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호

교수사회의 빛과 그림자

  • 송홍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05-03-23 16: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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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해 지방사립대 계약직 교수로 부임한 K씨는 통장에 찍힌 월 급여액을 볼 때마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각종 공제를 한 뒤 그가 받는 돈은 180만원 남짓.

    시간강사를 할 때도 지금처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몸이 힘들었을 뿐 원하는 공부를 한다는 생각에 정신적 스트레스는 없었다. 새벽 기차를 타고 강의를 다니는 피곤한 생활이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기쁨에 신바람이 났었다.

    시간강사 시절 그의 연 수입은 900만원.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벌이였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고 한다. 전임자리를 구하면 곧 생활이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임이 되면 생활이 크게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친구들 모임도 웬만하면 핑계를 대고 빠집니다. 친구들이 술값 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못할 일이더군요.”

    K씨는 “월 수입이 노총에서 만든 3인 가구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전임이 되어 나아진 것은 내 이름으로 된 의료보험 카드 한 장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달력엔 일요일이 없다. 강의와 논문 준비 때문에 주말을 잊은 지도 오래다. 커리큘럼 준비, 회의참석, 실험 등 하루 일과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학술지에 발표할 논문을 준비하느라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다.

    턱없이 낮은 급여

    “‘한 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란 말은 구문(舊文)입니다. 임용에 대한 염려가 없다면 거짓말 아니겠어요. 교수 사회만큼 직업의 유연성이 없는 곳도 없어요. 한 대학에서 쫓겨나면 다른 대학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K씨는 “연구여건이라도 안정돼 있으면 치사하게 급여에 불만을 갖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연구비조로 지급되는 수당이 있지만 턱없이 적은 액수라고 한다. 자신의 용돈에서 부족한 연구비를 벌충해야 한다는 것의 그의 설명.

    그의 가족은 월 50만원을 저축하고 생활비로 80만원을 쓴다. K씨의 용돈은 30만원. 지금도 꼭 사야 할 것이 아니면 구입을 미루게 된다는 그는 “5년, 10년이 지나도 경제적으로 별달리 나아질 것이 없는 생활을 생각하면 갑갑할 뿐”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교수생활을 시작한 지 4년째인 지방 H대학 김모 교수의 연봉은 세금 납부와 각종 공제를 하고 나면 2700만원 정도. 교수만큼 가치 있는 직업은 없다고 말하는 그도 급여에 만족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수는 최고 수준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전문직입니다. 하지만 급여는 고급 지식노동자 중 가장 낮아요. 교수들은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젊은 시절 많은 기회비용을 치른 사람들입니다. 대학에 들어와서 근무 여건을 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지요.”

    김교수는 “제자나 후배들에게 경제적 걱정 없이 연구에 정진하려면 미국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충고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성적표’에 웃고 우는 교수

    그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교수업적평가제와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연봉제 후 매년 일정하게 증가하던 급여 인상폭이 과거보다 줄었다. 상위 등급을 받지 못한 탓에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준 높은 논문을 발표하고 외부기관 프로젝트를 유치하려고 노력하지만, 지방대 교수라는 한계가 걸림돌이 된다.

    “수도권 사립대학을 제외하곤 교수들의 임금이 생각보다 훨씬 적습니다. 국·공립 대학은 연봉이 다소 적더라도 신분이 안정돼 있지 않습니까. 지방사립대는 엉망이에요. 예외인 곳도 있지만….”

    그는 “대학후배가 최근 연봉 2000만원에 계약제 강의전담요원으로 임용됐다”고 귀띔했다. 계약제 강의전담요원은 보통 1~3년 기간 동안 신분이 보장되는 직책이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공급과잉’ 현상이 발생해 교수들의 급여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의 그의 분석이다.

    김교수의 연구실엔 ‘업적’을 점수로 계산해 기록한 ‘성적표’가 배달된다. 교수도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연구능력과 강의능력이 점수로 기록되는 것을 그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평가결과를 받아 들면 ‘꼭 이런 식의 평가를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업사원도 아니고 업적을 하나 하나 계량화한다는 건 난센스죠.”

