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프리섹스’, 해방과 혁명을 이끈다

  • 권삼윤 < 문명비평가 > tumida@hanmail.net

    입력2005-04-18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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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한국 사회가 여태까지 나 사는 데 뭐 하나 보태준 거 있어? 나 같은 사람 주눅이나 들게 했지.”

    드라마 ‘아줌마‘ 나오는 오삼숙은 우리 사회의 허구성과 편견을 여지없이 깨부수며 자신에게 충실한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감행했다. 시청자들은 그녀의 이혼 결심에 박수를 쳤고, 그녀의 새로운 일터이자 그녀가 미래의 꿈을 키워 가는 ‘신수동 한정식 백반집’의 성공을 진심으로 빌었다. ‘아줌마’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순의 뿌리를 사회의 원초적 구성 단위인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찾았고, 그걸 여실하게, 날카롭게, 그리고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어냈다.

    이제 우리의 가정은 더 이상 포근한 보금자리가 아니다. ‘아줌마’에서 보듯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거짓과 편견이 판치고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그래서 또 다른 스트레스의 산실로 등장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흔들리는 우리의 가정을 살릴 수 있을까? 이것은 드라마 ‘아줌마’가 진정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당면한 참으로 중요한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가정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사회도 국가도 제대로 설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틀지은 것에 대한 저항

    가족은 자족(自足)의 단위다. 그 속에선 사랑과 보살핌(care)이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어지며,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자 사회 구성원인 자녀가 태어나고 자란다. 소비의 주체이긴 하나 생산을 가능케 하는 노동력의 원천 노릇을 겸한다. 그것은 교육의 단위이자 문화와 권력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동양에선 나라(國)를 집(家)의 연장이라고 볼 정도였다. 교회가 중심이 되었던 서구사회에서도 가정이 대수롭게 취급되지는 않았다. 이런 이유로 가정은 오랜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에도 변화를 가장 덜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고도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지식산업사회로 진입하려는 지금, 가정마저 해체와 변모라는 극도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사회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변화의 바람이 가정이라고 해서 비켜가지 않은 탓이다. 자크 아탈리는 ‘21세기 사전’(1993)에서 가족을 일러 “인구에서 예술, 성, 그리고 정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날 커다란 변화에 따라 그 뿌리부터 흔들리게 될 제도”라고 진단한 바 있다.

    그 원인은 예전과는 아주 달라진 우리 삶의 방식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의 발전은 가족 구성원들을 가정의 테두리 안에 가둬두기보다는 그 바깥으로 끌어내는 쪽으로 진행돼 왔고, 그것은 다시 가족 구성원의 경제적·사회적 독립을 부추기면서 전통적으로 가족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축소시키고 있다.

    부부가 집 밖의 일터로 나가고, 육아, 시장 보기, 음식 장만, 세탁, 청소 등 전통적으로 여성이 담당하던 많은 일을 탁아소나 놀이방, 레스토랑, 세탁소, 슈퍼마켓 등의 외부 시설이나 세탁기, 진공청소기, 냉장고, 가스레인지, 식기세척기와 같은 가전제품이 대신하며, 거기에 홈 오토메이션까지 가세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가족들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문이나 TV, 인터넷 또는 직장 동료들에게서 접한다. 재미있는 일을 찾는 곳도, 자신의 ‘끼’와 능력을 발휘하면서 자기 존재를 실감할 수 있는 곳 또한 집 바깥이다. 집의 구조나 가구, 가전제품도 개인적인 용도에 맞게 지어지고 제작된다. 주변 문화와 시설들은 혼자 살기에 아주 편리하게 변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과거처럼 가정, 가족, 문중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한때 사회의 전부였던 가정은 점차 그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집과 나라 사이에 그것과는 다른 별도의 ‘사회’가 우리 동양문화권에서도 생겨났고, 그 사회는 날이 갈수록 내용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다양해지면서 전통적으로 가족이 수행해오던 일을 상당부분 대신하고 있다.

    이제 누구의 아들과 딸, 누구의 남편과 아내, 누구의 아버지와 어머니, 누구의 사위와 며느리임을 앞세우며 ‘남자는 모름지기 남자다워야 한다’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는 따위의 주문과 요구는 메아리 없는 아우성이 되고 있다. 그것을 강요하면 스트레스로 받아들여 그것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도 있고, 누군가가 틀 지은 것을 따라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며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있다.

