버리니까요.”

    ▼ 숙청 때 고사총으로 쐈다는 둥 끔찍한 얘기가 많습니다.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자비한 나라예요.”

    ▼ 올바른 비유는 아닌 것 같지만, 1970년대 김형욱(전 중앙정보부장) 등이 미국으로 망명한 것을 ‘엑시트’, 우리 국민이 독재에 저항한 것을 ‘보이스’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는 민주국가니까 그나마 데모도 하고, 잡혀가 재판도 받았지 북한에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깡그리 다 없애버리는데. 이게 뭐, 저항을 할 수 없는 나라란 말이에요. 저항하는 이들이 나타나야 정권을 바꿀 수 있어요.”

    ▼ 북한 경제가 과거보다 개선됐다더군요.

    “중국이나 베트남식으로 개혁한 것은 아니지만, 알아서 먹고살라고 재량권을 준 건 잘한 일이죠. 북한 경제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이비’이긴 해도 개혁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재량권을 주니 민간에서 돈도 벌고 상행위도 하면서 경제가 활발해지는 거죠. ‘돈주’라는 사람들이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단계까지 갔다니 국가의 공식 영역에 시장이 들어온 셈이죠. 8월에 중국 옌지(延吉)에서 북한을 오가는 조선족 사업가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제재 탓에 다소 위축된 분위기가 있으나 경제 활성화는 이어진다고 하더군요.”



     북한식 ‘사이비 개혁’

    ▼ 도대체 중국이 어떻게 제재하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270호에 따른 제재는 분명히 할 겁니다. 하지만 북중 국경이 아주 길어요. 다 막기가 어렵죠.”

    ▼ 유엔 제재, 독자 제재를 통해 김정은과 북한 정권을 굴복시킬 수 있을까요.

    “세계사에서 제재만 갖고 특정 국가의 정책을 바꾼 예가 거의 없죠. 그게 팩트예요. 제재는 나쁜 행동에 대한 벌칙이면서 태도를 바꾸길 희망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워요. 제재가 기본적으로 벌칙이라, 당하는 나라는 자존심이 상한다고나 할까요. 좋은 쪽으로 가기보단 더 나쁜 쪽으로 흐른 경우가 많죠. 역사를 보면 그래요. 굴복시킨다든지, 붕괴시킨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나라 지도자의 권력을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은경우가 많죠.”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중국 항일전승 70주년 기념식 때 톈안먼 망루에 오르는 등 북한·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글쎄요. 과대평가했다고는 보지 않아요. 중국과 협력해 북한을 움직인다는 방향은 옳았다고 생각해요.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한 건 전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다만 중국이 북한에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계가 아닌 데다, 일각에서 입만 열면 하는 소리지만, 북한이 붕괴하는 걸 중국이 원치 않습니다. 중국식으로 개혁·개방하길 원하고요. 큰일이 벌어지는 걸 바라지 않으며, 핵 문제는 장기적으로 해결될 사안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이해관계가 다르죠.”

    ▼ 우리는 핵 문제와 관련해 즉각적으로 결과물을 내는 데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길 바란 듯합니다.

    “그렇죠. 대량살상무기가 당장의 위협이기에 마음이 급하죠. 반면 중국은 길게 보고요. 그런 점에서 불일치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좁히는 노력을 좀 더 했어야 합니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같은 경우도, 사드보다 더한 걸 배치하고 싶은 게 우리 마음인데, 중국도 사드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단 말이에요. 그런 부분도 이해하면서 잘 설득해야죠.”


    한중 이해관계의 불일치

    ▼ 박근혜 정부 초기에도 사드 얘기가 나왔나요.

    “제 기억으로는 안 나왔던 것 같아요. 2014년 주한미군사령관이 거론한 게 처음 아닌가요? 직접 관련 부처가 아니잖아요, 통일부가.”

    ▼ 통일부 장관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구성원인데요.

