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문화·관광 특성화로 도약에 성공

  • 육성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입력2005-05-25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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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경주시는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사 도시다. 시내는 물론 인접한 시골 마을에서도 천년 고도의 문화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제아무리 전문적인 답사가라도 경주시 일대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려면 한 달 넘게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이런 까닭에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1995년 불국사와 석굴암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데 이어, 2000년엔 경주 일대의 모든 유적지로 그 범위를 확대했다. 말하자면 경주는 도시 전체가 세계적인 ‘문화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경주대학교는 그 뿌리를 관광산업에 두고 출발했다. 1987년 설립된 한국관광대학이 바로 경주대학교의 모태다. 이 때문에 1997년 교육부가 지방대학 특성화사업 지원대상학교를 선발할 때 경주대학교는 문화·관광분야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경주대학교에 설치된 30여 개 전공학과 중 약 30%가 관광특성화 사업과 관련돼 있다. 경주대학교가 관광 분야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경주대학교의 관광특성화 사업에 관련된 전공학과는 모두 10개다. 관광학부에 관광경영학 관광개발학 호텔경영학 외식사업학 등이, 관광외국어학부에 영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이, 그리고 문화재학부에는 문화재학과 문화재보존학 전공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중국어학과와 문화재보존학은 99년과 2000년에 개설돼 아직 특성화 분야에 편성돼 있지 않지만, 경주대학교는 조만간 이들 2개 학과도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철저한 실기 위주 교육

    경주대학교 관광특성화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하게 실기 위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관광학관에 마련돼 있는 다양한 실습실은 시설과 기자재 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레스토랑실습실, 조리실습실, 객실·프런트실습실 등이 있다. 레스토랑실습실의 경우 각종 테이블과 접시, 칵테일 도구 등을 실제 레스토랑과 똑같이 배치했다. 또 레스토랑실습실 옆에는 대형 조리실습실이 있어서 학생들은 조리에서부터 서비스까지 한번에 체계적으로 실습할 수 있다.



    변우희 관광학부장은 경주대학교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실기에 강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이론 수업에서 벗어나 현장 분위기를 익히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4년제 대학을 나오고도 막상 실무에 투입하면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요. 하지만 학교에서 실습 위주로 배우면 현장 적응력도 높아지죠. 호텔이나 레스토랑 업계에서도 우리 학교 졸업생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습실을 둘러보는 도중 야외수업을 하고 있는 30여 명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경영학과 3·4학년 학생들의 전공과목인 ‘호텔식음료 서비스 실무’ 시간이다. 호텔업계에서 10년간 근무한 김호기 교수는 베테랑답게 대형 접시에 포크와 나이프를 얹는 동작부터 음식을 나르고 치우는 방법 등을 능숙하게 선보였다. 김 교수는 “요즘엔 공원 같은 곳에서 뷔페를 마련하거나 연회를 여는 경우가 많아 야외 서비스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학생들에게 야외 서비스의 기초를 알려주기 위해 외부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호텔 업무는 앉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고객에게 봉사하는 서비스죠. 그래서 현장 실무를 모르면 버티기 힘들어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지만, 학생들은 김 교수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호텔경영학과 3학년 조옥경 양은 “실습을 하면 호텔에 대한 느낌이 직접 전해집니다. 앞으로 호텔연회나 연회판촉 분야에서 일할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같은 시간, 조리실습실에서는 외식사업학과 3학년 학생들의 서양요리 실습이 한창이다. 이 과목을 담당한 최수근 교수는 신라호텔과 하얏트호텔에서 20년간 근무하고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요리계의 실력자. 때문에 수업은 인기 연예인의 TV요리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최 교수는 실습을 시작하기에 앞서 학기말 평가 과제물을 공개했다.

    “조별로 1만5000원씩 지급하겠습니다. 이 돈으로 4만5000원짜리 요리를 만드는 겁니다. 코스는 4개로 해서 메뉴판을 직접 작성해보세요. 재료 선택과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그야말로 철저한 현장 학습이다. 재료비 1만5000원을 들고 직접 시장에서 재료를 사고,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요리를 만들라는 주문이다. 최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학생들을 훈련시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 교수의 수업은 계속된다. 학생들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최 교수의 요리 노하우를 받아적기에 바쁘다.

    “양파가 매울 때는 어떻게 한다고? 레몬을 입에 물어봐.”

    “향신료는 어떻게 보관한다고? 물에 푹 담그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살짝 적셔서 걸쳐 놓는 거야.”

    “프랑스에서는 마늘을 일곱 번 삶아서 빵에 문지르거든. 마늘 맛은 사라지겠지만 소스로서는 최고지. 자, 그리고 이렇게 빵 위에 치즈를 얹어봐.”