    삶이란 남이 세워놓은 기준이나 틀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믿는 그들은 자신의 의지나 선호, 노력과는 상관없이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나 세월이 가면 누구나 반드시 갖게 되는 것 따위에는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의사나 개성이 들어가 있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한다. 개체의 시대가 추구하는 개성이나 그것이 만들어내는 다양성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인간은 누가 뭐라 해도 사회적 동물이다. 독불장군처럼 살 수는 없다. 따라서 남과의 관계,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중요할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사회에선 누구의 무엇이라는 ‘관계’가 너무나 큰 힘을 발휘했다. 심지어 그 관계를 위한답시고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기도 했다.

    청춘남녀가 서로 사랑하다 결혼했다 하더라도 그 순간부터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이기보다는 누구의 며느리로 사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집의 가풍은 이런 것이다’며 사사건건 간섭받아야 했고, 어쩌다 개성을 드러내기라도 하는 날엔 날벼락이 떨어졌다. 참다못해 귀가한 남편에게 낮에 겪은 억울함을 털어놓아도 도움을 얻지 못했다. 착한 남편은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속만 끓였다.

    이렇듯 우리의 전통적인 결혼생활은 부부만의 것이 아니었다. 부부생활은 그중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자녀 양육이란 중대한 과업이 그 나머지 시간마저 앗아갔던 것이다. 자녀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특정한 남녀의 지속적 결합과 그들의 자녀 양육을 내용으로 하는 가족은 부모와 부부, 자녀 등으로 세대가 다른 인적 구성을 갖기에 수직적 혈연구조를 갖는다. 이는 어느 민족에게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조상숭배를 중시한 우리에게는 집안 제사라는 것이 있어 그러한 수직적 위계질서가 유독 강조됐다. 전통이나 가풍을 잇는 의무는 중시됐지만 새로운 가풍의 창조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여자와 아이들의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수직이 강조된 반면 수평은 무시됐던 것이다.

    우리의 가족제도는 많은 장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요소들로 인해 삶을 옥죄는 굴레로 작용했다. 그 주된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여성의 ‘한(恨)’은 어쩌면 그런 굴레의 산물인지도 모를 일이다. 가정의 틀은 철저하게 연장자 중심의 남성 위주로 짜였다.

    그런데 최근 사회의 틀이 남성 중심에서 남녀를 구별하지 않는 인간 중심으로 바뀌면서 가정의 기반도 덩달아 흔들리고 있다. 그 첫 도전은 핵가족화 경향이었지만, 그 중대한 변화는 가정의 출발점이 되는 결혼제도에서 일어났다. 누구나 나이들면 하는 게 결혼인데 이제는 결혼은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사항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어떤 선택도 당사자 개인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설령 부모라 하더라도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거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커플이나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남녀가 ‘우리는 반드시 결혼한다’는 공개선언 내지 현실의 장벽을 돌파하는 파격적 수단으로 이용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양가 부모의 허락을 얻은 상태에서 동거하거나 “가족을 만드는 데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혹은 “결혼이라는 절차를 통해 얻는 것은 쓸데없는 가부장적 책임뿐이다. 동거만으로도 기성세대가 결혼을 통해 얻는 혜택을 누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며 떳떳하게 동거에 돌입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결혼은 ‘시작’ 아닌 ‘결과’

    프랑스와 북유럽같이 일찍이 시민혁명이나 여성운동을 경험했던 나라에서 이런 동거형태가 처음 생겨났다. 그들은 여성이 자유롭지 못하면 사회도 자유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삶의 충실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 길로 매진할 수 있었다.

    북유럽에선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한 집에서 사는 부부를 ‘삼부(Sambo) 부부’라 부른다. ‘삼(sam)’은 ‘함께’, ‘부(bo)’는 ‘산다’는 뜻이니 삼부란 결국 동거(同居, co-habitation)를 뜻한다. 삼부 부부가 보편화된 것은 1940년대 파리에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동거문화를 외치면서부터였다. 남성의 사회적 특권을 부정하고 여성의 독립을 외치던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키워지는 것이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제2의 성’(1949)을 발표하던 어름이었다. 그것은 보부아르가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자식도 남기지 않으며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다”며 사르트르와 계약동거를 선언한 지 20년 가까이 되던 시점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동거부부가 프랑스 땅에 곧장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는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여서 전파 속도가 더딘 편이었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정착한 것은 80년대였고 법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인 99년 10월, 동거부부에게 결혼한 부부와 똑같은 법적·사회적·세제상의 혜택과 보호를 약속한 ‘시민연대협약’이 채택되면서였다.