    “NSC에서 논의한 내용은 얘기할 수 없고…. 분위기를 전하면, 미국이 직접적으로 요청하지는 않은 것 같고, 중국과의 관계도 있는 데다 한미동맹의 미래와도 관련된 것이기에 여러 가지 논의를 했어요.”   

    ▼ 정권 초기엔 북핵 문제 해결에 베이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중국에 공을 들이다가 상황이 180도 바뀐 것 같아요. 즉흥적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요.  

    “민간 회의 때도 중국 측 인사가 솔직하게 얘기하는 걸 듣기 어려운데, 정부 차원에서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들은 정해진 답만 합니다. 비선이라고 할까요.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루트가 필요해요. 외교부든, 대통령 국가안보실이든, 대통령이 믿는 민간인이든 중국 쪽의 상응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채널이 필요합니다. 가령 사드 같은 문제가 있으면 배치 결정을 한 후 그 사람을 보내 아주 솔직하게 얘기해주는 거예요. 비밀리에 하는 대화이니 그쪽 태도도 다를 것이고요. 한미, 한일 간엔 예전에 그런 게 있었다고 하잖아요.”

    ▼ 이른바 ‘막후’라는….     

    “미일 간엔 그런 게 있다지 않습니까. 미중 간에도요.”

    ▼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에 따르면 미중 간 고위급 채널이 90개가 넘는다더군요.

    “남북 간의 굵직굵직한 일도 비선에서 이뤄진 예가 많죠.”  

    ▼ 대화의 물꼬를 트는 차원에서 남북 간 비선 접촉이 필요하다는….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박 대통령은 비선 같은 비공식 수단을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고민하신다고 봐요.”

    ▼ 장관 재임 중 비선을 활용해보지 그랬습니까.  

    “과거에 알던 이들이 연락해와 ‘내가 나서기만 하면 북측 깊숙한 곳까지 얘기를 전달할 수 있다’고들 했죠. 비선이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비밀리에 만났는데, 결국 안 됐잖아요. 비선 활용이 반드시 잘되는 건 아니지만 수단 중 하나죠. 공식적인 대화도 필요하고요. 우리 생각을 상대에게 분명히 전달하고 상대의 얘기를 분명히 듣는 과정이 필요하단 얘깁니다. 제가 거기에 걸맞게 행동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 아쉬운 게 있는 듯합니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다양하게 모색했습니다. 그런데 참…. 안 되더라고요. 주무 장관으로서, 제가 제일 전문가니까 대통령께 건의하고, 그런 것을 했는데, 뭐랄까. 비선을 포함해 다양한 것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죠.”



      “공개 대화에선 싸울 수밖에”


    ▼ 어차피 공개 대화에선 다툴 수밖에 없죠.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는 공개 대화에선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뻔한 말만 주고받고요. 지금 같은 시기가 비선 접촉을 할 때예요. 물론 세상에 비밀은 없죠. 하지만 몇 개월 뒤, 몇 년 뒤에 드러나면 됩니다. 압박, 제재를 하는 상황에서 대화를 한두 번 해서 일이 되겠습니까. 대화를 계속하다 어떤 국면에서 ‘너희들이 핵과 관련해 변화된 태도를 보이면 우리가 호응하겠다’는 식의 얘기를 해야죠.”

    ▼ 한반도 문제가 국제화해버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는 우리가 주인이란 말이에요. 아니, 미국이나 중국이 우리를 대신할 수 있어요? 우리의 운명이 걸렸으니 우리가 주도권을 쥐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비선 접촉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과 중국에 어떻게 우리의 운명을 맡깁니까.”

    ▼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라 비선 대화를 도모하긴 어려울 듯 보입니다(이 질문은 9월 2일 첫 인터뷰 후 북한 5차 핵실험 당일인 9월 9일 추가 인터뷰에서 한 것이다).