    업적평가 결과가 연구실로 배달되는 날이면 교수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린다. 급여도 문제지만 재임용 여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연차가 늘어도 교수들의 월급은 크게 오르지 않는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방 S대에서 10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J교수의 연봉은 3800만원 가량. 40대 중반인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니다.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생기는 부수입이 조금 있지만 조교와 대학원생들에게 쥐어주고 나면 자신의 몫은 전혀 없다고 한다.

    “일부 귀족 사립대학을 제외하면 같은 연배의 회사원보다 교수 급여가 오히려 적습니다. 훨씬 늦게 돈벌이를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큰 차이죠.”

    J교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강의노트를 디지털화하고 홈페이지를 이용해 강의를 진행하는데, 강의만 할 때보다 시간과 품이 훨씬 많이 든다. 학회에 참여하고 논문 지도 하다보면 정작 자기 논문 쓸 시간 내기도 빠듯하다고 한다.

    이처럼 일부 지방사립대 교수의 급여는 일반의 인식과는 크게 다르다. 5년차 교수의 연봉이 2500~3000만원인 곳이 부지기수고 그보다 적은 곳도 있다.

    계약임용제를 실시하는 지방의 한 대학에선 1800만원에 임용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있을 정도. 여건이 특히 열악한 호남권의 한 대학에선 1500만원에 계약한 교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지방사립대의 급여수준이 이처럼 낮은 것은 아니다. 일부는 수도권 대학 수준의 연구 여건을 보유하고 있으며 교수에 대한 대접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지방사립대 보다도 교수의 처우가 떨어진다는 전문대 교수들의 사정은 어떨까. 경기도 A전문대의 조모 교수는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 급여만으로 보면 전문대 교수는 교수도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지방 전문대에서 2년째 전임으로 강의를 하는 H씨(33).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그의 연봉은 2000만원이 넘지 않는다. 이는 대기업 신입사원의 급여보다도 낮은 수준.

    “최근엔 전문대 교수의 상당수가 박사 학위를 갖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의 자질과 능력은 더욱 좋아지는데 급여는 이에 따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전문대 교수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H씨는 “전문대의 교수대접이 이 모양인 것은 재단이 학교를 교육기관이 아닌 사업체로 보기 때문”이라며 “교수 처우를 개선해 교육의 질을 높이기 보다는 건물의 외관이나 인테리어를 개선해 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 없다”고 말했다.

    전문대이면서도 4년제 대학 수준의 연구여건을 보유하고, 교수 처우도 종합대학에 버금가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M대, I대, D대 등이 대표적인 예. 하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대다수 전문대 교수들의 생활은 교수라는 지위가 주는 사회적 무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급여수준이 낮은 전문대와 지방사립대 교수들은 “급여가 적어도 서울지역 사립대 수준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명문 사립대 교수의 경우 부수입을 얻을 창구가 다양하다는 점도 지방대 교수들이 부러워하는 대목이다. 지방사립대의 한 교수는 명문대 교수를 ‘귀족 사립대학 교수’라고 불렀다.

    지방사립대와 전문대 교수들이 “그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하는 서울 사립대 교수들의 급여 수준은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지역 사립대 교수들의 수입은 지방사립대 교수들보다는 많지만 ‘사회적 통념’과 다르기는 마찬가지다. 지방대교수들의 말처럼 고소득을 올리는 교수는 극히 일부의 한정된다.

    교수신문은 지난해 “서울지역 20개 대학의 교수연봉 비교표’를 입수해 보도한 적이 있다. 이전까지 교수 급여가 외부에 알려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학교 당국이 급여 수준을 ‘쉬쉬’ 하는데다 교수들도 외부 공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해서다.

    서울 사립 S대 총괄지원팀이 급여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작성한 이 자료에 따르면 초임이 가장 높은 대학은 고려대로 연 3965만원이며, 숭실대(3813만원), 광운대(3758만원), 서강대(3702만원) 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재직기간 10년차 기준으로는 고려대(5326만원), 이화여대(5246만원), 성신여대(5165만원), 숭실대(5153만원), 연세대(5081만원) 순. 정교수에 해당하는 30년차 기준으로는 연세대(8136만원)가 고려대(7591만원)를 제치고 가장 많은 급여를 지급했다.