    동거문화의 선구자는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이 태어난 노르웨이 인근의 북유럽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혁신적이고 개방적인 루터교를 믿은 데 기인했다. 동거란 말에는 ‘결혼식을 거치지 않고 같이 산다’는 뜻이지만 남녀가 ‘같은 높이에 서서 살아간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인간 중심, 개체 중심으로 보면 동거를 탈선이나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같이 산다는 실질적인 내용에 충실할 수만 있다면 결혼식을 올렸느냐 아니냐 여부는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신생아의 절반 이상이 삼부 부부에게서 태어난다. 그곳에선 미성년자가 아이를 낳아도 ‘미혼모’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이의 양육부담을 여성에게만 떠맡기지도 않는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라도 법적으로는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와 조금도 차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식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풍속도가 변했을 뿐이다. 신랑, 신부만 달랑 걸어나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앞세우고 나타나 하객들로부터 축하를 받는다. 그래서 결혼식은 관계의 ‘시작’이 아니라 그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삼부 부부들은 이혼에도 당당하다. 동거가 쉬운 만큼 그걸 끝내는 이혼도 까다롭지 않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기에 형식적인 것을 모두 배제하고 실질적인 부부생활에 들어가듯이 동거를 하다가도 어느 한쪽에서 “내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어”라거나 한눈을 파는 일이 생기면 이유를 묻지 않고 깨끗이 헤어진다. 자식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진 않는다.

    자식은 어떠한 경우에도 홀로 설 수 있도록 가르친다. 어른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육목표다. 일찍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게 하며, 그 경우 대개 1인 1실이 주어진다. 부모가 이혼해도 흔들리지 않도록 미리 예방조치를 해놓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가 어떤 일을 당해도 헤쳐나갈 수 있게끔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든든한 사회보장제도까지 갖춰 놓았다. 부모가 모든 것을 해주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 놓은 다음에 자신들의 자유를 구가하는 것이다.

    북유럽인들은 대개 말수가 적다. 수줍음을 잘 타며 남들과 어울리는 데도 서툴다. 그래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친구라면 개(犬) 정도가 있을 뿐이다. 가족간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곳에 사는 교민들도 이들이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싸우기 마련인데 이들에겐 그런 면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남과 어울리기를 꺼려하면서도 그들은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 그것은 순전히 가정과 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선택대로 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일까. 일자리가 없으면 실업수당이 나오고, 아프면 치료비와 생활비가 나오는 데도 놀고 먹으려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나는 내 운명의 주재자요, 내 영혼의 주인’임을 증명하며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들은 지혜를 짜내고 갖은 노력을 다해 그렇게 살아간다.

    이런 그들이라 사랑이 없는 부부관계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를 ‘프리섹스(free sex)’라 부른다. 프리섹스란 아무하고나 난잡하게 관계를 갖는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다시 말해서 사랑이 주인이 되는 섹스를 의미한다. 섹스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합의해서 이뤄지는 사랑의 행위이며, 남자든 여자든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에게 섹스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게 북유럽 프리섹스의 실체다.

    따라서 거기에는 여성의 삶을 에워싼 결혼과 가정이라는 기존 틀을 깬다는 혁명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여성해방은 그 연장선에 있다. 이런 이유로 그곳에선 거리에서 웃음을 파는 여자를 볼 수 없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 마음이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것이지 사회 풍습에 맞느냐, 안 맞느냐가 아니다. 자신의 선택과 양심, 그리고 책임에 따라 행동할 뿐 다른 것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이방인이 보기에도 남자다, 여자다 하며 선입견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것 같지 않았으며, 직장에 나가는 여성들도 언행이나 복장, 용모, 화장 등에서 눈에 띄게 여자란 티를 내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하는 여직원을 보고 “정말 멋있군. 눈부셔”류의 농담이 남자 직원의 입에서 나오지도 않지만, 여직원도 그럴 소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일에도 남자 일, 여자 일이 따로 있지 않았다. 각자의 일이 있을 뿐이었다.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가 누구를 보호하겠다,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당한 이혼

    또한 그들에게는 무엇을 구분한다는 것이 낯설게 보였다. 부모와 자식, 선생과 학생, 간부와 직원, 성인과 청소년 사이에 전통적인 벽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와는 달리 그들은 그런 구분이나 차이를 차별이나 보호의 구실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가치의 다양성 차원에서 이해하는 편이었다.

