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홈스테이? 영어는 커녕 배 곯고 마음 고생만”

  • 김삼오·전 호주 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입력2006-08-11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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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수출’에 열을 올리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의 학교들이 외국의 영어연수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 가운데 홈스테이(homestay)라는 것이 있다. 홈스테이는 간단히 말해 외국 학생들을 위한 현지 원어민 가정 하숙이다. 민박이라고 해도 좋다. 우리 나라의 하숙이나 민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 이 제도의 목적이 숙식 해결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둘째, 관리 책임을 학교와 일부 전문업체가 진다는 것이다.

    각국 영어학교가 판촉용으로 배포하는 화려한 전단에는 홈스테이 자랑이 꼭 들어 있다. 그 가운데 호주 아델레이드에 소재한 대학부설 영어학교 전단을 인용해 보자.

    “홈스테이 프로그램은 아델레이드에서 공부하는 동안 호주 가정에 머무는 경험과 즐거움을 드립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가정은 높은 기준에 따라 엄선되기 때문에 고객인 학생들에게 질높은 숙식과 함께 일상 가정생활 속에서 영어 회화를 익힐 기회를 제공합니다.”

    단란한 현지 원어민 가정에 머물면서 숙식을 해결하고 영어와 현지 문화도 익힐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그러니 단기 영어연수를 온 학생들에게 홈스테이는 큰 매력으로 와 닿지 않을 수 없다. 영어 사용 지역으로 나가는 한국 유학생의 70~80%가 영어 연수생이다. 조기유학과 성인 정규 유학의 경우도 처음 단계에서는 영어학교에서 얼마 동안 지내는 게 보통이다.

    장밋빛 꿈은 사라지고



    그럼 홈스테이는 과연 그렇게 장밋빛 ‘외국 경험’인가. 대부분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 경험하는 삶 자체가 그런 것처럼, 여기에도 많은 허상이 존재한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서양인(특히 미국인)들은 부자여서 후하고 자상하고 친절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여행 경험을 갖고 있는 요즘도 그런 생각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막상 현지에서 살게 되면 그런 ‘꿈’에서 깨어나게 되는데, 홈스테이도 마찬가지다.

    많은 한국 학생들은 학교가 정해준 홈스테이 가정을 찾아가본 뒤 실망한다. 살면서 문화적으로 느끼는 일반적 불편 말고도 주인과 겪는 오해와 마찰, 영어 실력이 크게 늘 것이라는 기대가 깨지는 것 등으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거처를 옮겨 다니기 시작한다. 결국 비슷한 처지의 한국 학생들끼리 방을 얻어 나가, 가급적 영어를 쓴다는 원래 계획과는 딴판인 해외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학생들이 숙식문제로 겪는 어려움은 크게는 문화충격의 일부로 유학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렇지만 유학에 관련된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는 그 실상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해외에서 불행한 경험을 한 학생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다 떠나오면 그만이며, 한국에는 전체 유학교육의 틀 안에서 이런 문제를 책임 있게 모니터하는 기구도 없기 때문이다. 더 크게 말해 한국의 신세대가 홈스테이로 외국인 가정에서 직접 살아본 경험과 그 결과는 유학이라는 좁은 주제를 넘어서서 ‘국제화’라는 한국의 국가정책 속에서 심각하게 평가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국제교육연구(international education research)의 일환으로, 호주에 와 있는 한국 유학생들의 홈스테이 실태를 살펴보고 다양한 사례를 모아왔다. 이들의 친척이나 대리인을 자청, 여러 학교의 홈스테이 담당자와 가정을 돌아보기도 했다. 다음 내용은 그런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인심’좋다는 호주의 경우

    여기 내놓는 사례들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또 책임의 상당 부분이 학생에게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성공보다 실패의 예가 많은 것이 사실이며, 나쁜 사례들이 장래 해외 영어연수를 계획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것으로 생각돼 글의 방향을 이렇게 정하였다. 필자가 알아본 바로는, 호주 사례는 다른 영미국가에 그대로 적용 가능하며, 그래도 ‘인심’은 호주가 미국 영국 캐나다보다 나은 편으로 알고 있다.