    초임 기준으로 볼 때 서울지역 사립대 중에도 급여가 가장 높은 대학과 낮은 대학 간에는 그 차이가 1000만원을 넘어선다. 일부대학의 20년차 급여가 타대학의 10년차 임금과 비슷한 경우도 있다.

    대학별로 호봉테이블과 성과비 및 연구비를 지급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 자료와 교수들이 실제로 받는 연봉총액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료를 기준으로 볼 때 서울지역 사립대 교수의 급여가 지방대 교수급여보다 높은 것은 확실하다.

    사립 명문대에 재직하는 K교수는 얼마 전까지 L그룹 산하 연구소에 정기적으로 출근하면서 자신의 월 급여와 맞먹는 임금을 받았다. 연봉 30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같은 또래의 지방사립대 교수와 비교하면, 그의 수입은 ‘재벌급’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K교수의 사례는 일부 인기학과 교수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별달리 부수입이 없는 명문대 교수의 급여는 전문직 종사자와 비교하면 초라해진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교수상은 K교수와 같은 일부 교수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대 교수협의회에 따르면 전임강사 또래인 35세 의사 연봉은 6400만원, 조교수 2년차에 해당하는 38세 회계사의 연봉은 8300만원, 부교수 2년차에 해당하는 48세 변호사의 연봉은 1억3500만원에 이른다.

    한편 국·공립대 교수의 연봉은 급여가 괜찮은 사립대의 60~70% 수준이다. 통상 재직 5년의 국립대 교수가 일부 사립대 교수 초봉보다 적다고 보면 된다.

    서울대 교수의 급여는 전임강사 2년차 2760만원, 조교수 2년차 3128만원, 부교수 2년차 3544만원, 정교수 2년차 4159만원이다(99년 기준). 국립대 간 급여 차이는 크지 않으며 직업 안정성도 비슷하다. 지난해 지방 국립대에 전임강사로 임용된 P씨의 연봉은 2500만원 수준으로 서울대 전임강사와 별반 차이가 없다.

    연봉제·계약제를 강요하는 정부

    이처럼 교수 급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일부 대학교수를 제외하면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높은’ 사회적 지위와 ‘낮은’ 객관적 소득 사이에서 딜레마를 느낄 정도로 교수의 임금은 저평가돼 있다.

    대다수 교수들이 급여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교육인적자원부는 2002년부터 학문의 질과 교수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공립대를 대상으로 교수연봉제·계약임용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교수들의 반발로 당초 계획에서 한 발 물러서 우선 신규 임용되는 교수에 한해 적용할 계획이다. 이에 비판적인 교수들은 “결국은 모든 대학에 연봉 계약제가 도입될 것”이라면서 “경쟁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이 교수의 처우와 교수직의 안정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수들이 연봉·계약제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분이 불안정해지고 급여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남대 김병주 교수는 “기본적으로 교수와 연봉·계약제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지금과 같은 여건이라면 우수한 인재가 대학에 남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고급 인력’이 국내 대학을 기피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은 지난해 전산과학을 전공한 교수 2~3명을 신규임용하기 위해 해외에서 활동중인 사람들에게 임용제안서를 보냈지만 영입에 실패했다. 자연대도 영국에서 재직중인 박모 교수를 임용하려 했지만 박교수는 열악한 연구여건을 들어 거부했다. 미국에 유학중인 박사과정 학생들도 가능하면 현지에서 ‘잡(job)’을 구하려는 추세다.

    국·공립대가 연봉제를 도입하면 그동안 이 제도의 도입을 망설인 사립대들도 본격적으로 연봉·계약임용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난 1999년 1월 교육공무원법이, 같은해 8월 사립학교법이 개정돼 각 대학이 교수를 임용하면서 계약 조건을 규정해 채용할 수 있는 길은 이미 열려있다.

    이미 다수의 대학에서 시행중인 연봉제, 계약제는 ‘철밥통’으로 불리던 교수의 신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수년 전만해도 교수직의 안정성은 다른 직종보다 현저히 높았다. 국립대 교수는 다른 직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위가 안정적이었으며, 사립대, 전문대 교수도 다른 직종보다는 직업 안정성이 높았다.