    “비선 대화는 당분간 어렵죠. 국제 사회의 제재, 압박에 적극 동참해야죠. 그럼에도 대화를 통한 해결을 도모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흥분해 격하게 행동하는 것은 북한의 의도에 넘어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 어쨌거나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실패했습니다.

    “아직 실패라고 단정 짓긴 어렵죠. 여건이 좋아지면 재가동하는 것이거든요. 신뢰프로세스라는 게 전가의 보도처럼 딱 정해진 게 아니라 유연성을 가진 것이기에, 재가동할 국면이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이 생기면 또 가동하면 되죠.”



    “신뢰프로세스 재가동 가능”

    ▼ 이명박 정부 때는 권부 내에서 대북정책을 두고 정책 다툼이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어땠나요. 부처 간 엇박자는 없었습니까.

    “뭐 부처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니까…. 대북정책은 통일부, 국가정보원, 국가안보실 세 곳에서 하잖아요. 견해가 다를 수 있죠. 신뢰프로세스에서 우리가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을 좀 더 했으면 좋았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 호응을 이끌어내는 노력이 부족했다?

    “우리가 노력을 더 했다고 해서 북한이 호응했을지, 안 했을지 장담할 순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신뢰프로세스의 취지에 맞게끔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북한이 안 받아들이면 그것은 할 수 없는 겁니다. 가장 아쉬운 대목이 2013년 개성공단이 정상화한 후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고 금강산 관광 관련 회담을 하기로 했다가 연기한 것입니다.”

    2013년 9월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나흘을 앞두고 합의를 깼다. 남측이 금강산 관광 관련 회담을 미룬 게 그 이유다.  

    “북한이 대화 의사가 없다면서 걷어차버렸는데 금강산 관련 회담을 했으면 상황이 달랐을 겁니다.”

    ▼ 남북관계는 국내 정치와도 맞물렸습니다. 북한이 대화에 나선 목적이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게 뻔한데….  

    “아니, 회담한다고 합의하는 건 아니잖아요. 금강산은 어쨌든 간에 관광객 사망 후 5년간 문 닫고 있었단 말이에요. 관광 대가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했다고 하는데, 북한이란 나라에서 주머닛돈이 쌈짓돈이지 금강산에서 들어온 돈은 어디에 쓴다, 이런 게 어디 있겠어요. 개성공단도 마찬가지고요. 금강산 관광 회담을 했다고 정세가 꼭 달라졌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북한에 얘기할 기회였다는 겁니다. 회담에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려면 그것에 상응하는 이런저런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히면 북한이 안 받았을 겁니다. 핵 문제를 왜 거론하느냐며 박차고 나갔을 수도 있고요.”



     “제재 오래가기 어렵다”

    ▼ 모멘텀이 될 수 있었단 거군요.

    “그렇죠. 그 이전까지 개성공단 정상화 관련 회담밖에 안 했단 말이에요. 신뢰프로세스가 어떤 건지를 비롯해 우리의 생각을 얘기해줄 기회가 없었어요. 개성공단 회담은 굉장히 기술적인 부분만 논의하는 것이었고요. 금강산 관광 관련 회담은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고 핵무기 얘기를 할 좋은 기회였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때가 많이 아쉽습니다.

    어쨌든 간에 남북은 대화해야 합니다. 대화한다고 북한에 유화적 태도를 갖는 게 아니에요. 회담에 나가 우리 생각을 밝히면 됩니다. 평양이 걷어차면 부담은 북한이 갖지, 우리가 갖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대화라는 게 쌍방향 아닙니까. 내 생각을 분명히 말하면서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야 합니다.”

    ▼ 북한은 일관되게 금강산 관광 재개를 원했죠?

    “그렇죠”

    ▼ 순전히 돈하고만 관련된 것 같은데요.