    학교 등록과 함께 홈스테이를 신청한 학생은 현지 공항에 내려 미리 팩스로 받은 주소를 가지고 직접 찾아가거나 등록을 알선한 유학원, 학교, 알선업체에서 마중 나온 사람의 안내를 받아 정해진 가정을 찾아간다. 그런데 처음 찾아가 만나는 가정은 주거환경, 학교와의 거리, 가족상황, 출신 나라 등의 면에서 학생이 마음속에 그린 그림이나 홈스테이 본래 목적과는 빗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 필자가 학생들을 도우면서 직접 경험한 두 사례를 들어보자.

    대학 2학년 재학중 군대를 다녀와 1년 간 영어연수를 시작한 P씨. 대전 거주, 컴퓨터과학 전공. 학교가 정해준 가정은 시드니에서도 경치 좋고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프렌치 포레스트(French Forest) 지역. 그러나 기차가 없어 버스로 다녀야 하는데, 버스 연결이 좋지 않아 첫날 시내 학교까지 오는 데 2시간 반을 소모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버스를 바꿔 타지 않고 직행으로 오는 길이 있긴 했지만, 역시 1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그나마 밤 9시가 지나면 버스는 끊겼다.

    필자가 학생을 대신해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해보려니까 다짜고짜 “Bull shit(닥쳐)!”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외국학생을 직업적으로 많이 두어본 가정 가운데는 학생을 대신해서 찾아오거나 전화하는 현지 사람을 미워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을 자신이 알아서 관리해야 편할 텐데 간섭한다며 싫어하는 것이다. 그는 혼자 사는 남자 노인이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여름방학에 2개월간 영어연수를 온 H양. 학교가 정해준 홈스테이 가정은 시드니 중심부에서 약 20km 서쪽의 덜위치힐 지역, 기차역에서 멀지 않으나 비교적 으슥한 아파트촌이었다(호주 아파트는 대개 3층, 근처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 집을 포함, 낡은 아파트 베란다에는 이불과 옷가지가 널려 있어 호주 수준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틀림없었다. 한국에서 온 16살짜리 여학생을 머물게 하기에는 아무래도 불안했다.

    노크를 하고 혼자 산다는 주인 여자를 만나 대화를 하면서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하니까, 화를 벌컥 내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돈도 받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공식적으로 항의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팩스가 왔는데, 필자가 그 여자 앞에서 난폭하게 굴어 그녀는 지금도 큰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여주인은 그리스계인 것 같았다. 그 지역은 그리스계가 많이 사는 곳이다(호주에서는 인종차별금기 정책에 따라 언론 보도나 양식 작성에 있어 인종을 밝히는 일은 금기로 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면 홈스테이 주인으로는 실격이다.

    왜 이런 사례가 흔한 것일까? 각 학교는 1, 2명의 홈스테이 전담 직원을 두고 있다. 그는 홈스테이 희망 가정을 찾아 명단을 만들어놓고 신청자인 유학생의 요구 조건을 참작, 짝을 맺어준다. 대부분 신청자가 원하는 조건도 그렇지만, 학교가 정한 기준도 ‘통학 거리가 기차로 40분 이내여야 하고 홈스테이의 취지에 맞는 원어민 가정’이다. 학교는 신청한 학생에게 추천하는 가정의 가족 구성원과 그들의 취미, 애완동물 유무, 직업, 주소, 전화번호 등의 정보를 팩스로 보내준다.

    이런 절차가 있는데도 차질을 빚는 큰 이유는 이 분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미 사람들도 불경기를 만나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야단인데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나 사실이다. 홈스테이의 이상대로 외국 학생들의 필요에 맞게 품위 있는 영어로 대화하고, 호주 문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규격품’ 가정이라면 적어도 중산층 이상이어야 한다. 예외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몇 푼 더 벌기 위해 외국 학생과 함께 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비교적 좋은 가정은 언제나 ‘팔려 나가’ 있어 새내기에게는 잘 걸리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IDP호주교육위원회 시드니 지사 직원으로 많은 한국 유학생들을 학교와 홈스테이에 보내본 교민 구현모씨의 말도 공급부족론을 뒷받침한다. 그에 따르면 ‘홈스테이에 맞는 구조의 집과 주인’이 따로 있는데, 그런 가정은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드물다. 구씨는 홈스테이에 맞지 않는 구조의 한 예로 방이 지하나 외진 곳에 있어 학생은 밥 먹을 때를 빼고는 주인과 접촉하기 어려운 집을 들었다. 여인숙 구조에 카펫이 더러운 집도 많은데, 대개 그런 집은 주인도 엉망이라고 한다.