    군소 사립대의 경우 ‘교수는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 전 얘기다. 1~3년마다 재임용 받아야 하는 교수가 상당수며 재단이나 총장과 작은 ‘알력’이라도 생기면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일부 ‘문제 학교’들이 연봉·계약제를 재단에 비판적인 교수를 제압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학교의 교수 연봉제는 비판적인 교수를 제어하기 위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승진 재임용을 하려면 각 분야별로 기본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학교당국으로부터 벌점을 받으면 아무리 연구성과가 뛰어나도 상쇄할 수 없어요. 비판을 생명으로 하는 교수가 소신까지 접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2월 지방 G대학의 박모 교수는 정든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총장이 대학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여긴 그는 재단과 깊은 관련이 있는 미국 장로교 총회에 총장과 학교의 문제점을 알렸다.

    이 사건으로 학교 당국과 갈등을 겪은 박교수는 올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는 이 대학의 교수이면서 교목으로도 일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새 학기를 준비하던 중 느닷없이 재임용 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학교측은 “올해부터 교목에 교수가 아닌 직원을 임명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당신은 교수가 아닌 직원으로 교목을 하기에도 적합치 않은 인물”이라고 통고했다.

    박교수는 대학교목단체 회장이다. 그는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학교에서 교목에 교수가 아닌 직원을 임명하는 대학은 없다”며 “학교가 총장에 비판적인 자신을 내보내기 위해 편법을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학교당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아무개 교수도 보편성을 넘는 독특한 가치관을 가졌다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고 전했다.

    연봉제·업적평가제가 교수를 제압하는 도구로 악용되는 것은 대학이 자체적으로 정한 업적평가 기준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업적평가 기준에는 ‘인성평가’ ‘가치관’ 등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요소가 상당수 있다.

    “이런 항목들이 학교에 비판적인 교수를 억압하는 데 쓰인다”고 해직 교수들은 주장한다. 양적인 척도로 판단할 수 없는 항목을 만들고 이런 항목에서 고의로 낮은 점수를 줘 해당 교수를 탈락시킨다는 것이다.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교수에게 여자화장실 청소를 시킨 전문대도 있고, 졸업식이 끝난 후 출석을 불러가며 교수들에게 가운을 정리하게 한 학교도 있다. 서울대 최갑수 교수는 “연봉제·업적평가제를 일부사학은 교수를 통제하는 ‘칼 자루’로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연봉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업적평가’는, 대학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연구’ ‘교육’ ‘봉사’ 3개 부문으로 나누어진다.

    학술지 분류에 따른 논문평가가 연구부문의 주요 기준이며 교육부분에서는 학생들의 강의평가, 강의 커리큘럼 등이 자료로 이용된다. 봉사부문은 보직 여부, 신문·잡지 기고 등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한다. 학생들의 MT를 따라가는 것까지 봉사점수로 기록하는 학교도 있다.

    이런 평가기준에 대해 교수들이 갖는 가장 큰 불만은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교수들은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마구잡이로 출현하는 것이 경쟁력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1년에 20, 30편의 논문을 쓰는 교수, 로비에 앞장서는 교수, 학생을 웃기기 위해 힘쓰는 교수가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미국식 연봉체제에서 보이는 합리성조차 결여돼 있습니다.”

    류종영 전국대학교수회 사무총장의 지적이다.

    학생이 교수의 강의능력을 평가하는 ‘강의평가제도’도 교수의 눈엔 거슬린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강의평가는 기말고사를 보기 전 마지막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강의평가서를 나눠주고 작성케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평가서는 학생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무기명으로 작성한다.

    숙명여대를 예로 들면 강의평가 문항은 ‘수업의 만족도’ ‘성적 평가의 방법과 기준’ ‘수업동기 유발’ ‘강의의 이해도’ ‘성실성’ 등 10여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대학도 대부분 이와 비슷하다. 강의평가결과는 교수 업적평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교수들은 학점이 헤픈 교수에겐 좋은 평가가 쏟아지고 그렇지 않은 교수에 대해선 부정적 평가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좀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평가방법이 개발돼야 한다는 것. 특히 교과목 특성이나 수강생 수 등의 변수를 무시하고 학생의 강의 소감만으로 점수를 매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방 K대학은 최근 임의적인 업적평가로 구설수에 올랐다. 연봉제를 실시하더라도 학교의 임금총액은 물가인상률에 따라 그 규모가 확대되는 것이 원칙이다. K대는 업적평가를 하향 평준화해 인건비를 줄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학교당국이 절반 이상의 교수를 평균 이하인 D, E 등급으로 분류해 연봉제를 임금삭감의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것이다.