    “글쎄요. 나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성도 그렇고, 다 재개해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일단 벌어진 일은 전진해가야죠. 무슨 일 있다고 없애버리고 그러면 후퇴하는 겁니다. 북한이 워낙 난리를 치는데 전진할 수 있겠냐는 시각도 있겠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 벌어질 때마다 왔다갔다 하면 언제 통일하겠어요. 남북 간에 합의한 것은 지켜나가고, 그 토대 위에서 더 큰 합의를 하는 게 신뢰프로세스의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 한동안 남북대화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부모 자식 관계도 그렇고, 부부도 그렇고, 선생과 학생도 그렇고 대화가 제일 중요해요. 서로의 생각이 달라 대화가 중단되더라도 또다시 대화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박 대통령께서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국면에서는 그렇게 말씀할 수 있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라는 게 한마음으로 하기가 어렵단 말이에요. 제재라는 게 벌칙으로서 어떤 국면에서는 확실하게 밀어붙여야 하지만, 오랫동안 가기가 쉽지 않아요.”

    박 대통령은 9월 2일 러시아 통신사 ‘로시야 시보드냐’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아무런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대화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를 위한 시간 벌기에 악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 개혁이 통일 준비”

    ▼ 제재가 처음엔 강력한 것 같아도 결국엔 흐지부지된다?

    “제재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 다 그래요. 쉽지가 않아요.”

    ▼ 그렇다고 나쁜 행동을 하는데 벌을 안 줄 순 없죠. 개성공단 중단도 같은 맥락이겠고요.

    “딜레마죠, 딜레마. 우리가 딜레마적 상황에 처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에선 아주 용감한, 아주 담대한 구상을 가져야 해요. 물론 개성공단은 당시 국면에서는 닫는 게 맞아요. 그런데 재개되더라도 어느 기업이,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참 불행한 일이지만 이런 현실이 분단의 본질이에요.

    그렇더라도 민족 동질성 회복, 사회·문화 교류, 인도적 지원은 해야죠. 특히 이산가족 상봉은 정말로 해야 하고요. 그것도 안 하면 부끄러운 민족이 됩니다. 이산가족이 만나는 것은 내가 보기엔 거의 힘들 것 같고 생사 확인만이라도 해야 해요. 역사, 문화, 공유 하천 등 남북이 겹친 일은 무조건 함께 해야 해요.”

    ▼ 미사일을 뻥뻥 쏘는 데도요?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공유 하천은 북쪽에서 강이 범람하면 우리가 고스란히 피해를 봅니다. 양과 규모를 조절할 필요는 있겠지만 공동의 것, 민족적인 것, 문화적인 것, 인도적인 것은 해야 합니다. 나이팅게일이 적군이든 아군이든 부상병을 치료해준 것처럼 남북이 싸우고 압박하고 제재해도 최소한의 것은 해야 합니다.”

    ▼ 통일정책의 주무 장관으로 일한 후 통일에 대한 생각이 전에 가졌던 것과 바뀌거나 한 게 있나요.

    “과거와 굉장히 차이가 많죠. 가장 큰 차이는 통일을 폭넓게 보게 됐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통일을 준비하는 태세가 굉장히 미흡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통일을 남북관계로만 접근하는데 그건 한 부분일 뿐입니다. 70년간 떨어져 산 사람들이 하나로 모이는 게 통일이에요. 통일 준비의 핵심은 한국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공동체적인 것들이 약화했습니다. 이웃 사람의 어려움을 알고 도와주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이런 사회라면 통일을 주도할 수 없다고 봐요.”

    ▼ 탈북민 3만 명도 제대로 품에 안지 못했죠.

    “탈북한 분들이 홀로서기를 하자마자 부딪히는 한국이 어떤 나라냐면 약육강식, 무한경쟁에 인정머리없는 곳이에요. 이런 말하기 뭣하지만, 탈북민이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 가면 한국에서처럼 차별받지 않고 열심히만 노력하면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어요. 한국은 그렇지 않아요. 찬바람이 쌩쌩 몰아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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