    역시 방학을 이용해 서울에서 영어연수를 온 고등학생 자매의 경우. 이들이 들어간 홈스테이 가정은 시내 학교에서 가까운 노스(The North Shore)로 고급주택지역이며, 40대 주인 아주머니도 상냥한 편이었다. 다만 그는 원어민 영어사용자가 아니어서 발음에 악센트가 많았다. 프랑스에서 호주 남자를 만나 이민 왔으나 지금은 이혼한 듯 혼자 살고 있었다. 또 그는 한쪽 건물에 탁아소를 운영하면서 방 하나를 홈스테이로 내놓아 호주 가정의 표준이라 할 수는 없었다.

    시포스(Seaforth)라면 시드니 동쪽 태평양 연안을 바라보는 백인 중심 고급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학진학을 앞두고 1년간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하여 이곳에 온 N씨가 정한 홈스테이 가정은 주거환경이 좋았다. 그러나 40대인 여주인은 칠레 출신으로 호주인 남편과 헤어져 중학교를 다니는 두 자녀와 살고 있었다. 전남편으로부터 받는 자녀양육비와 정부가 주는 과부수당으로 사는 한편으로 홈스테이를 부업으로 하는 게 틀림없었다. 학생에 따르면 그는 안정된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를 사귀느라 외출이 잦고 영어도 원어민 것이 아니어서 홈스테이 가정으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결국 4주 만에 나왔다.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인구의 20~30%는 해외 출생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비영어권 출신 백인으로 영어를 하긴 해도 원어민 같지 않다. 그런 가정이라면 홈스테이로는 애당초 적합하지 않으나 흔하게 걸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각 나라의 서민층으로 홈스테이 같은 부업을 원한다. 그러나 이들은 생활이 안정돼 있지 않으며 낮에는 집에 거의 없어 홈스테이에 적합하지 않다.

    위험한 환경, 초라한 식사

    대개 젊은 여성인 홈스테이 직원들은 성실하고 상냥하다. 그런데도 일이 이렇게 꼬이는 것은 역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체인 영어학교에 고용되어 일하는 홈스테이 직원은, 신청이 쇄도하는데 좋은 가정이 없다며 사절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갈 곳을 만들어낸다. 한 건을 가지고 며칠을 허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고객이 양보해주기를 바란다. 현지 사정에 어둡고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못하는 유학생들은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런 문제들이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다.

    담당자는 으레 “지금 정해진 아무개 가정은 나이스하다”고 말한다. 어떤 30대 중반의 한국 여성은 레드펀에 거처가 정해졌다. 레드펀이라면 시드니 중심가에서 가깝지만 호주 원주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어서 주거 환경이 좋지 않다. 내가 담당자에게 왜 그렇게 위험한 곳을 연결해주었느냐고 말하자, “요즘 시드니에 안전한 곳이 어디 있느냐”고 애교 있게 반문했다. 잘 알려진 대학부속 영어학교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어학교는 대학 부속일지라도 독립채산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다.

    이런 틈새시장을 찾아 홈스테이만 알선하는 전문 기업체가 시드니에만 4~5개나 있다. 그 가운데 대표격인 ‘홈스테이 네트워크(Homestay Network)’의 크라디아 콜러 사장은 사업취지를 과시하듯 공급부족을 부인한다. 시드니 근교의 2000 가정을 회원제로 관리하고 있다는 콜러씨는 학교로서는 홈스테이가 부수적 사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홈스테이 가정을 신문광고 대신 기존 회원 가정들과 다른 개인간 네트워크를 통하여 찾고, 직접 가서 면접을 본 다음 선발한다고 했다.