    그들에겐 이성을 만나는 일까지 포함해서 모든 행동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있었다. 낳아준 부모의 간섭과 보호도 싫어하는데 누구의 간섭과 보호를 받으려 하겠는가. 북유럽의 프리섹스는 결국 혼자이고자 하고, 그리하여 자유롭고자 하는 삶의 방식에서 나온 것이지, 성에 대해 유별난 민족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혼은 오명과 낙인을 남길 일이 아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하나의 일상적 선택일 뿐이다. 이혼녀라고 해서 전 남편에 대한 기억을 애써 지우려 하거나 아이에게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요즘에는 한국 여성들도 이혼에 당당해졌다. ‘오삼숙’ 같은 젊은 부부의 이혼은 말할 것도 없고, 60대 이후 노부부의 황혼이혼도 늘고 있다. 수십 년간 인생의 동반자로 살다 늘그막에 새 삶을 선언하는 여성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재산분할이 가능해진 결과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결혼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탓일까.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화려한 싱글로 남겠다”며 결혼을 위한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는 독신주의자와, “결혼을 포기한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며 결혼은 좀더 나이를 먹고 난 뒤에 생각해보자는 만혼주의자가 함께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고학력 직장여성에게서 두드러진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혼자 산 선배들과는 달리 이들은 결혼이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며 한 남자에게 의존해서 살 필요도, 가정에 정착해야 할 이유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그저 남들과 비슷한 나이에 결혼해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는 것을 은근히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웃으며 “결혼 적령기란 자신이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바로 그때”라고 말한다.

    서로 진정 사랑하지만 결혼을 결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동거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결혼생활이 생각한 것처럼 장밋빛이 아닐지도 몰라서 주저하고 있다”고. 이런 경향은 서구사회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부모 세대의 잦은 이혼을 보아왔기에 이혼하지 않고 평생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상대를 구하려다 보니 그렇다”는 해석을 들었지만, 젊은 세대들이 결혼에 대해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동거, 이혼, 독거(獨居), 혼외 출산 등으로 인해 한 사람이 여러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가 하면,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족에 편입되는 사태도 종종 빚어진다. 이른바 ‘복합가족(multi family)’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가족의 유연화’ 경향은 가족의 개념을 자신이 소속해온 여러 가족 가운데 하나를 일컫는 것으로 바꾸고 있는데, 그래서 미래의 가족형태는 이런 복합가족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아탈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람들이 한두 가족이 아니라 여러 가족을 동시에 원하는 이른바 ‘동시적 가족’이 21세기 가족형태의 주류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주장했을 정도다.

    복합가족이 보편화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있는 여학생 크리스 앨런(Kris Allen·18)은 ‘앨런’ 어머니 킴 앨런(Kim Allen)에게서 ‘앨런’이란 성을 물려받았다. 어머니는 그 성을 전 남편, 그러니까 크리스의 아버지와 결혼하면서 갖게 됐는데, 크리스는 결국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은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크리스 아버지의 원래 성이 앨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성은 스(Hoops)였다. 앨런이란 성은 그의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새 아버지의 성을 따라 그에게 붙여준 것이었다. 그래서 최근 크리스는 성을 앨런에서 스로 바꿨다. 크리스의 새 아버지 제리 카이저(Jerry Kaiser)도 같은 경우다. 그의 원래 이름은 제리 코헨(Jerry Cohen)이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카이저라는 성을 가진 남자와 재혼하면서 코헨이 아니라 카이저가 됐던 것이다.