    신규 채용 교수를 대상으로 시행되는 ‘계약제 임용’도 임금을 줄이는 수단으로 악용된다. 계약제 임용의 근본 취지는 일정기간 연구업적을 관찰한 뒤 자질이나 역량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교수로 임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문제대학’은 원래의 취지와 다르게 이 제도를 인건비를 줄이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임금이 높은 노(老)교수를 해임하고 계약교수를 새로 임용하는 사례도 있다.

    연봉제를 실시하는 대학들은 “교수의 논문발표가 이전보다 현저히 늘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늘어난 논문 중에는 허수가 많다.

    업적평가를 잘 받기 위해 수준미달의 학회가 졸속으로 과다하게 설립되고 있으며 저질논문이 양산되고 있다. 평가에 눈먼 교수는 발표한 논문 수를 늘리기 위해 한 편의 논문을 조각 내 여러 곳에 나누어 싣기도 한다.

    연구가 대학원생 위주로 진행되었는데도 지도교수 이름이 논문에 들어가고, 교수와 친분이 있는 다른 교수의 이름이 들어가기도 한다. 직책을 이용해 제자나 후배 교수의 연구에 슬쩍 자신의 이름을 넣는 일도 다반사다. 이름을 넣는 대가로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외부기관에서 연구비를 끌어오는 것도 연구업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일부 대학은 교수들이 확보한 연구비를 직접 관리한다. 교수가 끌어 온 연구비의 일정지분을 학교가 갖는 것. 재정이 극히 열악한 대학은 재정난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교수들에게 외부 연구비를 따오라고 채근하기도 한다.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의 교수들이 각종 재단이나 기관의 연구비를 독식하는 상황에서 객관적인 조건이 불리한 지방사립대 교수가 연구비를 확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훨씬 어렵다. 이는 수도권 대학의 교수도 마찬가지다.

    체면불구하고 명문대 교수들에게 로비를 해 공동연구에 끼어 드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연구용역에 참여하려면 자기 주머니를 털어 리베이트를 마련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학재단. 학술진흥재단 등 정부출연기관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차별 대우’를 받기는 매한가지. 기업재단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도 특별한 ‘인맥’이 없으면 따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교수들 : “우리도 노동자다”

    정부가 나서서 한 직종 종사자 모두에게 ‘연봉제’ ‘계약제’를 권유한 경우는 그 예를 찾기 힘들다. 경쟁을 강요하는 정부의 정책은, 전공서적을 탐독하느라 안경을 벼리고 진리의 샘을 찾아 밤을 세워야 할 교수의 기를 꺾고 침묵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교육인적자원부는 능력 있는 교수를 우대하고 부당한 대접을 받는 교수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연봉·계약제 시행과정에서 교수들이 신분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객관적인 ‘가이드 라인’도 마련할 방침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노력에 대해 교수사회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계약임용제를 근간으로 한 ‘국립대발전계획’을 철회하지 않는 한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움직임이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교수노조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을 주축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70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교수도 임금 생활자이고,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데 있어 사용자인 국가 혹은 사학법인과 대등한 입장에 서있지 않으므로 ‘단결’의 필요성에서 일반 노동자와 차이가 없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것이 교수노조의 주장이다.

    교수노조준비위는 교수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시행된 교수재임용제가 사학재단에서 비판적인 교수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전례처럼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도 결국 같은 폐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교수연봉제·계약임용제·국립대 발전계획·전문대 발전계획·사립학교법 개정 등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정책에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최갑수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대학정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 돼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문제가 있는 사학들이 연봉제·계약제를 도구로 교수를 억압하고 있지만 개인 적으로는 이에 맞설 힘이 전혀 없습니다. 교수노조가 결성돼 대학정책, 교육정책에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이 위기의 대학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입니다. 대학개혁의 주체는 교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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