    에코스유학원의 그레이스 김도 공급부족이란 논리를 부인한다. 그에 따르면 학교는 시드니 모닝 헤럴드 같은 큰 신문에만 광고를 내고 응해 오는 희망자를 중심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학교가 인원을 늘려 한국문화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가정, 한국인 입양아를 둔 양부모, 외출할 때 어린 아이와 함께 집에 있을 사람을 원하는 젊은 엄마 등을 찾아 나선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현재 가정이 받는 주 홈스테이비(호주화 160~200달러)는 그대로 두되 학교나 업체가 받는 알선비(호주화 100~150달러)를 조금 올려, 적합한 가정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돈에 포함된 하루 세 끼(어떤 가정은 주말만 하루 세 끼, 그 외는 두 끼)는 우리 식사에 비하면 초라하다. 아침은 냉장고에서 꺼낸 우유와 콘프레이크, 점심은 샌드위치와 과일 한 개 정도(주중은 도시락으로), 저녁 메뉴는 대개 매일 다른데 이틀은 스파게티가 나오는 정도다. 한식에 비하여 외형이 빈약한 서양 음식 또한 유학생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영미사회가 계약 중심사회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집을 임대할 때 실감하게 된다. 집 상태를 세목별로 적은 ‘체크 리스트’가 있어 쌍방이 서명하는데 계약서 안에는 서로의 권리와 의무, 임대료 지불방법, 위반시 대처방안, 손상에 대한 배상 등이 깨알처럼 적혀 있다.

    문화 차이가 스트레스 원인

    홈스테이도 계약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당사자인 학교와 가정, 고객인 학생이 함께 서명하는 계약서는 없다. 학교는 홈스테이를 할 학생이 낼 돈 항목과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자세히 적힌 한 장짜리 인쇄물만 내주므로, 엄격히 말해 이것은 계약서가 아니라 학생의 의무를 적은 문서에 불과하다.

    그 문서에는 ‘기물을 파손하면 배상한다’는 등 학교와 가정의 권익을 보호하는 사항과 학생이 가정 생활을 하면서 ‘해도 될 일과 안 될 일’(Does and Donts)이 더 많이 적혀 있다. 홈스테이 주인이 지켜야 할 의무는 학생에게 적절한 숙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 정도다.

    홈스테이 네크워크도 홈스테이 학생들이 지켜야 할 예의와 준수 사항들을 자세히 적은 ‘스튜던트 핸드북’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주인 가정이 지켜야 하거나 조심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이 별로 없다. 홈스테이 네트워크 회원 가정의 스티브 문지(에핑 거주)는 학생관리와 관련, 어쩌다 회람을 받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유학생은 호주의 주류 문화와 생활양식을 배워야 할 학생 신분이고, 홈스테이 주인은 ‘호주 어른’이니만큼 늘 바르다는 멘털리티를 반영한다.

    고등학교 2학년생인 여학생 C. 그가 6개월간 호주에서 지낸 후, 한 영어학교의 알선으로 들어간 홈스테이 가정은 전형적인 영국계 호주 중류층 원어민 가족이었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켰고 시드니 중심가에서 전철로 30분 거리에 있는 2층 저택에 살고 있었다. 그중 비어 있는 침실 네 개를 홈스테이용으로 개방한 것.

    60대 초반의 남편은 오랜 공직생활 후 은퇴했고 50대 후반의 부인은 대학의 행정직에서 일하고 있었다. 퇴근 후를 이용, 외국 학생을 뒷바라지하는 것이므로 손 빠르고 계획성 있는 여성임에 틀림없다. 아닌 게 아니라 학생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부지런하고 경우가 밝았다. 대신 지나치게 깐깐한 잔소리꾼이었다. 학생은 그들과 말하기가 싫어 될 수 있는 한 대화를 피했다고 했다. 학생 부모의 만류도 있고 해서 6개월을 견딘 뒤 입학이 확정된 고등학교 기숙사로 옮겼다.

    이렇게 되면 홈스테이의 의미는 적어진다. 유학생과 홈스테이 주인의 불편한 관계는 문화 차이와 그에 따른 상대에 대한 기대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한국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심각한지는 현지에서 실제 그들과 가까이 지내보지 않고는 잘 모른다. 홈스테이에서 지내본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은 뒤늦게 이 점을 깨닫게 된다.