    이혼율이 50% 가까이 이르다 보니 ‘자기가 낳은 아이(biological child)’와, 새로 관계를 맺게 된 남편이나 부인이 ‘데리고 온 아이(step-child)’가 함께 사는 경우도 생겨나고, 그 결과 아이들이 원래 성 대신 의붓아버지(step-father)의 성을 따르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미국에선 여자가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르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만, 동거가 보편화된 북유럽에선 아이에게 어머니 성을 물려준다. 대개는 아버지의 것보다는 어머니의 것을,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성을 붙여주는 것이다. 동거부부의 경우 아이의 부양의무는 어머니의 몫이라고 보기에 그러하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 가운데 90% 정도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을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북유럽 지역에선 자녀 양육에 대한 아버지의 권한이 점점 줄어들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복합가족이 확산일로를 걷고 있는 걸까. 무엇보다 ‘내 삶은 나 자신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다. 경험이 많은 선생이나 부모, 선배의 충고는 단지 참고사항일 뿐, 선택은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진다는 생각이 강해 종래의 결혼제도나 가족제도를 답습하려 하지 않고 자꾸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기성세대는 ‘앞으로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히 새로운 일을 저지르지 못하는 데 비해 젊은 층은 미래의 일은 미래에 맡기고 오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주저없이 행한다.

    복지제도의 기능

    그러나 이런 생각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좀처럼 실천하기 어렵다. 다행히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일찍이 그런 여건을 구축했다. 사회복지제도가 그것이다.

    복지제도는 자연상태의 인간을 사회적 인간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부유한 사람들의 소득 일부를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전함으로써 이들을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 상태에서 보호하며 삶의 질을 추구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런 복지제도는 18세기 말 산업혁명을 겪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정작 복지의 천국이라는 북유럽에선 제도나 풍습에 의해 개인의 행동이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다시 말해서 삶의 내실을 기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필요에서 태어났다.

    동양사회에서는 지금도 개인이나 가정의 어려움, 예를 들어 부모의 상(喪)이나 자식의 결혼 같은 대사는 가족이나 친척, 이웃간의 부조(扶助)를 통해 해결하고 있지만, 북유럽에선 그런 일을 일찍부터 가족적·지역적 연대가 아닌 교회라는 조직과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해결해 왔다. 그리하여 부모는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보살펴야 하고 또한 자식은 늙은 부모를 끝까지 부양해야 하는 부담에서 해방돼 개인의 삶을 즐기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에 반해 우리는 아직도 가족이라는 ‘끈’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비난을 의식해서 감히 그 끈을 놓지 못하는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걸 놓아버리면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 이래서야 개인은 물론 사회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모든 발전은 개인의 창의성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이런 구조에선 그게 쉽지 않다.

    일본의 유명한 정치가인 오자와 이치로는 93년에 펴낸 ‘일본개조계획’에서 “개인은 집단에 매몰된 대가로 생활과 안전을 보장받는다. 이것이 일본형 민주주의다. 이런 일본형 민주주의로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며, 그 대안으로 일본 국민 개개인의 자립을 제시했다. 남성중심 사회의 한계를 지적한 그의 개조계획에는 성별 규제의 철폐와 함께 여성의 국정 참여도 포함돼 있었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분위기가 전파된 때문인지, 21세기에 걸맞은 가족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족형태와 기능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며, 가족의 형태와 조건이 어떠하든 그리고 가족 내에서의 지위가 어떠하든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최대한 증진돼야 하고, 가족 내에서의 남녀 평등을 증진하고 가사책임과 고용기회를 남녀가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와 같은 수직구조는 선택의 폭이 좁아 오늘날의 변화를 소화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여성의 참여와 협력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결혼제도나 가족제도의 변화는 대부분 바로 그 연장선에서 일어나고 있다.

    결혼에 대한 의식의 변화는 출산율의 감소로도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어느 나라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낙태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이나 유대인들에게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좀 심한 편인 이탈리아와 일본의 부부 평균 출산율은 1.20명, 1.17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조금 높은 1.40명으로 집계됐다. 두 사람이 만나 1.4명을 낳는 데 그치는 셈이니 ‘4인 가족’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겠다는 여성이 늘고 있는데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딩크족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부 중심의 생활에 만족하며 산다. 아이를 낳더라도 하나로 만족하는 부부가 흔하다. 더욱이 이젠 일상처럼 돼버린 낙태도 출산율을 낮추는 요인이다.

    인공수정이 보편화된 미국 등지에선 남편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독신모도 많다. 예전에는 산모가 밝히지 않아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이제는 산모 본인도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죽은 지 몇 년이나 된 남자의 정자를 취해 아이를 갖는 일도 있을 테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독신모는 미국에만 이미 수천 명에 이르며, 그들끼리 ‘자발적인 독신모’라는 단체까지 결성했다고 한다.