    “요리는 유유상종이야. 뜨거운 데는 뜨거운 것을 넣고, 찬 데는 찬 것을 넣어야지. 하지만 서양요리의 상당수는 실수로 탄생했다는 것도 잊지 말라고.”

    최 교수의 시범을 지켜본 학생들은 조별로 양파수프와 생선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록 최 교수의 손놀림처럼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실습에 임하는 자세는 대부분 진지했다.

    요리사로서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최 교수. 하지만 그는 학생들에게 요리 이상의 그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다. 단순히 요리 기술만 익히는 것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요리 기능과 더불어 경영 마인드를 키워야 한다는 게 최 교수의 지론이다.

    “요리사가 요리만 알아서는 곤란합니다. 국제화 시대엔 요리도 사업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주대학교 커리큘럼은 조리, 영양, 서비스, 외식 등을 골고루 섞어 놓았어요. 앞으로 이런 교육이 하나의 모델이 될 거예요.”

    최 교수는 경주대학교의 관광특성화 사업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는 “지방대학의 특성상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생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경주대학교는 관광 분야에서 확실하게 뿌리를 내렸다”고 평가했다.

    “특성화 덕분에 많은 기자재를 도입해서 학생들의 의욕을 끌어올릴 수 있었죠. 경주대학교에서는 관광학과 연계된 여러 학문을 함께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학습효과가 높습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부전공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최 교수가 서양요리 실습을 지도하는 동안 바로 옆방에서는 호텔경영학과 학생들이 토론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 과목을 가르치는 오문환 교수 역시 호텔업계에 33년간 몸담았으며, 한때 전국지배인협회장을 지낸 실무통이다.

    호텔경영학과 4학년 신영미 양은 이날 ‘호텔의 인터넷 예약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경주지역의 5개 특1급 호텔을 현장조사해 인터넷 예약의 실태와 문제점을 연구한 내용이었다. 발표자는 컴퓨터를 이용해 파워포인트로 출력한 화면을 스크린에 쏘고, 학생들은 의문 나는 사항을 질문했다. 마치 대기업의 중역회의를 보는 것 같다. 이와 관련, 오 교수는 “수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파워포인트 사용을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 역시 관광특성화 사업이 경주대학교의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교수들의 연구비가 많아지고 장학금도 늘었어요. 97년 특성화대학으로 지정된 뒤부터 관광특성화 학부 학생들에겐 ‘긍지’가 생긴 것 같아요. 사실 지방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늘 대도시로 떠날 생각을 하게 마련인데, 특성화 학부는 다릅니다. 아마도 학생들이 입학할 때부터 뚜렷한 목표를 세우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교수들 중에 실무자 출신이 많아 취업에 유리한 것도 장점이겠죠.”

    교육부는 1997년 지방소재 28개 대학을 분야별 특성화 대학으로 선정했다. 당시 교육부는 인문, 공학, 국제전문실무인력양성, 기초과학, 자유 분야로 나누어 지방대학을 심사했는데, 경주대학교는 인문 분야의 관광특성화 부문에 신청했다. 이때부터 경주대학교는 ‘경주 문화 중심의 관광교육·연구특성화 사업’을 추진해왔다. 경주대학교에 설치된 경주문화연구소, 관광진흥연구원, 박물관 등은 그러한 목표에 잘 부합하는 인프라다.

    경주문화연구소는 97년 설립됐다. 말 그대로 경주지역의 문화를 연구하는 곳이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일반인들이 경주를 ‘신라의 고도’로만 생각하는 데 비해 경주문화연구소는 통시적 맥락에서 파악한다는 점이다. 즉, 고려와 조선, 일제시대의 경주에 대해서도 연구하는 것이 차이일 듯하다. 이와 관련, 경주문화연구소의 김선주 교수는 “경주를 중심으로 시대를 통찰한다는 의미에서 ‘경주학’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문화연구소는 지금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경주를 연구해왔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경주와 관광을 종합적으로 개괄한 ‘경주여행’, 김동리와 박목월의 발자취를 연구한 ‘경주의 소설문학’, 그리고 현장조사 보고서인 ‘토함산 지역 불교유적 조사연구’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 경주문화연구소는 학술논문집 ‘경주문화연구’를 발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실리는 논문에 대해서는 편당 2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관광진흥연구원은 88년 3월 경주대학교의 전신인 한국관광대학의 개교와 함께 설치됐다. 하지만 연구원이 적극적인 활동에 들어간 것은 경주대학교가 특성화사업을 추진할 무렵이다. 이곳에서는 그 동안 산학협력 프로그램 개발과 사회교육 등에 주력해왔다. 99년 상반기까지는 경주시민을 모집해서 조주사, 조리사, 제과·제빵사, 통역안내원 교육과정 등을 열었다. 하지만 최근엔 신청자가 줄어 중단한 상태.

