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호주현지보고

“홈스테이? 영어는 커녕 배 곯고 마음 고생만”

  • 김삼오·전 호주 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홈스테이? 영어는 커녕 배 곯고 마음 고생만”

2/3
이런 절차가 있는데도 차질을 빚는 큰 이유는 이 분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미 사람들도 불경기를 만나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야단인데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나 사실이다. 홈스테이의 이상대로 외국 학생들의 필요에 맞게 품위 있는 영어로 대화하고, 호주 문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규격품’ 가정이라면 적어도 중산층 이상이어야 한다. 예외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몇 푼 더 벌기 위해 외국 학생과 함께 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비교적 좋은 가정은 언제나 ‘팔려 나가’ 있어 새내기에게는 잘 걸리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IDP호주교육위원회 시드니 지사 직원으로 많은 한국 유학생들을 학교와 홈스테이에 보내본 교민 구현모씨의 말도 공급부족론을 뒷받침한다. 그에 따르면 ‘홈스테이에 맞는 구조의 집과 주인’이 따로 있는데, 그런 가정은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드물다. 구씨는 홈스테이에 맞지 않는 구조의 한 예로 방이 지하나 외진 곳에 있어 학생은 밥 먹을 때를 빼고는 주인과 접촉하기 어려운 집을 들었다. 여인숙 구조에 카펫이 더러운 집도 많은데, 대개 그런 집은 주인도 엉망이라고 한다.

역시 방학을 이용해 서울에서 영어연수를 온 고등학생 자매의 경우. 이들이 들어간 홈스테이 가정은 시내 학교에서 가까운 노스(The North Shore)로 고급주택지역이며, 40대 주인 아주머니도 상냥한 편이었다. 다만 그는 원어민 영어사용자가 아니어서 발음에 악센트가 많았다. 프랑스에서 호주 남자를 만나 이민 왔으나 지금은 이혼한 듯 혼자 살고 있었다. 또 그는 한쪽 건물에 탁아소를 운영하면서 방 하나를 홈스테이로 내놓아 호주 가정의 표준이라 할 수는 없었다.

시포스(Seaforth)라면 시드니 동쪽 태평양 연안을 바라보는 백인 중심 고급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학진학을 앞두고 1년간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하여 이곳에 온 N씨가 정한 홈스테이 가정은 주거환경이 좋았다. 그러나 40대인 여주인은 칠레 출신으로 호주인 남편과 헤어져 중학교를 다니는 두 자녀와 살고 있었다. 전남편으로부터 받는 자녀양육비와 정부가 주는 과부수당으로 사는 한편으로 홈스테이를 부업으로 하는 게 틀림없었다. 학생에 따르면 그는 안정된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를 사귀느라 외출이 잦고 영어도 원어민 것이 아니어서 홈스테이 가정으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결국 4주 만에 나왔다.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인구의 20~30%는 해외 출생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비영어권 출신 백인으로 영어를 하긴 해도 원어민 같지 않다. 그런 가정이라면 홈스테이로는 애당초 적합하지 않으나 흔하게 걸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각 나라의 서민층으로 홈스테이 같은 부업을 원한다. 그러나 이들은 생활이 안정돼 있지 않으며 낮에는 집에 거의 없어 홈스테이에 적합하지 않다.



위험한 환경, 초라한 식사

대개 젊은 여성인 홈스테이 직원들은 성실하고 상냥하다. 그런데도 일이 이렇게 꼬이는 것은 역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체인 영어학교에 고용되어 일하는 홈스테이 직원은, 신청이 쇄도하는데 좋은 가정이 없다며 사절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갈 곳을 만들어낸다. 한 건을 가지고 며칠을 허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고객이 양보해주기를 바란다. 현지 사정에 어둡고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못하는 유학생들은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런 문제들이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다.

담당자는 으레 “지금 정해진 아무개 가정은 나이스하다”고 말한다. 어떤 30대 중반의 한국 여성은 레드펀에 거처가 정해졌다. 레드펀이라면 시드니 중심가에서 가깝지만 호주 원주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어서 주거 환경이 좋지 않다. 내가 담당자에게 왜 그렇게 위험한 곳을 연결해주었느냐고 말하자, “요즘 시드니에 안전한 곳이 어디 있느냐”고 애교 있게 반문했다. 잘 알려진 대학부속 영어학교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어학교는 대학 부속일지라도 독립채산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다.

이런 틈새시장을 찾아 홈스테이만 알선하는 전문 기업체가 시드니에만 4~5개나 있다. 그 가운데 대표격인 ‘홈스테이 네트워크(Homestay Network)’의 크라디아 콜러 사장은 사업취지를 과시하듯 공급부족을 부인한다. 시드니 근교의 2000 가정을 회원제로 관리하고 있다는 콜러씨는 학교로서는 홈스테이가 부수적 사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홈스테이 가정을 신문광고 대신 기존 회원 가정들과 다른 개인간 네트워크를 통하여 찾고, 직접 가서 면접을 본 다음 선발한다고 했다.