    여성의 출산 거부는 출산 자율권의 다른 표현으로,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피임법이 개발되면서 가능해졌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시작된 베이비 붐이 미국에서 최고조에 달하고, 벤저민 스포크 박사의 유명한 ‘육아법’이 몇 년째 베스트셀러 행진을 계속하던 그 시기에 출산을 조절할 수 있는 피임법이 개발됐다.

    미국 여성들이 피임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을 펼쳤던 목적은 국가경제를 살리려는 데 있었던 게 아니다. 여성의 신체에 씌워진 갖가지 억압의 굴레를 벗겨냄으로써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와 같은 여성해방운동은 형제 자매가 10명이나 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출산의 자유를 갖지 못하는 한 여성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간호사의 길을 걸었던 마거릿 생거(1883∼1966)에 의해 촉발됐다. 그 결과 많은 여성들이 원하지 않는 임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녀를 한두 명만 낳는다고 자녀 양육이 쉬워진 것은 아니다. 교육기간이 길어지고 가르쳐야 할 것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그걸 위해서라도 여성은 일을 가져야 했다. 그래서 경제적 능력을 갖췄지만 그렇다고 자녀에 대한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점에선 우리보다 앞서 간다는 미국이라고 해서 크게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미국에서도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이 적지 않다.

    아내에게 개처럼 충성하라

    ‘남자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승리하라’라는 책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CNN 수석 부사장 게일 에번스도 젊은 시절 아이를 키우느라 직장을 그만뒀다가 다시 시작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직장여성들에게 육아문제는 큰 골칫거리다. 그러나 나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직장은 언제나 새로 가질 수 있지만, 아이는 원한다고 새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고 강조한다. 결혼 초기에 나는 좋은 아내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직장을 잠시 그만뒀다. 하지만 다시 사회에 복귀할 기회가 왔다.”

    그러나 모든 직장여성이 에번스와 같은 행운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직장에 나가면서 아이도 키워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그래서 요즘 미국에선 ‘강한 기업은 가정지향적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가정친화적(family friendly) 기업’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환경문제가 심각해지자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환경친화적 기업’이 등장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늘어나자 급기야 가정친화적 기업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지금 시행되는 가정친화 노력은 재택근무 권장, 변동근무제 실시, 기업 내 탁아소와 학교 건립 등의 수준인데, 아직은 그 내용이 다양하지 않고 널리 보급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 사회가 가정과 직장을 다 함께 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정은 어떠한가. 직장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가정에서 가족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든가, 그게 안 되면 여성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관련 사회 인프라가 아직 구축되지 않은데다 우리의 의식이 거기에 미치지 못한 탓이다.

    그래도 맞벌이 가정에선 가사를 분담하고 있다지만 남편은 아내가 시간적·기술적인 이유로 도저히 해내지 못하는 일을 땜질하는 정도에 그치는 실정이다. 맞벌이 부부 사이에도 전통적인 주종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으며, 한때 전족(纏足)으로 아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는 중국보다 못한 게 사실이다.

    중국의 젊은 남편들은 직장이 끝나는 대로 집으로 달려가 밥도 짓고 빨래도 하며 탁아소에 맡겨둔 아이도 데려온다. 맞벌이를 하는 처지라 가사의 상당 부분을 도맡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중국이야말로 여성 우위의 나라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들 사이엔 ‘모범남편이 되기 위한 5가지 조건’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돈다. 이런 내용이다.

    첫째, 새처럼 일찍 일어나 밥을 지어야 한다. 둘째, 소처럼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회사일뿐 아니라 집안 일도 게을리해서는 안 되며, ‘밤일’ 또한 예외가 되지 않는다. 셋째, 양처럼 성격이 온순해야 한다. 아내의 말에 대꾸하면 안 된다. 넷째, 개처럼 아내에게 충성해야 한다. 바람피울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하며, 일이 끝나는 대로 곧장 귀가해야 한다. 다섯째, 돼지처럼 아무것이나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한다. 잘 받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연신 “맛있군, 맛있어” 하면서 아내의 솜씨를 칭찬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남자들은 쫓겨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소 과장된 얘기지만, 이런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여성의 상대적 우위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미 오래 전에 성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섹스 사회를 구축한 북유럽에선 자녀 양육과 가사 분담에서도 앞서간다.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선 직장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출산휴가를 주는 것은 물론, 복지천국답게 아이가 두 살이 될 때까지 부모 모두에게 1년간의 양육휴가를 준다. 물론 유급이다. 이때 어머니가 갖는 휴가를 ‘마마레직’, 아버지의 것을 ‘파파레직’이라고 한다. 자녀양육 휴가를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제공하는 것은 자녀 양육이 어머니만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에 근거한다.