    연구원은 학술 심포지엄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98년엔 관광진흥을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었고, 99년부터는 두 차례에 걸쳐 영·호남 지역화합 학술심포지엄을 공동 개최했다. 또 지난해 7월엔 경주시가 주관한 ‘신라의 거리 조성 기본계획’을 연구했으며, 올 2월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평가회를 열었다.

    경주문화연구소와 관광진흥연구원이 오프라인에서 경주지역의 관광문제에 접근한다면, 문화관광정보개발실은 온라인을 통해 관광 인프라를 축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경주대학교 문화관광정보시스템(KUTIS, cybertour.kyongju.ac.kr/kutis)을 4개 국어로 제작해 경주를 홍보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 경주 관광코스를 선택하면 현장조사를 통해 자체 제작한 숙박업소 등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박물관도 경주대학교의 자랑거리로 꼽힌다. 경주라는 지역의 특성상 박물관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경주대학교 박물관의 정병모 관장은 “경주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발굴을 하다 보면 2중, 3중으로 유물이 나온다. 통일신라와 철기시대 청동기시대 유물이 함께 출토되는 곳은, 경주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경주대학교 박물관은 자칫 역사에서 사라질 뻔한 벽화 2점을 살려냈다. 사찰의 보수공사로 뜯겨버릴 상황에 놓인 경남 김해 은하사의 벽화가 박물관측의 끈질긴 노력으로 마침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나한도와 반야용선도가 그것이다. 경주대학교 박물관은 이 벽화의 처리과정을 담은 자료집을 발간해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경주대학교 박물관은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지표조사와 한 차례의 시굴조사를 실시했다. 이 가운데 94년 발굴한 황성동 유물과 97년 발굴한 동천동 유물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경주대학교 박물관의 유물 중에는 문화적으로 연구가치가 높은 것도 많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전자 토기와 세 발 달린 솥, 청동 공방지에서 출토된 도가니 등이 그것이다.

    경주대학교는 97년 관광특성화 대학으로 선정된 뒤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26억8500만원을 지원받았다. 학교측이 공개한 사업계획서를 보면, 지원금의 대부분은 시설투자, 장학금, 연구지원 등에 투입됐다. ‘교육환경 개선’이 특성화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생각에 엄정하게 집행했다는 설명이다. 특성화 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강의실의 에어컨을 포기하면서까지 실습기기를 도입했다. 번듯한 건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철저하게 실속을 챙겼다”고 귀띔했다.

    한 예로 경주대학교의 복합적인 건물 배치를 들 수 있다. 다른 대학 같으면 여러 동으로 나누어졌을 건물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관광학관과 학생회관, 중앙도서관이 한 건물에 들어서 있는가 하면, 대학본부와 대학원, 법정학부와 경영학부, 전자계산소와 박물관도 한지붕 밑에 둥지를 틀고 있다.

    몰라보게 달라진 교육환경

    이러한 경주대학교의 투자방식은 겉으로 드러난 수치에서도 성과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2000년 6월을 그 기준으로 경주대학교가 작성한 특성화사업 추진 성과표엔 최근 3~4년 동안의 눈부신 성장이 잘 나타나 있다. 다음은 특성화 사업 이전과 이후의 주요 내용을 비교한 자료다(사업 전, 97년 10월 이전/사업 후, 2000년 6월 기준. 특성화사업에 포함된 학과만 분석한 자료임).

    전임교수(36/52명)

    겸임교수(없음/9명)

    교수 1인당 학생수(42.4/29.21명)

    연구지원(95∼96년 대학 전체에서 52/206건)

    연구실적(97년 22.8/논문 242.5 편, 저서 43.5편)

    실습실(8/18개, 평균 활용률 89%)

    장학금 수혜율(10.11/37.5%)

    신입생 평균 수능점수(179.7/262.8점)

    순수 취업률(49.1/75.7%)

    이 밖에도 경주대학교의 변화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경주문화 중심의 관광학문을 육성하기 위해 관·산·학 협력체제가 구축된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경주대학교는 경북도청이나 경주시청 등과 함께 각종 프로젝트를 추진해왔으며, 경주와 서울지역의 특급호텔에 학생들을 파견해 현장교육을 강화했다.