    시드니 에스터유학원 대표이며 최근까지 호주한인유학원협의회장을 지낸 이상기씨는 “해외생활을 처음 하는 학생이 곧 바로 홈스테이를 하면 꼭 문제가 생기는데, 대개 언어장벽과 문화장벽이 겹쳐 오해가 증폭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학생의 생활을 돕기 위한 자료를 읽다 보면 왜 그런지를 깨닫게 된다. 여러 가지 충고 가운데 한 구절을 소개하면, “말을 제대로 못 알아 들었으면 그렇다고 똑바로 말해야지, 알아들은 것처럼 대답하거나 행동하지 말라. 오해를 가중시킨다”다. 홈스테이 주인이 간곡히 부탁하거나 주의준 것을 학생은 알아들은 것처럼 대답하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때가 흔하다. 학생들이 약속대로 행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그들은 대단히 불쾌해한다. 이것은 비단 유학생 뿐만 아니라 대부분 한국인이 서양인과의 관계에서 흔히 범하는 실수다.

    학교나 가정이 정한 홈스테이 룰은 사립학교 기숙사 생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친구들을 집에 초청할 때는 주인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저녁을 밖에서 먹고 올 때는 사전에 연락해야 한다’ ‘샤워장에는 한 번에 10분 이상 있지 말며, 사용 후에는 깨끗이 치우고 나와야 한다’ 등이다. 그런데 그에 대하여 주인이 주의를 줄 때 “예스”라고 해놓고 어기면 어떻게 될까. 이씨는 한국 여학생들이 샤워 후 머리카락을 샤워장에 그대로 남긴 채 나오는 일이 흔하다고 말한다.

    ‘10분 이상 샤워하지 말라’는 이유는 대개 호주 가정의 물탱크 보일러 용량이 작고, 또 다음 사람의 이용을 위해서다. 대부분 서양인들이 그런 것처럼 호주인들도 비용에 민감하다. 유학생은 낮과 취침 시간, 그리고 외출시에는 전등과 방에 있는 히터 등을 꺼야 한다고 되어 있다.

    시드니 서부에 위치한 커버데일고등학교(Christian Coverdale School)는 한국 유학생을 많이 받고 그들의 홈스테이도 관장한다. 이 학교의 제프 클라크 교장은 홈스테이 가정이 학생에게 하는 가장 큰 불평도 바로 이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외 홈스테이 주인들은 전화 사용과 요금 지불 방법 등도 규칙으로 정해놓는다. 이런 규칙들을 우리 식으로 지키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면 꼭 말썽이 생긴다.

    서양의 교육받은 중류층 중년 주부나 노년층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보수적이며 젊은이들에게 엄격하다. 말을 해도 씨가 안 먹힌다고 생각하면 금방 잔소리꾼으로 바뀐다.

    한국인끼리 어울리기 일쑤

    한국의 부모들은 한국 사람들이 적은 지역과 학교로 자녀를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인이 없는 곳에 갔다고 해서 바라던 대로 외국 사람과 섞여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해외에 나가면 자진해서 한국인 친구를 찾고 또 한국에서처럼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 이 또한 현지에 나와서야 깨닫게 되는 유학의 실상인데, 왜 그렇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미인들은 친한 친구라도 우리네처럼 늘 붙어 다니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은 개인주의적(집단주의의 반대) 가치관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생김새와 언어가 달라 교류가 편치 않은 동양인과 특별한 일 없이 깊은 우정을 나눌 이유가 없다.

    이쪽에서 가만히 있는데, 저쪽에서 접근해오는 일은 드물다. 그게 영미인의 프라이버시 개념이다. 인간관계는 대개 쌍방행위가 아닌가. ‘탱고를 혼자서 출 수는 없다(It takes two to tango)’는 영어 표현대로, 한쪽만의 노력으로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이것이 한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이라면 외로울 수 없는 것과 크게 다른 점이다. 그러니 한국인이 없는 곳에 가 있게 되면 유학생은 방과후나 주말에 완전히 고립되기 십상이다.

    그럴 때 이들이 잘 찾아가는 곳이, 한인사회가 있는 도시라면 거의 다 있는 한인교회다. 이렇듯 교회 학교 또는 유학생 모임에서 친해진 한인 학생들과 어울리며 고독을 달래는 것이다. 한인사회가 있는 곳에는 어디나 이런 한인 유학생들의 필요에 맞게 꾸며진 가라오케, 카페, 당구장, 비디오 숍, 술을 파는 레스토랑 등 위락시설이 잘 발달되어 있다.