에코스유학원의 그레이스 김도 공급부족이란 논리를 부인한다. 그에 따르면 학교는 시드니 모닝 헤럴드 같은 큰 신문에만 광고를 내고 응해 오는 희망자를 중심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학교가 인원을 늘려 한국문화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가정, 한국인 입양아를 둔 양부모, 외출할 때 어린 아이와 함께 집에 있을 사람을 원하는 젊은 엄마 등을 찾아 나선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현재 가정이 받는 주 홈스테이비(호주화 160~200달러)는 그대로 두되 학교나 업체가 받는 알선비(호주화 100~150달러)를 조금 올려, 적합한 가정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돈에 포함된 하루 세 끼(어떤 가정은 주말만 하루 세 끼, 그 외는 두 끼)는 우리 식사에 비하면 초라하다. 아침은 냉장고에서 꺼낸 우유와 콘프레이크, 점심은 샌드위치와 과일 한 개 정도(주중은 도시락으로), 저녁 메뉴는 대개 매일 다른데 이틀은 스파게티가 나오는 정도다. 한식에 비하여 외형이 빈약한 서양 음식 또한 유학생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영미사회가 계약 중심사회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집을 임대할 때 실감하게 된다. 집 상태를 세목별로 적은 ‘체크 리스트’가 있어 쌍방이 서명하는데 계약서 안에는 서로의 권리와 의무, 임대료 지불방법, 위반시 대처방안, 손상에 대한 배상 등이 깨알처럼 적혀 있다.

문화 차이가 스트레스 원인

홈스테이도 계약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당사자인 학교와 가정, 고객인 학생이 함께 서명하는 계약서는 없다. 학교는 홈스테이를 할 학생이 낼 돈 항목과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자세히 적힌 한 장짜리 인쇄물만 내주므로, 엄격히 말해 이것은 계약서가 아니라 학생의 의무를 적은 문서에 불과하다.

그 문서에는 ‘기물을 파손하면 배상한다’는 등 학교와 가정의 권익을 보호하는 사항과 학생이 가정 생활을 하면서 ‘해도 될 일과 안 될 일’(Does and Donts)이 더 많이 적혀 있다. 홈스테이 주인이 지켜야 할 의무는 학생에게 적절한 숙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 정도다.

홈스테이 네크워크도 홈스테이 학생들이 지켜야 할 예의와 준수 사항들을 자세히 적은 ‘스튜던트 핸드북’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주인 가정이 지켜야 하거나 조심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이 별로 없다. 홈스테이 네트워크 회원 가정의 스티브 문지(에핑 거주)는 학생관리와 관련, 어쩌다 회람을 받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유학생은 호주의 주류 문화와 생활양식을 배워야 할 학생 신분이고, 홈스테이 주인은 ‘호주 어른’이니만큼 늘 바르다는 멘털리티를 반영한다.

고등학교 2학년생인 여학생 C. 그가 6개월간 호주에서 지낸 후, 한 영어학교의 알선으로 들어간 홈스테이 가정은 전형적인 영국계 호주 중류층 원어민 가족이었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켰고 시드니 중심가에서 전철로 30분 거리에 있는 2층 저택에 살고 있었다. 그중 비어 있는 침실 네 개를 홈스테이용으로 개방한 것.

60대 초반의 남편은 오랜 공직생활 후 은퇴했고 50대 후반의 부인은 대학의 행정직에서 일하고 있었다. 퇴근 후를 이용, 외국 학생을 뒷바라지하는 것이므로 손 빠르고 계획성 있는 여성임에 틀림없다. 아닌 게 아니라 학생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부지런하고 경우가 밝았다. 대신 지나치게 깐깐한 잔소리꾼이었다. 학생은 그들과 말하기가 싫어 될 수 있는 한 대화를 피했다고 했다. 학생 부모의 만류도 있고 해서 6개월을 견딘 뒤 입학이 확정된 고등학교 기숙사로 옮겼다.

이렇게 되면 홈스테이의 의미는 적어진다. 유학생과 홈스테이 주인의 불편한 관계는 문화 차이와 그에 따른 상대에 대한 기대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한국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심각한지는 현지에서 실제 그들과 가까이 지내보지 않고는 잘 모른다. 홈스테이에서 지내본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은 뒤늦게 이 점을 깨닫게 된다.

시드니 에스터유학원 대표이며 최근까지 호주한인유학원협의회장을 지낸 이상기씨는 “해외생활을 처음 하는 학생이 곧 바로 홈스테이를 하면 꼭 문제가 생기는데, 대개 언어장벽과 문화장벽이 겹쳐 오해가 증폭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학생의 생활을 돕기 위한 자료를 읽다 보면 왜 그런지를 깨닫게 된다. 여러 가지 충고 가운데 한 구절을 소개하면, “말을 제대로 못 알아 들었으면 그렇다고 똑바로 말해야지, 알아들은 것처럼 대답하거나 행동하지 말라. 오해를 가중시킨다”다. 홈스테이 주인이 간곡히 부탁하거나 주의준 것을 학생은 알아들은 것처럼 대답하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때가 흔하다. 학생들이 약속대로 행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그들은 대단히 불쾌해한다. 이것은 비단 유학생 뿐만 아니라 대부분 한국인이 서양인과의 관계에서 흔히 범하는 실수다.

2/3
김삼오·전 호주 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목록 닫기

“홈스테이? 영어는 커녕 배 곯고 마음 고생만”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