    산모는 휴가기간에 아이를 기르면서 평소 시간을 내지 못해 미뤄뒀던 취미활동 등을 하며 아이와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정신을 가다듬는다면, 남편은 아내를 대신해 집안 일을 돌보고 부부끼리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어떤 부부는 첫해엔 아내가, 다음해엔 남편이 휴가를 내 아이를 번갈아 돌보기도 한다. 유아기에 부모가 이토록 아이에게 정성을 쏟기에 아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어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학교에서도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재봉일과 바느질, 목공일 같은 것을 가르친다. 아이들은 이런 수업을 통해 남녀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배울 뿐 아니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도 삼는다. 주체성과 자립심도 그런 과정을 통해 습득한다.

    살림을 꾸려가는 방식도 우리 상식과는 조금 다르다. 남편은 아내의 일을 얼마간 거들어주는 차원이 아니라 가사의 한 부분을 남편이 아내와 똑같이 자신의 아이디어와 책임으로 해낸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가사 분담’이다. 남편이 월급봉투를 부인에게 건네주면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 아니라 남편이 책임지겠다고 한 부분을 그 돈으로 해결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그렇게 한다.

    예를 들어 식료품비를 아내가 부담하기로 했다면 아내가 장보는 일을 맡고, 주택부금이나 아이들 물건값 등을 남편이 책임지기로 했다면 남편이 그것을 부담하는 식이다. 부부가 똑같이 일하고 돈을 버는데, 여자라고 해서 가계부를 쓰고 요모조모 따져가며 살림할 수는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그러고도 남는 돈은 각자의 몫이 되는데, 그 일부는 저축했다가 휴가를 갈 때 서로 합친다.

    이런 것을 보면 북유럽인들의 부부생활이란 시간과 돈, 정성을 부부가 똑같이 부담한다는 전제 위에 성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그럴 자신이 없다면 남자이건 여자이건 혼자 살아야 한다. 필자는 실제 그런 이유로 혼자 사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제도는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이 제도의 희생자가 되면 안 된다. 가족제도이든 결혼제도이든 심지어 남녀평등 같은 가치까지도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지 그걸 위해 인간이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그걸 포기해야 한다. 행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모든 제도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한때는 최선의 제도라고 일컬어지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 것은 행복에 대한 인간의 생각과 조건이 달라진 데 기인할 뿐 그 근본원리가 달라졌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므로 결혼제도가 바뀌고 가족의 개념이 변한다고 해서 ‘해체’다, ‘파괴’다 하며 겁낼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제도를 찾아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오히려 그런 논의과정에 자신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 모두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나태함과의 싸움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마을 생폴이란 곳을 지나칠 때의 일이다. 그때 필자는 남의 차를 얻어 타고 있었다. 차 주인은 40대의 파리지엔. 우리는 꽤 오랫동안 아름다운 코트 다쥐르(‘청색 해변’이란 뜻으로 남프랑스 해변을 말함)를 달렸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여인의 프라이버시에 관계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내가 왜 돈을 열심히 버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돈을 버는 이유 말인가요? 그건 간단해요. 나 자신을 가꾸기 위해서죠. 그걸 하려면 돈이 필요하니까요. 그게 바로 내가 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걸 20년 가까이 실천해 오고 있어요.”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라고 해서 멋을 내는 데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 말은 자신이 매력을 잃게 되면 남편도 자기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그렇다면 남을 몹시 의식할 것도 같은데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매력을 계속 지켜나간다는 것은 남과의 경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나태함과의 싸움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남에게서 인정받는 것은 부차적인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여인 역시 그게 무척 힘들다고 했다.

    삶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이다. 삶이 이럴진대 어찌 남자다, 여자다 하며 구분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도 이제부터 그 ‘프리섹스’란 것을 즐겨보면 어떨까. 21세기는 그런 시대가 될 것 같으니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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