    경주대학교는 관광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이미지 향상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각종 행사를 주도적으로 개최했다. 경북 도내의 고등학생을 선발해 백두산 투어에 나섰고, 국내 최초로 ‘전국 대학생 관광 조리 칵테일 대회’를 열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또한 국제화시대에 발맞춰 외국 대학들과 자매결연을 적극 추진하고 각종 어학연수 프로그램도 늘렸다. 특히 관광외국어학부에서 실시한 ‘SURVIVAL ENGLISH 2000’은 독특한 프로그램 구성으로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인터넷을 활용한 교육도 경주대학교가 관심을 쏟는 분야다. 교내에 설치된 교육매체제작소는 교수의 강의를 녹화해 곧바로 홈페이지에 올린다. 물론 아직은 일부 강의에 그치고 있지만, 차츰 비중을 늘려 강의를 전세계에 송출하는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학생들도 자체 인터넷방송국 KIZ(Kyongju University Internet Broadcast Zone)을 운영중이다. 여기에서는 학교활동이나 강의자료 등을 편집해서 방송하고 있다.

    경주대학교의 변신이 계속되면서 주변의 평가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영남지역 고등학교 입시 담당자들이 경주대학교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전문대학교 재학생 사이에서는 편입 희망자가 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관광특성화 사업에 포함된 일부 학과에 국한한 현상이지만, 오랫동안 지방대학 콤플렉스에 시달려온 경주대학교의 처지에서는 고무적인 ‘사건’이다.

    경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경주대학교로 가는 길은 마치 ‘신병훈련소’를 연상케 한다. 산을 끼고 돌아가는 길이 그렇고,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인적이 드문 것도 그렇다. 서천교를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편으로 가면 태종무열왕릉이고 오른편엔 김유신 장군 묘가 눈에 들어온다.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두 영웅호걸을 뒤로 하고 영천 방향으로 곧장 달리면 선도산이 나타나는데 이곳에 학교법인 원석학원(이사장 김일윤·국회의원)이 설립한 세 개의 학교가 있다. 신라고등학교, 서라벌대학, 경주대학교다.

    경주대학교는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경주대학교를 처음 찾는 사람들은 학교라기보다 공원에 들어온 느낌에 젖는다. 교문에서 본관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특이한 입간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Kyongju Boot Camp’

    ‘boot camp’는 영어로 ‘신병훈련소’라는 뜻이다. 군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밟아야 하는 기본적인 훈련…. 그렇다면 경주대학교는 학생들을 군대의 신병처럼 교육한다는 뜻일까? 경주대 한정곤 총장은 ‘boot camp’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boot camp’의 핵심은 의식개혁입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결코 자신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비록 지방대학에 들어왔지만 해낼 수 있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사회에 진출해서 자기 몫을 못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요. 이것은 학생들의 경쟁력을 키워주지 못한 대학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입간판 오른쪽에 나붙은 현수막에서도 한 총장이 말하는 의식개혁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형설지공(螢雪之功). 학문사관학교.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입니다. 열심히 꾸준히 학업에 정진하여 성공하는 세계시민 시대를 준비합시다.”

    KBC(Kyongju Boot Camp). 이것은 경주대학교가 대도약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신입생 때부터 확실하게 공부시키자는 취지로 출발한 KBC는 현재 경주대학교의 모든 학사업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통과시험 제도. 경주대학교에 입학한 모든 학생들은 외국어와 컴퓨터 시험에 합격해야만 졸업할 수 있다. 2000년 3월부터 시행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경주 ‘신병훈련소’

    한정곤 총장이 부임한 이후 새롭게 등장한 교육과정이 바로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1학년 전교생 교양필수 과목으로 한 총장이 직접 강의하는 시간도 편성돼 있다. 한 총장은 ‘리더십’ 수업에 각별한 애정을 쏟는데, 그 이유는 의식개혁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경주대학교를 ‘신병훈련소’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결국 이루지 못할 거라는 패배의식을 깨뜨리고 한번 해보겠다는 도전정신을 키워야 합니다. ‘리더십’은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과목이죠.”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KBC를 비롯해 각종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으나 불만을 터뜨리는 이도 의외로 많다. 특히 특성화사업에서 뒤로 밀려난 학부의 학생들은 학교측의 집중적인 투자방식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특성화사업 관련 학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학과의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경주대학교가 관광특성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대체로 인정한다.

    5월31일 본관에서는 제2회 법정학부 학술대회가 열렸다. 서울지역 대학이라면 법정학부가 학교의 중심을 이루는 경우가 많겠지만, 경주대학교에서 법정학부는 소외된 학부 중 하나다. 이것은 특성화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방대학에서 흔히 나타나는 이른바 학부간 불균형 현상이다.

    학술대회는 무난하게 진행됐다. ‘원자력 발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찰’이나 ‘부동산업의 변화와 부동산 투자신탁’에 대한 주제발표는 나름대로 내용이 잘 정리돼 있었다.

    하지만 학술대회는 경주대학교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그들만의’ 행사로 끝났다. 법정학부 신희영 교수는 “특성화 사업은 나름대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플러스 요인이 더 크다고 본다. 앞으로는 특성화사업에서 밀려나 있는 학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경주대학교가 발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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