    유학생이 일단 이런 또래집단의 놀이문화에 빠지면 공부는 말할 것도 없고, 홈스테이 가정에서 지켜야 할 현지 생활양식과 정면 충돌하게 된다. 홈스테이의 일반적 규율에 따르면 학생들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는 전화를 써서는 안 되며, 밤 8시30분 이후는 소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한국인 친구들과 붙어다니다 보면 이런 규칙을 쉽게 어기게 된다.

    한국 유학생들은 대부분 해외에서도 휴대폰(호주에서는 모바일 폰이라고 부른다)을 가지고 다니는데, 홈스테이 가정에 밤늦게 돌아와 큰 소리로 친구들과 우리말 통화를 해 주인이 신경쓰게 만드는 경우가 흔하다. 외국에서는 직업을 가진 학생이 아니면 휴대폰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우리 학생들이 친구들과 얼마나 밀착되어 지내는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다.

    대부분의 호주 사람들은 저녁에 우리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이다. 예외가 있다면 주말이다. 한국인들은 저녁에 더 움직이고 노는 습성이 있다. 시드니 서부 지역 교통 중심지인 스트라스필드에는 한인 가게가 밀집되어 있는데 한인 유학생들이 평소 많이 모이는 곳이다. 역 앞 넓은 광장은 일종의 놀이터처럼 되어 있는데 거기서 밤늦게 서성대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한인 학생들이다.

    이렇게 외국에 와서도 한국인이 되어 버리면 아무리 좋은 가정을 만나도 홈스테이의 의미를 살릴 수 없다.

    시드니 중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의 남태평양 바닷가 고스포드에 있는 영어학교에도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다녀갔다. 비교적 조용하고 한국인이 많지 않아 영어를 위한 홈스테이로서는 이상적인 곳이다. 여러 얘기를 들어보면, 홈스테이 가정들이 주말에는 야외로 나가 바비큐 파티를 열고 유학생과 함께 지내려 해도 다른 한국 친구들을 만나러 시드니로 가버린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이 제일 골치”

    이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발언이지만, 호주 사람들이 하는 말과 여기 동포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호주 사람들에게 한국 유학생들의 인기는 여러 나라 가운데 꼴찌다. 콜러씨는 지난 15년 동안 한국 학생을 1000명 넘게 홈스테이 가정에 보냈는데, 회원 가정의 60%가 한국 학생은 더 받지 않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그는 처음 홈스테이를 하는 가정에는 한국 학생을 절대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시드니의 유명한 사립학교인 크렌브룩(Crenbrook)고등학교에서 20년 넘게 교사 생활을 하다 최근 은퇴한 교민 이경재씨는 지금도 한인 유학생 지도와 관련, 그 학교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에 따르면 외국 학생을 받고 있는 고등학교 교장들 사이에 한국 유학생들이 큰 골칫거리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구현모씨의 관찰도 재미있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한국과 홍콩 학생들이 유독 문제가 많단다. 일본, 태국, 유럽 학생들은 대개 잘 적응한다. 왜 그럴까.

    요즘 해외에 나오는 한국 젊은이들을 보면 외모와 자유분방한 태도 면에서는 현지 외국인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법과 규칙 준수 등 책임감에 있어서는 아직 멀었다는 게 필자의 결론이다. 영미사회에는 마약, 공공 기물 파괴, 기타 범죄로 법정을 드나드는 일탈 청소년이 적지 않으나 중산층 이상 가정의 자녀들은 책임과 규율 준수에 있어 매우 철저하다.

    예의의 경우 그 기준이 달라 쉽게 판단하기 어려우나,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라 정의할 때 이들은 우리 젊은이들보다 한참 앞서 있다. 이것을 문화의 차이라 해야 할지 교육의 차이라고 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유학생들에 대한 홈스테이 주인들의 평판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갑자기 부자가 된 부모들이 아이들을 과잉보호하고 방임하여 키워서 ‘버렸다(spoiled)’는 것이다. 또 남학생들은 남존여비 사상에 물들어 있어, 홈스테이 여주인을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다. 클라크 교장의 평도 같다.

    “한국 남학생들은 동료 여학생들이 으레 그들을 위해 잔심부름을 해주기를 바라며 실제로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또 남학생들은 한국인 남자 어른이 무엇을 시키면 잘 따르지만, 여자 어른의 지시는 묵살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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